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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65화 (365/1,009)

〈정말로 죄송함미닷……!!!〉

키타이 정파 고수 컨셉이 들통나고 만 나는 일체의 고민도 없이 그랜절을 박았다.

‘예수게이? 모르는 이름이군’ 하고 잡아떼면서 모른 척 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내가 아는 프리모르라면 머리를 박는 게 더 나았다.

이실직고하면 최소한 괘씸죄를 묻지는 않을 것이니까.

〈얼굴은 진짜가 맞으신가 보군요. 그럼 말씀해 주신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진실이죠?〉

평범한 질문과 어조가 도리어 무섭다.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거리자 프리모르는 한숨을 쉬었다.

〈……전부 다였군요. 아르마슈나스의 아가씨를 빼면.〉

〈그렇슴닷!! 죽을 죄를 졌습니닷!!〉

〈그만 하세요. 목숨의 은인에게 치졸하게 굴진 않습니다.〉

프리모르는 내 그랜절을 보면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이해합니다. 초면에서는 제가 신분을 밝힌 것도 아녔고, 의심스러운 상대에게 대놓고 진실을 전할 순 없었겠죠.〉

〈아아닛?! 저 같은 촌것의 사정까지 이해해 주시다니!! 이 어찌 자비로운 분이시란 말입니까?!〉

〈그만 하랬는데요.〉

〈넵.〉

내가 합죽이가 되자 프리모르는 중얼거렸다.

〈……그래요. 첫 만남 때나, 제 낭군님의 원수를 갚아주실 때까지는 분명 피치 못할 일이셨겠죠.〉

자비롭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그 자비심 깊은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또다시 뵀을 때에도 거짓말을 하셨던 건…… 고의라고밖에 할 수 없겠네요?〉

와우, 좆됐구요.

나는 희망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상태가 되자 뉴런에서 플래시백이 재생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프리모르는 다시 자비를 베풀었다.

〈그래도 저는 그것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요. 제 낭군님의 원수와 저희 전원의 목숨값은 거짓말 몇 마디로 퉁치기에는 꽤 큰 빚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거의 뭐 해탈이라도 하셨는지 자비 버튼을 연발하는 불살 모드로 프리모르였다. 존나 이 정도 자비심이면 조만간 화살촉도 역날검으로 다실 듯.

〈용서해 주시는 겁니깟……!! 감사합니닷……!!〉

〈그 묘하게 귀여운 말투는 그만 두시고요. 대신 조건이 좀 있어요.〉

아니 쓰벌, 말 다 해 놓고 나중에 조건을 붙이는 건 조금 에반데.

킹치만 저 불합리를 따지고 들기엔 처지가 안 좋았다. 걍 닥치고 있기로 한 내가 세이경청을 하자, 프리모르는 말했다.

〈이곳에서 아르마알스 가문의 영지까지는 멀지 않습니다. 정식으로 노르드 님을 초대하겠으니, 티르시 양과 일행 분을 데리고 방문해 주십시오.〉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닷!! 평생의 영광입니닷!!〉

〈티르시 양의 용태도 걱정됩니다. 브리타니아까지 가서 치료를 받으려면 이동시간만 해도 굉장히 많이 걸릴 겁니다. 병세는 빠른 시일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게 가장 낫죠.〉

〈그게 정말이십니깟!! 너무나도 큰 영광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닷!!〉

─붕붕! 나는 고개를 흔들며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동 시간에 관해서는 〈공간이동〉이 있어서 그렇지만도 않지만, 호의는 좋게 받아들여 두기로 했다.

뭣보다 이세계판 건강검진이 돈이 존나 드는 건 사실이다.

그걸 대신 내 준다면 저까짓 부탁은 들어줄 만 했다.

‘조건이라고 해 놓고 하는 짓은 거의 은혜 갚는 제비인데?’

프리모르는 자신이 가문 안에서 입지가 애매하다는 사실을 굳이 어필하지는 않았다. 은혜를 갚으면서 티를 내지 않는 그 언동은 그녀의 자존심이나 성격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긴, 신랑의 원수를 갚겠다고 손가락을 자르고 활을 드는 사람이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예전처럼 편하게 말씀하시라곤 않겠지만, 좀 더 정상적으로 말씀해 주실 순 없나요?〉

〈……크흠. 원하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내가 헛기침을 하면서 무릎을 꿇는 자세로 돌아오자, 프리모르는 피곤한 것처럼 얘기했다.

〈초청하는 명목은 디아볼로를 물리친 공적으로 하죠. 예수게이 님의 진짜 신분은 호위들에게도 감춰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받기만 하는군요.〉

〈상관없어요. 저도 받은 만큼 갚아드릴 뿐이니까요. ……그나저나 이건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노르드 님의 진짜 신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프리모르는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180도 턴했다. 나는 그 진의를 추리하면서 일단 솔직하게 대답했다.

〈브리타니아에 시민권을 얻어서 고고학자 겸 모험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고학자. 과연 그만한 솜씨엔 이유가 있군요.〉

감탄인지 납득인지 모를 것을 하던 프리모르. 고고학자가 뭐 모험가 계통 상위 전직 정도로 취급되는 게 좀 웃겼다.

그녀는 내 낯짝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러면 후원자는 따로 있으신가요?〉

〈예? 아, 그게…… 이번 일을 끝내면 티르시 양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신 귀족 분이 후원자가 돼 주신다고 얘기하긴 했습니다. 확정사항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브리타니아의 귀족 분이겠군요. 어떤 분이시죠?〉

〈그, 사르가디스 영주님의 후계자이신 마리아 헨네시스 영애님이십니다.〉

프리모르는 도도하게 콧김을 뿜고는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군요. 그 정도라면 아르마알스 가문이나 제 친가 쪽이 더 나을 겁니다.〉

아니, 이 마님이 뜬금없이 쎄게 나오네.

존나 시발 헨네시스 영애가 들었으면 수도부터 갈겼겠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피했다.

‘……내 후원자가 돼 주려는 건가? 순수한 호의만은 아닐 텐데.’

이게 뭐 어디 숫처녀 영애님이거나 했으면 나도 남자이니 은근히 그런 쪽으로 의심을 했겠지만, 아직 남편을 잃은지 몇 달 되지도 않은 프리모르가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내가 바로 대답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는지, 프리모르는 흠 하고 콧김을 다시 뿜고서 말했다.

〈……뭐, 좋아요. 이것보다 깊이 들어간 이야기를 하기엔 때와 장소가 좋지 않군요. 차후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예. 불러만 주시면 부리나케 달려가겠습니다.〉

내가 아부를 떨어주자 프리모르는 뚱하게 대답했다.

〈그 말 명심하세요. 저번처럼 도망치시면 사람을 보낼지도 몰라요?〉

〈넷!! 여부가 있겠습니깟……!!〉

이번엔 내가 익살맞게 군 게 조금 통했는지, 프리모르는 픽 웃었다.

〈다시 한 번, 진실된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겠어요.〉

어떤 의미로는 은인으로 여기던 상대에게 배신당한 거라고 해도 될 일인데, 프리모르는 몇 마디 꼽을 준 걸로 화가 다 풀렸는지 치맛자락을 걷으며 인사했다.

〈제 낭군님의 넋을 달래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르드 님.〉

〈……위안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괜한 말을 덧붙이지 않고 그렇게만 말했다

새삼 봐도 착한 사람이다. 다른 귀족들의 평균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마음 고생이 심할 것 같다.

‘아무튼, 방금 그건 존나 큰 말실수였군.’

한숨을 참는 나. 거짓 신분을 써 놓고 그걸 감추는 노력을 게을리 하다니? 강북호 인생 최대의 미스테이크였다.

존나 다나한테 질내사정하면서 ‘프리실라! 싼닷!’ 하고 크게 외쳤어도 이것보다는 소름이 덜 돋았겠지.

내가 분위기가 풀리자마자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챘던 모양인지, 프리모르는 치맛자락을 놓으며 웃었다.

〈제가 아는 예수게이 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실 리는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또 가면을 벗을 때 보여주셨던 목선 등이 굉장히 닮기도 했고 말이죠. 반쯤은 유도심문이었어요.〉

〈하, 하하하……. 기억력이 대단하시군요…….〉

목선이라니, 그런 걸로도 의심을 할 수 있구나. 궁수의 눈썰미도 얕볼 게 못 되는군.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능력이 없는 게 한이다, 씨발.’

동물로 변하는 거랑 인간으로 변하는 건 김치찌개랑 밀푀유 나베 정도의 차이가 있다. 기본 재료가 겹치는 부분이 있을 뿐, 거의 전부가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도 어케 잘 풀린 모양이니까, 전화위복인 셈 치자.

***

그렇게 프리모르에게 용서를 받고서, 나는 요툰 잔탕 소탕전에 참여했다.

티르시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고 요툰은 아직 도시 여기저기에 숨어 있었기에, 이러나 저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내 탐지능력과 전투력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구축해 주는 거에욧!!〉

〈Kuhuuuuuuuk!!〉

나는 대가리를 쳐맞고 개나리 댄스를 밟는 요툰을 피해서 그 놈의 명치에 창을 꽂았다.

야수회귀의 마나를 감고서도 창날은 관통하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상관 없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혼(Calamity Horn)

─투확!

〈Guaaaaaaack───?!〉

좆 같이 생긴 세로입 거인은 자이언트 전복 대가리에서 피를 뿜으면서 절명했다.

가죽을 파고들어간 야수회귀의 마나가, 내장을 말 그대로 게살 내장 볶음밥처럼 뭉개버렸기 때문이다.

〈Fyauuuu……〉

〈그러게 방어 관통 데미지 대책도 세웠어야지.〉

─쿵! 나는 창을 돌리면서 쓰러지는 거인을 피해냈다.

이 새끼들의 시체를 확인해 보자, 가죽에 비해서 몸 안의 내장은 방어력이 많이 후달렸다. 생물이라면 누구든 그렇지 않겠느냐만, 마나 사용자 치고는 수준이 많이 낮았던 것이다.

우리 같은 인간이라면 단련할 수록 몸 안도 어느 정도까진 튼튼해진다.

하지만 이 새끼들은 그런 게 없었다. 타고난 신체능력 빨로 평균치는 높지만, 그래서 약점이나 한계도 명확한 것이다.

당연히 예외도 있다.

이 종족 새끼들이 전부 전투의 달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까부터 새로 잡은 5마리는 대부분 좆밥에 속하겠지.

‘굳이 말하자면 요툰 세계의 길거리 양아치 정도인가?’

그리 생각하면 존나 무서운 종족은 맞았다. 금발 양아치 열 명 정도로 도시 궤멸이 가능한 거니까.

저 멀리 있는 곳에서 서리폭풍이 몰아쳐대는 걸 보면, 시냐티오한테 1초컷 당하지 않을 정도의 요툰도 나타나기는 했던 모양이었고 말이다. 씨발 이세계 금태양 존나 무섭다. 공포 그 자체다.

‘물론 나는 꿀 빨러 왔기 때문에 그런 괴물이랑은 싸우지 않을 것.’

─슈와아악! 짝퉁 요툰이 뿜어내는 마나를 흡수하면서 난 흡족스럽게 웃었다.

5마리를 잡아서 얻은 마나 상승량은 대충 25% 가량.

그렇게 만족스러운 상승량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가 짝퉁 토르를 잡고 마나가 2배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년 전 나를 기준으로 보면 절반이 늘어난 거다.

그리고 25%도 절대로 적은 양이 아니다. 월급이 25% 늘어나냐 줄어드냐는 직장인들한텐 살해동기도 될 걸?

어차피 이런 방식으로 늘릴 수 있는 마나에도 한계는 있지 않겠는가. 세상에 무한한 건 없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여러분들도요. 다음은 어디입니까?〉

내가 요툰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날 안내해주는 병사들에게 대꾸하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지도를 보고 떠들다가 말했다.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씨발, 벌써? 딱 5마리만 더 있어 주지.

나는 잠시 아쉬울 뻔 했지만 사람이 다칠 일이 없다는 걸로 마음을 달랬다.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고.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옙! 협력,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자기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잡는 괴물들을 가죽에 상처 하나 안 입히고 죽여댄 탓일까. 위급상황의 흔들다리 효과로 눈물을 짜내며 과민반응을 하는 병사들이었다.

나도 대충 인사해 주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복귀로를 걸으면서 마나통을 체크.

나는 실감이 갈 정도로 늘어난 마나에 입꼬리가 올라갈 뻔 했다가, 실실 쪼개면서 걷기에는 좀 많이 참담한 거리의 모습에 저절로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아무튼 이 정도면 본건은 건졌네.’

물론 이걸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이제부턴 중요한 드랍템 분배 타임이다.

아줌마 2명과 시냐티오의 인증으로 내 결백은 증명됐다. 내 몫은 충분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귀족들이랑 척을 지지 않는 선에서 말이야.’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려서 좋을 건 없었다.

사람의 원한은 사사로운 곳에서 쌓이는 법.

나는 간이 텐트처럼 생긴 천막이 세워져가는 영주 저택으로 돌아가서, 다른 곳에 들리지 않고 곧바로 드랍템을 보관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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