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72화 (372/1,009)

금화 40닢의 입금은 영수증으로도 확인했다.

입금에 만족한 나는 저택으로 돌아와서 셀레나에게도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셀레나 양. 도와주신 덕에 잘 풀렸습니다.〉

〈아니요, 힘을 보태드릴 수 있었다니 영광이에요!!〉

기운차게 대답한 셀레나는 참 사람 좋게도 웃었다.

물론 나는 저 표정이 거울 앞에서 연습해서 만든 거라는 데 다나의 논문용 잉크도 걸 수 있었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이 미소를 연습하는 건 미덕 아니던가. 백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아무튼 셀레나의 부상도 어느 정도는 나아서, 그녀는 금의환향에 성공한 나에게 축복의 박수까지 보내줬다.

당분간은 상처가 덧나지 않게 얌전하게 요양해야 한다지만 말이다.

〈엘릭서 경매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노르드 씨가 노고에 상응하는 보답을 얻으셨다니 저까지 기쁘답니다!〉

〈흐흐. 이것저것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실 것 없어요! 저희도 좋은 인연을 얻었는걸요!〉

셀레나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띄웠다.

내 얘기가 아니다. 프리모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디아볼로가 반생반사로 도주하고 레나폴리스의 영주가 인간과 미라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기 시작한 탓에, 그녀들은 갈 곳이 없어서 곤란한 처지였다.

아르마알스의 격에 맞는 여관은 요툰 강하 대소동에서 다 박살이 나거나, 다른 귀족들이 차지한 상황!

거기에서 제안을 꺼낸 게 셀레나였다.

그녀는 ‘이것도 인연’이라는 적당한 핑계로 프리모르와 호위들을 저택에 머물도록 권했다.

아마 헤르마이온 길드는 이 만남을 그녀의 가문과 연을 틀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아, 그렇죠 참. 저를 먼저 찾아와 주신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마담께서도 노르드를 찾고 계셨어요.〉

셀레나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가 상처가 쑤셨는지, 다친 곳을 붙잡고 낑낑거리며 그렇게게 말했다.

〈마담 프리모르께서요?〉

〈네. 노르드 씨만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호위 분을 부를까 해요. 어떠신가요?〉

〈흐음……. 예. 그렇게 해 주십쇼.〉

셀레나는 알겠다고 말하고서 떠나갔고, 그녀와 교대하듯이 여기사가 찾아왔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하면서, 저번에 프리모르한테 전해받은 편지를 떠올렸다.

‘……프리모르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했다더라?’

노르드=예수게이라는 사실은 프리모르만 안다.

그래서 프리모르는 호위들 몰래 쓴 편지를 통해서 그들에게 나의 신분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알려줬다.

‘얘기가 어긋나면 거짓말이 들통나니까.’

그러니까 분명…… 이 사람들은 나를 ‘디아볼로를 해치운 모험가로, 가문에 초청한 손님’ 정도로만 안다고 했던가.

‘가능한 예수게이랑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 굴어야겠군.’

이번에야말로 말실수가 없도록 조심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나는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르드 씨를 초대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 됩니다.〉

여기사는 간단한 서론을 나누다가 그렇게 얘기를 꺼냈다.

〈대략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은 기다려야 하겠죠.〉

〈일주일입니까…….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나는 조금 난처해져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티르시는 지금도 쌩쌩하지만─얼법 치고는 추위를 타는지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자주 보일 정도다─, 이동 시간까지 고려하면 되도록 빨리 안전을 확인해 주고 싶어서였다.

〈마님께서 의뢰한 일이 해결되지 않아서입니다.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하지만, 노드르 씨께서도 부디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여기사는 자세한 사정을 말하기 곤란한지 그렇게 대답했다.

물어봐도 곤란하게 만들 뿐일 것만 같아서 나는 그냥 그럭군요~ 하고 넘어갔다.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이라면 프리모르가 편지에 썼겠지.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면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

피치 못할 문제라면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 준비나 하자.

떠나기 전에 헤스왈드 자매랑도 적당히 인사 좀 해야겠고, 미네르바한테도 편지라도 써 놓고 가야 후환이 없겠지.

캐서린은 자기 사무소가 박살났다면서 저택에 죽치고 있으니까 언제든 인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는 바로 그 당일날에 우리가 기다려야 했던 이유가 뭐인지 알게 되었다.

야누스 교단의 교구장이 저택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

야누스 교단의 교구장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 사제였다.

교구장.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닌데, 또 무시하기엔 애매한 직급의 사제였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명예귀족보다는 높고, 시냐티오 급의 성직자나 프리모르보다는 못한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그 손님을 맞이하는 셀레나는 간단한 대책을 짜냈다.

교구장, 프리모르, 그리고 우리까지 포함한 저녁 식사회를 열어버린 것이다.

물론 저녁 식사회일 뿐이라서 파티 수준으로 크진 않았다.

그래도 그 왜, 영화에서 ‘디너에 초대하겠소’ 같은 얘기를 하면 나올 법한 장면은 됐다.

개인적인 감상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바보 같이 넓은 테이블, 훌륭한 음식이 즐비한 식사회다.

존나 넓은 식당의 천장은 샹들리에가 장식했다.

시종인지 노예인지를 데리고 식사를 즐기는 상류층에게 딱 어울리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화려한 한때!

‘씨발.’

바로 그곳에서, 우리 노르드 일가는 레스토랑에 처음 와 본 8090년대 촌놈 가족 같은 기분으로 음식을 깨작였다.

‘염병…… 괜히 왔어…….’

아니, 오더라도 아내들까지 부르진 말았어야 했다.

나는 내 앞접시에 올라온 고기를 큐브 스테이크로 만들며 이 자리의 3대 상류층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이번 리워크의 총출과 예산은──〉

〈상업계의 레지티오에서 차출하시는 건──〉

〈저희도 페시트의 시점에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존나 뭐라는 것이지. 드디어 오딘의 눈깔이 평상시에까지 번역치트에 버그를 일으키기 시작했나.

알아들었는데도 알아먹을 수 없는 개소리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에 있게 된 걸까.

나는 울적해졌다. 모른 척을 해 봤자 이미 답은 알고 있다. 셀레나가 저녁식사에 초대한다길래, 다른 손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생각없이 따라나왔던 탓이다.

티르시가 자기는 죽만 먹어도 충분하다면서 뺐을 때 눈치를 깠어야 했는데.

존나 혼자만 내빼다니 나빴어.

─달그락, 달그락.

우리 가족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식사를 즐기지 못하며 시간을 보냈다.

머뭇거리다가 고기를 덜어본 프랑은 깜짝 놀란 메이드가 귓속말로 자기한테 부탁해달라고 하자 몇십 분 넘게 귀까지 새빨개져선 스프나 깨작거리고 있다.

다나는 그냥 식기를 손에서 놔 버렸고, 라리루라는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고 무거운 얘기를 나누는 탓에 다른 요리를 덜어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말이다.

【……주인님. 정말 안 되나? 왜? 왜 참아야 하지? 식사를 즐기라고 우릴 초대한 게 아니더냐?】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제발 지금은 참아……】

우리 가족 중에서도 음식에 관심이 많은 베로니카는 아예 미친 척 먹기만 하려다가, 내가 텔레파시를 쏴 가며 제지하자 울상을 지어버렸다.

괜히 남편놈이 죄 지은 것 같으니까 그러지 마…….

‘존나 이래서야 다음부터는 아무도 안 따라오겠네.’

내가 누가 식사에 초대했는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봐도 울 아내님들은 다 싫다고 도망칠 것 같았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식사가 일단락되자마자 다나가 대표로 입을 열고 닷지각을 만든 것이다.

〈실례합니다. 어제 전투의 피로가 아직 남아서…….〉

〈오, 이런. 실례했습니다. 먼저 일어나시지요.〉

다나는 그렇게 구라를 까고서는 아내들을 데리고 도망을 쳐 버리고 말았다.

아니 씨발, 저 누나 하는 짓 좀 보게! 적이랑 싸울 때에는 내가 튀라고 해도 절대로 싫다며 떼를 쓰더니만!

하지만 내가 뭐라고 생각하든 간에, 그렇게 우리 아내들은 남편을 사지에 버려두고 떠나가 버렸다.

‘테에엥…….’

내쳐진 나는 멘탈이 파사삭 나가버릴 듯 해서 정신승리를 시도했다.

그래, 저건 도망친 게 아니다…… 남아 있어도 남편님의 비지니스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눈치껏 물러난 거다…… 아무튼 그렇다…… 반박 안 받음…….

눈깔이 뜨듯미지근해지는 건 가장의 슬픔 때문이다. 따흐흑.

〈허허. 제법 향이 깊은 차로군요. 무척 독특합니다.〉

〈키타이에서 들여온 차랍니다. 노르드 씨와의 만남으로 그 머나먼 대륙에 호기심이 솟았거든요.〉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교구장과 셀레나. 물론 나는 얼탱이가 없었다.

‘이거 씨발, 그냥 녹차잖아.’

댁들이 맨날 쳐먹는 홍차가 이 찻잎 발효시킨 건데 독특하기는 개뿔이.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차를 홀짝거렸다. 내가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있나?

차라리 뭐 녹차 프라푸치노에 휘핑이라도 얹어줬으면 고향 생각에 자진해서 남아 있을 건데, 사람을 불러놓고 녹차가루 탄 물이나 마시게 시키다니. 헤르마이온 길드는 접대가 엉망이구만.

나는 내가 자처해서 이 식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기로 했다.

때로는 이런 정신승리가 멘탈 건강에 좋은 법이다.

〈그러고 보면 프리모르 님께도 드릴 말씀이 있었지요.〉

MT에서 얘기에 못 끼는 아싸처럼 녹차나 마셔대고 있자, 후덕한 체구의 교구장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적당하게 대꾸만 해주던 프리모르가 의아한 티를 냈다.

〈교구장님께서 제게요……?〉

〈아뇨, 제가 아닙니다. 시냐티오 경의 말씀을 대신 전해드리고자 왔습니다.〉

프리모르는 짚이는 게 있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종교에 봉사하는 노예로 보이는 남자가 쬐끄만 상자를 가져왔다.

교구장은 그를 시켜서 프리모르의 호위에게 상자를 건넸다.

〈시냐티오 경께서는 싸움의 피로로 인해 부탁받은 의뢰를 처리하기 힘들다며, 죄송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본래라면 저희가 대신 해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만…… 이 사태의 수습이나 치안의 유지에도 벅찬 것이 실상입니다.〉

정말로 미안해 하는 듯, 교구장은 성실하게 말했다.

〈비용을 돌려드릴 수도 있고, 다른 영지의 교구에 해주를 요청해 드려도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이번에도 뭔 일인지 몰랐기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프리모르는 마치 현자타임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쓴웃음을 짓고서, 호위가 건네준 상자를 내려놓았다.

〈아니에요. 그냥…… 처분해 주세요.〉

〈……처분이라고 하시면?〉

〈저주받은 물건은 해주하기보다 파괴하기가 더 쉽다죠. 어쩌면, 처음부터 그래야 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프리모르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녀의 호위들은 경악했다. 교구장도 내용물을 아는지 좀 당황한 눈치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상자의 내용물이 대충 상상이 갔다.

‘……프리모르의 남편이 줬다는 결혼 반지인가?’

그게 아니라면 저주까지 걸린 물건에 저런 극적인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아마 저게 흑마법사가 저주를 걸어버렸던 반지겠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인상을 썼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해주할 기회는 있을 텐데, 그걸 처분하겠다고?’

내가 보기에 프리모르는 무척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남자친구랑 헤어진 여자가 그이의 흔적을 전부 버려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진짜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뭐라고 안 하겠지만…….’

그냥 남친도 아니고, 사랑하던 남편의 물건이다.

재혼도 어려울 프리모르가, 생전의 남편이 애정을 담아서 선물한 물건을 버린다는 건 100% 후일의 후회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주받은 물건이라면,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노르드 님께서 말씀이십니까?〉

교구장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뭐하는 놈인지는 알겠지만, 고고학자나 모험가가 저주받은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건 이상해 보이는 거겠지.

나는 적당히 사실만 골라서 대답했다.

〈저희 아내도 저주에 걸려 있습니다. 물론 일상 생활에 영향이 나오는 저주는 아니고, 어느 정도는 해주가 됐습니다.〉

〈아, 그런 사정이…….〉

교구장이 납득하자 남은 건 프리모르의 문제였다.

〈……해주해 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희미한 기대를 품은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프리모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슥.

호위인 마법사가 상자를 가져다 주었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던 나는 안에 들어있는 반지를 오딘의 눈으로 훑어보았고, 그 즉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바로 보이는군.’

반지에 교묘하게 감춰진 저주는 1초만에 드러났다.

베로니카에게 걸린 저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흔적조차도 볼 수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오딘의 눈으로 빤히 쳐다봐도 그녀에게 걸린 저주의 술식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시종님이 뭔가 착각해서 얼굴을 붉히며 옷을 벗으려고 할 정도로 쳐다봤었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내 마법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저주를 본 것으로 확실해졌다.

내가 베로니카의 저주를 오딘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유.

그건 바로 ‘저주의 근원이 베로니카에게 없기 때문’이겠지.

‘아마 흔해빠진 저주들과는 성사되는 방법이 다른 거야.’

사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 했다. 모든 바이콘에게 태어날 때마다 저주를 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애시르 신의 저주는 〈인신〉처럼 어딘가에서 그 힘의 근원이 흘러들어오는 타입의 저주였다.

‘그래서 오딘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거겠고.’

뭣하면 현대인의 관점에서 비유해도 좋다.

핸드폰으로 나무위키를 볼 수는 있어도, 그 핸드폰을 분해해서 나무위키의 서버를 해킹할 수는 없잖은가?

인터넷 사이트의 서버처럼, 저주의 근원이 다른 곳에 존재한다면 이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도 앞뒤가 맞는다.

‘언젠가 그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바이콘들의 저주를 풀리는 날이 오겠지.’

나는 반드시 이뤄낼 미래를 상상하며 저주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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