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의 전사들에게 마나의 많고 적음은 승패를 좌우하는 사안이었다.
21세기에서 포탄과 폭격을 물 쓰듯 쓸 수록 병사의 사망률이 줄어드는 것처럼, 마나가 많다는 건 무조건 적보다 유리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싸움의 승패 자체를 결정짓는 건 아니었다.
무예의 달인은 한 줌의 마나로 거인의 목도 분지른다.
존나 염병 맞을 일이지만 디아볼로는 기술도 마나도 나보다 뛰어난 달인이었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잘 쳐줘도 골딱이 중상급인 내가 마나량 좀 늘었다고 이길 수 있는 적은 아닌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콰앙!!
나랑 디아볼로가 창칼을 교환하자 마나가 거세게 폭발했다.
나와 빨갱이 대가리 씹새는 엇비슷한 충격을 받고 튕겨나왔지만, 표정은 저 씹새가 훨씬 안 좋았다.
명약하게 자기보다 좆밥인 적을 상대로 비등한 싸움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빡치는 일이다. 랭겜에서 게임 좆밥인 심해 유저랑 영혼의 맞다이를 뜨고 있는 거랑 똑같으니까.
〈그딴 세련되지 못한 마법으로 얼마나 버틸 성 싶으냐!〉
디아볼로는 악다구니를 쓰며 검을 휘둘렀다.
살기로 가득한 눈이 야수회구의 마나 코팅을 찢어발길 듯 꼬라봤다. 눈깔에는 핏발이 오질나게 서 있다. 내 근육미에 반하다니, 이 새끼 동성애1자인가?
나는 픽 웃고 짧게 쏘아붙였다.
〈칼질 좆밥이 말만 많네.〉
〈……크아아아아악!!〉
내 도발에 디아볼로의 검이 더 매서워졌다. 그러면서도 빈틈은 보이지 않는 게, 진짜 실력자는 실력자인가 보다.
무예의 달인이란 흔들림없는 자기확신이나 재능이 있어야 달성할 수 있는 경지였다.
그리고 실력이 동반되는 확신과 실적은 비대한 자존심으로 이어지는 법!
그걸 노리고 정신을 흐트러트리고자 내뱉은 도발이었지만, 디아볼로는 빡치긴 했어도 틈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내 서브 패시브인 K-패드립과 상성이 좋지 않은 적이었다.
〈프랑! 저 새끼 뒤편에 골렘 뿌려! 다나는 약화마법 걸고 베로니카는 저 새끼 못 튀게 공간이동 저지해! 라리루라는 저 새끼가 우리 애들 못 노리게 몸빵하고!〉
텔레파시로 속사포처럼 쏟아부은 나는 창을 내지르며 디아볼로에게 수세를 강요했다.
〈공간이동〉이 긴급탈출 버튼처럼 쉽고 빠르게 도주하는 기술은 아니겠지만, 좀 전에 기습할 때만 생각해도 수십 미터 정도는 댓번에 이동할 수 있을 것이었다.
디아볼로는 나보다 뛰어난 기술과 속도로 반격을 가했지만, 그 빈도는 많지 않았다.
이유는 2개다. 첫 번째는 시냐티오랑 싸우면서 이 새끼도 좀 지쳤다는 거고, 두 번째는 아까까지랑은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시냐티오와 디아볼로가 맞다이를 뜰 때는 공제컷 미달의 레이드원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수한 1대 1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잘 보이는군요.〉
─쩌엉!
얼음기둥이 나랑 디아볼로 사이를 가로막았다. 티르시가 이 싸움을 눈으로 쫓으면서 서포트를 해 준 것이었다.
마침 내 왼편에 검을 휘두르던 디아볼로는 그 기둥에 정확하게 공격이 막혀버렸고, 나는 그렇게 텅 빈 디아볼로의 좌반신에 창을 찔러넣었다.
─푸욱!!
신대의 무술과 고대의 주술이 결합된 내 창술은 초일류의 달인에게도 통했다. 디아볼로는 피를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 새끼 표정이 좆창날수록 나는 기분이 즐거워졌다.
‘상처는 얕겠지만, 데미지를 입는 이상에는 방어를 포기할 순 없겠지!’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디아볼로를 몰아붙이는 나.
내가 공격을 가하고 티르시가 움직임을 저지하면 디아볼로도 발이 멈출 때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는 적이 2명이나 되는 것 아닌가. 존나 천하에 내놓으라 하는 전사도 다굴을 당하면 대처능력이 밑천을 드러낸다.
그건 다대일(多對一)의 싸움에서는 치명적이었다.
저 씹새의 움직임이 무뎌지자, 다른 호위들도 손가락만 빨고 있진 않았으니까.
〈이 자식들아!! 언제까지 들러리로만 있을 거냐!! 팽가스 마법기사대의 자존심을 보여라!!〉
〈와아아아아──!!〉
내가 분전하는 걸 보며 마법사들도 주문을 외웠다.
그 마법들은 내 공격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디아볼로를 괴롭히거나, 나에게 미약한 수준이나마 강화 버프를 걸어주며 우리의 차이를 좁혔다.
〈마법의 진리도 엿보지 못한 필부 놈들이 감히!!〉
디아볼로는 몸에 내려앉은 불티를 씹으면서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아무리 약한 공격이라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건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 왜, 개미도 모이면 기관을 쓰러트린다는 주식시장의 명언도 있지 않은가.
〈상병신 새끼가 칼잽이 주제에 마법부심을 부리네! 존나 니 대가리 후달려서 싸우면서는 주문 못 외우잖아?〉
〈하! 전사로서도 마법사로서도 나보다 못한 놈이 입만 살았구나!〉
〈아닌데? 니가 너무 개좆밥이라서 팔다리도 쌩쌩한데? 웨 그렇게 잘나신 분이 두들겨 맞고 계시나요? 혹시 너만 니가 좆밥인 줄 모르는 게 아닐까?〉
디아볼로 씹새는 이제 너무 빡친 나머지 얼굴이 하얘질 정도였지만, 무의미한 도발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개소리를 멈추고 남은 집중력을 모두 전투에 투자했다.
내게 다행인 점은, K-패드립은 통하지 않아도 그밖의 점에서는 상성이 좋았다는 사실이었다.
─카가가각!
나는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두텁게 바른 창대로 디아볼로의 검을 막아냈다. 불똥이 튀면서 디아볼로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췄다.
오러를 습득한 뒤로, 저 씨팔럼은 수준 미달의 좆밥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애를 먹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칼을 휘두르기만 해도 갑옷이고 지랄이고 죄다 싹싹 잘려나가는데 잔꾀니 기술이니 하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그런 건 체스에서 모든 말이 퀸인 거랑 똑같다. 정석에 준한 싸움으로는 공방(攻防)이 성립이 안 된다.
‘킹치만 나도 나대로 전사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지.’
나는 칼날을 미끄러트리며 눈깔을 데굴거리며 굴렸다.
지구용사의 힘에 【게르튀르】를 사용해서 구신의 마나를 몸에 뿌리내려도 신체능력은 비등한 정도였다. 하지만 오러를 상대로도 룬으로 두께를 증강한 마나 코팅은 뚫리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보통 전사라면 1초컷이 나버릴 수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
〈흡!!〉
─촤아아악!
디아볼로는 교묘하게 창대를 타고 내 손을 노렸다.
이 칼질 좆밥쉑이 정공법으로 안 되니까 잔머리를 굴리네. 나는 그것에 어울려주지 않고 우악스럽게 검을 쳐냈다.
저 씹새가 나보다 기술이 뛰어나다면 적의 장기를 살리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디아볼로는 내 생각을 눈치깐 듯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 빡치라고 하는 겁니다.’
어릴 적부터 실전에서 습득한 병법을 실천하며 【게르튀르】의 초식을 연발하는 나.
그리고 도발이 안 통하니 주댕이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언어소통을 포기하고 오딘의 눈을 켰다.
사실 나도 이게 별로 의미 있는 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저 새끼는 흑마법사이기는 해도 전투에 마법을 사용하는 타입은 아닌 듯 했으니 말이다.
그건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이세계의 마법은 학문의 일종이다. 뛰어난 마법사라고 곧 전투의 프로라는 법은 없었다.
‘……엇?’
하지만 나는 시험 삼아 켜본 오딘의 눈이 예상 밖의 효과를 보여준 것에 잠시 놀라야만 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바로 기쁨으로 변했다. 사납게 웃은 나는 풀 파워로 진각을 밟았다.
─쿵!
강력한 공격의 전조를 간파하고 디아볼로가 눈을 빛냈다.
내가 승부를 서둘러서 빈틈을 드러낸 줄 알았던 걸까. 그 놈은 보고도 못 막을 엄청난 쾌검술을 펼쳤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놈의 몸속에서도 마나가 움직였다.
‘……보인다!’
도이치 짝눈신의 신안(神眼)이 적의 움직임을 읽은 것이다.
──달인의 기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법과 같다.
충분히 발달된 근육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는 법이다. 달인들의 기술에는 마법의 술식처럼 정형(定型)이란 게 존재했다. 바둑의 기보나 신의 한 수를 방불케 하는 ‘법칙’이 말이다.
디아볼로는 초일류의 달인이었다.
그 검술의 연원(淵源)이 조선인들의 목을 참수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은 일본군처럼 잔학하고 사악한 것일지라도, 손에 넣은 현묘함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이 눈에 보인다.
그 마법처럼 치밀한 마나의 움직임이── 기술이란 기술마다 깃들어 있는 깨달음과 진수(眞髓)가, 술식의 흐름을 간파하는 오딘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채앵!!
디아볼로는 정확하게 내 모가지에 칼침을 꽂아넣었다가, 곧 얼척이 나가버린 듯 벙쪘다. 야수회귀의 마나가 미치도록 두꺼워져서 그의 공격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보고도 못 막는 공격을 막는 방법이 뭔 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보지 않고 막는 것이다.
〈뭐 이딴──〉
디아볼로가 입을 열었지만, 킬각을 착각한 병신의 불평은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방어를 마나 코팅에만 전담시켰기에, 나는 이 애미 뒤진 흑기사 새끼의 빈틈에다 필살의 찌르기를 쑤셔줄 수가 있었다. 저돌맹진의 진각이 창끝에서 찌르기로써 펼쳐졌다.
─푸확!!
그렇게 내 창날이 디아볼로의 한쪽 가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