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영주님! 영주님!!〉
내가 그렇게 아내들의 참전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병사가 가쁜 숨을 내쉬며 미네르바에게 달려온 것은 말이다.
〈타지에선 영주라고 부르지 말랬을 텐데……. 후우, 그래. 무슨 일이지?〉
〈거, 거인이! 동문 거리에서 그 흉측한 거인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건물에 들어간 놈들을 쫓아가서 공격한 자들 때문에 흥분한 듯 싶습니다!〉
미네르바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입을 달싹거렸는데, 나는 그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쌍욕이라는 것에 오드리의 괴도 아이템을 전부 배팅할 수 있었다.
‘씨팔.’
왜냐하면 나도 똑같이 속으로 쌍욕을 했거든.
‘대체 어떤 병신 새끼가 빡대가리 짓을 한 거야?’
─쯧. 나는 초조하게 혀를 찼다.
이세계 요툰들에게 햇빛은 극혐하는 요소이지, 맹독 같은 건 아니었다. 나랑 싸웠던 놈도 위험해 지니까 햇빛 아래로 기어나와서 맞짱을 뜨지 않았던가.
상성 빨에서 추가 데미지를 받기는 하는 듯 했는데, 유니크 지팡이를 든 베로니카의 마법으로도 원킬은 못 냈었다.
독은 독인데 치사급 맹독 수준은 못 되는 것이었다.
요툰에게 있어서 양지 바른 곳이란, 인간으로 치면 대충 똥밭 정도의 포지션일 듯 했다. 상상만 해도 좆 같지만 죽는 것보단 나은, 딱 그런 곳.
그런 비유라면 알기 쉬웠다. 자기 세상에서 잘 살던 놈이 갑자기 이세계에 소환돼 버렸는데, 거기가 존나 똥밭이다?
씨발 개지랄 염병을 떨면서 피하는 게 당연하다. 나였어도 그렇게 한다. 이세계에 소환된 경험이 있는 내가 보증함.
그런데 어떤 공명심에 앞선 개병신 새끼가 그렇게 존버를 타는 놈들을 건드렸다가 탈이 나버린 모양이었다.
─웅성웅성.
더 지랄맞은 건 그 소식에 귀족들은 다짜고짜 튈 생각부터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여기 병사들이 그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좆 같아지는 거인들 궁둥이를 창으로 찔렀을 리는 없으니까, 결국 이 일을 벌인 것도 귀족들일 것이었다.
한데 싸잡아서 취급하는 건 미안하지만, 저 자들도 그들과 같은 귀족 아닌가.
지들이 푸짐하게 똥을 싸 놓고 튀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디스뮤크 씨. 잠시 귀 좀 빌려주십쇼.〉
나는 셀레나의 대리로 남아 있던 그를 불러서 텔레파시를 쏘았다. 일방통행 텔레파시인 ᚨ(Ansuz)의 룬이다.
닷지각만 노리던 귀족들을 눈으로 경멸하던 디스뮤크는 내 제안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셀레나한테 가는 그를 배웅한 나는 바닥에 엎어진 요툰의 시체를 뒤적거렸다.
가죽 파밍 하냐고? 설마.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딨어.
그냥 이 새끼 부랄친구들이랑 또 싸울 걸 생각하면 약점을 조사해 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번엔 설마 이렇게 다시 싸우게 될 거라고는─특히 수십 마리씩 우르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촤악─!!
대충 내장이나 가죽을 뒤적거리던 나는 팔찌를 창으로 바꾸어서 그 놈의 내장을 베어봤다.
그러자 좆도 관심 없는 전투 준비에 부하들과 어떻게 집에 갈지만 상의하던 귀족 1명이 시비를 털었다.
〈하! 시끄럽기 짝이 없군! 남의 피로 끼니를 떼우는 천민 놈은 정숙의 미덕조차 모르는 모양이야!〉
밉살맞게 생긴 귀족은 뜬금없이 나한테 꼽을 주며 당당히 걸어왔다. 뭐 나를 줘패기라도 하려는 건가?
〈미네르바 장군이 직접 전두지휘를 하고 계시거늘, 시키지 않은 일도 도와드리진 못할 망정 방해를── 허어억?!〉
그는 존나 평생 남들한테 좆 같은 표정만 지어보이며 만든 듯 패 주고 싶은 관상의 소유자였는데, 고기 써는 소리에 인상을 쓰다가 내 창날에 서린 야수회귀의 마나를 보고서 기함했다.
다른 귀족들도 그의 놀람에 공감하듯 외쳤다.
〈오, 오러!〉
이야, 이게 귀족들도 속네. 나는 남몰래 픽 웃고서 창날의 피를 털었다.
〈실례했습니다. 저번에 잡은 놈보다 약해서, 개체차를 파악하고자 잠시 시험을 해 봤습니다.〉
〈저, 저번에 잡은 놈?〉
〈이 가죽 갑옷이 이놈의 동족으로 만든 겁니다.〉
내 대답에 뒤에 있던 귀족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철이 좆밥 재료인 이세계에서 고급 갑옷의 재료는 강력한 몬스터였고, 요툰의 힘이나 딴딴함을 봤다면 이 갑옷의 방어력도 알 것이었다.
〈……사냥할 때는 힘의 차이를 구분 못 했나?〉
미네르바가 나름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시비를 걸러 왔던 귀족은 이때다 하고 도망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외출했다가 방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이 녀석은 제 동료들이 잡은 녀석이고 말입니다.〉
〈……오러를 다루는 자를 빼놓고 저 괴물을 해치웠다고?〉
〈말은 됩니다. 모험가는 급이 맞는 종자들끼리 팀을 짜는 법이니…….〉
그러자 내가 바라던대로 귀족들 사이에서 내 정체에 대한 억측이 퍼졌다.
오러는 미스릴 클래스 이상의 전유물이다.
얼스터 인처럼 존나 사이어인급 전투종족이라면 몰라도, 보통 오러를 쓴다는 건 싸움에서 일대 종사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낯선 놈이 그런 걸 써대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
‘내가 쓰는 건 야매 오러지만.’
아무튼 그렇게 ‘헤르마이온 길드장이 고용한 비장의 카드’ 같은 느낌의 억측이 퍼져갈 무렵이었다.
─메다닥! 디스뮤크가 서류를 1장 들고 돌아왔다.
〈노르드 님, 아가씨의 전언입니다! 부디 저희 길드장님의 대리로써 사태의 수습을 맡아 주십시오!〉
〈……제가 말입니까?〉
나는 놀라 하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저 역할을 달라고 부탁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나저나 빠르군. 셀레나도 급한 상황인 건 아는 건가.’
하긴, 당장 우리 말고 믿을 사람이 없긴 하지.
일단 디스뮤크를 향해서 몸을 돌렸다. 귀족들이 다같이 눈깔을 모아서 내 뒤통수에다가 롤링 발칸을 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상대의 힘을 감정 하는 짐승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꿋꿋하게 등으로 받아내며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같은 무뢰배에게 신변을 맡겨도.〉
〈무슨 말씀을! 이계에서 죽을 뻔 했던 아가씨를 이 세상까지 데리고 돌아와주셨던 노르드 님 아니십니까! 길드장 님도 분명 믿고 맡기실 겁니다. 적재적소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귀신 같이 내 생각을 알아채고 노르드의 이름값을 올려준 디스뮤크.
조금 과장스럽긴 했지만, 아주 좋다. 여윽시 부잣집 집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만. 감사 또 감사다.
나는 씨익 웃었다. 원래 기만이나 자랑질이란 아닌 척, 잘 모르는 척 ‘이거 좋은 거임? 대단한 거임?’ 하며 뽐내는 것이 국룰 아니던가!
〈흐으음…….〉
〈이계에서 생환을? 과연, 오러를 다루는 전사라면…….〉
귀족들의 눈빛이 ‘좆병신 평민쉑’에서 실력과 실적을 겸비한 전사를 보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폼생폼사 귀족들을 상대로 하려면 어느 정도의 ‘격’이 필요한 법이었다. 나는 지금 그걸 실력과 인맥 빨로 커버하려는 것이었고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에 인맥을 챙겨둬야 한다니까.’
근데 내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접촉한 사람들은 죄다 내 인생에 좆도 도움이 안 되는데, 잠깐 만나본 사람들한텐 조력을 받는 건 왜일까.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노르드. 그래, 노르드라.〉
그때 미네르바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억이 나는군. 게르마니아식 이름을 가진 키타이 인이 브리타니아에서 임모르탈리스 소속의 흑마법사를 해치웠다고 했던가. 상당히 특이한 뉴스라서 기억하고 있지.〉
〈이, 임모르탈리스 말입니까?〉
〈그 흑마법사 집단을?〉
천하의 악명이 자자한 씹새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들도 아는가 보다. 하나 같이 판에 박힌 반응이라 좀 웃겼다.
‘아니 근데 아줌마는 그걸 어케 알아요?’
나는 잠깐 당혹스러워졌지만 금방 마음을 추스렀다.
그때의 사건은 확실히 좆밥 아딱이가 끼기엔 레벨이 높은 대형 레이드 이벤트였으며, 그때 이후 계절이 바뀔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기도 했다.
바다 건너의 로마니아까지 그 소식이 전해지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임모르탈리스〉, 브리타니아에서 음모를 꾸리다 척살!
신문 헤드라인으로 딱 좋군. 이걸 냅두면 기레기가 아니지.
나는 몰래 입에 침을 바르고 말했다.
〈예. 그런 의미에서, 주의해 주십시오. 제 짐작이 맞다면 이번 일의 흑막은 제가 해치웠던 작자와 동일한, 임모르탈리스의 흑마법사일지도 모릅니다.〉
〈뭐라고?!〉
〈네 이놈! 그 말, 책임질 수는 있는 게냐!〉
내가 책임을 왜 져, 씨발아. 나는 속으로는 병신들에게 욕을 존나게 쏘아붙여줬지만 겉으로는 친절하게 웃었다.
─쥬르륵.
물론 웃는 얼굴의 뒤에는 식은땀이 한 바가지 흘렀다.
저 새끼들은 누가 봐도 병신이지만 신분 사회에선 계급이 깡패였다. 저들한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당장 내가 하렘을 차리게 된 계기도 귀족들의 압박 때문이었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귀족의 그림자는 내 인생에 커다란 암운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어디까지나 제 짐작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걸로 문제가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들──〉
경매품을 훔친 사실을 숨기고자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하고 말하려다가 나는 허겁지겁 입을 닥쳤다.
그건 모험가 겸 고고학자인 노르드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알아낼 계기도, 방법도 없는 극비 사항이니까.
‘씨발. 입조심 좀 하자, 강북호야.’
나는 스스로를 타박했다.
내 머리통이 남들보다 조금 나은 편인 건 맞지만, 동시에 처리 가능한 일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말실수를 하지 않을 순 없지 않겠는가.
〈──사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들, 하늘에서 기괴한 괴물들을 쏟아지게 하는 걸로 만족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귀족들은 공감하는 건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미네르바가 대표로 말했다.
〈네 말이 백 번 옳군. 헌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그녀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전투음에 귀를 기울이듯 눈을 반개했다.
〈나의 남편이 우리 영지의 정예병을 데리고 병영에 갔다. 레나폴리스의 병사들로 시민을 피난시키고 전황을 조율하고 있겠지만, 이게 그냥 잡담일 뿐이라면 상당한 시간 낭비야.〉
남편이라. 저 사람이 생긴 것처럼 젊진 않겠고, 대충 뭐 4~50대 정도 될라나?
그만큼 닳고 닳은 프로-귀족이면 남의 영지 병사들도 따를 만 하겠지. 루크레겐스면 이웃 영지이기도 하고 말이다.
〈잡담이 아닙니다. 이것이 전조나 준비에 불과하다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전투는 자칫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초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장 큰 본론을 꺼냈다.
내 말에 대부분의 귀족은 남일이니까 내 알 바가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부 눈치 빠른 귀족들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미네르바는 눈치가 빠른 쪽이었다.
〈그렇군. 예를 들어서 저 거인이 끝없이 나오기라도 하면 인근 영지들은 모조리 쑥대밭이 되겠어.〉
태평하던 몇 명의 병신들은 미네르바의 말을 듣고서야 이 사태가 자기 일이란 걸 깨달은 듯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지만 아직 70%의 귀족들은 내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딴청을 피워댔다.
‘……아 씨팔, 저 빡대갈통 새끼들은 아직도 이게 뭔 소린지 눈치 못 챘나?’
꼴에 귀족이면서 말귀 더럽게 어둡네.
일반인이면 못 알아들어도 이해하는데, 귀족들은 막 말의 진의를 파악하는 능력 같은 게 중요한 것 아녔어? 찍힐지도 모르는데 그냥 까놓고 뭔 뜻인지 말해버려야 하나?
나는 그 선택지를 두고 존나게 고민했는데, 때마침 귀족 중 한 사람이 주댕이를 벌렸다.
〈여러분. 저희 모두 힘을 합쳐서 싸워야 합니다.〉
〈미안하오. 우리 아들이 아직 어려서, 만에 하나라도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영지가 위험해질 거요.〉
누가 봐도 60대 이상인 노친네가 개소리를 읊었다.
액면가만 따져도 저 새끼 아들이 이미 아들딸을 싸질렀을 나이였는데, 이 자리에서 튀어보겠다고 별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을 연 귀족은 아마 주변 영지 사람이었는지, 나 혼자서 죽을 수 없다는 듯 궁극의 자폭기를 갈겨버렸다.
〈이계의 군세가 황제 폐하의 땅을 침범한 것입니다. 조국이 위기에 빠지기 전에 앞장 서서 맞서 싸우는 것이 저희들 귀족의 의무 아닙니까?〉
황제한테 충성심 의심받기 VS 이계의 몬스터랑 싸우기!
크, 황금 밸런스 오졌네 씨발.
물론 그건 내가 남일이어서 감탄스러운 거였고, 귀족들은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기라도 할 듯이 펄쩍 뛰었다.
〈아, 아니, 그게 말이 그렇게 되는 거요?!〉
〈군세라니! 군세라니! 말을 신중하게 하시오!〉
그의 말에 드디어 모든 귀족들이 표정이 씹창나서 눈깔을 굴렸다.
저들도 간신히 사태의 무게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럴 만 하지. 로마니아는 절대왕정제 국가니까.’
나는 일이 잘 풀리는 기분에 안심하며 실실 쪼개댔다.
브리타니아 같은 봉건제 국가는, 말하자면 건물주나 땅 주인이 모여서 ‘오늘부터 우리 브리타니아 동맹인 각이다!’ 하고 담합해서 만든 나라다.
그래서 왕이라도 다른 영주들에게 명분 없이 내정간섭을 할 순 없었다.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내 아파트가 10채라고 해서 남의 아파트더러 관리비를 내리라 올리라 할 수는 없잖은가?
‘하지만 로마니아는 다르지.’
신성제국 로마니아는 절대왕정이자 황제의 나라였다.
정복전쟁 등으로 모든 국토를 황가 밑에 귀속시킨 나라!
‘그래서 명목 상 로마니아의 모든 토지는 황제의 영토라지?’
지구에서도 정복군주의 국가는 대부분 그랬었다.
다시 말하자면 영주란 결국 황제에게 충성하거나 항복하고 귀속된 이들, 혹은 그들의 후손으로써 영지의 통치를 일임받은 귀족들에 불과했다.
저번에 미네르바도 괴도질을 하던 우리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황제 폐하께 통치를 일임받은~ 하고 말이다.
‘물론 줬다 뺐는 건 개새끼나 하는 짓이고, 개새끼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없지.’
그렇기에 황제도 이유 없이 영주들을 핍박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었다.
‘근데 이 사건은 충분히 쪼인트를 깔 껀수가 되자너?’
만약 여기서 튀었는데 일이 존나게 커져서, 나중에 황제가 ‘느그들은 그때 왜 튀었음?’ 하고 추궁한다면?
존나 영지만 빼앗기면 차라리 다행이다. 숙청빔보단 나을 거 아냐.
싫어? 니들이 싫어봤자 일가실각 3족멸족 엔딩 각인데?
봉건제 국가의 왕은 옆집 아파트에 불이 났는데 왜 도우러 안 갔냐고 화를 낼 자격이 없지만, 로마니아 황제는 너희는 왜 관리인이면서 내 아파트에 화재가 나는 꼴을 보고만 있었냐고 추궁하는 게 가능했다.
차라리 다같이 튀었으면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치만 여기 주변 영주들은 자기 영지에서 풀타임 요툰 디펜스를 뛸 바엔 걍 남의 영지에서 시마이치고 싶을걸?’
느그 영지는 여기서 머니까 그냥 튀겠다고요?
피해를 입은 영주들이 개빡돌아서 황제한테 ‘저 새끼 간신이에요!’ 하고 꼰지를 겁니다요. 깔깔.
그건 말하자면 전쟁이 터졌는데 현장에 있던 장군이 빤쓰런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미친 통수권자가 그걸 용서해?
‘토끼가 여우를 일하게 만들려면 호랑이 이름을 빌려야지.’
간신 스위치 ON이다. 크헤헤헤. 이게 가불기라는 거란다. 21세기식 죽음의 이지선다 맛 좀 쬐끔만 보거라.
〈끄으응. 차, 참전하겠소.〉
〈나라를 위해서요! 아암! 그렇고 말고!〉
결국 우리의 간신배들은 지금 좆되기 VS 나중에 씹오지게 개좆되기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가 전자를 골랐다.
디스뮤크는 그 과정을 지켜보다가 감격하며 말했다.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저들을──〉
─툭. 나는 디스뮤크를 보지도 않고 그의 가슴을 쳤다. 좀 흥분했던 집사는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세치 혀로 저들을 부려먹은 나한테 칭찬이라도 해 주려던 거겠지만, 미안한데 마음만 받을게.
칭찬이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라지만 여긴 듣는 귀가 조금 많았다. 게다가 그 귀들의 성능도 평균보다 높았고 말이다.
이런 곳에선 흠 잡힐 말은 삼가는 게 맞았다.
〈야누스 교단에 협력을 해야 할 것 같군.〉
미네르바는 그렇게 말하면서 본격적인 작전 개요를 읊었다.
그녀가 대표로 짠 듯한 작전은 우리의 생각과 거의 일치했기에, 나는 시냐티오의 존재와 요툰의 약점만 알려줬다.
〈그 시냐티오란 자를 찾는 게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그래요! 야누스 교단의 징벌집행관! 이계의 문을 닫는데 적합한 인재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귀족이 소란을 피우자 미네르바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이 사단을 앞두고 이단의 행적에 맞서지 않는다면, 그는 징벌집행관이 되지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들은 더 늦기 전에 그를 뒤따르는 게 맞습니다.〉
어, 그러니까 ‘개또라이 종교매니아라면 진작 영주 저택에 달려갔을걸’이라는 뜻인가 보다.
말 존나 돌려서 하네. 귀족도 못 해먹을 짓이구만.
〈만일을 대비해서 야누스 교단에 협력을 구해놓고 곧바로 움직입시다.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미네르바가 날 스쳐 지나가듯 꼬라봤다.
〈……마냥 손해는 아니었습니다만.〉
쓰벌, 저 아줌마 내가 귀족들 부려먹으려고 일부러 나불댄 거 눈치챈 것 같은데.
뭐 어때. 도움이 됐다는 건 알아차린 모양이니까 괜찮겠지.
〈인원 배치가 끝났습니까? 그럼 출전합시다.〉
미네르바의 그런 말을 신호로, 우리는 싸움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