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8화 (318/1,009)

잠시고 나발이고 시간은 차고 넘쳤다. 내 손가락 사이에서 스파크가 피어올랐다.

〈히익?! 꺼윽!!〉

갈스의 심장은 전기충격으로 멈췄다. 나는 죽음과 동시에 튀어나온 갈스의 영혼에게도 출력을 낮춘 전류를 뿜어냈다.

〈벡터-게르마늄 쇼크.〉

─으가가가가가각?!

영혼에는 마나를 담은 무기나 마법이 즉효약이다.

갈스가 성불하지 않을 정도로 전기로 지지면서, 다른 손으로는 그 심장을 움켜쥐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허어억!! 크허억!!〉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신장개업을 축하하는 풍선 인형처럼 춤을 추는 갈스.

1초마다 죽었다 살아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일단 즐거운 댄스 타임이 아니리라는 건 알겠다. 그는 내 손가락이 조금만 까딱여도 몸서리를 쳤으니 말이다.

〈말하기 싫다면 마음대로 하도록. 안 그래도 사람을 죽였다가 살리는 기술을 연습 중이거든.〉

사람의 뇌는 산소공급이 멈추면 5분 안에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새끼의 영혼을 5분 동안 심문하고, 다시 살려내서 숨을 쉬게 하면 죽이지 않고 정보를 캐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물론 100% 후유증이 남을 것이며 뇌사할 가능성도 크지만, 그게 뭐 내 잘못인가? 지가 입을 안 연 게 잘못이지.

나는 어느 쪽이든 나쁠 것 없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연습할 절호의 찬스다.

이 씹새끼도 자기 뇌를 나에게 장기기증함으로써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죽어서 천국의 문을 두드릴 자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닙니다! 바로 맞추셨습니다! 제가 아는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얼마 전에 보스가 찾으라고 지시한 타겟입니다!〉

아쉽게도 갈스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모자랐다. 기술의 발전이 또 이렇게 유보되고 말았군.

‘그나저나…… 타겟이라.’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질문했다.

〈설마 너희들이 이 여자를 납치했나?〉

〈자, 잡은 건, 쿨럭! 잡은 건 아닙니다! 저는 그 여자한테 손가락 하나 안 댔습니다!〉

기침을 해대면서 갈스는 필사적으로 나불거렸다.

〈전 보스에게 지시받은 대로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도 모릅니다!〉

〈너희가 이 여자를 쫓아다녔던 이유는?〉

〈코르보나 패밀리에서 찾고 있는 상대라고 했습니다! 그, 그래서 그 여자를 생포하거나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포상금을 준댔었습니다!〉

코르보나 패밀리.

이 루크레겐스에서 가장 오래된 암회, 그러니까 마피아의 파벌이다. 나는 혀를 찼다.

〈코르보나는 너희가 복종하는 암회는 아니었을 텐데. 네 보스가 박쥐 짓이라도 했나?〉

〈저, 저는 말단이라서 잘…….〉

〈그래. 기대도 안 했다.〉

나는 손을 젓고서 일어섰다.

〈너희 보스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군. 안내해라.〉

〈예?!〉

갈스는 대장 내시경을 받는 중에 마취에서 깨어난 것처럼 놀랐다. 의자 째로 펄쩍 뛰는 게 볼만 했다.

〈그, 그것만은 봐 주십시오! 저희 패밀리의 위치라면 얼마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함정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같이 가야지.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해치지 않으마.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다.〉

키타이 예수게이의 이름을 걸고 말이다.

물론 전투에 휘말려서 죽는 건 내 책임 아님.

〈흑마법사님을 데려갔다간 저는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죽는 미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니 이 새끼 봐라? 니 눈을 왜 그렇게 떠? 내가 대답하지 않고 살기를 흘리자 곧바로 합죽이가 되는 갈스.

〈그건 네 사정이지. 아니면 내 실험대가 되다가 죽겠나? 미리 말해두겠지만, 싫다느니 무섭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받지 않는다.〉

─끼익. 나는 오두막의 문을 열고 라리루라를 들여보냈다. 자기가 성추행하고 보스한테 데려가려 했던 여자의 등장에 갈스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너, 너!!〉

〈안녕, 멍청이 씨? 10분만이네.〉

라리루라는 손을 저으면서 반갑게 인사했고, 나는 어이가 나가버린 갈스의 등에 룬을 새겼다.

〈너희 보스에게 안내해라. 네가 살 길은 그것 뿐이야.〉

카지노라고 해서 강원랜드를 상상했는데, 도착해 보니까 이세계의 사설 도박장은 서부시대 주점처럼 생긴 곳이었다.

위치부터 건물 생김새까지 워낙 눈에 안 띄는 장소여서 안내해 줄 놈이 없었으면 여길 찾는데도 며칠은 걸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뱀 모드로 라리루라의 목에 감겨서 점내를 살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곳이었다. 테이블마다 도박 중독자들이 인생을 배팅하고 승부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건물 안 넓이는 모자라도, 오가는 돈은 만만찮은데?’

품위가 부족해 보이는 도박쟁이들밖에 없지만, 저 정도면 월향 패밀리가 떼 가는 돈도 상당할 것이다.

‘그걸 상납금으로 걷어서 도시의 3대 패밀리에게 뇌물로 바치는가 보군.’

자세한 일은 내가 머리를 굴리기보단 이 도박장의 배후에게 묻는 게 현명하겠지.

우리는 갈스를 따라서 관리자 외 출입 금지 같은 느낌의 장소로 들어갔다. 문이 있는 곳으로 가자 카지노 경비원으로 보이는 양아치가 나타났다.

〈……엉? 갈스, 니 왜 여깄냐? 오늘 쉬는 날이지?〉

〈그, 그게…… 보스한테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보고?〉

문 옆에 삐딱하게 선 그는 식은땀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갈스를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여기서 말해. 내가 대신 전해드릴게.〉

〈아, 안 될 소리! 직접 보고 드려야 하는 일이야!!〉

갈스는 그 짧은 말에도 질색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새끼가 연기 더럽게 못 하네.

나는 여기서부터 소란을 일으켜서라도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했는데, 내가 그러는 동안 라리루라가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설마 문전박대하진 않겠지? 당신들이 우리 동생의 행방을 안다고 들었는데.〉

후드를 넘긴 라리루라가 그리 말하자, 의심스럽게 굴던 경비원이 눈을 빛냈다.

저번에 탐색 지시가 내려왔던 여자와 쏙 빼닮은 미녀다. 그의 머리에서 순식간에 착각이 섞인 추측이 뻗어나와 주판을 두들기는 듯 했다.

〈아하, 그래. 그 백발 아가씨의 언니셨군! 이거 몰라봐서 미안한걸? 난 그때 패밀리에 없어서 여동생의 얼굴이나 이름까지는 못 봤었거든.〉

〈그, 그래! 그러니까 내가 직접 보고드리겠다! 괜찮지?!〉

〈……쯧. 어쩔 수 없지.〉

갈스가 빼액대며 고함을 치자 경비원은 혀를 차면서 길을 비켰다.

어쩌면 그한테는 갈스가 긴장하는 모습조차 보스의 마음에 들려는 말단의 노력으로 보이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끼이익─ 쿵.

문 안쪽에는 휴게실과 지혜 계단이 존재했다.

거기에서 노가리를 까던 남자들은 월향 패밀리 소속의 마피아인 모양이다.

따까리들보다 질이 좋아 보이는 옷을 입은 걸 보면 한 가락 하는 놈들이겠지.

그들도 갈스에게 라리루라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지만, 인간 기차 화통으로 전직한 갈스가 칙칙빽빽 빼액 거리는 것으로 전부 해결해 주었다.

“우와……. 선배, 보이세요? 곰팡이 냄새 장난 아니에요!”

라리루라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텔레파시로 툴툴댔다.

“왜 이렇게 시궁쥐처럼 살면서까지 나쁜 짓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저라면 이런 지하에서 숨어 살 바에야 자수하고 광명 찾을 것 같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지하실이 아냐. 이거 땅굴이다.”

나는 오감을 강화하면서 대답했다.

“잠깐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가는군. 옆 건물로 이어진 비밀 통로인가?”

내 예상은 맞아들었다. 완만한 V자로 꺾인 길을 올라가자 거기는 가정집을 느와르물의 저택처럼 개조한 건물이었던 것이다.

갈스는 허리를 쫙 펴고 차렷 자세로 섰다.

〈보스! 보고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뵀습니다!〉

보스라고 불린 남자는 깍듯하게 인사하는 자기 부하를 시큰둥하게 쳐다봤다.

나는 방에 있는 5명의 남자들을 보고 픽 웃어버렸다. 거기 있는 남자들은 머리 정수리를 밀고 중화풍 옷이나 털옷으로 몸을 감싼 변발남들이었기 때문이다.

‘범죄자들 주제에 애국심 쩌네.’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새끼들이 고향의 전통 복식을 챙겨입고 있다니?

그게 무슨 우습지도 않은 국가망신이란 말인가. 애국심의 비뚫어진 발로에도 정도가 있다.

푸우우…….

곰방대를 문 월향 패밀리의 보스는 피둥피둥하게 살이 오른 ㅅ자 수염의 남자였다. 비만 간신배라는 단어에서 상상 가는 생김새 그대로다.

그 느릿한 반응에서 위화감을 느낀 건지, 갈스는 허리를 숙인 채로 눈치를 봤다.

〈……보스?〉

〈귀 안 먹었다. 그래, 보고하러 왔다고? 수고했다.〉

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조폭 깍두기처럼 생겨먹은 근육빵빵 암흑 마초가 갈스와 어깨동무를 했다.

깍두기를 따라서 옆으로 비키는 갈스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우리한테서 거리를 두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저 놈은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뱀으로 변신하는 모습은 못 봤지만, 라리루라한테 제압 당하면서 여러 방 쳐맞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행복이었다.

─우두둑!

어깨동무를 한 남자는 옆으로 비켜서서는 갈스의 모가지를 분질러버렸다.

라리루라를 노리던 상습 강간범은 그렇게 혀를 빼물고 즉사했다. 입가를 가린 라리루라는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부하 취급이 험하네. 강간이 취미인 거랑, 자기 취미를 나한테 강요하던 걸 빼면 그럭저럭 괜찮은 친구였는데.〉

〈별 수 없지. 사업체를 늘리다보면 시다바리로 들어오는 머저리를 거르기도 힘들어지니 말이야.〉

─푸우. 차이니즈 마피아의 보스는 곰방대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죽은 놈이야 아무래도 좋아. 그딴 것보다, 우리 자기소개가 아직이었지?〉

뺨에도 살이 오른 보스는 곰방대의 재를 재떨이에 털었다.

〈테무르굴이다. 이 패밀리의 보스를 맡고 있지.〉

〈키르시. 동생을 찾으러 고향에 돌아온 떠돌이 용병이야.〉

〈하하하! 동생이라? 솔직하지 못한 대답이군.〉

호방하게 웃은 테무르굴은 의자의 팔걸이에 손을 얹고 눈을 부라렸다.

〈상부에서 내려온 의뢰를 끝내고 내 나름대로 조사를 해 봤다. 아르마슈나스 가문의 여식 중에 살아남은 년은 1명 뿐이지. 그 년은 이미 루크레겐스에 없어. 너처럼 멍청하게 큰 가슴을 달고 있지도 않고.〉

얼씨구. 폼 잡을 거면 눈에서 힘이나 빼고 말해라.

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부하와의 수준 차이를 논하기에는 저 차이니즈 마피아 새끼도 거기서 거기인 듯 했다.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라리루라도 싸늘하게 웃었다.

〈깡패답게 용감하시네. 나를 성희롱한 값은 비싸게 치뤄야 할 텐데?〉

〈우리는 창부는 취급 안 한다. 하지만 심문하는데 필요한 일이라면 꾹 참고 해내야겠지. 우리 부하들도 가끔은 숨을 돌릴 틈이 있어야 하니, 설명은 찬찬히 들려다오.〉

테무르굴은 그렇게 지껄이고서 와꾸에 어울리는 음흉한 웃음을 띄웠다.

〈혼자서 찾아온 건 섣불렀어. 어리숙한 아가씨.〉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4명의 호위 겸 간부들이 라리루라에게로 덮쳐들었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야수회귀 이너 아머를 씌워주었다.

라리루라도 움직였다. 매직 아이템의 효과가 안 그래도 잽싼 우리 후배님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었다.

─쿵! 가장 가까운 암흑 마초 깍두기의 명치에 라리루라의 팔꿈치가 꽂혔다.

〈끄아학?!〉

라리루라의 가슴을 보며 입술을 핥던 깍두기는 ㄱ자로 몸이 꺾였고, 그 얼굴을 번개처럼 후려친 손등으로 성공적인 양악수술을 마쳤다.

발을 계속 움직이면서 라리루라는 장갑을 털었다.

〈으, 침 묻었어! 기분 나쁘게!〉

〈칫! 건방진 계집이!!〉

검을 뽑은 남자가 기술을 펼쳤다. 수십 갈래의 환검(幻劍)이 허허실실을 섞어서 쏟아졌다.

마나를 사용하는 특수한 기술이다. 저들도 명색이 범죄조직에서 어깨 좀 쓴다는 새끼들이다. 저 정도야 하는 것이다.

“라리루라. 다리 조심해.”

검이 노리는 건 우리 후배님의 하체였다. 아마 허벅지를 베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생포하려는 듯 했다.

─슈슈슈슉!

남자가 휘두르는 검의 진짜 위치는 계속 바뀌었다. 그래서 나도 어떤 게 진짜라고 말해주기는 힘들었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는 이미 검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오른쪽, 왼쪽, 위, 중간에서 3번째.’

보이긴 보인다. 근데 아마 이대로 말해줘도 라리루라가 못 따라오겠지.

라리루라의 위빙이 경지에 올랐다면 뎀프시롤처럼 상체만 움직여서 피하거나 잽으로 받아칠 수 있었겠지만, 배운지도 얼마 안 된 복싱에 그만한 기교를 바랄 순 없었다.

〈얍!〉

그래서 라리루라는 다른 대처를 취했다. 찌르기를 하단세팔 휘두르기로 걷어내고 돌려차기를 가한 것이다.

당연히 그 팔에는 오러(중국산)의 가호가 걸려 있었다.

말랑말랑한 여성의 팔이 철검을 쳐냈다.

자신의 검이 맨손에 튕겨나갈 거라고는 생각 못한 남자는 놀람에 굳어졌고, 급하게 팔로 머리만 지켰다.

〈크흐아아악?!〉

라리루라의 돌려차기가 남자의 팔을 부러트렸다. 반격하는 순간의 틈을 파고들려던 다른 간부들도 경악하며 멈춰섰다.

〈이런 제길, 오러라고?!〉

테무르굴도 의자에서 튕기듯 일어나서 뒤로 물러났다.

남은 간부들이 동시에 덤비면 빈틈을 찌를 순 있겠지만, 이 오러 펀치에 쳐맞는 2명은 황천길에 갈게 확실하다.

진짜 오러였다면 말이지만.

〈……그건 뭐하는 권법이지?〉

주춤거리며 물러난 검사 간부는 신음을 참으며 물었다.

라리루라는 표표하게 내가 가르친 무술의 이름을 읊었다.

〈장가(張家). 태권도(跆拳道).〉

─폴짝폴짝.

잔망스럽기까지 한 태권-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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