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컥!!〉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디아볼로는 가슴을 붙잡고 물러났다.
무슨 고목에다 소총 대검을 꽂듯 뻑뻑했지만, 뼈를 부수는 느낌은 났다.
찔린 부위가 부위니만큼 치명상인 건 틀림없었다. 폐부에 물 차서 꼬르륵 하다 보면 존나 바다에 놀러온 기분도 들고 신날 거야, 그치?
“짝가슴 아구찜도 생명이다!!”
〈카학, 큭!!〉
기합성이 개소리로 나온다는 단점도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 넘어가 줄 만 했다.
상처가 깊어진만큼 디아볼로는 기술의 예리함에 더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속절없이 당하게 생겼는데 그러지 않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그 노력이야말로 그의 목을 조르는 시도다.
이 눈깔 치트 앞에서, 달인의 기술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 빛이 바래버리는 것이었다.
─츠팟!
디아볼로의 찌르기가 어깨와 허리의 동작으로 순식간에 비틀리며 페인트를 낳았다.
오러를 뿜어내는 디아볼로는 자신의 검과 일체화한 것처럼 마나를 운용했다.
그와 그의 검은 둘이되 하나였고, 하나이되 둘이었다. 마치 검에도 신경다발이 자라나 있는 것처럼 디아볼로와 한손검 사이에는 타아(他我)를 가르는 경계선이 없었다.
─찌르르르!
그것은 내 정신에 어떠한 깨달음을 새겼지만, 나는 당장은 그 감각에 몰두하지 않고 디아볼로의 공격을 튕겨냈다.
이제 디아볼로를 몰아붙이는 것은 테트리스에서 다음에 나올 블럭을 보고 블럭을 쌓는 정도의 어려움밖에 없었다.
순발력을 요구하던 넌센스 퀴즈가 2자리 사칙연산으로 바뀌어버린 듯, 내 창에서는 무아지경으로 기술이 뿜어져나왔다.
〈캬아아아아악─!!〉
디아볼로는 남자가 가오가 있지 하는 눈빛으로 오러에 더 마나를 불어넣었다.
오러란 게 마나를 많이 넣는다고 더 커지거나 쎄지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저건 보통 오러보다 더 뛰어난 경지일 것이었다. 내가 예수게이 모드였다면 검염(劍炎)이라고 드립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잘나딘 잘난 절기에 맞서, 그냥 창대에 씌운 마나 코팅을 존나게 키웠다. 내 창이 기둥처럼 두꺼워졌다.
〈──피니스 오르투스(Finis Ortus)!!〉
〈톰과 란제리의 가계사정──!!〉
달인급 검사와 야매 드루이드는 그렇게 거대해진 무기를 무식하게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무식한 맞다이는 결과도 무식했다.
오러의 절삭력에 마나 코팅이 맞서자, 결론은 그냥 나랑 디아볼로의 팔씨름이었다. 버프의 위력이 삐까뜨니까 누가 더 힘이 쎈지 겨루는 꼬락서니가 나 버린 것이었다.
─펑!!
그 찰나지간의 힘 겨루기에서, 나는 부풀어오른 오러 블레이드를 증기 폭발의 반발력으로 흘려넘겼다.
힘을 기댈 곳을 잃은 디아볼로가 경악하며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했을 때는, 벌써 내 창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무무역역무(武無亦力無).’
──반격기 제 4품새로부터 공격기 제 1품새로의 연계기.
‘위위격라(偉威擊拏)!’
채애앵─!!
디아볼로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면서 그 새끼와 혼연일체가 돼 있던 검도 바닥을 굴렀다.
나는 창을 번뜩이며 다시 전신에서 증기를 뿜어냈다. 내 몸뚱이는 90도를 넘어 180도로, 그리고 끝내는 360도까지 회전하며 원심력의 가속도를 얻었다.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
<구름 소환(Summon Cloud)>.
3가지의 마법이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내 주먹과 팔꿈치에서 폭발했다.
─파지지지직!!
마법에 들입다 마나를 쏟아붓자 내 주먹에서 번개불꽃이 피어올랐다. 이 마법들은 야수회귀랑은 달리 마나를 퍼붓기만 해도 알기 쉽게 위력이 오르는 것이었다.
자고로, 판타지에서 마법사는 전사보다 한방갑인 게 국룰 아니던가.
나는 1노르드 분량의 마나를 투자해서 나 칼부림 인생의 TOP5에 들어갈 초고위력의 마법을 짜냈다.
〈라이트닝카운터──!!〉
증기폭발로 가속한 주먹이 꽂히고, 번개불꽃이 폭발했다.
이번 공격으로 나는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기에 보험으로 옥새에 남겨둔 분량만 빼고, 남아 있는 마나를 이 펀치에다 싹 부어버렸다.
〈캬흐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절대적인 위력은 예상대로 명불허전이여서, 디아볼로는 와꾸의 절반을 다나한테 요리를 맡긴 립아이 스테이크처럼 뻐킹 웰던으로 익혀버리고 말았다.
─파르르르.
나는 쥐덫에 척추가 박살난 시궁쥐처럼 바들거리는 새끼를 보며 비틀비틀 후진했다.
〈미안하다. 내 주먹이 네 얼굴을 먹어버렸구나.〉
근데 마나를 너무 막 썼서 그런가. 나도 뒤질 것 같다.
내 마나통 최대치의 100% 이상을 원큐에 갈겨버려서일까? 전력질주를 한 직후처럼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오딘의 눈도 풀렸는지 입밖으로 나온 말은 제대로 인간의 언어였다.
〈베로로롱…….〉
아무튼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사흘 굶은 들개처럼 앓으며 문워크를 밟고 있자, 부드러운 가슴이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그게 우리 눈나의 찌찌인 줄 알고 마음을 놓고 몸을 기댔는데, 그렇게 하고서 대충 0.5초 쯤 뒤에 다나 치고는 가슴살이 좀 두툼하다는 걸 눈치챘다.
우리 눈나가 이 롯데리아 핫 크리스피버거 패티급의 찌찌만 됐었어도 그렇게 젖 크기로 열폭하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다른 아내들만큼 빵빵한 것도 아니여서, 나는 쭈볏거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내가 뒤통수를 가슴에 문지른 상대는 무려 프리모르였다.
〈……괜찮으신가요?〉
〈옙!!〉
─훽!!
나는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학원을 째고 온 피씨방에서 어머니를 만난 중삐리처럼 억지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디아볼로에게 고함쳤다.
〈야 이 씨발놈의 새끼야! 키타이 매콤주먹 맛이 어떠냐!〉
〈악, 칵, 학……!〉
씨팔놈의 흑기사 새끼는 대꾸도 않고 에베벱 거렸다. 존나 예의도 없는 놈일세. 저 씨부랄 놈은 지 엄마가 불러도 대답 안 할 게 분명하다.
─울컥, 울컥!
디아볼로의 주변에 검은 어둠이 쿠퍼액처럼 울컥거렸다. 그 꼴을 본 나는 저게 〈공간이동〉 마법이란 걸 눈치깠다.
대가리가 아이폰 로고처럼 됐는데 마법을 쓰려고 하다니.
그 집착과 마법실력도 검술 못지 않은 적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을 그려서 올라가 있던 베로니카가 타오르는 지팡이를 휘젓자 그 어둠은 타르에 불이 붙어버렸다.
─후두두둑.
불타는 타르에서는 책이며 검 같은 물건이 쏟아졌다.
아마 디아볼로의 인벤토리가 고장나서 내용물이 나오는 듯 했다. 나는 그걸 보고 이죽거렸다.
〈어딜 도망가, 새꺄. 닌 여기서 뒤져야 돼.〉
말만 그렇게 해 놓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흙바닥을 부수며 흰 머리가 2개 올라왔다.
한 명은 시냐티오였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어깨에 매인 중년 남자였다. 아마 그가 레나폴리스의 영주겠지. 골렘과 그가 갇혀 있던 곳이 지하실이었나 보다.
〈콜록, 콜록.〉
시냐티오는 대충 봐도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티르시에게 무기를 잃고 디아볼로를 상대해서인지, 몸에 상처도 많았으며 아까와 같은 예리한 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눈빛만큼은 변함없이 냉철했다. 그녀는 호랑이도 쫄 듯한 눈빛으로 먹버당한 호빵맨처럼 변해버린 디아볼로를 노려봤다.
〈……제가 흙먼지나 마시는 동안 다 끝났나 보군요.〉
무표정으로 영주를 내려놓은 그녀는 맨손으로 우리 대열에 합류했다.
뚱한 눈빛 치고는 존나게 살벌한 게, 디아볼로가 손가락 끝이라도 움직인다면 단숨에 그 주먹으로 두개골을 주머니에 넣은 쿠쿠다스처럼 바스라트릴 생각인 듯 했다.
‘이겼군.’
나는 이 자리의 변수를 따져보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치긴 했다지만 디아볼로보단 훨씬 멀쩡한 그녀까지 합류했다. 상처를 입고 〈공간이동〉을 봉쇄당한 새끼가 살아날 구석은 하늘이 무너져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쩌면 나도 급격하고 지나친 마나의 사용으로 피곤해져서 머리를 굴리지 못하게 됐던 걸지도 몰랐다.
…스멀.
‘그것’은 마치 대기(大氣) 중에 먹물을 뿌린 것처럼 갑자기 디아볼로의 뒤에 나타났다.
─콱! 공간에 번진 그림자에서 뻗어나온 진보라색의 손은 반생반사의 디아볼로를 움켜쥐었다. 2미터도 넘을 듯한 그 손바닥은 꼭 악마의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흉측했다.
〈──놈이 도망친다!! 놓치지 마라!!〉
미네르바는 그 손에 검을 투척하며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 고결하고 용맹한 모습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프리모르 파티와 우리 아내들 정도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악마의 손에서 뿜어지는 사악한 기운에 숨을 삼키며 몸을 떨기도 바빴던 것이다.
─후왁!
마법이나 나이프가 꽂히는 와중에도 눈 깜짝할 사이에 디아볼로를 낚아채간 손은 하늘에 퍼진 그림자에 잠겨버렸다.
그리고 악마의 손이 돌아간 어둠 속에서 요사스러운 노란 눈이 번뜩거렸다.
─……제자가 폐를 끼쳤군요. 스승으로서 죄송한 일입니다.
귀기 어린 눈동자에 안 어울리게 겸허한 말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저희도 공석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라서요……. 근 1년 사이에만 7명 이상의 동료들이 심연으로 떠나버린 게 당금의 실정이죠.
그인지 그녀인지도 모를 목소리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신변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댔다.
─따라서, 동료든 제자든 저희 〈임모르탈리스〉의 죽음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예의를 차린 존댓말이 무색하게도, 그 말뽄새는 어디까지나 오만하게 밑의 사람을 대하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그런 오만함을 지적하기 힘든 힘이 공간과 차원을 넘어서도 전해졌다.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지만 저 노란 눈깔 새낀 마음만 먹으면 어둠 밖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서 평소처럼 도발기를 날리기도 힘들었다.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마저도 참회실에 돌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크게 들려오는 1분이었다.
나는 그 1분 동안 쥐 죽은 듯 닥치고 있었다. 할 말만 한 노란 눈깔이 그 뒤로는 나를 관찰하듯 쳐다봤기 때문이다.
노란 눈깔은 눈꺼풀을 휘며 미소지었다.
─저는 ‘에퀴녹스’입니다. 멋진 눈의 전사 분.
툭…. 그림자 속에서 던진 것처럼 튀어나온 고문서(古文書) 1권이 내 구두코에 부딪혔다.
─그건 저로부터 당신께 보내는 심심한 사죄의 선물입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림자는 둥글게 오므라들며 작아졌고, 노란 눈깔은 끝의 끝까지 나만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부디 안녕히. 다시 뵐 수 있다면 그때는 더 많은 얘기를 나눕시다.
딱 그렇게만 속삭이고서, 그림자의 포탈은 닫혔다.
장소를 제압하던 어떠한 기백도 그와 동시에 사라졌다.
〈……………….〉
승리한 싸움에서 패자가 도망치는 걸 두 눈 훤히 뜨고 떠나보냈음에도, 아무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생각없이 입을 열었다가, 방금 전에 떠나간 정체 모를 흑마법사가 ‘아 맞다’ 하고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닐지 두려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발치의 책을 집어들고서, 그 이상한 질감의 표지에 눈길을 주었다.
책의 제목은 내 능력으로도 해석되지 않았다.
단지, 그 밑에 적힌 저자의 광오한 이름만은 내 지식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고대 로마니아 어였다.
책을 엮은 저자의 이름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명계의 여왕(Imperatrix Niflheim)’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