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나를 변신하려는 부위에다 덮고, 인형탈을 쓴 것처럼 마법의 술식을 운용하면 변신 현상이 일어난다.
나는 거기까지는 하기 힘들지만, 마나의 모양을 바꿀 뿐이라면 쉬운 일이었다. 술식 결합이 필요한 혈수마공에 비하면 이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다.
“라리루라. 맨 뒤에 서 있는 갈색 머리는 죽이지 마.”
“네! 이 정도 수준이면 그냥 전부 제압해도 되겠는데요?”
라리루라는 텔레파시로 그리 대답하면서도 거침없이 양아치들에게 매콤한 주먹을 퍼부어댔다.
─퍼버버벅!
〈으기휵!!〉
〈이요오오옥?!〉
그건 거의 양떼에 갑옷 입은 사자를 풀어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라리루라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턱주가리가 파-킨 해버린 양아치들이 죄다 바닥을 뒹굴었다. 피만 안 튀지 학살극이라 해도 좋을 수준이다.
‘다른 사람한테 마나 코팅을 씌워도 방어력 상승 말고는 별 효과 없지만 말이지.’
결국은 야매로 하는 〈부여〉다. 실제 효과는 마나로 만든 가죽 갑옷을 입은 정도밖에 안 될 것이었다.
그래도 변신 마법으로 라리루라의 몸에 맞게 개조한 거인 가죽 갑옷에, 몸속에 마나 코팅을 두르는 혈수마공 금강불괴까지 합치면 거의 우주 방어다.
나라도 이 정도로 방어가 쌓이면 물리 공격으로는 거의 데미지를 못 줄 것이다. 나는 뱀 혀를 낼름거리면서 만족했다.
‘암, 그 정도는 돼야지. 이럴려고 일부러 뱀으로 변신까지 했는데.’
이렇게 야수회귀로 오토 가드를 해 주다가, 라리루라 펀치 선에서 정리가 안 되는 문제가 벌어지면 내가 직접 싸울 생각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꿀 빠는 것처럼 보일 텐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나대로 라리루라가 다치는 일 없도록 밀착해서 호위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 파티에서 방어력 낮기로는 선두를 다투는 라리루라다. 이 정도의 보험은 필수였다.
〈호기약──!!〉
그렇게 내가 지정해 준 갈색 머리 남자─라리루라의 힘을 처음으로 눈치챈 놈─까지 깔끔하게 제압이 끝났다.
무난하게 실력있는 놈이었지만, 오러만 경계하다가 관자놀이에 하이킥이 꽂혀서 기절해버렸다.
“후우! 역시 몸을 움직이는 건 상쾌해서 좋네요!”
라리루라는 주먹을 회수하면서 숨을 내뱉었다.
“사람을 때리는 느낌은 별로 제 취향은 아니지만요☆!”
그런 것 치고는 존나 잘 패던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러가 진짜였거나 야수회귀 버프가 제대로 들어갔으면 이 골목은 피바다가 됐을 걸.”
“그건 차라리 다행이네요! 전 선배처럼 힘 조절을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요!”
라리루라의 말도 이해는 갔다. 이세계는 사람들 방어력이 천차만별인 세상 아닌가.
이것 쯤은 버티겠지 하며 날린 펀치에 인간 데케데케가 되는 수가 있다. 제압을 하려면 확실하게 실력 차이를 간파하는 재주도 있어야 했다.
“아무튼 잘 했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적진에 뛰어들진 말고. 뒤통수 잘못 까이면 야수회귀 버프가 있어도 훅 간다.”
“아핫♡ 그럴 땐 선배가 도와주실 거잖아요?”
“기억을 잃어버린 비극의 히로인이 되지 말란 소리야. 나 니가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굴면 위화감 장난 아닐 것 같애.”
“선배도 참, 쑥스러워 하시긴! 에잇♡”
장난 치는 척 하면서 은근 진심으로 내 목 조르지 마라.
앗 이거 생각보다 아프네 시발! 구와아악!! 우리 비밀기지는 뒷산에 있다!!
“아, 맞다. 선배? 이 사람들은 어떡해요?”
“냅둬. 마지막으로 잡은 놈만 빼고 허리라도 분질러버리고. 하반신 마비가 되면 이 새끼들의 평소 행실이 남은 인생을 좌우해 주든가 하겠지.”
“과연! 도와줄 사람도 없으면 앉은뱅이 직행 코스네요!”
“그래. 이런 땅거지들한테 그런 중상을 치료할 돈은 없을 테니까.”
말로는 안 했지만 척추신경이 곱창나면 고자가 된다는 부가 옵션도 있다.
휠체어도 없는 이세계 중세랜드에서 턱 박살난 앉은뱅이로 살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강간범 새끼들한테는 바라지도 못할 처사겠지만 말이다.
아마 1년 안에 다 자연사하지 않을까.
“에잇, 에잇!!”
〈으끼야아아아악?!〉
─우지끈! 콰직!
자칫하면 칼 든 마피아 꿈나무들한테 간살당할 뻔 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라리루라는 오물을 밟는 것처럼 기분 나빠 하면서도 성실하게 깡패들을 전부 짓밟아 놓았다.
나는 대충 계획을 짜다가 텔레파시를 쏘았다.
“생포한 놈은 내가 심문할게. 근처에 빈 집 혹시 안 보여?”
“으음, 어디어디……? 앗! 있어요! 저기 허름한 집!”
라리루라는 강간 브라더즈를 반병신으로 만들어 주고서 기절한 남자를 허름한 집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망을 보려는 것처럼 자리를 비웠다.
─슈르르륵!
뱀 모드에서 다시 변신하면서 착지하는 나.
긴 말총머리에 도포를 입고 가면을 쓴 키타이 대협(大俠), 예수게이의 등장이다.
카리스마가 뿜어질 수 있도록 영화에 나오는 몽골의 칸처럼 검은 털옷도 입었다. 아서 웨인이랑은 벡터가 좀 다르지만 이것도 꽤 까리한 코스튬이었다.
‘일단 묶어둘까.’
근처에 곰팡이 슨 의자나 버려진 밧줄이 있다. 나는 남자를 거기 앉히고 팔, 다리를 묶어버렸다.
없으면 만들려고 했는데, 어쩌면 다른 마피아들이 심문할 때 쓰고 버려둔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발로 ᚨ(Ansuz)를 새기고, 손바닥에 심장충격기 같은 스파크를 튀겼다.
“Charge…… Clear!”
남자의 심장에 대고 10만 볼트.
〈흐익!〉
기절한 상태에서 심근경색을 일으킨 남자는 즉사했고, 그 등에서 나비가 우화하는 것처럼 영혼이 빠져나왔다.
─허어어어억!! 헉, 허억, 허억……?!
〈숨이 무척 가쁘군. 악몽이라도 꿨나?〉
나는 폐도 없는 주제에 숨이 넘어갈 듯 구는 남자에게 시큰둥하게 쏘아붙였다. 그는 영문을 몰라하면서 고개를 젓다가 말을 더듬거렸다.
─내, 내가, 죽은 건가?
〈눈치가 빠르군. 하긴, 그래 보이긴 했지.〉
대충 아무 말이나 하면서 다시 시체에다가 전기 쇼크.
─팔딱! 파닥파다닥!!
이걸로 심폐소생술을 대신할 생각이었는데, 남자의 시체는 눈을 까뒤집고 좀비처럼 경련해도 살아나진 못했다.
자기 시체의 끔찍한 몰골과 영혼 상태를 자각한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흐, 흑마법사?! 다, 당신! 흑마법사인가?!
〈……대충 맞다.〉
좀 있다가 죽을 녀석한테 대답해주는 것도 귀찮아서 그리 대답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꺼먼 털옷 가면남일 뿐인데, 왜 흑마법사라고 하는 거람. 좀비처럼 날뛰는 건 지 시체 잘못인데.
‘아니 그것보다, 얘 왜 안 살아나?’
만화나 드라마에서는 전기 충격을 넣으면 살아나던데?
전류가 너무 강했나? 심장이 멈췄다가 전기로 살아나는 건 쿠릉쿠릉 열매 능력자의 특권인 것인가?
어쩌면 또 미디어매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혀 깨물면 죽는다는 말이 낭설인 것처럼, 전기 충격으로 멈춘 심장이 다시 뛰지는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건 산타클로스가 구라라는 걸 알았을 때나, 사자는 절벽에서 새끼를 던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에 버금가는 컬쳐 쇼크였다.
전기 충격으로는 심장이 다시 뛰지 않는다.
이거 시험에 나오니까 꼭 외워두도록.
‘시발. 별 수 없지.’
나는 한쪽 눈을 감고 오딘의 눈을 개안했다.
눈을 한쪽 감으면 정보량이 줄어서 뇌로 가글질을 하는 느낌이 조금 가라앉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띄운 ᛒ(Berkanan)의 룬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끄으으윽……!’
남자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참아내면서, 룬의 만다라를 띄울 수 있을 때까지 이해력을 높였다.
부족한 자질은 이런 꼼수로 채우면 될 일이다. 야매에게는 야매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후우우.”
1분 정도 집중하자 두통을 대가로 ᛒ(Berkanan)의 룬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거면 충분하겠지.’
키이잉─!
혀를 찬 나는 룬의 만다라를 띄우고서 남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자여도 싫을 판국인데 남자 가슴에 손까지 얹어야 하는 내 처지가 통탄스럽다. 벌써 아내들 찌찌가 그리워진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내 마나는 ᛒ(Berkanan)의 형태 변형에 맞추어서 남자의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마나인 채로 한층 더 형태를 바꿨다.
─콱!
독수리 앞발처럼 변한 마나가 남자의 심장을 잡아챘다.
‘사내 새끼한테 인공호흡이나 가슴 압박을 하긴 싫음.’
그러면 직접 심장을 주무르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 발상에서 출발한 거친 심폐소생술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끄아아아아악?!〉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자, 그것 외에 사인(死因)이 없었던 남자는 영혼이 몸에 빨려들어가서 깨어났다. 나는 그 가슴에서 손을 떼며 팔짱을 꼈다.
〈가사상태에서도 영혼은 나오고, 심장만 뛰게 하면 다시 살아나는군. 이거라면 살려둔 채로 심문하기도 편하겠어.〉
이런 꼼수가 통한다면 심문에 앞서서 죽이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두고두고 심문해야 할 경우도 있을 거고, 죽이면 큰일 날 상대도 있을 것 아닌가. 좋은 심문 기술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래……. 어디 이야기나 좀 할까.〉
─드르륵. 남는 의자에 앉은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인지, 남자는 나랑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워했다.
〈협조 부탁하마. 네 영혼을 조종하는 건 쉽지만, 넌 죽으면 곤란하거든. 너도 죽기는 싫지?〉
〈뭐, 뭐든지 물어보십쇼! 살려만 주신다면 물어보시는대로 다 불겠습니다!〉
〈협력적이어서 좋군. 우선…… 니가 갈스지?〉
〈저, 저를 아십니까?〉
아니, 모르는데.
나는 그 말을 식도로 삼키고 말했다.
〈건물 위에서 구경했다. 니 어깨에도 안 오는 계집애한테 흠씬 얻어맞더군.〉
─꿀꺽. 침을 삼키는 갈스였다.
아마 기절했다가 일어난 그는 라리루라한테 좆발리고 기절한 자신을 내가 업어온 거라고 착각할 것이다.
이따가 라리루라를 데려왔을 때의 반응이 기대된다.
〈가, 감사합, 갑사합니다.〉
〈알면 됐다. 그런데 얘기를 듣자하니 네 친구들에게 그 여자를 쫓자고 제안한 건 너인 모양이던데, 맞나?〉
〈그, 그게…….〉
─파지직. 내가 손가락에 전기를 일으키자 갈스는 망설임을 털어냈다.
〈맞습니다! 제가 제안했습니다!〉
〈네 취미는 존중하겠다. 실력을 보면 암회에 소속돼 있을 텐데, 어떻지? 그들과의 의리가 목숨보다 중요한가?〉
〈아닙니다! 저는 월향 패밀리보다 제 목숨이 소중합니다!〉
갈스는 눈치가 빠른만큼 바로 패밀리의 이름까지 불었다.
아주 군기가 바짝 들었군. 나는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월향 패밀리라.’
나랑 라리루라가 족쳐야 될 마피아들 이름이 아니던가.
이 새끼가 왜 라리루라를 쫓아왔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인가 예상 가능했던 이유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더욱 떠보려는 심산으로 뇌까렸다.
〈그래. 하지만 반응이 이상하더군. 그녀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걸 봤을 때는 어쨌든…… 브로커의 술집에서 그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을 때, 네 반응이 마치 기회를 붙잡은 듯 보이던걸.〉
라리루라가 술집에서 나온지 10분도 안 지났다.
그리고 그때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변 놈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거기서 그녀가 ‘티르시 언니 같은’ 얼굴을 드러냈을 때, 이 녀석은 왜 눈을 빛내고서 우리를 뒤쫓자는 얘기를 지껄였단 말인가.
브로커가 의뢰를 준 다음이었다면 이해가 간다.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서겠지.
성욕이나 음심 때문이어도 이해가 간다. 남자라면 그럴 만 하다.
하지만 이 놈은 둘 다 아니었다.
〈그건, 그게…….〉
갈스의 눈에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나는 가면으로 가려진 안광을 차갑게 빛냈다. 저건 찔리는 게 없으면 나올 리 없는 반응이다.
대답하지 않아도 가사상태로 만들어서 영혼에게 물으면 될 뿐이지만, 귀찮은 절차는 피하고 싶다. 이 새끼한테는 월향 패밀리까지 안내도 시켜야 하니까.
〈바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묻지.〉
─휙! 나는 갈스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휘어잡고, 품에서 꺼낸 초상화를 눈에 들이밀었다.
프랑이 그려준 티르시의 초상화를 말이다.
〈너, 오늘 이전에도 이 여자를 본 적이 있군. 그렇지?〉
티르시의 초상화를 본 갈스의 눈이 마구 떨렸다.
누가 봐도 수상한 반응이었다. 나는 눈을 반개했다.
‘빨리도 월척이 걸렸군.’
라리루라가 티르시를 닮은 얼굴로 움직이긴 했지만, 벌써 대박이 걸릴 거라곤 생각 못 했었다.
이 놈이 티르시의 얼굴을 안다는 건 술집에서 본 반응으로 확신했지만, 그냥 지나가다 본 티르시에게 음심을 품고 비슷한 여자를 덮치려는 병신이일지도 몰랐잖은가.
하지만 저 머뭇거리는 반응은 켕기는 게 있다는 증거였다.
〈대답이 늦다.〉
〈예? 아, 아니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