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나 양! 괜찮으십니까?!〉
〈……예에. 조금 다쳤을 뿐이에요.〉
입에서 피를 울컥거리며 자기 배를 누르는 셀레나. 옆에서 그녀의 상처를 압박하던 디스뮤크가 급하게 외쳤다.
〈다나 베르베이아 박사님! 부, 부탁드립니다! 치료를!〉
나는 얼른 다나를 부축해서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 그녀의 마나를 채워주었다.
파아앗─!
우리 눈나는 셀레나의 외상을 치료해 주고 아랫배를 만져보다가 말했다.
〈내장이 조금 상했네요. 들것을 가져와서 침대에 뉘이고 쉬게 해 드리세요.〉
〈도시가, 이 사단이 났는데…… 그럴 수는……〉
〈얌전히 계시지 않으면 후유증이 올 겁니다. 후사는 보셔야죠.〉
셀레나는 멈칫했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힘이 빠진 듯 말을 멈췄다.
〈들것을 가져와! 빨리!〉
디스뮤크는 다른 시종들을 시켜서 들것을 가져오게 했다. 베로니카는 그것을 훑어보며 내게로 왔다.
〈……나의 그대여. 오면서 도시의 정황은 보았느냐?〉
〈사방에 바글바글해. 다행히 저번에 우리랑 싸웠던 수준은 없는 것 같지만, 1대 1로 이기려면 미스릴 클래스라도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할 씹새들이야.〉
아니면 다나처럼 상성에서 유리하든가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힘의 차이를 생각하면, 바이콘의 정원섬에서 싸웠던 놈은 전사 계층 같은 거겠지.’
얼음의 마나로 방패나 검 같은 걸 만들 정도였으니까 아마 맞을 것이다. 그만한 놈은 보기 힘들다고 생각해도 된다.
언젠가는 그 놈보다 강한 놈이 나올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건 차원 간의 연결이나 소환조차 아니구나. 방임이다. 이계에 균열을 내고서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군.〉
베로니카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영주 저택을 바라봤다. 눈깔 치트를 빼면 공간 마법은 나보다 그녀가 적임이었다.
〈이거, 막을 수 있겠어?〉
〈……불가능하겠군. 심히 무책임하지만 수준만큼은 숫제 대마법(大魔法)이다. 술자를 죽여도 풀릴지조차 의문이야.〉
시발. 베로니카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로 개좆 된 것 같은데.
‘……로마니아에서 빠져나가야 하나?’
우리 몸만 건사하면 로마니아의 국군이나 집행관들이 잔뜩 몰려와서 어떻게든 하든가 하겠지.
설마 이게 세계 멸망의 단초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존나 티르시만 두고 갈 수도 없는데. 내가 초조한 기분에 발치가 젖어드는 듯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자, 들것에 실려가던 셀레나가 이쪽에 손짓을 했다.
─슥슥.
상처 때문인지 말하는 것도 힘들어 하던 그녀는 내 손목에 피로 글씨를 썼다.
─Ianus.
나는 그 문자를 읽고 고개를 휙 쳐들었다.
〈야누스 교단!〉
야누스는 문과 수호의 신이다. 그리고 문이라는 건 복잡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심벌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출근할 때 보는 회사 정문이랑 퇴근길에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보이는 정문이 어디 같던가?
문이라는 건 ‘들어가는 것’과 ‘나가는 것’을 동시에 상징하면서, 그 개폐(開閉)를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강력한 수호자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교문에서 죽치고 있는 체육 교사나 뭐 그런 느낌이다. 대가리 2개 달린 체육 교사.
이건 좀 천벌 받을 생각인가.
〈야누스 교단의 사제라면 저 균열을 닫는 것도 가능해!〉
난잡한 균열이라도 오가는 생물이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문’이다.
그리고 문이라는 건 열리고 닫히니까 문인 것이다. 꼴에 문 담당 일찐이라는 새끼들이 그것도 못하면 안 되지.
〈야누스 교단? 하지만 걔네들이 저걸 다 닫으려면 존나 1~2명으로는 안 될 텐데.〉
다나는 초를 치기 싫다는 듯 인상을 쓰면서도 그렇게 지적했다.
틀린 말까진 아니다. 레나폴리스에 커다란 야누스 교단은 없는 듯 했으니까.
〈부족하면 데려와야지. 이렇게 된 이상 루크레겐스의 그 더럽게 큰 교단에 출장 요청을──〉
〈──저, 저기!〉
그때 멀찍이 있던 캐서린이 다가와서 외쳤다. 아니, 가만히 보니까 캐서린이 아니라 언니인 오드리다. 동생은 수면이 부족해서 오늘 아침 교대했던 것이다.
〈야누스 교단의 징벌집행관이 시내에 있어…… 요!〉
〈뭐? 진짜?〉
그 희여멀건 놈이?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얗던 시냐티오를 떠올리면서 되묻자, 오드리는 뭘 착각했는지 작게 속삭였다.
〈혹시 저희 자매를 쫓아온 건 아닐까 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거든… 요! 아직 레나폴리스에 있는 건 확실해… 요!〉
〈그렇군. 고맙다.〉
글고 억지로 요 자 안 붙여도 돼. 나는 의외의 낭보에 좀 기대감을 품었다.
그래봬도 말은 통하는 듯 보였고, 억측이긴 하지만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는 탑 5에 들어갈 실력자일 것이다. 요툰 새끼들을 처리하든 균열을 닫든 밥값은 차고도 넘게 해 주겠지.
〈실례하겠다!!〉
당장이라도 그 놈을 찾으려고 한 나였지만, 그 계획은 잠깐 접어둬야 했다. 수많은 인파가 갑자기 저택의 문을 박차고서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허허. 사태가 시급을 요하는 일이라 그른가. 무슨 놈의 일 처리 속도가 가게 마감 10분 전 알바처럼 번개 같구려.
〈이, 이게 무슨 짓이십니까! 주인님의 저택의 문을──〉
〈긴급사태다. 이해해라.〉
단적인 대답에 기함하던 디스뮤크의 입에 닥쳐졌다. 그건 아마 수십 명씩 몰려온 사람들 중에 귀족처럼 기깔난 옷을 입은 작자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귀족과 그 호위들이겠지. 디아볼로한테 경매품 도난 사건을 따지러 가려던 사람들이 아닐까.
어떻게 아냐고? 선두가 미네르바 아줌마니까요 씨부랄.
〈상황 설명은 필요 없겠지. 영주 저택의 용태를 보면 이 사태의 주 원인은 저들이다. 해서, 귀족을 제외한 레나폴리스의 유력자들 중에서는 헤르마이온 길드장이 제일이라고 듣고 왔다.〉
안대 의수 의족의 트리플 PC주의 풀코스를 낀 루크레겐스 영주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좌중을 둘러봤다.
나랑 오드리는 괜히 찔려서 움찔거렸다. 이럴 때가 아니란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좀도둑 심보였다.
〈길드의 대표자는 어디 있나?〉
우리를 쫓을 때보다 10배는 정색을 빨고 말하는 그녀였다.
이 아줌마를 때리면 황제라고 해도 장애인을 폭행하는 인간 말종이라고 비난받겠지만, 촉법 소년(물리)인 요툰들에게는 그 인륜에 기반한 논리조차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귀족과 그 호위들은 다양각색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지만 그중에 긍정적으로 웃는 와꾸는 하나도 없었다.
〈기, 길드장 님께서는 현재 상회에 계실 겁니다.〉
〈……알았다. 대리인은? 저택을 맡은 인물이 있을 텐데.〉
〈아가씨께서는…… 방금 침대로 실려가셨습니다.〉
〈쓰러졌다는 뜻인가? 무슨 일이──〉
집사랑 대화하던 미네르바는 많이 초조했던 건지, 그렇게 질문하려다가 간신히 쳐맞고 웰던으로 익어서 튀김옷 벗긴 돈까스처럼 돼 있는 요툰의 시체를 발견한 듯 했다.
〈……호오?〉
살짝 감탄한 그녀는 딱 봐도 좌중에서 옷에 피 좀 묻히며 살아왔을 것처럼 생겨먹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를 정확하게 찾아내서 하문했다.
〈긴 말 않겠다. 협력하겠나? 아니면 겁쟁이처럼 꽁무니를 말고 도망치겠나?〉
거 질문 방법이 증말 멋지시네요. 영지에 계실 부하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그 분들을 향한 동정심이 도저히 멈추지를 않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유리한 싸움은 다굴이라는 게 세상의 진리인 법.
여기서 튄다는 것도 말이 안 될 일이었다. 내가 게임을 좀 좆 같이 했다고 판을 뒤집어 엎고 칼을 뽑는 새끼인데 그냥 갔다가 뒷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돕게 해 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듣기 좋은 대답이군. 하지만 포상은 있을 예정이다. 내가 의무를 다하고도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농담인가? 웃으면 되나? WA! 내 배꼽이 어디 갔지!
아쉽게도 미네르바는 꽤 미녀였기 때문에 정색만 해도 남의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우먼의 재능을 갖고 있지는 못했고, 그래서 나도 저 살벌한 농담에 웃지 못했다.
〈전투를 대비하고 모이도록. 이곳에서 잠시 정비 후 곧장 출전한다.〉
짧고 굵은 대화를 나누고 미네르바는 또 뭔가를 협의하러 가버렸고, 나는 적당히 귀족으로 안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여러분들도 전원 참전합니까?〉
〈뭐요? 아, 아니. 어쩌다 보니까 온 거지, 굳이 싸우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럼 그렇지.
경매품을 버리더라도 목숨이 우선이고, 일이 잘 풀리면 나중에 수염 쓰다듬으면서 달려와서는 ‘엣헴! 그래서 도난당한 내 경매품은 오데 잇음?’ 할 것이다. 이 씨팔럼들.
그래도 귀족 그 자체의 행태라서 딱히 실망감은 안 든다. 부위결손 아줌마 듀오가 별종인 거지.
‘됐다. 튀면서 요툰들 어그로나 좀 끌어봐라, 븅딱들아.’
나는 그들의 분전을 기도했다.
저주 같은 건 아니다. 다치지는 말고 어그로 많이 끌면서 활약이나 좀 하시라고 기도한 건데, 이건 오히려 축복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 걸로 하자.
아무튼 그렇게 기도하면서 저택을 노려봤다.
베로니카는 이것을 ‘이계를 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요툰인지 서리 거인인지가 쏟아지는, 이 극한의 혼파망조차도 디아볼로에게는 계획의 일부라는 뜻!
‘……티르시의 움직임이 너무 없는 것도 신경쓰여.’
사정을 파악 못 했을 때는 납치범과 결혼하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납치범에, 신분 상으론 자작인 명예 귀족에, 뒷배도 존나게 구려 보이는 디아볼로다.
티르시가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더러 잘생겼다고 농담을 하던 걸 생각하면 심미관이나 개그 센스에는 심각한 하자가 있겠지만 말이다.
농담기를 쏙 빼놓고 말해도,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이라면 진작에 뭐라도 해야 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계산적으로 굴곤 했지만, 최소한 남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거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사건을 도울 정도라면 자결하고도 남을지 몰랐다.
그녀의 신변에도 뭔가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아내들은 당연한 일을 하는 것처럼 따라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즈기요.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것임?”
“흥. 그대가 지금 느끼고 있을 걱정이, 그대가 혼자 없어질 때마다 우리가 매일 느낀 기분이다.”
말한 건 베로니카였지만 다른 세 사람도 공감하는 눈치다.
죄인 노르드는 사약을 들 수도 없어서 걍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여기라고 안전할 거란 보장이 어딨어.’
별 것 없다. 존나 내가 디아볼로 새끼도 곱게 갈아버리고 아내들도 지키고 티르시도 구해내면 되는 것이다.
거 뒤지게 간단하겠구만 뭐,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