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8화 (328/1,009)

〈제길! 그러길래 따라 들어오랬더니!〉

〈안에서라고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나?〉

간결하게 일침을 놓으면서 손등에서 뻗은 불꽃의 검을 휘둘렀다.

여의봉처럼 늘어나는 검은 할버드의 장점인 리치를 무색하게 만들었고, 마피아는 기세등등하게 덤빈 것 치고는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검은 오랜만이군.’

나는 그리운 기분에 자세를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비천삼검류.〉

불꽃이 흐트러지며 원무(圓舞)를 추었다.

〈귀두룡섬(鬼頭龍閃).〉

─쿠화아악!!

창술로 연습했던 연속공격의 숙련도는 검으로도 발휘됐다. 방 안을 수놓은 불꽃에 할버드는 남자의 손에서 튕겨져 날아갔다.

〈크흐흐!!〉

하지만 남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할버드를 놓고 소매에서 사슬을 잡아뺐다.

촤르륵─! 불꽃이 없는 팔에 휘감기자 내 공격이 멈췄고, 그 남자는 사슬을 밟아서 내 상체를 기울게 했다.

남자의 장갑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뿜어냈다. 공격마법을 새긴 매직 아이템이다.

〈뒤져라!!〉

─투두두두두!!

돌 파편이 개틀링건처럼 흩뿌려졌다. 말이 좋아서 돌 파편이지, 속도를 보면 철판도 뚫을 정도다. 탄환이 돌맹이인 샷건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마피아라고 총까지 쏘네.’

나는 팔로 얼굴만 가렸다. 돌 파편이 내 몸을 두들겼다.

마법 내성을 발동하는 마나가 조금 깎여나갔지만, 아까처럼 지진부진한 접전으로 마나를 낭비하는 것보단 나았다.

〈이런 미친?! 그걸 버텼어?!〉

〈아프긴 하군. 마음이.〉

카이저 피닉스 1.5발 정도의 위력이었다. 내성 최대치를 뚫고도 약간 데미지가 남았기에, 만약 장갑에 감춰진 마나를 눈치 못 챘으면 눈을 다쳤을 것이다.

─촤르르륵!!

나는 사슬을 팔로 휘감았다. 90% 이상의 금속류는 마나를 거부하지만, 열로 달아오르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당연히 전류도 말이다.

〈끄그그그!! 아가가가각!!〉

─파지지직!!

사슬을 묶은 손으로 타고 들어간 〈번개의 화살〉에 남자가 발을 멈추었고, 회전하면서 돌아온 창날이 그 새끼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남자는 흰 자위를 까뒤집었지만 기절하지 않고 버텼다. 그 놈의 멱살을 붙잡고 엎어치기를 먹였다.

〈커흑!!〉

마운트 포지션으로 올라타서 손가락에 맺힌 불꽃을 남자의 눈알 앞에 들이밀었다. 죽여가며 심문할 시간은 없었다.

안구의 습기가 말라붙자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남자도 식은땀을 흘렸다.

〈우리 친구, 실력 좋던데? 죽이진 않을 테니까 뭐 하나만 묻자.〉

〈……보스의 위치는 말해줄 수 없다.〉

〈그건 관심 없고. 너네 보스 말인데, 요즘따라 하는 짓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았냐?〉

나는 염려하던 것을 물었다. 이만한 실력이 있으면 중층에 배치됐어도 간부급은 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내 질문에 남자는 헛숨을 들이켰다.

〈뭐? 네가 그걸 어떻게….〉

〈맞나 보군. 추궁해 보진 않았나?〉

〈……루크레겐스의 세력도가 바뀌었다. 보스께선 거기에 맞춰서 유연하게 대처하셨을 뿐이야.〉

〈하는 짓 외에는 본인 그대로였다는 거로구만. 그러면 네 보스가 다친 적은? 치료를 받아야 할 때, 포션이나 치료사를 거부하진 않았나?〉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눈깔에 담배빵을 당해도 아무 말도 안 하겠다는 뜻 같았는데, 전류에 지져진 신경은 아직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픽 웃었다.

〈밑에서 들어보니 새로 개업한 창관에도 안 갔었다던데, 정말 전혀 눈치 못 챘나? 냄새도 안 나던가?〉

〈──이 새끼가!!〉

분개한 마피아가 주먹을 날렸다. 나는 간단하게 막고 누워있던 놈의 콧잔등을 원 펀치로 주저앉혔다.

하지만 뒤를 따른 진동은 내가 일으킨 게 아니었다. 건물 전체를 흔드는 충격에 나랑 라리루라는 위를 쳐다봤다.

“선배. 프리모르 아줌마네 싸움이 시작됐나 봐요.”

“……그래 뵈네. 이런 새끼들이 줄줄이 오기 전에, 우리도 빨리 튀자.”

나는 보통 수증기를 뿌려서 연막을 치고서 내면세계에 들어갔다.

베로니카는 지팡이를 들고 기다리다가 눈짓을 했다.

“……나의 그대여. 나도 임의의 좌표끼리 연결하는 시도는 처음이라 조금 걱정되는구나. 그대가 기사에게 새겼다는 룬이 마법진의 역할을 대신할 터이니, 전송 사고는 없겠다만….”

“그래봤자 2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 뭘. 믿을게.”

내가 씩 웃자 베로니카는 자기가 어쩌겠냐는 듯 한숨을 쉬고서는, 따라서 웃었다.

“뭐, 좋다. 주인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실수를 저지를 수야 있나. 현실로 돌아가서 이동에 대비하거라.”

“땡큐.”

바로 내면세계에서 나와서 라리루라랑 손을 잡고 대기했다. 내 발 밑에 마법진이 펼쳐지면서 <공간이동> 마법이 발현할 준비가 끝났다.

나는 수증기를 소환해서 우리를 휘감았다.

빛이 뿜어지자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기습을 피하고자 수증기를 치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듯 했다. 그곳은 벌써 사람 한 명 살아있지 않은 피바다였던 것이다.

아마 프리모르 일행이 먼저 와서 휩쓸고 간 모양이었다.

다시 위층에서 충격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거기서 느껴지는 어둠과 음의 마나에 혀를 찼다.

“라리루라. 위험해지면 꼭두각시 꺼낼 준비 해.”

상황이 심각했기에 라리루라의 대답도 진지했다. 우리는 폭격 맞은 것처럼 개판이 난 계단을 뛰어올라서 1층을 통째로 방으로 만든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크오오오오──!!〉

〈크그으윽!!〉

10층은 아수라장이었다.

성기사라던 헨리와 로브를 쓴 흑마법사가 서로 저주와 정화 마법을 상쇄 중이었고, 마테이 로시로 보이는 남자가 주먹질을 할 때마다 기사들이 수세에 밀렸다.

마피아 보스라기보단 돌격대장처럼 생긴 남자가 건틀릿을 낀 주먹으로 방패를 후려갈겼다.

방패는 벌써 실컷 얻어맞은 듯 곳곳이 찌그러졌지만 나랑 싸웠던 여기사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 틈에 다른 호위가 보스를 공격하고, 프리모르가 흑마법사에게 화살을 쏴대는 중이었다.

각궁에 화살을 매기던 프리모르는 나를 보고 반색했다.

〈예수게이 님!〉

한 순간 누굴 부르나 했다.

‘예수게이가 나였지 참.’

가명을 쓰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일단 흑마법사에게 카이저 피닉스를 날렸다.

〈끼에에에에엑─!!〉

〈흠?〉

로브를 쓴 남자는 손가락을 뱅글거리며 돌렸다. ─촤악! 당당하게 날아가던 불사조는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버렸다.

내가 근처로 달라붙자 프리모르는 화살을 3발씩 쏴대며 속삭였다.

〈예수게이 님, 흑마법사의 실력이 상상 이상입니다. 저희 가문 최고의 성기사를 상대로 힘을 겨루면서 아직도 저렇게 여력을 남기고 있어요.〉

〈그래 보이는군.〉

나는 그렇게 말하고 3초 정도 오딘의 눈을 켰다가 껐다.

상황은 하나부터 열까지 예상대로였다.

절대 좋은 상황은 아니다.

보스의 실력은 최소 플래티넘 클래스는 돼 보였고, 프리모르의 호위들은 다른 패밀리의 간부들을 쓰러트리면서 여력이 깎여나갔다.

하지만, 나쁘지도 않다. 나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이제부터 나는 마테이 로시를 해치우는 데에만 심력을 집중하겠소. 여기까지 오면서 마나를 많이 소모했기에, 그 뒤로는 후퇴해도 되겠소?〉

〈물론이에요.〉

〈고맙소. 그럼 헨리. 내가 진신절기를 펼칠 때까지만 버텨 주시오.〉

과묵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라리루라의 어깨를 두들겨주고 마테이 로시에게 달려나갔다. 코르보나 패밀리의 보스는 철저하게 단련한 격투 자세로 나를 경계했다.

〈날파리가 끝도 없이 나오는군.〉

〈글쎄. 쓰레기에 파리가 꼬이는 건 당연지사지. 특히 그게 시체라면 더욱.〉

마테이 로시의 얼굴이 굳었다.

공기를 터트리면서 눈에 익숙한 펀치가 날아왔다. 저번에 테무르굴이 사용했던 기술을 그대로 빼다 박은 주먹이다.

나는 가면 아래에서 표정을 지우고 불꽃을 넓게 퍼트리며 변형시켰다.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Crossfire Hurricane)

10층 플로어를 휘감은 불꽃의 파도는 용트림을 일으키며 내 앞에 피어올랐다.

마테이 로시는 불꽃 따위 떨쳐내고 내 가면을 때려부수려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혈수마공의 불꽃은 마나 코팅처럼 실체를 가지는 마나이기도 했다. 쉽게 찢어지는 게 아니다.

〈흡─!!〉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날아오는 주먹을 불꽃의 벽으로 막았다.

〈잘 쳐줘도 2류 수준의 마법이군. 약점이 명확해. 개발 도중인 모양이지?〉

수인을 맺었다. 꽃봉오리가 닫히듯 그의 전신이 내 마나로 차폐되었다.

혈수마공의 출력을 높인 것도 아닌데 마테이 로시의 몸은 그걸로 멈춰버렸다.

나는 마나가 싹 사라진 그의 몸을 종잇장처럼 불태웠다.시체는 불꽃의 열기에 근육의 수축이 발생하자 아기처럼 몸을 웅크렸다.

〈하, 한 방에?〉

〈……돌겠네. 우리가 양동을 할 걸 그랬어.〉

잠깐 호흡을 다스리던 호위들은 5초만에 결착이 나자 벙찐 듯 입을 벌렸다. 나는 피로감에 잠깐 발을 헛디뎠다.

〈아니, 내가 강해서 이긴 게 아니오. 저건 마법으로 조종당하는 시체였소.〉

〈……시체라고?〉

〈실처럼 연결된 마법으로 조종당하는 시체 말이오. 그런 특징 탓에 타인의 마나로 사방을 차폐당하면 조종이 끊기고 말지. ……그렇지 않소? 흑마법사.〉

내가 그렇게 말을 걸자, 헨리와 거칠게 힘 싸움을 벌이던 흑마법사는 유유자적하게 입을 열었다.

〈야만한 황야의 술사 치고는 실력이 대단하군. 혹시 가면 아래의 얼굴은 나도 아는 몽골리아의 고승(高僧)인가?〉

〈어떨까. 나는 그대를 처음 보는 듯 하오만.〉

〈첫 만남이라도 이름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겠어?〉

─으득!

남자가 주먹을 움켜쥐자 헨리가 각혈하면서 주저앉았다.

자기들의 동료가 간단하게 당한 것과, 내 말뜻을 이해한 것으로 호위와 프리모르는 긴장감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여도적이 이를 갈았다.

〈……보스를 죽여서 언데드로 만들고, 조종했다고? 우리 도련님만이 아니라?〉

〈그래. 저 친구에게 정체를 들킨 건 내 예상 밖이었지. 그동안 빼돌린 자금으로 루크레겐스의 조직이 번창했으니, 아르마알스 가문의 도련님도 마냥 개죽음은──〉

나불대던 흑마법사는 팔을 섬전(閃電)처럼 움직여서 날아온 화살을 붙잡았다.

그것은 프리모르가 쏜 화살이었으며, 화살을 막아낸 것은 마테이 로시가 펼치던 무술이었다.

〈그 입 다무세요.〉

프리모르는 피눈물을 터트릴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당신은 반드시 여기서 죽여드리겠습니다. 그 목을 낭군님의 묘에 바치고 말겠어요.〉

〈묘? 후후. 거기 성기사의 신성마법으로 재도 안 남았는데, 뭘 묻었길래 묘라고 부르지?〉

〈마님께서 그 더러운 입을 닥치라고 하잖냐, 개새끼야!!!!〉

한스는 검에서 십자를 그렸다. 뿜어진 마나가 바닥을 가르면서 날아갔지만 흑마법사는 어둠과 음의 마나를 뽑아서는 독같은 기술로 받아쳤다.

심지어 기술의 숙련도는 흑마법사 쪽이 높았다.

상쇄하는 걸 넘어서 날아온 공격을 여기사가 막았다가, 엉망이 된 방패 째로 팔이 베였다. 절단은 되지 않았지만 피가 쏟아졌다.

〈아, 윽…!!〉

〈리아스!〉

한스는 그녀를 부축하면서 악을 썼다.

〈이 개자식이, 도련님의 기술까지 훔쳐!!〉

〈어차피 이 십자참을 빼면 따로 챙겨갈 기술도 없었다. 원로원 가문도 별 것 없더군. 실망했어.〉

흑마법사는 로브를 벗어서 복면을 쓴 얼굴을 보였다. 어둠과 음의 마나로 몸이 곱창나는 그들에게 몸을 가리는 도구는 흔한 것이었다.

호위들은 프리모르를 지키는 위치로 이동했다. 프리모르는 각궁에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말했다.

〈예수게이 님. 이건 저희의 싸움이며, 저희의 복수입니다. 반드시 살려서 대가를 치르게 할 터이니 지켜봐 주십시오.〉

〈알겠소. 여기서 남은 마나로 그대의 호위나 해 드리지.〉

〈믿는다?〉

여도적이 웃으면서 내 가슴을 쳤다. 이 상황에서 의심을 할 생각은 없다는 거겠지.

〈──죽여!!〉

4명의 호위는 진형을 갖추면서 대쉬했다.

흑마법사는 팔을 펼치면서 양손에 기묘한 마나의 흐름을 만들었다. 내 혈수마공처럼 마나로 무기를 빚는 마법인 듯 했다.

죽음도 감수하며 주군의 목숨값을 받아내고자 달리는 네 사람과, 시체를 능멸당한 남편의 넋을 달래고자 왼손 약지까지 잘라낸 여인이 활을 겨눴다.

선악의 구분도 모호해지는, 살의가 격돌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지간의 한때에── 우리는 움직였다.

라리루라가 활을 겨누는 프리모르의 팔을 당겼다. 하얀 머리의 젊은 마님은 놀라면서 속절없이 이끌려갔고, 나는 몸을 비틀면서 불타는 람각을 쳐박았다.

다름 아닌, 헨리의 머리통에 말이다.

디아블 잠브(Diable Jambe)

투구가 박살나면서 헨리는 부메랑처럼 회전했다.

성기사의 몸은 잘못 꺾인 관절인형처럼 날아갔고, 전방만 주시하던 호위들은 경악하면서 우리를 돌아봤다. 프리모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지면서 입술이 떨렸다.

〈이 빌어먹을 노친네!! 처음부터 한패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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