기분은 이해한다. 시발 나도 설마 이 상태가 3시간 넘도록 유지될 줄 알았겠는가?
‘잠깐 주둥이에 버그라도 난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하게 생각해서 3시간 걸려도 자연 치유가 되지 않는 뇌 관련 병세는 빠르게 병원에 내원하는 게 맞다.
엄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병이든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법은 조기 치료다. 동물 전용 힐 스킬밖에 배우지 않는 수의사(진)도 그 정도 지식은 있다.
내가 그런 제반사정을 알고도 얼른 근처 대도시의 신전에 달려가지 않았던 데에는 따로 의미가 있었다.
“……옆트임이 땅콩 붕대?”
【실례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을 방도가 없나이다.】
내 대가리를 진료하던 아델라이데의 말이었다. 나는 무슨 광기의 외과의에게 뇌 뚜껑을 따이는 3류 호러 영화의 피해자처럼 아델라이데의 손가락에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즈, 흐윽, 증, 증세는 어때여어……?”
【증세는 어떻냐네요.】
【……심각한 장애는 보이지 않사옵니다.】
아직까지도 훌쩍대는 라리루라의 질문에 아델라이데는 그리 대답했다. 브리타니아 어를 잘 못하므로 중간에 프랑이 끼어들어서 통역을 해 줬다.
프랑도 그 대답에 내 손을 붙들었다. 나는 불안함을 숨긴 채로 중얼거렸다.
【북두칠성이 속옷으로 브라질.】
“남편? 존나 깨니까 그냥 닥치고 있자?”
존나 너무하네. 나는 종이에 글자를 썼다.
─빡집중하면 나비레라의 한 상 차림.
“뭐라는 거야 병신아.”
─빡집중하면 필담은 가능.
“지금 그게 왜 저딴 병신 같은 문장의 나열이 되냐?”
내가 그걸 어케 알아요 시발. 몰라서 진료 받고 있잖아.
같은 말을 해 주려다가 다나까지 가만히 있질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는 걸 보자 입이 절로 닫혔다. 만약 나랑 반대로 울 아내들이 이딴 꼴이 났으면 나도 초조했겠지.
내가 백치가 되거나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데도 진땀을 뺐다.
주댕이 밖으로 나오는 말이 좆소 기업의 자체 제작 번역기처럼 돼 버리는데 어쩌겠는가. 그나마 바디 랭귀지는 버그가 안 나서 다행이지 시발.
【아무래도 마나의 흐름에 혼선이 있는 듯 하군요.】
“헬멧부터 후장식 날개가 원조입니다?”
“아니 시발 이 새끼는 닥치고 있으라니까 아까부터 왜 자꾸 입을 놀려. 니 지금 솔직히 즐기고 있지?”
《반역의 개나리 이성애자.》
들켰군.
아델라이데는 내가 그러는 걸 착잡하게 지켜보다가 말했다.
【제가 보기엔 강력한 마나에 의해서 후계자님의 말씀에 왜곡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말에는 힘이 깃든다고는 하지만, 그 힘이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뭐, 대충 그럴 거라고는 생각했다.
‘만언신 로두르? 였던가.’
인간에게 언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능력을 주었다는 신!
내 번역 치트는 그 신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세계에 오고서부터 이 반칙급 자동번역기의 힘이 결코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까.
왜냐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 개쩌는 번역능력은── 마나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건 다시 말해서 단순하게 지능이나 뭐 그런 걸로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복잡한 암호조차 원큐에 해석해준다는 게 이 생각을 뒷받침한다.
말하자면 언어의 신의 가호인가.
그렇게 말하면 간지나기는 하군.
‘룬 어를 해석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겠지.’
룬 문자는 말이 ‘문자’일 뿐, 사실 암호에 가깝다.
오딘이 자기 목숨을 제물로 세상의 진리를 18글자로 압축해버린 그거 말이다. 성경이나 붓다-갓의 어록을 외운다고 뜻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룬 문자는 그 깊이가 끝이 없다.
말하자면 룬 문자는 로두르의 관할이 아니다.
로두르 자신도 해석하지 못할 텐데 그 능력의 일부를 쓰고 있는 듯한 나도 해독 못 할 수밖에.
룬 문자는 이 번역 능력보다 상위급의, 최고급 암호인 거다.
【치료법…… 치료법은 없느냐?】
【……기다려라. 나도 지금 생각 중이다. 마나가 흐트러진 것이라면 수습할 수 있지만, ‘격’이 높은 마나에 의해 언어의 변형이 일어나는 케이스는 아는 바가 없단 말이다.】
당사자인 나보다 더 고뇌하는 바이콘들.
하긴, 자기 일족의 구세주가 겉보기로는 정신이상자가 되어가고 있는데 차분한 게 더 말이 안 되긴 하겠다.
‘강력한 마나가 언어를 비튼다고?’
나는 내 마나통을 점검해 봤다.
딱히 늘어나진 않았다. 그 시발 오딘인지 간달프인지 모를 이상한 새끼는 내 마나를 ‘교수’해 가서 싸운 놈이었기에 뭐 얻어낼 것도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그 사과 때문일 텐데.’
꿈에서 먹은 사과 말이다.
아니, 그건 사과가 맞았나? 지금 생각하면 어떤 생김새였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물론 사람을 언어장애로 만드는 바이오 과일의 품종이야 좆도 중요하진 않겠다만.
‘존나 선악과도 아니고, 내 위에 굴러떨어져 놓고 먹었다고 저주를 내리네.’
물론 진짜 저주는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 ᚦ(Thurisaz)의 룬을 손바닥에 새겨봤다.
손바닥에 새기는 ᚦ(Thurisaz)는 안심감과 평온을 부른다고 하는데, 사실 그다지 효과적인 쓰임새는 아니다. 이거라도 좀 발라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문자획을 가볍게 새겼을 때였다.
화아아아아악──!!!!
나는 손바닥에 새긴 룬을 보자마자 막대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약을 빨면서 작곡하는 아메리칸 싱어송 약쟁이들이 이러할까? 뒤통수가 탁 트여서 거기에로 정보의 홍수가 지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야말로 살균력 99% 가글을 주사기에 넣어서 눈깔에 꽂고 흘려보내는 듯한 쌍쾌함!!
나는 처음으로 리스테린 가글을 입에 머금었을 때처럼 포효하면서 나자빠졌다.
“──갸아아아악!! 고블린 발도!!!”
“노, 노르!! 너 또 왜 그래?!”
내가 바닥을 굴러다니자 아내들이 기겁해서 달려왔다. 좀 미안하긴 했는데 뇌수가 통째로 물파스가 된 듯한 시원함에 뭐라 말해줄 겨를이 아니었다.
“허억, 허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거칠게 뛰는 가슴을 붙잡고 내 안에서 기능하는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스위치를 내리는 것처럼 의식해서 전원을 꺼 봤다.
그리고 나서 혀를 굴렷다.
“에붑, 벱, 빕, 베벱, 벱…… 아, 아아. 씨불쟝…… 크흠. ”
된다. 혓바닥이 좌로 우로 저절로 꼬이던 것 같은 감각이 사라졌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중얼거렸다.
“얘들아? 나 다 나은 듯.”
다나가 혹시 이 새끼가 우릴 갖고 장난쳤나? 라는 듯 쳐다봤지만, 뭐라 대꾸해 줄 말도 없었다.
“마법 분석 능력이요……?”
─훌쩍. 라리루라는 코를 닦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어. 아마도 그 악몽을 극복하고 얻은 게 그거 같아.”
마법을 해석하는 능력!
그것만 놓고 보면 그게 뭐 어땠는데, 싶은 수준이지만 딱 써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나는 손바닥에 룬의 만다라를 생성시켰다.
우웅─.
ᚦ(Thurisaz)의 만다라가 3~4개씩 피어올랐다.
원래는 내가 이 룬을 써도 만다라가 1개였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룬이나 마법을 보고 해석하는 기술…… 아니, 지혜인가? 아무튼 폭주 모드의 스펙에서 일부 기능만 떼 온 거지.”
말하자면 어지간한 마법을 해석하고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느냐는 별개로 해석하는 건 가능하겠지.
‘신의 눈으로 봐라…….’
그야말로 오딘-오픈북이다.
대가로 눈에 가글을 부어서 뇌까지 촉촉하게 적시는 기분을 맛봐야 하지만 말이다.
【허면 신좌에 오르신 것은 아니십니까?】
【그건 아닐 듯 하네요. 너무 그…… 멕아리가 없잖아요?】
내가 뭐 궁그닐이라도 쥐고 깨어났으면 몰라.
“그, 그럼 아까 그건 뭐였어요? 마법 분야에서 머리가 좋아진 거랑 언어장애랑 무슨 상관인데요?”
“……으음. 지금은 뭐라고 말하기 애매한데, 딱히 위험하진 않아.”
로두르의 번역 치트.
오딘의 눈.
아마 이 2개의 가호끼리 상충하고 있는 느낌이다.
‘추측이긴 하지만, 오딘의 눈을 남용했다간 번역 치트에도 부작용이 나오겠지.’
성능이 부족한 컴퓨터로 CPU와 램을 많이 잡아먹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는 듯한 것이다.
노르드 98이 더 고퀄리티가 되지 않으면 버그나 부작용이 이어지겠지.
“존나 그럼 비명은 왜 빼액거리고 지랄이었는데? 니 아내들 심장 터지면 어쩔라고 맨날 오바야, 오바는?”
“니가 시발 몰 알어. 아이스 드래곤 해츨링이 눈깔에 대고 브레스 뿜는 느낌이라니까?”
“느그 와꾸가 얼마나 꼴보기 싫게 생겼으면 아직 철도 안 든 도마뱀 애새끼까지 그러겠니.”
“남편 얼굴에 욕 해봤자 누워서 침 뱉기 아님?”
그렇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덕분에 평소의 내 상태로 돌아왔다는 건 다들 받아들여준 모양이다. 일행들 사이에 안심감이 퍼져나갔다가, 다시 진지해졌다.
【습득 과정에는 생각치 못한 일이 많았으나, 어쨌튼 이걸로 우리 주인님께서도 천공신님의 후계지로서 능력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겠군.】
【결과론이다만…… 사실이 그렇기는 하구나. 후계자님께 따로 장기적인 부작용도 없는 듯 하고.】
그 뒤로는 꿈에서 나온 간달프가 뭐였는가에 대한 소소한 담론이 오갔다.
하지만 뭐, 당연히 확실한 결론은 나지 않고 ‘아마 오딘이 후계자를 시험하고자 남긴 뭐시깽이겠지’ 식으로 이야기가 매듭지어졌다.
‘우리가 신의 생각을 어케 알겠어.’
당장 옆에 있는 츤데레 마누라의 생각도 매지컬 자백제인 셰이드를 꽂아보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나의 그대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며칠 정도는 이곳에 묵자꾸나.】
베로니카는 이야기를 정리하듯 그리 말했다.
【나도 신마님의 이동마법진을 해석해 두마. 일주일도 안 걸릴 것이다. 직접 이동해서 로마니아까지 가는 것보다는 빠르겠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너무 서두르지만 마.】
그렇게 내가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우리는 당분간 성지에 남아서 베로니카의 연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그 동안 오딘의 눈을 사용하는 요령을 습득해 두자.
내가 이세계 간달프를 해치운지 4일이 지났다.
베로니카는 마법진의 해석에는 난항을 겪는 듯 했지만, 그 구조로부터 자신의 공간 마법을 완성시키는 건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재현은 어렵지만 흉내는 가능하다. 문을 연결하는 식으로 만든다면 사고의 염려도 없겠지.”
그게 베로니카의 말이었다.
마법진을 그려서 이동하게 설정하면, 이런 SF 텔레포트에 자주 있는 사건사고 걱정은 없다는 모양이다. 텔레포트했다가 파리랑 융합하거나 하면 끔찍하자너.
‘슬레이프니르의 마법진이 수준 높을 뿐, 마이너 카피라면 베로니카가 배운 인간의 기술로도 가능한 건가.’
나는 그 소식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베로니카의 성과는 아주 멋지고 남편으로서 자랑스럽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 사실을 암시했으니까.
‘아무래도 <편찬대대> 새끼들도 <공간이동>이 가능하다고 봐야겠어.’
우리 아내님이 암만 여신이라지만, 이동마법진이 개인으로 해독할 수 있는 범주라면 <편찬대대> 새끼들도 해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유니콘의 성지를 부수면서 마법진도 기록해 갔을 테니까, 그때로부터 수십~수백 년 지난 지금까지 해석 못 했을 리는 없겠지.’
그러니까 그 새끼들도 <공간이동> 마법을 보유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이세계에선 존나게 보기 드문 마법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타뷸라부터 엔리르까지 이런저런 전력이 세상에 분포돼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가 노예가 된 계기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밀입국도 쉬운 일은 아니다.
【후계자님. 뭔가 근심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고민하고 있는 게 보였던 걸까. 나를 발견한 아델라이데가 혹시 자기가 도울 건 없냐는 듯 물었다.
아마 훈련 중에 뭔가 잘 안 풀리는 게 있다고 생각한 걸까?
오딘의 눈을 사용하는 연습을 하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편찬대대>의 본거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로마니아 한가운데에서 맨얼굴로 활동하려니 걱정이 되서요.】
【변신 마법을 쓰시면 어떻습니까?】
【파티에서 저랑 베로니카밖에 재능이 없거든요.】
그리고 나도 얼굴을 바꾸는 건 어렵다. 잠시라면 몰라도 몇 분 쯤 유지하면 스쿼트 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처럼 해제되고 마는 것이다.
【변신 마법은 남한테 걸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조금 걱정되긴 합니다.】
판타지 소설하고 달리 내가 떨어진 이세계에서는 변신 마법이란 게 막 남들한테도 걸어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세계의 범죄자들이 얼마나 활개를 쳤겠는가.
타인의 몸에 변형을 일으키는 건 변이 마법이라는 분야의 특기였다.
‘우리 파티의 면면은 개성이 강하니까.’
아마 티르시를 찾으려면 다방면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지인이 그렇게 돌아댕기면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변장을 하더라도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내 그런 말에 아델라이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저라면 타인에게 변신 마법을 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만.】
【예? ……아.】
나는 알아먹지 못하고 되묻다가 눈치를 깠다.
나의 북유럽 신화 바이블인 마블 영화에서도 그랬지만, 이세계에서도 로키는 변신의 귀재이자 거인 요툰족의 신이다.
그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듯한 슬레이프니르는 내 꿈에서 그렇게 크게 나오지 않았던가.
당연히 그만큼은 아니어도 꽤 덩치가 있는 아델라이데는 요튠의 피를── 로키의 재능을 다른 바이콘보다 많이 발현했을 것이었다. 이 뻐킹 혈통빨 이세계가 다 그런 식이니까.
【흐, 흐흠. 확실히 그건 대단합니다만, 마법을 걸고 계속 유지하시는 건 힘들잖습니까.】
나는 헛기침을 했다.
스스로 자칭한 적은 없지만 나도 명색이 마법의 신의 후계자라며 평가받는 새끼 아닌가. 마법 실력에서 좆발렸으니까 대답할 말이 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