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4/1,009)

다행히 예수게이가 이글이글 열매를 복용한 사파의 고수로 악명을 날리는 일은 오지 않았다.

궁수는 마지못해 납득해 주겠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쓰러진 마피아들은 저희가 치워드리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왔으니. 그리고 예수게이 님께서는 이걸 드리죠.〉

〈……인장(印章)이오?〉

핸드폰 충전기 어댑터 만한 쇳덩이다. 뭔가 문양 같은 게 그려져 있는데, 설마 이거 이 아줌마 댁의 문양은 아니겠지?

〈저희 가문의 손님에게 드리는 물건입니다. 신분을 증명해 주지는 않습니다만, 다음에 뵐 때를 위해서 건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발 진짜네. 나는 그 말에 약간 어이가 없어졌다.

댁들 은밀작전 나온 거 아냐? 그런데 가문 문장이 달린 반지를 들고 온다고? 혹시 머리가 많이 나쁘신 분들인가?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네.’

뒤지면 변신 마법도 풀린다. 내가 뒤지면 내 시체를 갖고 카르미네 대학 졸업생인 석사 고고학자 노르드를 쫓아서 우리 아내들한테 도달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약간 오싹해지는 느낌.

나는 스리슬쩍 오딘의 눈을 켰다.

‘어디 보자. 마법 같은 건…… 걸려 있네?’

마피아한테 삥 뜯은 명패랑은 다르게, 그녀가 준 인장에는 교묘하게 마법이 숨겨져 있었다.

만약 이걸 추적하는 기술이 있다면 내가 어디 묵는지도 알 수가 있겠지. 은근히 철저한 걸 보면 100% 믿는 건 아닌 듯 했다.

아마 나도 오딘의 눈을 얻기 전이었다면 인장에서 마나를 못 느끼고 위치를 들켰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장을 굴리면서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오?〉

〈사흘 뒤에 북문 3번가 외곽 거리의 주점, ‘대낮의 달’에서 점주에게 건네주십시오. 접선 장소와 시간은 그때까지 정해 놓겠습니다.〉

〈이해했소. 찾아오지 못했다면 죽은 줄 아시오.〉

그렇게만 말하고 점프해서 창문에 착지했다. 대답을 듣긴 싫었던 데다, 더는 내 문과-에너지가 컨셉을 유지하기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시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문과했지. 애완동물의 치료가 빛으로 얍 해서 뚝딱 끝나는 세상에 올 줄 누가 알았겠냐.

창틀을 건드려보자 내 생각대로 창문은 열려 있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여기로 나가야겠다. 남들 앞에서 은밀 침투의 오의인 뱀 선인 모드를 노출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만나서 좆 같았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튀려다가, 마지막으로 이것만 물어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소저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도 되겠소?〉

〈다시 만나뵀을 때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철저하시구만요.

‘이거 새들한테 탐정 아재를 찾아달라고 해서 어디 가문의 문양인지부터 물어봐야겠네.’

인장 자체는 아무 가치도 없다. 오히려 이건 나더러 자기 신분을 조사해 보라고 던져준 것이다.

내가 미친 척 하고 이걸 갖고 협박해봤자, 그녀들은 저건 가짜라느니 저 놈이 훔쳐간 거라느니 하고 입을 털면 아무런 소용 없겠지.

〈다음에 또 뵙겠어요, 몽골리아의 전사님.〉

궁수는 배를 누르면서 긴 숨을 뱉고서 품위 있게 인사했다.

〈그리고 한 가지 정정해 드리자면, 소저라는 말은 보통 유부녀에게는 안 쓴답니다?〉

〈……공부가 모자랐군. 한 수 배웠소.〉

로마니아 어랑 내가 말한 ‘소저’라는 표현이 어떻게 해석된 건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네이티브 스피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나는 대충 인사하고 물류 창고에서부터 빠져나갔다.

당연히 거리를 두고 나서는 인장에 걸린 마법을 박살내 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킨!

마법이 박살난 인장은 단순한 쇠 장식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또 만날 일도 없을 것이고, 만나게 돼도 시치미를 떼면 아무 말 못 하겠지. 선물에다 GPS를 달아놓고 왜 없앴냐고 따지는 건 싸이코패스나 할 짓 아니겠는가.

나는 사람이 없는 곳을 전전하면서 마나통을 점검했다.

옥새에다가 마나도 충전해야 하는데 오늘은 너무 많이 싸워버렸다. 철저하게 안전을 확인하고 예수게이에서 노르드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마피아를 습격하는 귀족이라.’

그것도 마님이라고 불리던 걸 보면 지체 높으신 분이 맞을 것이었다.

실력도 그렇게까지 굉장하진 않던데, 현장에서 뛰는 이유가 있는 걸까?

만나서 사정을 듣게 된다면 어떤 일인지 확실해지겠는데, 내 목적에서 곁가지로 뻗어나갈 만남이라면 따로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해가 밝은 뒤에 그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문양이군. 이런 건 어디서 구했소?”

아내들에게 그랜절을 박은 다음날, 아직 루크레겐스에 남아있던 탐정에게 그런 대답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르마알스요?”

저번에 만난 것과 같은 술집.

그리 되묻는 내 질문에 탐정 아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르마’는 로마니아 초대 원로원을 설립한 가문들이 공유하는 성씨외다. 설마 친척들끼리 모이진 않았을 것이고, 나는 결속을 다지고자 공유한 이름이라고 추리하겠소.”

“그렇군요…….”

나는 인장에 새겨진 지팡이를 보며 인상을 썼다.

티르시의 성이 ‘아르마슈나스’인데, 그때 만난 마님이라는 사람의 가문은 ‘아르마알스’랜다.

‘무관하진 않겠군.’

우리 어머니 세대의 ○○ 7공주 같은 식일까.

위엄이란 면에선 좀 차이가 있지만 근본은 비슷할 것이다.

‘성씨에는 고유명사가 많으니까 신경을 안 썼지만, 연원이 그렇다면야 의심을 안 하라는 게 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우리는 탐정과의 짧은 재회를 끝마치고 주점을 나왔다.

어른들의 공간을 신기방기한 듯 구경하던 라리루라는 나를 따라나와서 남들 눈이 없는 곳에서 변신했다. 나도 후배님의 목에 뱀 상태로 감겼고 말이다.

“선배? 그 아줌마, 티르시 언니를 찾는 걸까요?”

내 몸통을 느슨하게 풀면서 라리루라가 물었다.

아직 30대도 안 돼 뵈던데, 아줌마라니 너무하네. 나는 딴 생각을 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모르지. 피해다닐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되서는 무시할 수도 없겠어. 사흘 뒤에 다시 만날 필요가 있겠는데.”

“그럼 저도 따라갈게요.”

“……또 신분을 바꾸려고? 아니, 들켰을 때 ‘변신이 가능한 상대가 있다’는 걸 알려지는 게 더 곤란해. 차라리 처음부터 얼굴을 감추고 같이 가자.”

티르시를 닮은 얼굴을 보이는 것도, 변신으로 얼굴을 위장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단 걸 들키는 것도 곤란하다.

혼자 갔다가 좆될 바에는 라리루라도 변신 마법으로 소형화 시킨 링링이 4호를 들고 따라와 주는 게 나을 것이었다. 얼굴이야 뭐 사생아 드립을 치든가, 안 보여주면 되니까.

우리를 살인멸구하려는 함정이라면 역관광해 주면 OK다.

아니라면? 적당히 대처하고 빠져나오면 되지. 라리루라는 내 그런 말에 어쩐지 신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흐응~♡? 따라오지 말라고는 않으시네요~? 요즘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줄어드신 것 아녜요? 저 섭섭해요?”

“섭섭하긴 짜샤, 내가 니 성격을 아는데. 내가 혼자 간다고 그러면 니가 퍽이나 다녀오셔요~ 하겠다.”

“앗, 역시 선배~♡ 제 성격에 대한 철저한 예습복습, 훌륭하시네요! 후배 포인트 가산 20점 드려버릴게요?”

“그거 개꿀이네. 그래서? 어따 쓰는 건데, 그 포인트.”

“어깨 안마권이나 새치 뽑기권으로 교환 가능해요☆!”

“시발, 왜 나한테 효도를 하는 것이지? 나 아직 30줄도 안 됐거든?”

존나 무슨 어버이날 선물인가.

나 머리에 새치 같은 거 안 났지? 아마 안 났을 거다. 흰 머리가 났어도 우리 프랑이 뽑아주거나 했을 거라고 믿자.

“아무튼, 그 여기사랑 엇비슷한 실력자들이랑 5대 1이 되면 나도 몸 성히 이길 자신이 없는 것도 있고. 싸우게 되면 너도 힘 좀 보태주라.”

싸움에 100%는 없다.

미지의 무술을 쓰는 적만 셋인데 내가 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어디 있겠는가. 깝치다가 다치지 않으려면 보험은 꼭 들어둬야 했다. 라리루라 실버 보험이다.

“……흐응~? 헤엥~? 그렇구나~.”

그런데 내 그런 말에 라리루라는 내 뱀 비늘을 은근하게 간지럽혔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움찔거리는 게,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고음 파트를 부르는 가수처럼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에 들어갔다.

“뭐. 왜 그러는데.”

“아뇨~ 아무 것도요~? ‘왠지 뭔가 알아냈을 때마다 나만 은근히 겉도는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신뢰받고는 있었구나~’ 하고 신나거나 하진 않았는데요~?”

느실거리는 웃음을 감추면서 라리루라가 말했다.

얼굴이 달랐어도 저 미소는 라리루라의 것이었다. 나한테 장난을 칠 때 보이던 까불대는 웃음이 티르시를 닮은 가짜 얼굴에 비춰 보이는 느낌이었다.

“……까불지 말고 표정이나 관리 해. 월향 패밀리를 족친 다음인데, 실실대면서 찾아가면 브로커가 미친 년으로 볼 걸.”

“에헹~♡ 할 말 없으시다고 그러시기에요~?”

이게 며칠 얌전하더니 그새 또 깝죽대네. 내가 뱀 눈깔을 부라리자 라리루라는 윙크를 했다.

“뭐, 좋아요? 오늘은 마음 넓은 후배가 눈 감아 드릴게요! 일할 때는 프로! 사적인 시간에는 큐트! 그게 제 챠밍 포인트 아니겠어요?”

“정말 구구절절 쳐맞는 소리만 하는군. 모가지가 조여지고 싶음을 암시?”

우리는 콩트를 하면서 암흑가 용병의 브로커가 있는 주점에 내려갔다.

그런데 그렇게 주점 안을 관찰한 나는 약간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말았다.

딱히 이 동네 불법 용병들이 일을 받는 시간을 가리는 것도 아닌데, 브로커의 주점이 이상하게 한산했던 것이다.

‘쯧.’

사르가디스에서 경험한 바, 이럴 때는 뭔가 사람들이 바삐 활동할 만한 일감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오, 이게 누구야? 우리 골드 클래스 신입 아가씨 아냐?〉

지루하게 턱을 괴고 있던 브로커는 음흉하게 웃었다.

〈어서 오셔. 재미 좀 볼 수 있을 듯한 의뢰가 들어왔는데, 해 보겠어?〉

〈보수부터 받고. 무슨 일이길래 브로커가 먼저 권하지?〉

라리루라는 다시 냉철한 커리어우먼을 연기하면서 카운터 석에 앉았다. 브로커는 챙겨뒀던 가죽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듣고 놀라지나 마셔. 무려 귀족 사냥이랜다.〉

브로커는 실실거리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아르마알스 가문이라고 들어봤나? 그 가문의 마님 목에 3대 패밀리가 현상금을 걸었어.〉

와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잇는 것이지?

〈……귀족한테 현상금? 제정신이야?〉

내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라리루라는 당연한 의문을 표현했다.

연기하는 성격에 어울리는 냉소적인 비아냥에도 브로커는 칵테일 도구를 정비하면서 낄낄거렸다.

〈아, 당연히 표면 상으로는 타겟의 인상착의만 내걸었지.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말이야.〉

〈제대로 설명해. 이 주점에 오는 용병들이 전부 머리가 돈 게 아니라면, 그런 정신 나간 의뢰를 받을 리 없을 텐데.〉

귀족을 죽였을 때의 처벌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비공식 의뢰라도 추격자와 법의 철퇴를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브로커도 자기 목숨이 아깝다면 ‘귀족 살해 공범’ 같은 죄목으로 끌려가기 전에 정보를 통제하든가, 용병들을 저지하는 게 맞았다.

〈아, 현상금이 무조건 죽이라는 얘기는 아냐. 뭐 실수로 죽여버리면 어쩔 수 없지만, 이건 술래잡기에 가까워.〉

〈술래잡기?〉

〈그래. 간단한 설명을 원하는 모양이니까 그렇게 하지.〉

그는 메부리코를 소매로 훑고 말했다. 웃음은 어느샌가 싹 사라져 있었다.

〈루크레겐스의 영주님께서는 전쟁통에 왼팔과 왼쪽 귀를 잃었는데, 그 내전에서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준 상대를 아직까지도 못 잊으셨다고 하더군.〉

〈그게 뭐가…… 설마?〉

〈눈치챘나? 맞아. 타겟은 내전에서 영주님을 장애인으로 만들어준 가문의 귀족이야. 당연히 영지 안에 정식으로 방문하지는 못했고, 비밀리에 담을 넘었을 거고.〉

여기서 정치 얘기가 나온다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브로커는 귀족들이 물밑에서 싸우다가 암회에게 현상금까지 걸렸단 사실이 우습다는 듯, 손을 펼쳐보였다.

〈걸작이지? 그래서 현상금이 걸린 상대는 ‘표면 상’으로는 이 도시에 없단 얘기야. 시체가 발견되더라도 영주님이 되려 ‘너희가 먼저 남의 영지에 숨어들어와 놓고는 뭔 개소리냐!’ 하고 일갈하면 꼬투리만 잡힐 걸?〉

〈그래서 그 귀족의 가문이 아무 말 못할 거라고 믿고, 3대 패밀리에서 현상금을 걸었다?〉

〈빙고! 이해가 빠르군. 이런 의뢰는 처음이지만, 재미있지 않아?〉

그리 말하고서 브로커는 다시 낄낄댔다. 하지만 그 웃음엔 은근한 짜증이 서려 있었다.

〈흐응. 재미있다고 하는 것 치곤 기분 나빠 보이네?〉

〈……나는 원래 대놓고 범법적인 일은 안 해. 패밀리 간의 항쟁이 그나마 가장 범죄에 가까운 중계 일이고, 나머지는 거의 모험가 길드의 대행이거든.〉

브로커는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일은 내 관할 밖이야. 그래서 지금은 소식만 전하고 고객들더러 피해다니라며 조언하는 중이지.〉

〈수수료도 안 받겠단 얘기?〉

〈수수료오~? 그걸 미쳤다고 받아? 뒤탈이 얼마나 클지도 모를 일인데. 나는 빨리 이 미친 농담이 끝나고 포션에 쓸 마약성 약초를 구해주세용~ 같은 의뢰나 중계해주고 싶다고.〉

나는 넌더리를 내는 브로커를 쳐다보다가 라리루라에게 몇 마디를 지시했다. 우리 후배님은 착실하게 연기해가며 그대로 질문했다.

〈그 현상금 걸렸다는 귀족, 이름은?〉

〈……원래는 요금을 받아야 하지만, 오늘은 내 안전과 네 화려한 데뷔를 챙기는 의미에서 서비스를 해 주지.〉

브로커는 목소리를 낮췄다.

〈원로원 의원의 가문, ‘아르마알스’의 젊은 며느리야.〉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어제 만난 궁수를 떠올리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3대 패밀리가 일시 휴전을 선포하는 것으로, 루크레겐스의 뒷사회는 일시 정지에 들어갔다.

분쟁 중인 3대 패밀리가 손을 잡고 현상금을 걸었다는 건 많은 의미를 지닌다. 자기 신분도 숨기고 몰래 들어온 그녀의 존재가 이 동네 마피아들 전부에게 위협이 된다는 소리니까.

“그 궁수, 시녀들도 많이 데려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거짓말이었을까요?”

“그렇겠지. 이거 만나러 가면 의심받는 거 아닐까 몰라.”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 새끼가 뭘 알고 떠 보는 거 아닌가~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 만날 수도 없고.’

그리고 만나는 상대의 목에 현상금이 걸려버린 지금, 사흘 뒤까지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그 마님이 잡혀가면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며, 어떻게 추적을 피하더라도 그때는 숨통이 조여드는 느낌에 그녀들도 대화할 여유가 없을지도 몰랐다.

우리가 사흘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약속 장소로 가게 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라리루라. 잠깐 베로니카한테 얘기해 두고 올게.”

“네~. 무슨 일 있으면 깨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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