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떠는 게 싫으면 애교나 떨지 뭐.”
쫑알대는 다나를 끌어안고 치근덕댔다. 이것저것 생각했더니 나도 정신적으로 약간 지쳤다. 일행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 눈나나 쪼물딱대면서 힐링 좀 해야겠다.
나는 움켜쥘 살집도 없는 슬랜더한 몸매를 끌어안고서 뒹굴거렸고, 다나는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내 품에서 가만히 숨을 색색거렸다.
“……이제부터 어쩔 건데? 원래는 누가 습격해 오면 그 놈 족치고 캐내볼 생각이었잖아? 존나 이 저택에 쳐들어올 만큼 생각 없고 간 큰 놈은 없지 않을까?”
“어차피 경매에 들어가면 상대가 누군지도 다 보일 텐데, 벌써부터 위험을 감수할 거 없지. 캐서린도 노려지고 있으니 안전한 곳에서 존버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문제는 티르시를 둘러싼 환경이 존버하는 동안 변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도 생각해 둔 대책은 있었다. 나는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면서 다나를 주물러댔다.
야한 기분이 들지 말라고 일부러 성감대는 피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었는지 다나는 일행이 올 무렵엔 허리를 움찔거리면서 넉다운되고 말았다.
“이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느긋하게 있어도 되는 건 처음이네요. 저희 언니가 알면 질투하겠어요.”
아내들과 같이 온 캐서린은 별채를 둘러보고 그런 감상을 내뱉었다.
나는 라리루라의 짐을 푸는 걸 도와주다가 말했다.
“너는 여기 있으면 된다지만, 네 언니는 혼자서 괜찮겠냐?”
“그 치사한 추적 마법만 아니었으면 잡힐 일 없었는걸요? 당신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저흴 습격한 하프엘프가 괴도의 정체를 보고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문제 없을 거에요.”
기억을 읽어봐서 그렇지 않다는 건 확실한 사항이었지만, 나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기로 했다. 일부러 설명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아, 그래. 너한테 또 조사를 부탁할 게 생겼어.”
“조사를요? 여기에 있으면 안전해지는 만큼 정보를 모으는 것에도 제한이 걸려요. 조금 늦어질 텐데…….”
“최우선으로 조사해 줘. 따로 어려운 주문은 아니니까.”
“……뭐, 뭐길래 그러세요?”
나는 쓸데없이 쫀 것 같은 캐서린에게 진정하라는 뜻으로 손을 저어보였다.
“이 도시에 아르마알스 가문의 젊은 마님이라는 사람이 온 모양이거든? 그 사람의 친가랑 지금 묵고 있는 곳 좀 알아봐 주라. 이것 뿐이면 어려울 것 없지?”
내 말에 캐서린의 안색이 밝아졌다.
“아, 물론이죠! 위치만이라면 이미 파악했어요! 유명인사다 보니까 제 조사망에 진작 걸려 있었죠.”
“……어딘데?”
약간 쎄한 느낌이 들어서 즉시 질문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캐서린은 태평하게 말했다.
“영주 저택이요!”
“……하, 씨발.”
대답을 듣자마자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아니 씹…… 왜 하필이면 거기에 묵냐고.’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 젊은 귀부인께서는 미친 흑마법사한테 시달린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른 미친놈의 집에서 숙박하고 있다는 듯 했다.
프리모르가 정말로 초대 원로원 가문의 직계가 아니라면 별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호랑이 굴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었다는데 욕이 안 나올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일이 그렇게 된 이유는 알겠다. 상식적인 예의 문제다.
그녀만큼 저명한 인사가 어느 영지에 방문했다면, 그 땅을 다스리는 영주한테 얼굴을 비추는 게 예의였다. 헤르마이온 저택에 여기사만 보낸 것과 정 반대의 이유로 말이다.
만약 영주를 안 보고 그냥 여관에만 묵다가 떠난다?
스티븐 잡스가 삼성 본사에 찾아와선, 경영진을 안 만나고 숙직실에서 먹고 자다가 떠난 거랑 동급의 기행일 것이다. 대체 뭔 미친 짓이냐고 별 소리가 다 나오겠지.
운이 나쁘면 뭔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다가 간 아닌가 하는 의심도 살 테고 말이다.
‘……아니, 됐어. 좋게 생각하자.’
안 그래도 프리모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생긴 참이었다.
그녀가 디아볼로네 집에 머무르고 있다면, 내가 부탁하려는 일에도 아주 적합한 상황이다. 이미 늦어버린 이상은 어쩔 수 없다. 그냥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하도록 하자.
나는 해가 저문 바깥을 쳐다보다가,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시종님아. 잠깐 협력 좀 해 주라.”
그날 밤.
잠에 들기에는 약간 조금 이른 시간에, 나는 새로 변신한 베로니카의 등에 올라타서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슈와아아악. (섹스.)”
나 자신은 블랙 맘바로 변신한 상태였다. 멀리서 보면 베로니카의 털에 묻혀서 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도 힘들 것이었다.
날개를 퍼덕이던 베로니카는 쿡쿡 거리다가 투정을 했다.
“나의 그대여. 괜히 귀에다가 대고 울음소리 내지 말거라. 사람의 말도 할 수 있잖느냐.”
뱀 언어를 알아듣는 것도 아니면서 불평은. 나는 베로니카의 등을 꼬리로 쳤다.
“나는데 집중해. 떨어지면 너 두고 혼자 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도록. 그대를 혼자 두기만 하면 꼭 뭔가 사고를 치고 오지 않느냐. 프랑이 절대 위험한 짓 하지 못하게 하라면서 신신당부를 하더군.”
“비겁하게 팩트로 할 말 없게 만들기야?”
쫑알대면서 밤하늘을 날아 영주 저택으로 도착하는 우리.
나는 그 웅장한 넓이를 보고 혀를 찼다.
헤르마이온 길드장의 저택도 컸지만, 여기는 그보다 한 술 더 떴다. 내 안에서 부동산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게르마니아고 로마니아고 땅이 남아도나. 건물이 죄다 뒤지게 커, 시발.
존나 부러워 뒤지겄네. 좆만한 2층집 하나 가진 실딱이는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그래도 경계 상태는 예상 범주군.’
저택 안의 병사들은 철저하게 움직이면서 순찰 중이었다.
예전에 담을 넘었던 투스타스 상회랑은 비교도 안 된다.
시국이 시국이라고 병사들도 기합을 빡 주고 FM으로 순찰을 하는 모양이다. 괴도 쌍둥이의 말처럼 이런 삼엄한 경계를 뚫겠다고 나대는 건 무리수일 듯 했다.
‘병사는── 특히 우측 별관에 많나.’
그렇다면 아마 저곳이 티르시가 갇혀있는 곳이겠지.
나는 검소한 외벽이 인상적인 작은 별관에 눈을 부라렸다.
신중을 기하고자 했던 나의 판단은 옳았다. 장애물도 없이 병사가 즐비한 별관이었다. 저곳에 침투하는 건 동물로 변신한 상태여도 지난해 보였다.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라고 하던가.
저기에 침투하다가 걸리면 안 잡히고 빠져나와도 경계만 더 철저해지고 말았겠지. 무모하게 도전하지 않길 잘 했다.
“베로니카. 손님방 위치는 기억하지?”
“물론이다. 새가 됐다고 머리까지 멍청해지진 않느니라.”
베로니카는 농담처럼 대답하고 날갯짓을 했다.
괴도 쌍둥이는 일전에 이 저택을 털고자 단면도를 얻었던 듯 한데, 그때 알아낸 바로는 손님에게 내 주는 방은 총 3개였다고 한다. 위치는 다르지만 각 층마다 1개씩이다.
우리는 경비의 눈을 피해서 그 방을 차례차례 확인했다.
‘병사는 주로 별관이랑 본관 입구에 배치됐군. 손님방을 경계하는 사람은 없어.’
프리모르 주변에 감시자가 거의 없는 건, 정말로 그녀에게 관심이 없어서인가?
아니, 병시를 배치하더라도 호위의 눈에 띄면 본말전도다. 납치 계획이 있든 없든 눈에 띄게 사람을 부리진 않았겠지.
─푸드덕.
그렇게 우리가 3번째 손님방의 창문을 엿보았을 때였다.
오딘의 눈을 발동한 나는 아무런 경보마법도 걸리지 않은 창문 너머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프리모르와 그 호위들이었다.
프리모르는 찌푸린 눈에 미약한 분노를 머금고, 무릎 꿇은 여기사에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리아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당분간 손가락을 치료할 생각은 없다고요.〉
〈죄송합니다. 기사에게 선물받았다는 명목이라면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고맙지만, 약지만 치료해도 당장은 딱히 의미가 없어요. 무엇보다 지금은 가문에 돌아가는 게──〉
그때 여도적이 손을 들어서 면박을 주던 프리모르의 말을 끊었다.
〈마님, 잠시만요. 불청객이 왔는데요?〉
〈──어디죠?〉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걸 보면 여도적 역시 혼나던 중이었을 텐데도, 일행은 즉시 전투 태세를 갖추며 우릴 경계했다. 여전히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창문이 잠겨 있지 않았기에 나랑 베로니카는 당당하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베로니카의 등에서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늦은 밤에 실례하오. 많이 바쁘신 모양인데, 기다리는 게 맞겠소?〉
뱀이 말하는 꼴에 프리모르와 호위들은 눈이 주먹만해졌다.
가장 먼저 내 정체를 눈치챈 건 마법사였다.
〈……그 목소리는 설마?〉
〈그렇소. 나 예수게이요.〉
이름 좀 제대로 지을걸. 자칭할 때마다 은근 좆 같네.
〈사, 사역마입니까? 사역마를 통해서 전달 마법을?〉
〈그렇소. 도술의 일종이지.〉
당연히 변신한 본인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할 생각이었다. 남들 눈에는 사역마로 보이도록 몸 안쪽에 마나의 흐름가지 위장해 왔는데, 아쉽게도 거기까지 체크하진 않나 보다.
호위를 타박하던 프리모르는 얼굴을 빛내면서 다가왔다.
〈세상에! 어쩐 일로 예까지 오셨나요?〉
〈흠? 그런 말투는 조금 서운한걸. 헤어질 때만 해도 다시 찾아와 달라던 얘길 들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이었나?〉
내가 짖궂게 말하자 프리모르는 놀라선 고개를 저어댔다.
〈그럴 리가요!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저희 가문의 저택이 아닌 곳에서 다시 뵐 줄은 몰라서……!〉
〈아, 농담이었소. 흥분 마시오. 내가 짖궂었군. 헌데 여기 그렇게 소리쳐도 괜찮소? 사람이 오면 곤란하시진 않고?〉
〈그건 상관없어. 이 손님방 주변엔 아무도 없거든.〉
〈걱정되긴 합니다. 목소리를 가두는 마법을 써 두죠.〉
한스의 말에 마법사가 뭔가 마법을 발동했다.
베로니카가 쓰는 것보다는 수준이 좀 낮아보였는데, 같은 생각을 했는지 베로니카는 살짝 웃고서 날개의 깃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거의 뭐 메소드 연기로군.
〈그보다 댁,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아냐? 헤어질 때 어영부영 작별한 게 아쉬워서 찾아왔다면 감격스럽긴 하겠는데.〉
여도적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귀족답게 자존심이 꽤 센 프리모르는 그 태도에 눈을 찌푸렸지만, 그녀가 입을 여는 것보다 내가 더 빨랐다.
〈그 말이 맞소. 염치없지만, 저번에는 흘러넘겼던 제안을 다시 부탁드리러 왔소이다.〉
〈부탁이라고 하시면…… 저희를 도와주신 대가로 예수게이 님의 목적에 협력한다는 거래 말씀이신가요?〉
〈음.〉
대협의 풍모가 느껴지도록 목소리를 깔고 대답하자, 프리모르와 호위들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거 경사로군요! 저는 보답을 못 드린 게 아쉬워서 밥도 안 넘어가던 차였습니다!〉
〈크크. 운이 좋았네, 리아스. 맨날 한숨을 푹푹 쉬더만.〉
〈당신이야말로. 다음에 만나면 무릎 꿇고 사과를 하겠다나 뭐라나 하면서 몇 번이고──〉
〈으흐아악!! 내가 언제!!〉
저번에는 무척 날이 서 있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들도 꽤 화기애애한 파티였다.
그럴 만도 했다. 나랑 마주쳤던 이들은 주군과 남편을 살해당하고 복수에 불타던 사람들이었으니까.
지금은 그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여유를 되찾은 거겠지.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당신께서는 제 낭군님의 원수를 갚아주신 분이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와드리겠어요.〉
프리모르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른 호위들도 다 쌉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뱀대가리를 흔들었다.
〈그리 거창한 건 아니외다. 기억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로마니아에서 신세를 진 친우의 이야기를 했었지.〉
〈……그 후드 쓴 분 말씀이시군요?〉
변장한 라리루라를 떠올리는 듯한 프리모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나는 중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를 돕고 떠나고자 하오. 은원은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하니까.〉
내 무혐지 흉내에 프리모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레나폴리스는…… 예전부터 통치자의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았죠. 저희 호위가 별관 쪽에 이상하게 병사가 많고 경계태세가 심하다고 하던데. 혹여 그것과 관계가 있을까요?〉
〈눈치채고 있었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나는 바로 그곳에 내 벗이 찾는 여인이 있으리라고 예상 중이오. 내 바라건대, 그 별관을 조사해 줄 수 있겠소?〉
모든 이들의 고개가 여도적에게로 돌아갔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말했다.
〈조금…… 어려울 것 같아. 시도는 해 보겠지만, 손님방을 내준 건 그밖의 곳에 가지 말라는 뜻이야. 경계도 심해서 나 혼자만으론 실패할 공산이 커.〉
〈그대는 벌레를 다룰 수 있지 않았소? 실내라면 겨울에도 기운찬 놈들이 있을 듯 한데.〉
바퀴벌레들이 겨울이라고 박멸되진 않잖은가?
한파가 불어도 살아남는 벌레는 있는 법! 발바닥이 쩍 달라붙는 싸구려 비닐 장판을 아는 흙수저는 벌레들의 생명력도 알게 된다. 나는 친가에서 그걸 배웠다.
여도적은 신음하며 머리를 긁었다.
〈별관과 연결되는 통로가 없잖아. 찾아서 보내도 중간에 얼어 죽던가, 나랑 연결이 끊길 거야.〉
〈……불가능한가 보군.〉
〈아니 뭐, 아예 엄두도 못낼 건 아닌데…….〉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프리모르의 안색을 살피다가 말했다.
〈……이번 경매에서 원하는 물품이 있어서 우리끼리 잠깐 리스트를 봤었는데 말이야? 첫날에 우리 고향에서 만든 쇠똥구리(Scarab) 브로치가 출품되더라고.〉
〈쇠똥구리라?〉
나는 아는 척을 하려는 주둥이를 의식해서 닥치게 했다.
중원의 대전사인 예수게이라면 나르메르-나일의 문화나 고고학 지식 같은 건 없어야 정상이었다. 자중하자, 자중.
〈다산, 풍작, 태양의 상징이야. 그거라면 내가 부리는 벌레들에게 추위를 견딜 온기를 나눠주고, 지배력을 올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걸 살만한 돈이 없어.〉
〈내가 지불하지. 그것만 있다면 가능하겠소?〉
까짓거 경비처리 하지 뭐. 내가 즉답하자 여도적은 드세게 웃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 물건까지 받고 못한다고 할 순 없잖아? 자신 있어.〉
〈……그렇다면 요금은 제가 지불할게요.〉
그렇게 말한 것은 프리모르였다. 호위들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마님은 그, 경매에 반대하시지 않았습니까?〉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하늘에 있는 낭군님께 얼굴을 들 수 없겠죠. 헨리도 고향의 흙에 묻히는 것이 조금 늦어져도 이해해 주리라 믿어요.〉
호위들은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가, 다들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르는 성기사 씨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겠지.
〈──예수게이 님. 사정은 이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