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6화 (336/1,009)

초장부터 기가 꺾인 라리루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깠다가 프리큐어 변신봉이 부러져 있는 걸 본 초등학생처럼 입을 딱 벌렸다.

〈소, 손님이십니까?〉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의 물방울을 세던 아저씨가 후다닥 일어났다. 라리루라는 어버버 거리다가 물었다.

〈어? 여, 여기 장사 엄청 잘 되지 않았어요?〉

〈아, 예전에 와 주셨던 손님인가 보군요. 그……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머뭇거리는 그의 태도에 나는 대충 뭔 일인지 감을 잡았다.

마피아 새끼들이 분쟁에 쓸 돈을 찾아서 자릿세 같은 패악을 부렸다든가, 그걸 지불하고서 휘청거리는 틈에 다른 상점들에게 손님을 뺏겼다든가 하는 거겠지. 인생무상이로다.

〈앗! 그래도 장사는 하고 있습니다. 끄응차!〉

무슨 네모난 통에 불을 지피고 설탕을 실처럼 푸는 아저씨.

그는 오랜만의 손님에 반색했지만, 가재도구는 자기들을 방치해뒀던 주인님에게 반역을 일으켜버렸다.

〈어? 이, 이게 왜 이래?〉

─쿠르릉. 쿠구구궁.

불이 지펴진 설탕 실은 곱게 뭉쳐지지 않고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졌다.

아마 저 실을 네모나게 접고 잘라서 꿀실처럼 만드는 과자인가 본데, 저래서는 제대로 만들기 힘들 것이다.

가게 간판에 그려진 모양은 누네띠네인데 서부영화 건초 뭉치가 완성돼 버리는 꼴이니까.

나는 울상으로 어떻게든 완성해 보려는 그를 보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을 주댕이로 발사했다.

〈그거, 그대로 뭉쳐 보시면 어때요?〉

〈예? 예?〉

피부 노란 노랭이가 능숙하게 로마니아 어를 내뱉자 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만요.〉

나는 근처 노점에서 팔던 과일 절임 꼬치를 사서, 그걸 포장지에 감쌌다. 나무 꼬치를 〈정화〉 마법으로 소독하고 그 기계에 냉큼 넣었다.

〈조리기구가 사각형이라서 좀 힘들긴 한데, 이걸 이렇게 빙글빙글 돌리면……〉

─덜컥덜컥.

밑에 페달 같은 걸 밟자 공기가 뿜어졌다. 내 손에서 돌아가는 막대기에 조금씩 설탕 실이 감겼다.

내가 어릴 적엔 공원이나 학교 앞에만 가면 말이야. 군밤 모자를 뒤집어쓴 아저씨가 바퀴 달린 나비 막대기 장난감이랑 뻔데기를 팔았다 이거에요.

그 공원 군것질거리의 삼신기를 이루는 마지막 마스터피스라면 당연히 이거로 정해져 있다.

〈짠.〉

나는 가게 아저씨가 구경하던 구름처럼 폭신폭신한 과자를 만들어냈다.

‘누네띠네가 없으면 솜사탕을 만들면 되지.’

솜사탕의 완성도에 나는 은근 만족스러웠다. 괜히 박살나서 노는 중에 먹기도 힘든 누네띠네보다는 걍 뜯어먹고 손가락 쪽쪽 빨면 끝나는 솜사탕이 더 적절하지 않겠어?

〈그래서, 주인장. 이 솜사탕 얼마면 되겠습니까?〉

〈예? 소, 솜사탕? 아! 설탕 양은 비슷해도 만들기가 훨씬 쉬우니까…… 두, 두 개에 1쿠퍼면 되지 않을까요?〉

솜사탕 2개에 만 원이라고 하면 데뎃? 하는 게 90년대생 강북호지만, 이세계의 설탕 값도 생각해야 한다. 이 동네에는 사탕수수 밭이나 거기서 일해주시는 분들도 없걸랑.

게다가 1개 5천원이면 대충 에버랜드 물가잖아? 안 가본지 오래 돼서 지금은 얼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무튼 저 가격이면 사먹을 만 하지. 솜사탕! 츄러스보다 싸다!

〈2개 주십셔. 만들기 쉬울 것 같은데 직접 해보실래요?〉

내가 꼬치 하나를 더 들이밀자, 대도시에서 이름 날릴 만한 안목이 있긴 했는지 그는 주판을 두들기듯 고민하다가 눈을 빛냈다.

〈해 보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각 잡을 것도 없었다. 이건 초등학생 강북호가 현장학습에서 가정과 실습으로 해냈던 난이도걸랑. 그러다가 화상 입는 멍청이들만 몇 있었을 뿐이지.

조리기구만 마련되면 만들기는 어려울 것 없다. 공원에서 장사하는 아저씨는 달고나 빌드와 솜사탕 빌드 중 한쪽으로 스킬 트리를 특화하는 법 아닌가.

아, 그립읍니다… 붕어 모양 설탕과자 님….

〈엉? 뭐야 저게?〉

〈또 무슨 새 과자가 나오든가 했겠지. 어차피 저런 건 잠깐 반짝 유행하다가 없어져.〉

〈그런데 저기, 제임스 씨 가게 아냐? 저 아저씨 꿀타래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옐로-몽골 라이더가 머리통만한 솜사탕을 들고 있었기에 이목이 모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누네띠네 아저씨는 보란 듯 외쳤다.

〈솜사탕 하나 완성요!〉

뻥이요 하는 느낌으로 소리치는데, 고새 내가 한 말을 주워담아서 이름까지 지어버리는 주인장이었다.

〈솜 사탕? 허, 이름 웃기네. 나도 하나 줘 보쇼.〉

〈어허, 이 사람이? 내가 먼저 서 있던 거 못 봤소?〉

〈기, 기다려 주십쇼! 금방 준비하겠습니다!〉

나랑 라리루라가 솜사탕을 받아서 물러나자 근처 노점에 사정사정해서 꼬치를 받아온 아저씨는 솜사탕 타이쿤을 시작해버렸다.

그걸 구경하던 라리루라가 안경 쓴 눈을 깜빡거렸다.

“왠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빠지셨네요.”

“글게. 아직 돈도 못 냈고, 돌아다니면서 먹기엔 눈에 많이 띌 것 같네. 여기서 먹을래?”

“그래요. 근데 이거 어떻게 먹어요? 얼굴 파묻고?”

“마스크 끈적해지기 싫으면 손으로 떼서 먹든가 재량껏 끝부터 물어 뜯으십쇼, 공주님.”

“행간으로 꼬시지 마세요.”

─냠. 손가락으로 뜯은 솜사탕을 입에 넣어본 라리루라는 하얀 뺨을 상기시켰다.

“아핫♡! 뭐에요 이거? 생각보다 맛있네요!”

솜사탕을 꿀꺽 삼키고 빵 터지는 후배님.

나도 그걸 따라서 한 입 먹었지만, 나는 뭔가 2% 모자란 기분이었다.

합성착향료나 식용색소 같은 게 없어서인가? 거의 솜사탕 모양 달고나 맛이었다.

설탕에 섞인 조미료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다른 맛도 나는 것 같고. 이게 중도(中道)라는 거구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손님 대기열을 소화한 아저씨는 우리에게 되려 사례금이라며 동전을 내밀고서 울상을 지었다.

〈가게가 잘 안 되고서부터 아들내미 장난감 하나 못 사줬는데, 당분간 이 솜사탕을 팔면 기초자금은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뭐. 힘내십셔.〉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거 갖고 장사하는 것도 웃기니까.

해 봤자 아저씨 말대로 여러 문제가 생기기 전에 대충 몇 실버 버는 게 고작일 것이다.

“진짜로 선배는 파도 파도 뭐가 나오네요. 이런 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세상은 넓단다, 라리…… 프리실라야.”

“그래요? 저희 단장님한테 키타이에도 가 보시라고 제안해 봐야 할까요?”

“위험한 곳이니까 가면 안 돼. 수레바퀴보다 커다란 남자는 다 죽는 곳이거든.”

“지옥이에요?”

“사람에 따라선?”

몇몇 사람들은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헬-이세계에 비하면 천국이 아닐까? 나야 뭐 요즘에는 이 세상에도 적응한지 오래지만 말이다.

아무렴, 저런 미인들로 아내를 셋이나 꾸려놓고 투정하면 씹새끼지.

솜사탕을 다 먹은 라리루라는 이번에야말로 놀 게 많다는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다행히 우리 후배님이 연달아서 실패하는 일은 없었다. 이세계의 놀이도 꽤 얕볼 게 못 돼서, 나는 이번엔 제비뽑기에 열을 올리며 가챠비를 주인장에게 헌납하는 중이었다.

〈흐흐. 이거 훤칠하게 생긴 분답게 근성도 있으시네!〉

〈씁.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고 통 내놓으십셔.〉

〈사기 아닌 거 알지? 내가 아까 당첨표 넣는 거 봤잖수.〉

아니까 10쿠퍼나 꼴박한 거 아냐, 시발!

나는 씩씩대면서 또 뽑기통에 손을 뻗었지만 그런 나를 보는 라리루라는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선배. 10쿠퍼면 1등 상 밑으로는 다 살 수 있겠는데요?”

“가챠는 가치판단으로 뽑는 게 아니거든? 이 순간의 손맛 때문에 돌리는 거거든?”

“그거 도박중독이거든요? 제가 선배 버릇 잘못 들였다고 언니들한테 엉덩이 맞게 생겼거든요?”

“괜찮아. 같이 맞으면 덜 아픔.”

내 앞에서 엉덩이 다 까고 모닥불 쬐던 녀석이 부끄러워 할 게 뭐 있다고.

나는 소매를 걷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 기도를 올리며 통에 손을 넣었다.

〈이번에야말로 10연차 간다! 금테 떴냐?〉

─뽁!

〈당첨! 당첨! 이야, 이걸 뽑네!〉

주인장 아줌마는 감탄한 것처럼 내가 뽑아낸 찬란한 1등상 제비를 보고 박수를 쳤다. 이 양반 장사할 줄 아는구만!

“크, 봤냐? 내가 해냄.”

“10쿠퍼 쓰고 해낸 게 해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니? 스탑… 유징… 팩트….

〈여기 1등상 상품이오!〉

─쿵! 툴툴거리고 있자 아줌마가 상자에 포장된 상품이란 걸 꺼냈다.

마법사 길드 특주품이라고 돼 있던데, 뭘까? 두근두근하며 뜯은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곰인형을 발견했다.

꺼내들어서 배를 누르자 곰인형은 빼액거리며 외쳤다.

〈알라뷰♥!〉

〈아 지랄 노!〉

내가 카운터에 인형을 패대기치자 아줌마는 펄쩍 뛰었다.

〈아니, 무슨 일로 노하셨수? 그거 마법사 길드에서 직접 만든 말하는 인형이야! 무려 정품이라고! 배 누를 때마다 딴 얘기를 해 주는 멋진 곰인형이여! 이것 보셔!〉

〈아임파인땡큐♥!〉

아줌마가 인형을 쥐자 곰 인형은 아마추어 성우 같은 발음으로 또 빼액거렸다.

그거 참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 같네.

〈개소리 말고 그냥 2등상으로 바꿔줘요.〉

〈에잉, 쯔쯔쯔. 이 인형의 가치를 모르다니. 이래서 남정네들은…….〉

아줌마는 툴툴대면서도 의외로 쉽게 바꿔줬다.

아니, 이세계에선 진짜루 저게 1등상 급의 물건이야? 그런 거야?

나는 암만 봐도 10쿠퍼 값은 못 할 듯한 2등상을 들고서 패잔병처럼 돌아왔고, 웃음을 참던 라리루라는 킥킥대다가 물었다.

“푸흐흐. 그래서 2등 상품은 뭐에요?”

“포마드. 머리 세우는 그거.”

내가 컴퓨터 마우스 만한 나무 상자를 던졌다가 받자 라리루라는 얼굴이 밝아졌다.

“앗, 정말요? 그럼 바로 바르실래요?”

“니가 나 머리 세운 거 좋아하는 건 알았는데, 여기서?”

“당연하죠♡! 그것보다 오히려 기억하고 계셨다면 왜 오늘 안 바르고 나오셨는데요?”

“내가 바르니까 방치된 황천의 조상님 묘소가 되더라고. 그렇다고 아내들한테 여자애랑 놀러 나가는데 머리 좀 만져달라고 하는 건, 그…… 너무 쓰레기 새끼 같잖아.”

“프랑 언니면 웃으면서 해 주셨을 것 같은데요.”

부정하기 힘들다는 게 증말루 어썸합니다. 이세계 갬성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네, 이걸로 완성☆!”

내 머리를 취향 따라서 정돈한 라리루라는 손을 닦고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냐, 마빡 페티시?”

“이젠 대충 뉘앙스만으로 뜻이 느껴지네요. 그거 욕이죠?”

“어허, 욕이라니? 전세계 3천만 마빡 페티시들에게 사과해.”

여신 앞머리는 남자의 로망이기도 하다고.

그나저나 이마에 여드름 나진 않았나 몰라. 내가 이마를 만져대자 라리루라는 냉큼 말했다.

“데이트 끝날 때까지는 건드리지 마시기에요? 오늘 하루, 선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빌렸으니까요.”

“임대료 내라.”

“네, 3년치 선불요♡”

라리루라는 군말 없이 지갑에서 2실버를 꺼내서 내밀었다.

예르나 이 시발년.

역시 노예제도가 버젓이 존재하는 이세계는 지옥이 맞다.

유다는 예수를 은화 서른 닢에 팔았다지만, 나는 내 인생을 그 15분의 1 가격에 팔아넘길 생각은 없었다.

것보다 나는 벌써 임자만 셋이나 있는 몸이다. 솔로몬 왕도 날 보면 이 새끼를 3등분 해야 하나 고민하겠지. 은화 두 닢으로 구매하기에는 늦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그렇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는 앞서 예약해 둔 식당에서 그럴싸한 저녁 식사를 했다.

“단 둘이 밀실에서 식사라니. 음흉한 속내가 엿보이네요.”

“음흉이고 나발이고, 지금 나는 이 닭가슴살에 흥미가 진진해서 사사로운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단다.”

“저 이젠 하다하다 닭가슴살한테도 밀리는 거에요?”

킹치만 이 녀석, 닭가슴살 주제에 살이 존나 쫀득한 걸? 이 마초이즘에 잠식된 노르드님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저격했단 말이지.

만약 이 조리법에 탄수화물과 가성비 문제가 없다면 지구의 헬창들이 눈물콧물을 뽑으면서 조리법을 알려달라고 이 가게 주방에 취직하겠는데.

머리까지 넘기고 식사해서 그런가 남의 집 결혼식 뷔페에 온 기분이었다. 프랑이랑 결혼할 때는 기껏 거하게 차려놓고 밥 먹을 틈이 안 났었잖은가.

라리루라는 잠깐 투덜거리다가 닭 날개를 포크로 찍었다.

“으음. 확실히 뭔가 요리가 다 먹기 편하네요. 뼈도 하나도 없고.”

“차려입고 나와서 뼈 뜯는 건 좀 그렇잖아.”

“아항! 한 수 배웠네요☆!”

새콤달콤한 닭을 우물거리던 라리루라는 고급 레스토랑다운 메뉴판을 읽다가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켰다.

“저기요. 선배♡?”

“응~ 안 돼~.”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라리루라의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그런 모습마저도 꽤나 귀여운 게, 얘 혹시 거울을 보면서 남들에게 자기 표정이 어떻게 보이는지 연습하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아니, 예능인 비슷한 거니까 그 정도 연습은 해도 이상할 것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안 된다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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