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1화 (331/1,009)

그래도 추출한 지식으로 내가 펼치는 기술의 고매함은 알 수 있었던 걸까. 흑마법사는 미술계 거장의 걸작을 본 트위터 그림쟁이처럼 말을 잃고 말았다.

휘이이이이익─ 척.

나는 그에게 기수식의 견본을 선보이듯, 우아한 자세를 취하다가 성호를 그었다.

《자기보다 잘난 상대의 기술을 좀도둑질해 가서는 조악한 이해도로 자만에나 취해 있으니, 네놈 또한 ‘교수’다. 아니, 그 이하다.》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그런 표현으로는 모자라다는 걸 깨달았다.

교수는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지식을 갖고 있다. 노름으로 교수직을 딴 게 아니라면, 창의력이나 논문의 착안점은 모자라도 지식의 총량은 대학원생보다 뛰어나야 했다.

하지만 코뤤투스는 그렇지조차 못했다.

저 새끼의 무예에 관한 이해도는 나보다 낮았으니까.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서 착취해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 아닌── 자기보다 뛰어난 자의 비급을 훔쳐가서 깝쳐대는 좀도둑.

그런 자를 부르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매지컬 렉카충 놈. 네놈의 행선지는 지옥이다.》

내가 펼치는 기술은, 저 새끼에게 소중한 무예를 빼앗겼던 혼령들의 분노인 것이다.

〈……하.〉

지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말귀는 통했던 것일까. 코뤤투스는 도축 도중에 퇴근 시간이 되서 냉장고에 보관된 돼지 같은 꼴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 새끼가아아아아!!!〉

그러다가 지 얄팍한 자존심을 자극당한 깡패 새끼들이 다 그렇듯, 미친 것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츄팟!! 보라색 마나가 나와 코뤤투스를 연결했다.

내가 쓴 USB 포트와 똑같은 마법이었다. 나는 그것을 팔로 휘감으면서 낄낄거렸다.

〈어디. 화산파의 무공도 흉내내 보시려고? 배가 불렀군. 손 안의 깨달음부터 체득하는 것이 어떻소?〉

〈닥쳐!! 닥쳐──!! 내가 어째서 시체에서만 기억을 뽑아왔던 건지, 네 머리에 단단히 새겨주지!!〉

─꾸르르륵! 팔에 얽힌 마나에서부터 코뤤투스의 의식이 파고들어왔다.

그건 마치 헌혈 중에 피가 역류하는 듯한 불쾌함이었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만 일견의 가치도 없이 밑바닥이 드러나는 얄팍한 지식도 있소이다. 영혼을 가진 육체끼리 심념을 깊게 연결했다간, 정말로 빙의당할 위험도 있기 때문 아니오?〉

〈닥치라고 했을 텐데!! 그걸 안다고 해서 결과가 바뀔 것 같나!! 네놈의 정신력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네놈을 언데드로 만들 때까지 자아도취에나 빠져있어라!!〉

내 쉴새없는 혹평에 코뤤투스는 고장난 빨간불 신호등처럼 안광을 폭사시켰다.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 육체에 파고들어오는 사악한 자아를 막아냈다.

정신이 침범당하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적의 그림자가 부풀어서 죽음의 기운이 내게 드리웠다. 나 역시 정신력을 짜내서 거기에 저항했지만 달군 돌에 물 붓기였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나는 눈을 찌푸렸다.

사실대로 말하자. 코뤤투스의 말은 맞다.

나도 솔직히 내 정신력이나 각오가 200년 묵은 미친 흑마법사보다 잘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저 새끼한테 육체를 탈취당해서 언데드 마초가 되던가, 정신력 싸움 끝에 아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멋진 역전극을 펼쳐야 했겠지.

〈노력하는데 안타깝지만, 나는 이래봬도 안전제일주의외다. 내 컴백 홈만을 기다리는 여인만 서넛이라서.〉

내 등뒤에서 날아온 마나의 실이 코뤤투스의 몸에 감겼다.

그건 현실보다 몇 배는 빠른 정신세계에서도 순식간에 그의 몸을 탈취해 버릴 만큼 재빠른 손속이었다.

〈뭐? 누, 누구냐!!〉

내 몸에 침범해 오느라고 자기 몸의 통제를 방치했던 코뤤투스는 속절없이 본체의 통제권을 잃어버렸다. 나는 핑크색 마나의 실을 보면서 박수를 쳤다.

〈오. 1초컷?〉

〈네☆! 선배, 이 골무 성능 장난 아니네요!〉

라리루라는 웃어제끼면서 코뤤투스의 손목에서 벗겨낸 손가락 골무를 까딱거렸다.

그건 그가 헨리의 시체에 숨어서 언데드를 조종할 때 사용하던 매직 아이템이었다.

〈꼭두극〉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라리루라는저 새끼가 고치에 숨어서 변신할 때 냉큼 주웠던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낄낄댔다.

〈원래 좆밥들일수록 템빨에 집착하걸랑. 저 병신이 미련 없이 맨몸으로 숨어들었으면 이 사단은 안 났을걸.〉

나랑 라리루라의 심념은 여기 오기 전부터 계속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가. 코뤤투스는 처음부터 2대 1인 줄도 모르고 덤벼들었다가, 자기 목을 사지에 들이민 것이었다.

〈이, 이 개새끼들이!!!!〉

그는 뒤늦게 그걸 알아차리고 마법을 해제하려고 애썼다. 버둥거리는 의식이 마나를 타고 돌아다려다가, 내 의지력에 목덜미를 잡혔다.

〈놔, 놔!! 놓으라고!!〉

〈야. 니 패인이 뭔 줄 알아?〉

나는 어서 빨리 자기 몸으로 돌아가려는 그의 의식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멍청해서야, 이 마피아 새끼야.〉

라리루라가 조종하는 코뤤투스의 주먹이 그의 배때기에다 구멍을 뚫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했던가. 육체에 입은 치명상에, 아무리 통증이 없는 몸이라도 코뤤투스의 마법이 흐트러졌다.

의식이 현실감을 되찾았다. 나는 프리모르의 호위한테서 배웠던 대쉬 기술을 발휘해서 코뤤투스의 턱 밑에 착지했다.

그리고 푸른 불꽃을 듬뿍 머금은 주먹으로, 진심 펀치.

오의(奧義)

〈터쿼이즈 블루 오버 드라이브(Turquoise Blue Overdrive).〉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불기둥이 치솟으며 흑마법사의 투구와 머리통을 한꺼번에 부수고, 증발시켰다.

〈휴, 쓰벌. 끝났다. 파밍 각이냐?〉

나는 불기둥을 커텐처럼 펼치면서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력을 다하면 최소한 미스릴 클래스였을 적이 상대였다. 그런 놈과의 싸움에서 이렇게나 수월하게 이겼는데 기뻐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운이 좋긴 했지만, 나 자신도 착착 쎄지고 있긴 해.’

흡족해 하며 자화자찬하는 나.

물론 그런 머리와는 별개로 내 손은 효율 좋게 움직였다.

발로 ᚨ(Ansuz)를 새기면서 챙겨온 룬 스톤으로 ᛈ(Perth)의 룬을 발동한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ᚦ(Thurisaz)로 코뤤투스의 심신을 제압하며 불꽃의 USB 선을 꽂으니, 그 모습은 그야말로 중원의 무림 역사에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쌍수호박’이었다.

더블-핸드 펌프킨(Double-hand Pumpkin)

─샤샤샤샤샥!

나는 첨예한 집중력으로 손발을 지배하면서 순식간에 흑마법사의 영혼을 불려내고, 기억을 추출했다.

불꽃의 가림막이 프리모르 일행의 시선을 막아주는 시간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만큼이나 소란을 피워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늘 그렇지만 일을 크게 키우기 싫으면 사후처리는 신속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무술은…… 많이 못 챙기겠군.’

육체에 깃든 무술의 정수를 복붙하면서 나는 아까움에 입맛을 다셨다.

일단 닥치는대로 흡수하고는 있지만, 금강불괴나 근육 강화술은 단련 난이도가 높았다. 아마 3~4개가 한계일 것이다.

용량 작은 야동 하나를 구글 드라이브에 옮겨넣는 것도 몇 분은 걸리는 법 아니던가. 수십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옮길 수 있길 바라는 건 무리수였다.

코뤤투스처럼 시체를 옆에 두고 차근차근 흡수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내가 미친 놈도 아니고 시체를 끌어안고 잘 수는 없으니까.

─지잉.

‘좋아. 기억 추출은 이걸로 끝.’

다행히 코뤤투스의 기억에 예르나처럼 강력한 프로텍트는 걸려있지 않았다.

이 새끼가 티르시의 행방을 안다면 이걸로 행방을 알아내는 건 손쉬울 것이었다.

나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할 일을 끝내고서 불 커텐을 뚫고 나왔다. 프리모르는 다친 호위들에게 포션을 마시게 하고 있었다.

〈……예수게이 님. 어떻게 되었나요?〉

〈확실히 죽었소이다. 영혼을 다른 몸으로 옮겨가진 않을지 걱정했소만, 과한 걱정이었군. 시체의 처우는 넘기겠소. 불태우든 부군의 묘소에 바치든 자유롭게 하시오.〉

그렇게 말하자 프리모르는 감정이 복받친 것처럼 입을 달싹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게이 님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저희는 허무한 거짓 승리에 만족하고 원수를 가문에 데리고 돌아갔겠죠.〉

〈……헨리 대협의 죽음은 안타깝게 됐소.〉

〈아닙니다. 그는 가문의 일에 스스로 나선 기사의 귀감이었으니, 원수의 손에 당한 것을 분해할 지언정 죽음에 슬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척. 호위들의 상처나 체력을 조금 회복시킨 그녀는 내게 무릎을 꿇고, 약지가 없는 왼손을 가슴께에 가져갔다.

주군의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자 다른 일행들도 똑같이 움직였다. 라리루라는 어색한 듯 내 옆에 와서 붙었다.

〈제 낭군님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협력해 주신 것, 아르마알스 가문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답례라기에는 조촐하오나, 후일 있을 아눌루스 패밀리와의 싸움에도 부디 협력시켜 주세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그녀의 말에 나는 당황을 숨기며 거절했다.

이걸로 예수게이의 이름으로 할 일은 다 끝났다. 즉흥으로 지껄였던 개소리 몇 마디 때문에 또 다른 마피아 패밀리랑 붙는 건 좀 에바였다.

‘내가 설친다고 도시의 마피아가 전멸하는 것도 아니고.’

이세계에 온 뒤로부터 나는 범죄자에게 가혹해졌다.

그건 내가 떨어진 이세계가 저 옛날 미국의 서부시대와 닮은 무법성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는가 죽이는가 하는 문제에서 도덕심은 어느 정도 잊어야 했다.

그래서 범죄자 반드시 죽인다맨이 된 나였지만, 도시에서 설치는 악당들을 일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그런 건 영주나 교단에서 행할 일이다.

개인이 필요 이상으로 설쳐대면 그건 법치의 붕괴를 부르고 말 것이다. 그랬다간 죽어나가는 건 일반 시민들이다.

루크레겐스에 본거지가 있다는 라리루라네 서커스단은 좀 걱정되지만, 이사를 권하든가 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뒤쫓던 마교의 술법사는 저 자의 끄나풀이었나 보더군. 아마 강시의 변종이었을 것이오. 몽골리아에서 교전했던 자들과 유형이 비슷하더군.〉

〈아……. 그래서 헨리로 변장한 흑마법사의 정체를 간파하셨던 겁니까?〉

……그, 그게 그렇게 되나?

〈맞소이다.〉

나는 아예 뻔뻔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저쪽이 변명거리를 만들어줬는데 사양하는 게 더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소. 하여튼 내 적은 그저 사파 마교의 술법사가 아니라 이 세계의 악당이었던 듯 하니,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건 이쯤 해둘까 하오.〉

〈그, 그러면 뭔가 답례라도──〉

〈그만. 보답 따윈 됐소이다. 그보다 어서 피난하지 않으면 사람이 올 것이오.〉

나는 귀족의 말을 끊는다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이거 게임이었으면 업적 보상으로 레벨 업 했음.

라리루라의 짜게 식은 눈빛─저한테도 종종 그렇게 당당하게 거짓말 했었죠? 하는 눈빛─이 아프다. 솔직히 오늘 하루 통틀어서 최대 데미지.

아무튼 내 말에 프리모르는 정신을 차린 듯 일어났다.

〈그, 그렇었죠. 헨리의 유해를 수습하고 그밖의 일을 끝낼 시간도 모자라겠어요. 하지만 반드시 답례를 준비했으니, 후일에라도 저희 가문을 찾아주세요.〉

〈생각해 보겠소. 우선 서두릅시다.〉

되도록이면 다시 안 뵙고 싶은데요.

그리 생각하면서 대답한 나는 후딱 뒷처리를 해치우고 튈 생각으로 돌아섰다.

〈──아니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뻥 뚫린 창문에서 걸어내려오는 낯선 남자를 발견했다.

또라이 같은 남자였다. 아니, 초면에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내 관점에서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생긴 건 멀쩡하다.

옷도 말쑥하게 차려입었기에, 등에 진 커다란 십자가에만 눈 감아주면 그냥저냥 미남이라고 넘어갈 만한 청년이다. 애매하게 긴 단발와 작은 얼굴 때문에 중성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색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얗다면 어떨까.

머리카락, 옷, 피부까지 싸그리 새하얀 남자가 좀비가 됐던 마피아들의 시체와 피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미술 같은 느낌이었다.

〈야누스 교단의 징벌집행관, 시냐티오입니다.〉

FBI라도 된 것처럼 성표를 꺼내드는 남자.

그는 백내장이라도 온 듯 허여멀건 눈으로 우리를 보았다.

〈이교의 마나가 행사되는 것을 이리 방문했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마법사가 침을 삼키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뜬금없이 엔트리 한 종교쟁이의 실력을 눈치깐 거겠지.

집행관. 종교 교단에서 이단심문관 바로 아랫급의 싸이코 추살자(追殺者)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스릴? 아니면…… 그 이상?’

모르겠다.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라도 만나기 싫을 법한 광신도 달인이다.

그런 놈을 이렇게 피범벅이고 어둠과 음의 마나가 충만한 공간에서 신분을 숨기고 마주치다니, 이건 아무리 나라도 운이 너무 없는 것 아닐까?

‘아니 근데 시발. 보자보자 하니까 좀 얼탱이가 없네요?’

지들 동네 앞마당에서 흑마법사가 세레브한 마피아 게임을 즐길 때는 가만 냅두다가, 우리가 그 새낄 해치우니까 이제 와서 이런 행차한다고?

대체 우리 집행관께서는 우리랑 싸우기 전까진 어디서 뭘 했길래 이제 와서야 쳐 나타나셨나요?

〈저희는 아르마알스 가문의 프리모르와 그 호위입니다.〉

그런 빡침과 억울함은 프리모르도 마찬가지였는지─아니면 종교쟁이를 상대로 발뺌을 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으려는 거였는지─, 그녀는 후드를 벗고 신분증을 내걸었다.

시냐티오의 눈이 그 신분증의 진위를 파악하듯 움직였다.

〈아르마을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지금 한창 범죄계를 들썩거리게 하는 귀족 분의 성함이 분명 아르마알스던가요.〉

〈……그래서요?〉

프리모르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곤충처럼 감정이 엿보이지 않는 그의 눈깔을 쏘아봤다.

〈별 것 아닙니다. 아무래도 영주님께서 여러분을 초청하고 싶어하시는 듯 해서요.〉

〈영지민들의 일에 귀를 기울이는 건 종교인으로 미덕일지 모릅니다만, 그 이상은 월권행위입니다. 저는 로마니아의 귀족으로서 제 부군을 해한 흑마법사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이에요.〉

두 사람의 눈이 부딪혔다.

왜 여기서 귀족계층 VS 종교인 대립을 벌이는지는 모르겠는데, 저흰 가 봐도 될까요? 저희 후배가 좀 많이 쫀 것 같은데요. 사실 저도 쬐끔 지릴 것 같음.

〈아니면 당신은 야누스 교단을 대표하여, 역대 폐하께서 법정하신 로마니아의 율법을 부정할 심산이십니까?〉

프리모르는 턱을 당겨들며 오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시냐티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군요. 사실, 제 머리는 교리를 이해하기도 벅찹니다. 마담과 정치적인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아요. 교구장님께 혼날 겁니다.〉

그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타협점을 양보했다. 어쩌면 진짜 기득권 분쟁에는 관심이 없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시냐티오는 교단 전체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달려온 걸지도 모르겠다. 흑마법이 사용되는 현장이라면 닥치고 고개부터 들이밀고 나중에 핑계를 대도 되니까.

그런데 그게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건 저 남자가 그만큼 찐퉁 종교쟁이라는 뜻밖에 안 되니까.

자고로 종교쟁이란 몸을 담은 종교의 교리나 자기 기준에 빗나간 상대에게는 존나 과격해지는 법!

참고로 말할 것도 없이, 이세계의 ‘과격함’이란 폭력이다.

저저 십자가 모서리 시꺼먼 것 좀 봐라. 이교도 민치까스가 남 얘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무엄하게도 신의 집이 보이는 자리에서 배적행위를 벌인 흑마법사는, ‘이것’입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