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눈을 굴리던 나는 찾아헤매던 놈을 발견하고 눈을 반개했다.
마그마처럼 시뻘건 머리와, 그보다 붉은 눈의 남자다.
티르시를 납치해 간 새끼. 레나폴리스 영주 가문의 실세.
이반 리터 폰 디아볼로다.
‘강함까지는…… 잘 모르겠군.’
이 거리에서 마나 사용까지 자제했기 때문일까. 실력까진 알 수 없었다.
움직이는 걸 봤다면 또 모르겠는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 보고 실력을 간파한다? 그게 됐으면 모험가 때려치고 돗자리 폈지 씨발아. 전투력 스카우터로 전직 씹가능인데.
〈그럼 첫 번째 물품은──〉
아무튼 경계대상의 와꾸를 파악한 나는 좌석에 등을 기댔다.
경매의 최소 단위는 1실버다. 100만원이 최소 단위라는 건 참 어썸할 따름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적당히 저렴한 상품만 챙겨갈 생각이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이어서 4번째 물품입니다. 나르메르-나일에서 만들어진 매직 아이템, ‘태양의 쇠똥구리’로군요. 강한 태양의 힘을 품었기에 뛰어난 마법사님들께 아주 좋은 물건일 겁니다.〉
오, 벌써 나왔군. 나는 눈을 빛냈다.
물품들이 전부 몇십 실버 씩 하는 가격에 팔렸기에 싸그리 넘기던 나도 저 물건에는 관심이 갔다.
저 황금 전설 쇠뚱구리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으니까.
〈20실버!〉
〈21실버!〉
〈22실버!!〉
〈예! 17번 22실버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나름 메이저한 물건인지 단위는 쑥쑥 올라갔다. 아랫층에 있던 터번을 쓴 턱수염 긴 남자가 17번 고객인 건지, 그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때 프리모르 일행에서 여도적이 말했다.
〈30실버.〉
터번 턱수염은 그녀의 경박한 목소리에 눈을 부라렸다가, 그 위치가 귀족 전용석이라는 걸 알고 눈치껏 깨갱했다.
〈……3, 31실버.〉
물론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닌 모양이다.
1실버 단위라서 초라하가는 하다만, 한 번에 100만원이나 올린 셈이니까 얕볼 건 못 됐다.
그나저나 3100만원짜리 벌레 브로치라니 존나 신기하군.
프리모르는 그런 터번 턱수염을 쳐다보고는 여도적에게 속삭였다. 여도적은 그 지시에 빵 터지는 걸 참으면서, 주인의 말을 대신 전했다.
〈40실버.〉
어머어머 쓰벌. 우리 마님이 플렉스 좀 할 줄 아시네.
천만원 상승에 나는 혀를 내둘렀고, 터번 턱수염은 고개를 떨궜다.
여기서 맞불을 놔 봤자 50실버로 올라가고 끝이겠지. 터번 턱수염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예! 33번 손님, 50실버에 낙찰입니다!〉
터번 턱수염의 호기 어린 도전을 바라던 진행자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깔끔하게 진행하는 그를 보면서 프리모르는 안심한 것처럼 귀티 나는 부채로 부채질을 했다.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귀부인 같았는데, 그녀의 사정을 아는 만큼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남편의 복수를 대리랭 해 드린 수당으로 퉁쳐 주십셔.
〈5번째 상품! 미지의 술식이 새겨진 대검입니다! 그러면 입찰가는…… 5골드부터!〉
진행자는 그렇게 기운차게 외쳤지만 호응은 전혀 없었다.
입찰 경쟁이 일어나기는 커녕 고객 중에서는 인상을 쓰거나 당황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5골드? 저게?〉
〈제정신인가? 물품 감정을 어떻게 한 거야?〉
뒷자석에 앉은 내 귀에도 들려올 정도인데, 이 거리에서 입찰가를 들을 수 있는 진행자는 오죽 하겠는가. 그는 얼굴에 최대한 미소를 지었지만 어색한 느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5골드가 최소 입찰가라고 하는 그 대검은, 어딜 어떻게 봐도 쓰레기였던 것이다.
녹슬고 낡은 검이었다. 넓은 검날에 빼곡하게 뭔가 문양이 음각된 상태였다.
마법이 〈부여〉된 매직 아이템이라는 건 알겠다. 그래도 나는 그걸 오딘의 눈으로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쓰레기……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일부러 오딘의 눈을 키고 있던 건, 혹시 모를 진흙 속의 진주를 건져내고자 해서였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이런 경매에서 무조건 그럴싸한 뭔가를 집어가지 않은가.
시나리오 라이터의 관점에서 보면 애초에 쓰레기만 나오는 경매 파트에는 장면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어째 가장 뭔가 있을 법한 물건이 제일 쓰레기냐.’
사실 생긴 것부터가 뭔가 그럴싸하게 생겨먹지도 않았다.
진짜 무슨 침몰한 해적선에서 건져낸 낡은 대검처럼 녹투성이인 무기였다.
〈부여〉된 마법이 상당히 난해해서인지 오딘의 눈으로도 해석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능 영어 지문 같이 일부러 빙빙 꼬아서 해석이 어려울 뿐인 느낌이다.
결국 일부 분석에 성공한 부분을 짚어봐도 불꽃을 뿜는 약해빠진 마법 정도로 보였다. 100% 읽지 않아도 내용을 대략 추측해낼 수 있는 고등-토익 테크닉의 응용이었다.
‘어딜 어떻게 뜯어봐도 5억이나 할 물건으로는 도저히…… 어?’
나는 그렇게 오딘의 눈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시큰해지는 걸 참아내다가, 문득 눈을 크게 떴다.
절반밖에 해석하지 못한 마법의 나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구, 구매하실 분 없습니까? 없으시다면 다음으로──〉
〈5골드.〉
깨달았을 때는 직감적으로 손을 든 뒤였다.
장중의 이목이 한 순간에 나한테로 쏠렸다.
어떤 병신 개 호구 또라이가 저걸 산 것이지? 하는 의문이 절반, 혹시 내가 모르는 가치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남은 절반이다.
‘뭘 꼬라봐, 씹새들아.’
눈 돌려 씨발. 등에서 뜨신물이 줄줄 새니까.
나는 차분한 척 평정을 가장하면서 식은땀을 마구 흘렸다.
‘우리 집 집값이 2골드 45실버인데 5골드 짜리 입찰에 끼어들면서 태연하라고? 씨발 내가 그게 되면 심신미약 판정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도박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저 대검에 숨겨진 어떠한 좆쩌는 힘이 숨겨져 있어서?
설마. 그딴 건 있지도 않다. 저거 진짜 개잡템 맞다.
게임이었으면 팔거나 갈기도 귀찮아서 그냥 버리고 갈 법한, 그런 쓰레기 무기다. 저기에 5골드를 박을 바에야 황금 딜도를 사서 프랑이랑 놀고 말지 씨발.
그러나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고통이 없는 인생은 죽음과 다름없단 뜻!
나는 그 명언을 되새기며 군침을 삼켰다. 나 같은 흙수저는 스케일 큰 배팅에는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좀 차분해지는 느낌.
이게 그 죽음을 수용하는 마지막 단계인가.
“노, 노르?”
프랑도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당혹을 감추지 못하던 우리 아내님의 눈은 곧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덕에 내 식은땀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레훼에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신뢰는 기쁨과 부담감을 동시에 선물하는 것이었다. 나는 열심히 잠궜던 등땀의 수도꼭지가 망치로 후려갈긴 것처럼 날아가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씨발, 이거 빌린 옷인데 땀 범벅이 되면 물어줘야 하는 거 아냐?’
애1미 씹. 돈 나갈 일은 몰아서 온다더니.
어쩌지? 이 도박이 성공할까? 성공해야 하는데.
실패하면 존나 우리 가족 전재산이 날아간다! 아니, 전재산까지는 아니겠지만 5억은 눈깔 치트 남편놈이 혼자만의 독단으로 쓸 금액은 아니었다!!
유부남들은 5만원만 내키는대로 현질해도 저녁밥이 스스로 끓인 라면이 된다는데, 5억을 똥쓰레기에 태우고 오면 아무리 우리 아내들이라도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경멸할지 몰랐다!
물론 나중에 구매를 취소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물건도 못 받고 낙찰가의 절반을 돌려줘야 했다.
진짜 낙찰받았다간 취소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집값이랑 삐까뜨는 돈이 공중에 날아가는 것이다!
‘제발 씨발! 씨발 제발!’
나는 오딘을 위시로 한 수많은 신님께 기도했다.
이젠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 병신 같은 치킨 레이스에 다른 또라이가 한 발 끼게 해 주세요!
누구든 이 구찌 천만원 의자 같은 우스운 부가가치 싸움에 끼어든다면, 다른 흑우들도 ‘저게 진짜 뭔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돈을 태워줄지 누가 아는가!
그리고 나로서는 천만다행히, 그들은 내 기도에 금방 답을 내려주었다.
〈5골드 10실버.〉
그건 납치범답지 않게 존나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였다.
빨간 대가리털의 젊은 미남은 한 손을 공손하게 들면서 내 레이즈(Raise)에 호응했다.
5억이나 되는 판돈이 걸린, 이 미친 쓰레기 아이템 경쟁에 이반 리터 뭐시기 아무튼 씨가 참가한 것이었다.
좋아 죽으며 광희난무하는 진행자를 방치하고, 그는 무표정하게 나를 꼬라봤다.
딱히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 귀족보다 더 귀족 같은── 품위 넘치는 잘 생긴 기생오라비 와꾸에서 어떤 확고한 의사를 느낄 수가 있었다.
─칭챙춍 새끼가 왜 깝싸고 지랄인 것이지?
그래. 딱 그런 의문이 전해지는 듯한 눈깔이었다.
그의 눈빛을 본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시시한 도발이다. 이 마스터-꼴마초 노르드 님은 프로이기 때문에 일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6골드.〉
뭐 씨발아. 쫄리냐?
꼬우면 따라와 보던가.
〈6골드 10실버.〉
〈6골드 20실버.〉
〈6골드 40실버.〉
〈7골드.〉
〈……7골드 10실버.〉
자존심 강한 두 호구의 대결 실화냐? 심장이 쫄려서 터질 것 같다.
나는 가격을 올릴 때마다 악착같이 따라오는 디아볼로 새끼 때문에 염통이 분식집 찜기에 들어간 것처럼 쫄깃해졌다.
‘그래도 도박은 성공했다.’
아무 가치도 없는 대검에 7억이나 태우는 병신 짓.
하지만 대검이 쓰레기라고 그 사용법까지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눈을 빛냈다.
저 대검을 낙찰할 생각은 절대 없다.
즉석에서 세운 목표였지만, 내 의도는 디아볼로 새끼가 저 대검을 남이 사가는 걸 막으려고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겸사겸사 저 씹새가 지불할 낙찰가를 올려서 엿도 좀 먹이고 말이다.
‘이젠 저 씹새끼가 언제 드롭하냐가 관건인데.’
나? 나는 존나 지금 당장 때려치고 싶지 씨발. 뭘 물어.
물론 그렇게 해도 내 손해는 없다.
문제는 여기서 갑자기 드롭하면 100% 의심을 받을 거라는 점이다. 누구 하나 또 다른 돈 많은 병신이 끼어들거나 하진 않을까? 아니면 예산이 바닥난 모험가를 연기하면 되나?
〈7골드 21실버!〉
그때 하늘이 나를 보살폈다. 나와 디아볼로의 개호구 치킨 레이스를 관전하던 손님이 경쟁에 끼어든 것이었다.
직전의 입찰가에서 딱 1실버 올려 부르는 졸렬함!
기름기가 번들번들한 돼지상!
그야말로 야설의 악덕 졸부가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귀족이었다. 그는 나 같은 평민 찌끄레기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서 디아볼로를 꼬라봤다.
아마도 그에게 뭔가 원한이 있고, 디아볼로가 죽어라 물고 늘어지는 걸 보면서 대검에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
‘캄사합니다…! 캄사합니다…! 킹갓황상 흑돼지님, 복 받을 관상이십니다…!’
나는 감격의 극한에서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참으려는 노력이었지만 남들이 보기엔 ‘돈이 딸려서 귀족들의 경쟁에 나가리된 평민 모험가’로 보일 것이었다.
그러고 있자 디스뮤크가 보고 있기 힘든 듯 속삭였다.
〈저희 길드에서 자금을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 씨발 지랄 말고 꺼져요.
나는 반사적으로 정색하려는 표정을 수습하면서 참담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이세계에서 구라와 아부로 습득한 거짓말의 재능을 보여주자 디스뮤크는 물러났다.
‘휴, 쓰벌. 살았다.’
디아볼로는 나를 힐끔 꼬라보고서 졸부와의 입찰 맞다이에 들어섰다.
〈7골드 30실버.〉
〈7골드 31실버!〉
〈……7골드 40실버.〉
가격을 높여 부를수록 품위 넘치던 디아볼로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구겨졌다. 깔깔깔. 보기 좋구만 그래.
귀족들의 미친 플렉스 배틀은 그렇게 몇 분 더 이어졌고, 디아볼로는 끝내 체념한 것처럼 최고액을 다시 갱신했다.
〈…………10골드 80실버.〉
〈10!! 골드!! 80실버!! 나왔습니다아아악!!〉
진행자는 이딴 걸 팔라고? 하던 표정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점프을 해대며 기뻐했다. 디아볼로 새끼와 접전을 벌이던 졸부는 반대로 인상을 쓰면서 혀를 찼다.
그는 메이드가 들고 있던 술잔을 빼앗아서 원샷을 때렸다. 대검을 낙찰받길 포기한 것이다.
〈10골드 80실버어어어억──!! 낙찰됐습니다아아악──!!〉
그가 더 이상 입찰에 끼어들 듯 보이지 않자 진행자는 끼요요욧 거리면서 고함을 쳤다.
─짝짝짝짝짝!!
앉은 자리에서 거의 11억을 태워버리는 미친 돈지랄에 손님석에서는 박수까지 퍼졌다. 나도 포기한 것처럼 그 박수에 끼어들면서 쿨한 패배자를 흉내냈다.
프랑은 어정쩡하게 나를 따라하면서 텔레파시를 날렸다.
“노르. 저 무기가 뭐길래 그래?”
“저거? 푸흐흐. 그냥 쓰레기야.”
눈이 콩알만해지는 프랑.
놀래켜서 미안하지만 설명은 이따가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썩은 얼굴로 박수에 호응하는 디아볼로를 비웃었다.
1시간 뒤, 헤르마이온 저택.
〈오늘 경매는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좋은 결과가 있으실 겁니다.〉
우리 방 앞까지 따라온 디스뮤크는 그리 말하고 떠나갔다.
아마 그는 내가 카탈로그를 보고 대검을 낙찰받으러 간 줄 알았겠지. 대검을 놓치고 나서부터 아무 것도 안 샀거든.
그게 당황스러웠던 건 프랑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는 부루퉁하게 눈을 부라렸다.
“노르. 경매에서 뭐든 하나 사야 했던 거 아니었어?”
“그건 그런데, 어, 계획이 좀 바뀌어서…… 화났어?”
“아니? 노르가 아무 설명도 안 해 주니까 삐진 건 맞지만.”
드물게도 대놓고 불평하는 프랑.
왜 내가 죄를 지은 기분이지? 아니, 애초에 새 아내를 들일 때보다 불만스러워 보이는 건 도대체 왜일까.
여심이란 이토록 알기 어려운 것이었다.
“음. 설명해 줄게.”
그래서 나는 다른 일행에게 설명하기 앞서서 프랑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게 배려 면에서도 맞고, 나도 생각을 말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 대검은 그냥 쓰레기가 맞아. 하지만 거기에 〈부여〉된 마법은 굉장히 치밀하게 그 정체를 숨기고 있었어.”
경매장의 총괄담당자가 며칠 간 분석했을 텐데도 알아내지 못했던 것 아닌가. 나도 오딘의 눈이 아니었다면 절대 눈치 못 챘을 고레벨의 암호화였다.
하지만 이세계 치트 눈깔은 입찰이 취소되고 다음 물품으로 넘어가기 직전, 그 마법의 정체를 간파했다.
“대검에 걸려 있던 건, ‘추적 마법’이야.”
프랑의 눈이 동그래졌다.
“추적 마법…… 헤스왈드 자매의 매직 아이템에 걸려 있던 거랑 비슷한 거?”
“비슷한? 아냐. 퀄리티가 다를 뿐이지 완전히 똑같았어. 즉, 그 대검을 경매장에 출품한 건 디아볼로 본인이야. 아마 출품 과정에선 신분을 숨기고 부하를 시켰겠지만.”
“으음….”
프랑은 고민하는 것처럼 머리를 쓰다가 말했다.
“자기가 판 물건을 다시 구매했다는 거야? 왜?”
“구매한 게 아니야. 그 멍청한 놈, 지금쯤 낙찰을 무르고 위약금을 치르고 있을 걸.”
“……왜 그런 복잡한 짓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귀여운 얼굴을 찌푸리는 프랑. 나는 픽 웃으며 설명했다.
“간단해. 생각해 봐. 경매장 측에서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 어디겠어?”
“보관하는 곳……? 아, 창고!”
깜짝 놀란 프랑은 손뼉을 쳤다.
“그렇구나! 그 대검에 추적마법이 걸려 있다면, 디아볼로는 언제든 ‘경매품들이 보관된 창고’의 위치를 알 수 있잖아!”
정답이었다. 나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금화 수백 닢이 오가는, 말하자면 현대에서 수백 억 원의 금액이 사용되는 경매다. 당연히 경매장 관리자는 목숨을 걸고 그 보안을 신경쓸 것이다.
만약 귀족들도 얽힌 경매에서 물품을 도난받는다? 그랜절 자세로 끓는 기름에 데쳐지고도 남을 것이다.
‘당연히 철저하게 창고의 위치를 숨길 거고, 어쩌면 수시로 바꾸기까지 할지도 모르지.’
그런 엄중한 보안을 뚫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헤스왈드 자매조차도 후보 중 하나로 염두하는 것에 그칠 정도였으니까.
“디아볼로는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그 보안을 뚫은 거야. 중개인은 설마 그 낡은 검에 추적 마법이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하고,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겠지.”
“맞아! 그래서 디아볼로는 노르가 대검을 사려는 걸 거금을 쓰면서 막았던 거구나!”
의기양양하게 정답을 말하는 프랑이었다. 나는 대견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래. 끝까지 팔리지 않거나 자기가 구매했다가 입찰을 취소하면, 경매가 끝날 때까지 창고에 있다가 반납되겠지. 근데 만약 우리 같은 제3자가 구매해서 창고에서 갖고 나가면?”
“계획이 물거품이 돼! 그걸 막으려고 디아볼로는 첫날부터 경매장에 와 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가 느낀 최초의 위화감이다.
디아볼로 그 씹새가 경매장에 와 있는 걸 보고,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날째에는 살 만한 게 거의 없었는데? 경매 유치자가 경매품 카탈로그를 못 봤다고?’
엘릭서가 4일째의 피날레를 장식했듯, 경매는 초반부에는 귀한 물건이 출품되지 않는다.
3일째까지 판매되는 물건은 금화가 오갈 만한 게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다 실버 단위였지 않은가.
그 쓰레기 대검을 무려 5골드의 내민 게 유일한 예외이긴 했는데, 그것도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부러 첫날에 제출했을 정도다.
그러면 디아볼로는 대체 왜 직접 경매장을 찾아왔을까?
“내가 대검의 추적 마법을 눈치채자마자 입찰을 시도한 건,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어.”
그래서 ‘도박’이라고 한 것이다.
만약 헛다리였을 경우에는 반품을 해도 쌩돈 2골드 50실버가 증발해 버린다.
하지만 만약 디아볼로의 입김이 들어간 누군가가 그 입찰을 저지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기만 하면 ‘어떤 가정’에 확신이 생긴다.
“디아볼로는── 이번 경매에 출품된 상품을 싸그리 털어갈 생각인 거야.”
경매장의 물류창고에 GPS를 박아넣을 이유는 그것 말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정보상 캐서린을 통해서 괴도를 찾던 이유도 그거겠지.”
유명한 정보상이 루크레겐스에서 활동했다고 하니까, 그걸 토대로 쌍둥이 괴도를 찾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는 하프엘프 마법사가 ‘정보상’과 ‘괴도’, 양쪽을 다 쫓고 있었다는 것.
헤스왈드 자매는 의심을 피하고자 자기들의 활동지인 레나폴리스에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걔네가 ‘루크레겐스의 자칭 괴도년들’이라고 불리던 것만 봐도 그렇잖은가?
그러면 피해를 입지도 않은 레나폴리스의 영주가 쌍둥이 괴도에게 현상금을 걸 이유가 없다.
상식적인 범주에서라면 말이다.
“……디아볼로라는 사람, 그 둘한테 경매품을 훔쳐오게 하려고 했던 거구나.”
“그래. 뭣하면 직접 훔친 다음 누명을 씌워도 되고.”
괴도라는 유명세는 화살받이로 쓰기 적절하다.
아마 이건 계획의 서프 플랜이겠지. 하프엘프 꼬맹이가 실패한 뒤로는 굳이 추가로 추적자를 보내오진 않았잖은가.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서, 디아볼로는 언제든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겠네. 하지만 노르. 방법은 있어?”
“흐흐, 당연하지. 남편놈을 뭘로 보고. 이건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해.”
나는 내 말을 경청하는 프랑에게 검지를 세워서 보여줬다.
“추적 마법이란 건 ‘그 위치를 파악하는 마법’이 있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거잖아?”
21세기의 GPS도 위치 신호를 파악하는 수신기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추적 마법’이라면 그것에 1:1로 대응하는 마법이 존재하는 게 상식이다.
“그리고 나는 하프엘프의 기억에서, 그 새끼가 어떻게 헤스왈드 자매를 쫓아올 수 있었는지 알아냈고 말이야.”
내 손가락에 화살촉 같기도, 나침반의 바늘 같기도 한 마나 덩어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잠깐 회전하다가 경매장 쪽을 가리켰다.
반품당해서 그 물류창고에 돌아가 있을 대검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 씹새가 또 추적 마법으로 지랄해댈 때를 대비해서 뽑아냈던 마법인데, 이렇게 쓰일 줄이야.’
나는 마법을 해제하고 어깨를 풀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을 생각하면 선수를 양보할 수는 없어. 디아볼로가 엘릭서를 구매하는 게 베스트였지만, 이렇게 된 거 지금 당장이라도 작전을 시작하자.”
─달칵. 방문을 연 나는 꿈나라에 빠져 있던 캐서린을 찾아내서,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캐서린. 일어나. 예정이 좀 바뀌었어.”
“으, 흐으……? 뭐에요…?”
눈을 비비는 캐서린. 나는 음흉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니 언니 좀 불러와라. 일 하러 갈 시간이야.”
그녀는 잠깐 고개를 모로 꼬다가, 말뜻을 알아듣고 웃었다.
“자는 사람을 깨울 이유로는 충분한 소식이네요.”
해외까지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정보상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 눈빛은 보물을 발견한 괴도처럼 빛났다.
─바사삭.
─파사사사삭!
새까만 등딱지의 벌레들이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융탄자로 덮인 바닥을 기어다녔다.
프리모르는 소름이 돋는 것을 평온한 표정으로 감추면서, 자신의 호위가 벌이는 나르메르-나일의 술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