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말자. 해야 할 일은 그대로야.’
나는 냉정하게 뉴런 속에서 주판을 두들겼다.
한 명을 상대하면서 시간을 지체하자마자 여러 명이 추가로 늘어난 판국이다. 지금보다 더 사람이 늘어나기 전에 추격자를 떨쳐내는 게 최우선이었다.
〈멈춰있지 말고 움직여! 작전대로 주인님께 돌아간다!〉
나는 그들더러 들으라고 ‘밑밥’을 깔면서 헤스왈드 자매를 닥달했다.
프리모르와 미네르바를 이간질하는 작전도 생각해 봤지만, 노력에 비해서 효과가 불확실한 게 흠이었다. 여기서는 빨랑빨랑 날아제끼는 게 제일 확실할 것이었다.
〈궁수한테 하이그라운드를 잡혔는데 어떻게 튀어!〉
〈그건 내가── 아 씹!〉
작전 타임 중에 검집이 내 머리통을 노렸다. 나는 허리에 찬 막대기를 뽑아서 그걸 막고 파고드는 칼까지 피했다.
후추 폭탄을 빠져나온 미네르바가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주인님이라고 했나? 사주한 자가 있다면 놓쳐줄 수는 없겠는데.〉
포션이라도 끼얹었는지 얼굴이 축축해진 영주님은 매서운 검격을 펼쳤다.
내가 바라던대로 떡밥을 물어준 건 고마운데, 그 대가로 미네르바는 미취학 아동 강간마를 대하는 판사처럼 엄혹한 얼굴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불알이 절로 쪼그라든다.
아무래도 ‘자기 영지에서 씹새끼들만 털어가던 괴도들’에서 청부 도둑놈으로 취급이 격하된 모양.
〈아, 진짜! 일단 나 먼저 갈게!〉
오드리가 조급하게 날개를 펼치고 맞바람을 탔다.
─투확!
그녀는 마법의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지만, 그 때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여기사가 스프링 점프를 시전했다.
캐러밴을 습격했을 때와 똑같은 기술에 오드리는 눈을 크게 떴다가, 악에 받친 외침을 내질렀다.
〈두 번이나 같은 꼴을 당하면 괴도 실격이지!〉
그녀는 맞바람을 타면서 짓쳐드는 여기사의 어깨를 밟았다.
공중제비를 돌며 바람으로 각도를 조절하는 솜씨는 굉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번과 다른 것은 오드리만이 아니었고, 그 틈을 꿰뚫어 쏘아낸 은화살이 또 오드리의 날개를 관통했다.
〈흐꺄아아아악!! 왜 또 나마아아아안──!!〉
〈언니!!〉
〈아니 시팔아!! 니들 뭐하는데!!〉
저년들이 지금 개그 콘서트 하는 줄 아나? 고용주는 지들 코앞에서 칼침 맞고 있는데 웨 콩트나 찍고 있는 것이지?
몹시 열불이 뻗쳤지만 나도 지금 손발이 묶여 있었다.
미네르바한테만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신분을 감춰야 한다는 제약에까지 묶여 있는 것이었다.
‘예수게이의 기술도 못 쓰고, 노르드일 때 쓰는 기술도 못 쓰잖아. 존나 나더러 어쩌라고!’
스킬 캡처로 쎄빈 기술도 프리모르와 호위들이 다 목격한 것들 뿐!
나는 예상 밖의 위기상황에 손도 발도 낼 수 없이 숨이 막힌 듯 갑갑해졌다. 그것에는 미네르바의 검술도 한 몫 했다.
─슈팟!!
성격이 드러나는 철저한 기본기 위주의 검술은 머리를 쓸 틈도 안 주고 맹공을 이어갔고, 기술이 제한된 나는 내 몸 건사하기도 바빴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것은 포커에서 늘 패에 쓰리 카드는 들고 있다는 소리였다.
영주라길래 한 40대 먹은 아재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난 미네르바는 서른 살은 됐을까 하는 젊은 미모와 생기를 검술에 투자하는 실력 있는 전사였다.
건실하게 승부해도 지기 힘든 숙련자다. 잔꾀를 짜낼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며, 나는 등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쿵쿵쿵쿵!
착하게 살아온 심장은 도둑질 중이라는 특수상황에서 나의 집중력을 더 흐트러트렸다.
시야가 좁아지고 머리에는 튀어야 한다는 단락적인 생각한 가득 찼다.
‘튈 타이밍을 놓치면 진짜 좆 된다……!’
그것은 한때 대학원생을 꿈꾸던 어리석은 고삐리 강북호가, 좆 같은 야자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대걸레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꼰대 선생을 봤을 때에 버금가는 직감이었다.
그는 자기가 커피를 엎질러놓고 청소를 짬처리시킬 학생을 찾던 희대의 꼰대 교사였다. 관상부터 말아먹은 반반 대머리 늙은이의 기억이 의미도 없이 떠올랐다.
제때 튀지 못하고 붙잡혀서, 피곤한 몸으로 좆 같은 커피 자국을 닦고 대걸레까지 빨아야 했던 슬픈 추억!
그때의 원통과 반격할 방도도 없다는 상황이 나의 오감을 한층 일깨웠다.
그리고 그 제약과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이, 헤스왈드 자매한테서 쌔볐던 경공의 요령을 뉴런의 바다에서 퍼올렸다.
‘……이거다!’
나는 발을 움직였다. 현묘한 이치가 발끝에 맴돌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마초이즘에 기반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괴도가 되었다.
도둑질의 진수는 훔치는 것에 있는 게 아니었다.
참된 괴도란 훔친 다음 안전하게 튀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
절대지경(絶大之境)
무영탈주(無影脫走)!
펑퍼벙─!
〈……아니?!〉
나는 미네르바의 검격이 지배하는 범위에서 백스텝으로 빠져나왔다. 아까까지는 피하기도 급급하던 내가 갑자기 펼친 신속한 도주였기에 미네르바도 추격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끼요요요요욧──!!〉
패기 있게 기합성을 내지른 나는 오드리와 캐서린을 낚아채면서 스프링 점프로 뛰쳐올랐다.
〈으와햐아악?!〉
〈꺄아아악?!〉
놀라는 둘을 옆구리에 끼고 날개를 펼쳤다.
룬 마법으로 변형시킨 망토를 글라이더로 바꿔서 증기 폭발로 추진력을 더했다. 한 발짝 늦게 날아온 화살이 현명하게도 글라이더에 꽂혔지만, 거인 가죽으로 된 망토는 끄떡도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 쇼타임은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 늦었다간 주인님께서 저를 죽이려 들 거라서요!〉
간신히 여유를 되찾은 나는 닭 쫓던 개 꼴이 된 마님들에게 외쳤다.
〈가능하다면 피차 다시는 뵙지 마십시다! 그러면 굿바이, 사요나라, 아디오스!〉
─펄럭!
어영부영 정신을 차린 캐서린이 내 망토에다 바람 마법을 날려준 덕분에, 우리는 화재가 일어난 경매장에서 순식간에 도망칠 수 있었다.
불타는 건물은 공중에서 보니까 더 참담한 꼴이었다. 가능하다면 디아볼로 씹새끼가 병신들만 보냈어서, 그 새끼들을 상대한 경매장 사람들이 크게 다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드리는 모자를 눌러 쓰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푸하─! 지쳤다! 후, 그래도 어떻게 튀기는 했네.〉
〈그러게. 이대로 영주 저택까지 날아갈 거니까 마냥 긴장 풀진 말고.〉
내 말에 오드리는 약간 욕심이 드러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저기, 진짜 훔친 거 하나도 빠짐 없이 버려버릴 거야?〉
〈너희는 나쁜 부자들만 털어가는 거 아니었냐? 지금 훔친 물건의 주인이 전부 개새끼라는 보장은 없을 텐데.〉
내 말에 오드리는 합죽이가 되었다. 나는 픽 웃었다.
내가 신조를 접고 도둑질까지 한 건, 이 방법이 경매장을 습격하는 디아볼로를 상대로 가장 효과적이고 피해가 적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내가 착하게 살아도 돈이 부족해질 만큼 능력이 딸리진 않으니까.
〈이 동네에서 오래 신세졌다며? 조금 늦긴 했어도 영주님한테도 새해 선물을 드려야지.〉
자고로 이사를 오면 떡이나 반찬처럼 약소한 선물을 돌리는 게 한국인의 정 아니던가.
원래 연초에는 좀 북적북적해야 하는 법이었다.
***
경매장이 습격당하고 상품이 모조리 도난당한 다음날, 그 소란을 파악한 레나폴리스는 소란에 휩싸였다.
〈도난당한 물건의 보상은 어떻게 할 거요! 우리 일정은 또 어떻게 책임질 거고!〉
〈경매장에서 일하는 평민들은 매년 이맘때에만 근무하는 하청일 뿐입니다! 개최자인 영주가 책임을 져야 해요!〉
〈도난품의 판매가를 책정할 사람도 없잖소! 입찰 시작가로 보상하겠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겠지!〉
구매자도 판매자도 입을 모아서 영주를 규탄했다.
경매를 연 귀족이 현장의 경호를 책임지는 것은 로마니아 경매 구조의 불문율이었다.
현장에 사병을 보내지 않고 경매 총괄자인 평민에게만 자기부담을 시킨 것이 밝혀지자 그 비난은 더 원색적이 되었다.
하지만 부유한 상인부터 일정을 짜서 찾아온 귀족들까지, 모든 권력자들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으면서도 레나폴리스의 영주는 묵묵무답이었다.
거기에 더해, 범인을 축출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그들이 저택에 수십 명의 병사를 계속 남겨놓고 있는 상황은 피해자들의 공분을 샀다.
〈영주님은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쾅!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소년이 거칠게 테이블을 내려쳤다.
하지만 귀족 신분인 그를 상대로도 레나폴리스 영주의 집사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영주님께선 현재 병석에 누워 계십니다. 대리로 영지를 경영 중이신 디아볼로 부백작께서도 한시 바삐 문제 해결에 임하고 있으니, 부디 안심하고 기다려 주십시오.〉
〈안심? 자기 저택만은 철통처럼 지켜놓고 경매품은 전부 도난받은 작자 아닙니까! 어딜 보고 안심하라는 겁니까?!〉
소년은 핏대를 세워가며 항변했지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미네르바는 차분하게 소년을 저지했다.
〈그만하렴. 집사를 추궁한다고 풀릴 일은 아니잖니.〉
〈하지만, 나의 그대여! 이제야 그대의 상처를 고쳐줄 만한 엘릭서를 찾았는데, 그게 눈앞에서 도난당했단 말입니다!〉
미네르바는 쓴웃음을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나의 그대’ 같은 고풍스러운 애정 표현 방식이 소년과 어울리지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그녀는 정략결혼이나 다름없는 이유로 자신과 결혼한 이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이 더 컸다.
무슨 죄로 아직 성년도 못 된 소년이 이제 40줄을 앞둔 그녀의 데릴 사위가 되야 했겠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아름답다며 그녀를 칭찬하는 소년이지만 그럴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는 걸 보면 본심은 아닐 것이다.
당장 이 흉한 상처를 고쳐보겠다고 미네르바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만 봐도 확실했다.
소년이 왜 이 아름다운 여장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매일 고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미네르바는 집사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도록. 나와 남편은 정원을 구경하다가 돌아가겠다.〉
〈안내인을──〉
〈필요 없다.〉
집사는 군말없이 물러갔다. 미네르바는 초조해 하는 남편의 등을 두들겨주며─그녀는 그 어린이를 다루는 듯한 취급에 13살 된 남편이 좌절하는 것도 눈치 못 챘다─, 응접실에서 길을 나섰다.
좌절감을 떨쳐낸 소년은 스무 살은 연상인 아내에게 어른스럽게 보이도록 말을 걸었다.
〈으흠, 크흠. 나의 그대여. 이런 저택의 정원을 볼 가치가 있겠소? 졸부 취향의 품격 없는 장소를 평민 출신의 리터의 안목에 맞춘 정원 아니오.〉
〈차별 발언은 좋지 않아. 디아볼로 경의 직위는 황제 폐하께서 내린 직위잖니.〉
소년이 입을 다무는 것을 한쪽 뿐인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미네르바는 예리하게 저택을 살폈다.
‘……어젯밤 도주한 괴도 일당은 이쪽으로 향했다.’
목격 정보까지 모아서 확인한 결과다. 미네르바는 자기가 고른 부하의 조사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영주 저택 근처에 집을 세울 만큼 간 큰 시민은 없다.
재력이나 권력에 자신이 있을 수록 더 그렇게 된다.
따라서, 그 기묘하리만치 실력이 뛰어난 괴도가 ‘주인님’이라고 부를 만한 상대는 이 영주 저택의 인물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위화감은 있지만 단서가 달리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머리가 가슴께에 오는 자그마한 남편이 따라나온 것은 그녀가 원하던 바가 아니지만, 남편이 열불을 낸 덕분에 영주도 미네르바의 잠행을 의심하진 못할 것이다.
‘별관 쪽과 손님방이 가장 의심스럽지만, 무모한 짓이겠지.’
미네르바는 경계가 더욱 삼엄한 별관과, 손님방에 있다는 상대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쪽의 관찰은 포기했다.
오해를 사기 십상이지만, 미네르바는 이 저택에 손님으로 와 있다는 아르마알스의 일원에게 따로 사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영지에서 그녀를 쫓게 한 것은 영내의 율법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의 상처를 만든 상대라는 걸 알고 분노한 남편이 혈기를 못 이기고 지시를 강압한 감은 있지만.
‘나무를 숨긴다면 숲에 숨기는 게 제일이다. 피해자들이 저택에 사람을 잠입시킬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별관이나 손님방에 장물을 뒀을 리는 없다.’
따라서 의심스러운 것은 사람이 배치되지 않은 곳이다.
이쪽에 특수한 결계나 매직 아이템으로 감춰두었다면, 허를 찔러서 도난품들을 숨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정원을 구경한다는 명목으로 저택 안을 자유롭게 이동했다.
경매품을 도둑질한 것 치고는 이상하게 그녀에 대한 경계심이 낮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 위화감도 실제로 발견해낸 결계 앞에서는 기우에 그쳤다.
‘……역시.’
벽면의 한켠에 은밀하게 숨겨진 공간.
본 적도 없는 방식의 결계로 치밀하게 감춰진 폐창고(廢倉庫)를 발견하고서, 미네르바는 눈을 반개했다.
─슥.
안대를 벗고 의안으로 삽입한 매직 아이템을 기동시켰다. 결계를 뚫고 그 안쪽의 광경이 색칠하지 않은 스케치 화처럼 미네르바의 눈동자에 비쳤다.
‘경매장을 습격한 건 디아볼로의 수하였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 장물들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미네르바는 창고 안에서 도난당한 물품을 확인하면서 혀를 찼다.
습격 자체도 그랬지만 어설픈 면이 엿보이는 작전이다. 그녀처럼 머리 쓰는 능력이 부족한 이들조차 디아볼로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 없었으니까.
그는 당장 범인을 찾아내지 않으면 수십 골드의 배상금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토록 많은 병사로 저택을 지킨다니?
디아볼로에게 수십 골드의 손해를 감내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젯밤의 사건은 그가 벌인 자작극이었다는 뜻이었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서 그 괴도라는 놈들을 팔아넘기고 자신의 책임소재를 얼버무릴 것이다. 피해자들의 분노는 괴도와 그 괴도에게 장물을 사간 가공의 존재에게 향할 테니까.
‘이건 공론화시키는 게 낫겠군. 우리 가문 혼자서 상대하는 건 좋지 않아.’
당장 이 창고의 존재를 공언하기만 해도 피해자들의 압박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별관의 철통 같은 경비도 흐트러지겠지.
저 별관에 무엇을 숨겼는지는 몰라도, 경매를 목적으로 모인 수십 명의 귀족을 정당한 방법으로 진정시킬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음?!〉
우선 후일을 기약하고자 물러나려던 미네르바는 자신을 지켜보는 부엉이를 발견하고 주먹을 쥐었다.
한순간 사역마에게 관찰당하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부엉이에게서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야생생물이다.
─푸드덕!
부엉이는 고개를 비틀다가 날아서 도망갔다.
미네르바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심증과 물증이 이토록 쌓인 이상, 디아볼로를 향한 비난과 항의는 더욱 거세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발견했던 부엉이는 한참을 날아가 어느 남자의 팔뚝에 내려앉았다.
〈혹 쿠르르르! (밥 줘!)〉
〈쿡쿠르 쿡쿠. (그래, 여기.)〉
그── 노르드는 부엉이에게 닭고기를 던져주면서, 멀찍이 떨어진 영주 저택을 노려봤다.
“작전대로 잘 풀렸구만.”
베로니카가 ‘발견되기 쉽도록’ 설치한 룬 결계는 노르드가 바라던대로 디아볼로를 추궁하러 온 귀족에게 발견됐다.
물론 디아볼로 본인이 훔쳐갔다면 저렇게 어설프게 숨겨놓지는 않았겠지. 그게 노르드가 일부러 저 장물들을 직접 훔쳐가야 했던 이유였다.
별관에 장물을 보관하기라도 하면 그가 세운 작전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디아볼로는 설마 자기가 놓친 장물들이 자기 집의 버려진 창고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말이다.
‘기왕이면 내가 출품한 엘릭서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여줘서 심증을 더 늘려놓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디아볼로는 수상할대로 수상하게 굴던 상황이다.
쌓아둔 심증에 저렇게 명확한 물증까지 합쳐지면 혼파망은 피할 수 없다.
만약 그 시기가 늦어진다면 스스로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저 엄정한 영주에게 들킨 이상에는 피해자들이 디아볼로에게 격분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금 이상으로 궁지에 몰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저택의 경비도 낮아지겠지.
노르드가 노려야 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닭고기를 물고 날아가는 부엉이를 떠나보내고, 인파에 섞여 헤르마이온 길드장의 저택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