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골드에 사겠다!〉
정신을 차린 오네쇼타 꼬맹이가 외쳤다.
5골드라. 엘릭서 1병─대략 500ml─의 적정 가격이 2~3골드라는 걸 생각하면 평균보다 높은 가격이긴 했다.
근데 기세 좋게 외친 것 치곤 애매한 금액이었다.
지금 엘릭서를 두고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는데, 고작 평균 시세의 2배라니?
프리모르도 우습다는 듯 찻잔으로 얼굴을 가리며 웃었다.
〈저는 10골드에 사죠. 물론, 1병이면 충분하지만요.〉
〈……큭! 2, 20골드에 사겠다! 2병 다!〉
가오에 지배당한 꼬맹이는 댓번에 가격을 4배로 올려쳤다.
이야, 비트코인도 이만한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하진 않을 텐데. 나는 손사레를 쳤다.
〈20골드는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 1병씩 팔아드리고자 일부러 저희 몫으로 남겨둔 물건까지 내놓았는데, 그걸 다 사가시겠다니요? 부디 제 사정도 고려해 주십시오.〉
〈……크흠!〉
꼬맹이 귀족도 질러놓고 내심 후회했는지, 내가 내 이름을 핑계로 말려주자 헛기침만 하고 넘어갔다.
20골드에 2병 모두 사간다면 물경 40골드다.
무려 디아볼로의 전재산보다 조금 많은 수준!
그래서 나도 당장 고개를 위아래로 헤드뱅잉하고 싶어지는 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
‘미네르바가 얼마나 부자인지는 몰라도, 저따위로 팔았다간 기껏 쌓은 호감도가 마이너스를 뚫을 걸.’
이건 현대로 치면 언젠가 상용화될 백신을 400억에 파는 수준이다.
이 철부지 귀족에게 40골드나 뜯어냈다간 돈에 미친 새끼라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너무 컸다.
나는 용팔이─ 아니, 물약팔이가 아니다.
기껏 쌓은 인맥이 파탄날 걸 생각하면 너무 바가지 가격에 팔 순 없었다.
나였어도 베로니카가 고기 한 근을 1실버 주고 사 오면 창 들고 정육점에 돌격하겠다.
〈……알겠다. 얼마 정도면 되겠는가?〉
〈그건 구매하실 분들께서 정하실 일일 듯 합니다. 저로선 여러분의 자산이나 금전 사정을 알지 못하니…….〉
꼬맹이 귀족의 말에 나는 즉시 선제를 외쳤다.
크으, 이게 선제시충의 맛인가? 존나 재밌네.
물론 당하는 사람은 이만큼 좆 같은 게 또 없겠지만, 나도 매물이 없는 아이템을 팔아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귀엽게 보고 넘어가 주길 바라겠다.
절대로 맨날 중국 작업장 캐릭터나 용팔이들한테 선제시를 당한 좆 같음을 애먼 곳에 해소하는 게 아니다.
〈……10골드 정도면 타당할 것 같군.〉
고민하던 중삐리는 프리모르가 제시한 금액을 마지노선으로 잡은 듯 했다.
프리모르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엘릭서의 판매가는 10골드로 낙찰되었다.
물론 우리의 중삐리 귀족께서는 이제서야 현실감이 돌아온 건지, 4병 값으로 1병을 산다는 실태에 입이 튀어나왔다.
저저 애새끼 보게. 감히 으른들 앞에서 주댕이를 내밀고, 어!
팍 씨. 입술에 혈수마공을 갈겨버릴까 보다.
〈마르셀로 님께서는 이걸 루크레겐스 영주님께 사용하시겠다고 하셨나요?〉
나는 헤르마이온 길드 사람이 엘릭서를 꽁꽁 포장하는 걸 보면서 말했다.
꼬맹이 귀족 마르셀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어? 어어, 그렇지. 왜?〉
〈제가 영주님의 사정까지는 아는 바가 없으나, 그 흉터가 꽤 오래된 것임은 압니다.〉
〈그래. 그게 어쨌단 거지?〉
〈포션으로 오래된 흉터를 치료하는 건, 사실 약효의 낭비가 상당히 큽니다. 아마 영주님과 같은 경우에는 상처를 도려내고서 환부에 엘릭서를 투여하는 방식이 되겠죠.〉
내 말에 안색이 나빠지는 그였다.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비위는 나쁜 모양이었다. 미네르바가 전투에서 떨어트려 놓듯이 피난에 돌린 이유가 이거였군.
〈화, 환부를? 사실인가?〉
그는 호위로 보이는 마법사에게 물었고, 비서처럼 생긴 그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패한 살이나 심한 화상 같은 경우는 절제하고 새 살이 돋게 하는 치료가 일반적입니다. 그게 효율적이므로.〉
〈으으…….〉
그가 몸서리를 치자 나는 이때다 하는 생각에 말했다.
〈사정이 사정이라고는 하나, 엘릭서 1병을 이만한 금액으로 구매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더 효율적인 치료법을 알려드릴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다른 방법이 있나?! 어떤 거지?!〉
그래, 덥썩 물 줄 알았다. 나는 웃으며 종이에다가 몇 줄의 글과 술식을 적어서 건네주었다.
〈이건 모세혈관과 혈액을 거쳐서 필요한 부위에만 약효를 집중시키는 마법입니다. 사용하는 방법 자체는 간단하니 참고하시면 될 듯 하군요.〉
〈오오! 정말인가! 고맙네!〉
안 어울리는 말투의 꼬맹이는 신줏단지 모시듯이 내가 쓴 글을 챙겼다.
아마 그건 옆에 있던 비서 마법사가 그럴싸한 술식이라고 공언해 준 덕분도 있을 것이었다.
〈덕분에 나의 그대의 오랜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겠어! 내 그대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아, 그리고 이건 그대에게 보내는 미네르바의 편지와 하사품이다!〉
〈……하사품이요?〉
〈그렇다!〉
자랑하듯 내밀어진 것은 마우스 크기의 목함(木函)이었다.
나는 이 지루한 대화에 갑자기 흥미가 솟아났다.
비싼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그게 체면 좀 차린다는 부자들이 주는 물건임에야!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것도 영광인데, 이런 물건까지 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기운 찬 대답이군! 열어봐라!〉
나는 허락을 받고 그 완고한 영주가 준 선물을 개봉했다. 그리고 무심코 눈을 반개했다.
‘보석?’
아니, 나무의 수액…… 호박일까?
‘평범한 물건은 아니군. 마나가 느껴져.’
나는 손톱 정도로 작은 주황색 보석을 오딘의 눈으로 보려다가, 그랬다간 누가 말을 걸었을 때 개소리를 하게 될 게 뻔해서 참았다. 이 놈의 페널티는 자꾸 발을 붙잡는군.
〈쌍성의 호박(Amber of Twin Star)이다. 하사하는 자의 의무로서 이게 어떤 물건인지 설명하는 것이 도리겠다만, 내 얘기를 듣기보다는 편지를 보는 게 빠르겠지!〉
그렇게 책임을 방기한 꼬맹이는, 한시가 바쁘다는 것처럼 엘릭서를 챙겨서는 미네르바한테로 돌아갔다.
나는 목함을 들고 얼떨떨해 있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사품이든 뭐든 선물이라면 이걸 먼저 내놨어야지.’
그래야 앨릭서를 살 때도 득을 봤을 텐데 말이다.
물론 방금 전의 거래와는 무관한 하사품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그렇게 딱딱 분별하기가 쉬운 일이던가?
통장에 돈이, 주머니에 봉투가 들어오면 그걸 준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사람 심리인데 말이다.
‘나이에 맞게 어수룩하긴 하군.’
피식거리던 나는 차를 들어서 마셨다. 다행히 이번에 내온 차는 적당하게 쌉쌀한 홍차였다.
앞에서는 책임을 방기했다고 하긴 했지만, 설명서가 첨부돼 있다는데 붙잡고 물어볼 이유도 없었다.
‘뭔진 몰라도 범상치 않은 물건인 건 확실해.’
품고 있는 마나부터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하구만.
물론 디아볼로랑 싸울 때도 특이한 게 없었던 걸 생각하면, 곧바로 전투에 쓰일 물건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싸울 때 쓰이는 물건만이 좋은 물건이라는 법은 없다.
어차피 공짜로 얻은 물건이다. 순수하게 감사하도록 하자.
〈엘릭서를 투여하는데 특별한 마법이 필요한가요?〉
프리모르는 꼬맹이가 떠나가자 궁금한 듯 물었다. 자기도 마셔야 하니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지.
〈꼭 필요하진 않지만 있는 게 좋죠.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된 잡지식입니다.〉
내가 이걸 알게 된 디아볼로 덕분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앞으로 배달온 그 새끼의 책을 뒤져본 결과였지만, 그게 그거지 뭐.
‘얼음 절임이 됐던 티르시에게 엘릭서를 흡수시킨 방법이 이거였겠지.’
얼음 속에 갇힌 그녀를 마법진으로 둘러싸서, 거기에다가 엘릭서를 뿌려대는 걸로 약효를 통과시켰던 듯 했다.
그녀가 갇혀 있던 별관에서 마법진도 발견됐던 모양이고.
〈그런 의미에서, 프리모르 님께서는 엘릭서를 음용하실 시 반드시 저나 다른 마법사가 겸석시켜 주십시오.〉
나는 못을 박듯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내 강한 말투에 좀 놀란 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엘릭서를 마시는 건 가문으로 돌아간 다음이 되겠습니다만, 그때 부탁드리죠.〉
〈지금 마시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네. 가주님께서도 진노해 계실 터이니, 저도 조금이라도 동정을 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시발, 따라가는 나까지 불길해지는 소리는 하지 말지?
내 얼굴이 미묘하게 썩창이 됐는지 프리모르는 픽 웃었다.
〈노르드 님이 신경쓰실 건 없습니다. 반지의 해주도 완료되었으니, 가문의 마차가 오는대로 떠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프리모르도 호위를 데리고 마찬가지로 응접실을 떠났다.
응접실에 나랑 자신만 남게 되자, 집주인 대리이자 중재자 역할로 남아있던 셀레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후후후. 저였으면 20골드에 팔았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