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55화 (355/1,009)

〈……저게 뭐야?〉

나랑 같은 것을 본 여도적이 신음하며 물었다.

하지만 내가 지식이 일천한 키타이 무림인이 아니라도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늘에 나무가 자라나는 현상이 뭐가 있지? 무한 츠쿠요미?

아니면 어디 좆프 새끼들이 몰래 세계수 씨앗을 심고 헤빌의 촉진제라도 꽂았나?

〈……뭔진 몰라도 느긋하게 굴 일은 아닌 것 같소.〉

나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내뱉고 오딘의 눈을 켰는데, 하늘의 나무는 식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생물도 마법도 아니었다. 저건 화속성 마법이 남긴 그을음처럼 어떠한 마법의 흔적에 불과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여기서 멍청하게 쳐다봐도 누가 답을 알려주러 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그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뭔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내 추측이 잘못됐었던 것이다.

저건 나무가 아니었다. ‘균열’이었다.

─쿠웅!!

차원의 틈새에서부터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어딘가 내가 쉐이드를 벌인 날의 꿈에서 깨어날 때와 비슷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EUuuggeeeq───!!!”

그 생물은 1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추락한 것이었는데도 죽지 않았다. 몸부림을 치면서 덩치에 안 어울리게 방정맞게 점프해대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여도적이 있는 걸 알면서도 컨셉도 버리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 씨발!!〉

〈지, 징그러워!! 존나 징그러워!! 진짜 개씨발 소리가 절로 나오네!!〉

인싸 같은 호응을 하며 여도적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것에 대답도 못 해 주고, 트램펄린 위에서 노는 유치원생처럼 지랄발광을 하는 거인을 보며 속으로 씨발 소리를 수십 번 넘게 반복했다.

생김새는 좀 다르지만 내가 아는 생물이었다.

세로로 쭉 찢어진 좆 같은 입!

보고만 있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지고의 못생김!

‘바이콘의 정원섬에서 봤던 그 서리거인이잖아!’

내가 있는 마나 없는 마나를 다 털고 외부의 마나까지 빌려와서 날린 필살기로 간신히 해치웠던 괴물이, 레나폴리스에 존나게 뜬금없이 투하된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요툰이라고 추측했었는데, 중요한 건 저 놈의 종족분류가 아니다.

수의학과 때려친지 오래이기도 했고, 저딴 생물에 목줄을 채우고 동물병원에 데려오는 새끼가 나오는 날엔 전국의 동물병원이 폐업을 할 테니까.

진짜 중요한 건 저 새끼 1마리만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쿵! 투쿠쿵! 쿠쾅!

하늘의 균열에서 쏟아지는 요툰은 한 손으로 셀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나는 들려오는 추락음의 숫자에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좆 됐다!’

예전에 잡았던 놈이 곰벌레처럼 가사상태에서 있다가 부활했는데도 그렇게 강했었다.

일단 내 눈 앞에 있는 놈은 그 새끼보단 덩치가 작았는데, 그래도 이 혈통빨 이세계에서 종족빨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게 최소 10마리 이상!

게다가 ‘균열’이 계속 열려있으니만큼 언제 더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Obatettete!!!”

요툰은 추락하며 얻은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사 주지 않는 애미에게 투정하듯 바닥에서 몸을 비틀어댔다.

나는 누누이 고블린들을 이세계 그린 잼민이라고 부른 바 있지만, 적어도 그 새끼들은 촉법 살인마에 걸맞게 덩치 작고 뒈지기 쉬운 좆밥들이었다.

잼민이들은 법에 보호받기에 막기 힘든 존재이다.

그래서 법치국가를 세우지 못한 이세계 그린 잼민이들이 좆밥인 것이다.

만약 고블린들이 촉법의 보호를 받았다면 아딱브딱 모험가들이 노인네들 폐지 줍듯 그들을 죽이고 시체를 루팅해 가지 못했을 터!

하지만 요툰은 그렇지 않았다. 저 씹새들도 법치를 공고히 하지는 못했지만, 저들은 걍 힘이 존나 쎄서 막을 수가 없는 부류의 잼민이였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세상에 애1미 시팔, 5미터 짜리 헬창 잼민이라니?

그딴 건 악몽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었다. 당장 참피도 덩치가 인간의 3배였다면 후타바 제국을 세웠을 것이다!

이문화 교류도 이차원 레벨이 되면 지옥에 지나지 않는다!

“Obatete Tututu!!!”

〈으흐아아악?!〉

─우당탕탕!!

우리 앞에 추락한 요툰은 몸을 비틀다가 근처의 과일가게에 돌격했다.

장사하던 아재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고, 다행히 요툰은 그를 쫓아가지 않았다.

나랑 여도적은 그 자이언트 참피 새끼의 훤히 까놓은 궁뎅이에 눈갱을 당하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흐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우리. 하지만 내 강화된 눈깔은 그 찰나에 놈의 피부를 관찰해 버렸다.

‘쓰벌, 저 새끼 피부가 쩍쩍 갈라져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태양빛에 약한 건가?

땅에 추락하자마자 과일 가게의 그늘로 도망치는 걸 보면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고보면 예전에 싸웠던 요툰도 햇빛이 비추는 곳으로 나오는 걸 꺼려 했었지.’

상상도 못한 눈갱이었지만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내 시력에 데미지를 입을 가치는 있었다. 아무튼 간에 적의 약점을 알아낸 것이니까.

그래도 낙관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늘에 숨어갖고 존버할지 몰라도, 밤이 되는 순간 아침 반찬으로 마늘쫑이 나온 뱀파이어처럼 개빡돌아서 날뛸 게 뻔하지 않은가!

나랑 같이 눈갱을 당한 여도적은 개똥을 밟은 것처럼 좆 같아 하며 소리쳤다.

〈이봐, 예수게이! 미안한데 나, 마님한테 가 볼게!〉

〈알았소! 각자 지킬 사람이 있으니 이걸로 해산하지!〉

〈그래! 나랑 안 어울리는 말이긴 한데, 무운을 빈다!〉

짧게 의견 교류를 마치고 흩어지는 우리.

이게 만약 디아볼로 새끼의 짓이라면, 프리모르한테 느그 가문의 비밀병기랑 이 사태가 연관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게 현명한 대책일 것이었다.

하지만 종갓집 김장 방법도 며늘아기한테는 알려주기 싫은 게 사람의 심보 아닌가!

프리모르가 결혼한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 가문 사람들이 수백 년 전의 비밀을 계승해 왔고, 그 비밀을 그녀에게 알려줬을 가능성은 대충 점쳐봐도 많이 희박했다.

─츠파파파팟!!

나는 괴도질을 하면서 깨우친 도주 스킬로 엄청난 속도를 발휘하며 맹대쉬를 했다.

일단 근처 골목에서 옷의 변형을 해제하고 가면을 숨겼다.

정체를 들킬 걱정을 없애고, 뭉게뭉게-체까지 쓰면서 한 마리의 제트기처럼 도시를 가로지르기 시작하는 나.

─투쿵!

“UboGeeeeeeekkk!!”

달리다가 보니까 도망칠 곳도 못 찾고 날뛰어대는 또다른 요툰도 있었다.

인명피해는 걱정됐지만 잠깐 교전해서 해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날렵하게 따돌려냈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좆 같이 생긴 몬스터다!!〉

〈내 집 무너진다아아악!! 대출 존나 남았는데에에엑!!〉

─후다다다닥!

시민들도 요툰의 무차별 파괴에 휘말리지 않고자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무너지는 작은 목조 건물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 잠깐 사이에 폐허가 되어가는 길거리 뒤쪽으로 영주의 저택이 보였다.

하늘에 뻗은 나무의 기둥은 거기에서부터 자라나 있었다.

‘이게 디아볼로가 벌인 짓이라고?’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분명히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 건 고전적인 수습 방법이다. 한때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도 정치계에서 이슈가 터지면 연예계가 총대를 매고 언론 플레이를 벌이는 게 국룰이었으니.

근데 그건 자기가 책임자가 아닐 때의 얘기다.

영주의 권력은 영지에서 나온다.

영지의 운영은 세금으로 하는 것이고 말이다.

경매 사건으로 손해가 막심할 게 뻔한데, 그걸 막겠다고 지가 실세로 군림하는 영지를 족친다? 그건 로지컬한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을 이기는 건 더 많은 돈이랑 신념 뿐이지.’

나는 짧은 사고 끝에 확신했다.

이유가 뭐가 됐든 이것은 그 대가리에 빨간물 든 씨팔럼이 처음부터 계획하던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개똥철학으로 이딴 지랄을 떠는 놈이 멀쩡한 새끼일 리 없지.’

이건 추리라기보단 경험칙(經驗則)이다.

이 대범한 광기는 나로서도 많이 익숙했다. 나는 혀를 찼다.

‘〈편찬대대〉, 혹은 〈임모르탈리스〉.’

그 둘 중 하나라면 아마 〈임모르탈리스〉겠지.

그리고 코뤤투스의 존재를 생각하면, 이 새끼들이 절대로 지들끼리 협력 안 하는 놈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유니콘 흑마법사 새끼도 예르나랑 편 먹고 망령도시에 살던 동료를 통수 친 걸로 추측되는 상황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행보였다.

내 억측이 들어맞는다면 그냥 요툰을 떨구는 걸로 끝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아잇 씨팔!〉

그렇게 헤르마이온 길드장의 저택에 돌아온 나는 오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저택에도 요툰 한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 씹새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나는 눈에서 불꽃을 뿜으며 질주했다. 우리 집은 아니지만 우리 아내님들이 묵는 집이었다!

게다가 가까이 가 보니까 그 아내님들께서 친히 레이드를 뛰고 계시는 게 아닌가!

“Ssk──!!”

“꺄아아악!! 언니들!! 저희 링링이 팔 박살나요──!!”

“쫌만 더 버텨 봐!! 씨발, 더럽게 가죽 더럽게 질기네!!”

라리루라가 골무의 효과로 출력이 높아진 링링이 4.5호로 요툰을 억눌렀다.

다나는 뒤에서 내가 준 건틀릿의 마법으로 그 씹새에게 디버프를 걸고 있는 듯 했다. 그 놈 발치에 정원의 풀이 자라나서 엉킨데다가 목에선 붉은 뱀이 꿈틀거렸다.

〈뒤져라, 안면 테러리스트!!〉

나는 팔찌를 창으로 바꿔서 투창했다. 요툰은 머리를 크게 숙여서 피해버렸다.

감나빗!

〈아 애1미 쫌!!〉

누가 얼굴빨 떼어 놓고 실력으로 출세한 종족 아니랄까봐 존나 잘 싸우네!!

그래도 저 새낀 지금 발이 다나의 마법으로 봉쇄된 상태! 근접해서 때리는 프랑의 공격까지 피하진 못했다.

“Oageeekk!!”

─퍽!! 퍼걱!!

다나의 디버프는 방어력 다운 효과가 있는 건지, 프랑의 흙망치 타격이 크리티컬로 들어가는 듯 했다.

그걸 발견한 나는 뒤에서 마법을 영창 중인 베로니카에게 고함쳤다.

“베로니카아아아악!! ᛊ(Sowulo)!!”

【──태양은 구천의 빛이니(ᛋ Sól er landa ljóme), 나는 신께 배례드릴지어다(lúti ek helgum dóme)!!】

우리 시종님은 내 말에 하던 주문도 취소하고 새로 마법을 영창했다. 타오르는 가지 끝에 붙은 불꽃이 화약을 먹인 횃불처럼 불똥을 튀겨댔다.

【번뜩이는 빛살(Skínandi Röðull)!!】

구우우우─!

ᛊ(Sowulo)의 룬을 강화한 마법이 자연광의 햇살을 응축해 미러볼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환상의 광선쇼! 요툰은 몸을 비틀어대며 고통에 자지러졌다.

“GbvvvvvvvvvvvvvvvV!!!!”

“에잇──☆!!”

“얍!!”

깜찍한 라리루라와 프랑의 기합은 요툰의 몸통을 앞뒤에서 동시에 후려쳐댔고, 더블 래리어트에 쳐맞은 요툰은 피를 뿜으면서 절명했다.

“해, 해치웠다…! 해치웠어요, 언니들!”

“하아, 그러게. 씨이발…… 뒤지게 개빡세…….”

라리루라는 빠개질 뻔 했던 링링이를 후퇴시키며 기진맥진해 했다. 디버프로 사실상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다나도 힘이 다 빠진 것처럼 주저앉았다.

나는 거기에 달려가려다가, 피를 흘리며 집사에게 부축을 받는 셀레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셀레나 양!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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