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동안 기차 화통을 삶아드셨나. 귀청 떨어지겠다.
마나로 예민해진 귀가 조금 따가워졌지만, 내 귀들은 예민해진 만큼 튼튼해지기도 했기에 버틸 만은 했다.
프랑처럼 룬 마법으로 평소 이상으로 강화한 게 아니니까.
“어서 오십셔. 기다렸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그만큼 괜찮은 계약서가 완성됐답니다!!”
셀레나는 잉크도 덜 마른 계약서를 들고 착석했고, 그렇게 우리는 상대가 쓴 계약서를 읽었다.
셀레라는 참새를 노리는 여우 같은 눈빛이었다. 나 역시도 예리한 눈으로 계약서를 살피는 척을 했다.
그래, 맞다. 살피는 ‘척’을 했다.
아예 안 읽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좀 건성으로 읽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 거래에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셀레나가 써 온 계약서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르드 씨의 계약서…… 처음 보는 거래 방식이군요.”
그때였다. 내가 기대하던 그대로, 셀레나는 나의 계약서를 읽다가 눈을 찌푸렸다.
그녀의 입술이 계약서의 한 줄을 읽었다.
“이, ‘로열티?’…… 라는 것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단지 자세한 내용은 계약서에 쓰인 대로에요. 이 로열티란 제가 새롭게 생각해 본 이윤공동창출법입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며 지구의 계약법을 하나 꺼내들었다.
로열티(Royalty).
지구에서도 자주 사용되던, 저작권에 관한 계약이다.
‘내가 셀레나한테 계약서에 대해서 몇 수 배웠다고는 해도, 그걸로 진짜 전문가한테 깝치는 건 미친 짓이지.’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비유하자면 셀레나가 【게르튀르】의 기술을 몇 가지 배우고 나랑 맞다이 뜨자고 하는 거랑 비슷한 일이었다.
내가 상거래에서 셀레나를 상대로 우위에 설 방법은 없다.
──어디까지나, 정석대로라면 말이다.
‘나 같은 신삥이가 전문가랑 싸워보려면, 싸움의 룰 자체를 바꿔버려야 해.’
아마추어가 프로 바둑 기사랑 승부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여러 개가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까짓거, 바둑에다가 오목의 룰을 추가해 버리면 그만이지.’
나는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음충맞게 웃었다.
이세계에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굳이 찾아보면 마법사 길드가 마법 술식의 소유권을 가진 정도고, 이것도 국가의 법령은 아니다.
마법사 길드의 기밀 유지는 어디까지나 보복이나 응징으로 유지되는 것일 뿐.
길드에서 돈 받고 파는 상품을 불법으로 유출한 놈을 찾아가서, 길드 차원에서 씹창내는 게 다였다.
다른 길드들도 대략 비슷한 방식이다.
표절에 대한 제재가 법이 아닌 주먹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기에 로열티── ‘제작법을 판매하는 대가로, 발생하는 흑자의 일부를 지급한다’는 개념은 완전히 이색적이겠지.
‘기존의 룰이 난장판이 되면 승산은 5:5대에 가까워져.’
평범한 계약에 ‘로열티’라는 개념이 섞이면 어떻게 될까.
오목이 더해진 바둑이라니? 그야 존나 재미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마추어라 하는 얘기고, 프로 기사(棋士)로서는 좀 많이 어이가 없겠지.
그럴 수밖에. 바둑알 5개가 연결되면 승리인데, 집이 몇 개이니 수 싸움이 어떠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셀레나가 난색을 표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덮어놓고 거절하자니 이치에 맞는 제안이고, 우리 관계도 신경써야 해서 싫다고 잡아떼기도 어렵다.
게다가 ‘엘릭서의 제작법’ 같은 건 금액 책정도 어렵다.
공공연하게 팔려나간 전례가 없는 물건 아닌가.
예전에 나는 엘릭서의 제조법은 엘릭서 1000병 값이라는 농담을 했었는데,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건 불가능하다.
‘그 값을 주고 살 바엔 걍 소유자한테서 훔쳐가고 말겠지.’
죽이고서 뺏어가든, 그냥 몰래 쌔벼가든, 충분히 가능성을 따져볼 만한 일이었다.
헤르마이온 길드를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제조법은 그만한 물건이었다. 어떤 가격에 사고 팔아도 피차간에 찝찝할 것이었다.
“으음…… 네! 분명 제안은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결국 셀레나가 입에 담은 건 더 본질에 가까운 얘기였다.
“레시피를 분실했을 시의 배상 문제나, 설비를 갖추는데 들 금액의 책정이 거진 저희 길드에만 몰려 있는 건 탐탁치 않아요!! 저희의 우정이 고작 그 정도였나요, 노르드 씨!!”
눈물을 찔끔 흘려가며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하는 그녀.
얼핏 들으면 맞는 말도 같다.
제조법의 30%나 소실된 이 레시피로 엘릭서를 만들려면, 설비 비용을 빼놔도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이다.
어떤 재료를 얼만큼 넣어야 엘릭서다운 약효를 발휘할까!
그 답을 찾는 여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럴 리 있습니까? 다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제가 아는 상인들 중에서 셀레나 양 만큼이나 저와 긴밀한 관계를 쌓은 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팩트에 기반한 립 서비스를 짧게 발사하고서, 나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게다가, 지금 말씀은 다소 의외로군요.”
“네?”
“도난당했을 때는 저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시켜서 되찾으면 끝이고, 애초에 사본을 만들어서 원본을 엄중히 보관하면 될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본론 전에 잠깐 뜸을 들이고, 나는 속삭였다.
“──제 생각이 맞다면, 투자금에 관한 걱정은 따로 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한데요? 당장 이 영지에도 엘릭서가 무척 궁하신 분이 계시는 줄로 압니다.”
“……으흠!”
셀레나는 당연히 내가 꺼낸 얘기를 생각해 두고 있었는지,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어색한 미소를 띄웠다.
아이고, 이거 이 아가씨가 맹랑하시네. 나는 픽 웃었다.
‘투자금? 그거야 여기 영주한테서 받아내면 되잖아?’
디아볼로에게 끔찍한 처사를 당한 레나폴리스의 영주.
상처가 심한 그에게 더 이상 영지의 운영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모아둔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사실상 죽지 못해서 사는 상태!
‘돈만 많으면 뭐하겠어? 스스로 걷지도 못하고, 말하는 것도 힘든 몸인데.’
쓰지도 못할 금화만 쳐다보며 여생을 보내는 건 말도 안 된다. 쌓아둔 금화로 정신적 딸딸이라도 치란 말인가?
나였으면 그냥 남은 재산을 쏟아부어서라도 몸부터 치료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주한테서 투자를 받아내는 건 누워서 떡 먹기일 걸?’
사람은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니 말이다.
‘그게 아니어도 엘릭서 공방에 한 몫 끼고 싶은 귀족이라면 널렸을 거고.’
그들 중에서 믿을 만한 후원자를 선별하는 게 셀레나의 역할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후원자들한테는 로열티가 아니라 엘릭서 몇 병을 주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
‘대충 10병 정도면 투자금은 회수하고도 남지 않겠어?’
나와 셀레나의 계약 내용을 모르는 그들은 투자금 이상의 엘릭서를 받아낼 수 있다면 만족하겠지.
할 말을 끝낸 나는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고 기다렸다.
그건 나랑 셀레나 사이의 우정과 비지니스 관계를 염두한 배려였고, 셀레나도 그걸 눈치 못 챌 사람은 아니었다.
“크으으으……!! 그래요, 좋아요!! 알겠다구요!!”
분한 듯 가슴을 치던 셀레나는 결국 내 제안에 승복했다.
한 번 정하면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분함이나 아쉬움을 떨치고 상남자처럼 웃어젖혔다.
“로열티! 나쁘지 않네요! 소유권은 상대방에게 있지만, 이윤을 창출하려면 서로가 서로를 믿는 운명공동체여야 한다! 네, 마음에 들었어요!! 아─ 핫핫핫핫!!”
“흐흐. 거래 성립이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청했다.
물론 이 다음에도 세세한 부분을 꼬치꼬치 따져가야겠지.
아마 본격적인 내용은 셀레나의 계약서를 기반으로 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로열티의 개념이 통과된 것만 해도 선승(先勝)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셀레나도 우리 사이가 나빠질 만큼 탐욕적으로 구는 건 불가능하니까.
─꽈악.
돈 앞에 하나가 된 우리는 굳은 악수를 나눴다.
저 로열티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그치만 이제 못해도 생활비나 연구비를 갖고 궁색을 떠는 일은 없어지겠지.
나한테는 그거면 충분했다.
“그나저나, 노르드 씨?”
그렇게 내가 속으로 기쁘게 웃는데, 셀레나는 웃는 낯으로 질문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이 로열티라는 개념에도…… 로열티가 필요할까요?”
그야말로 기대감에 넘치는 눈빛이었다.
아마 사과가 떨어지는 걸 발견했다는 위인전 속의 뉴턴도 이렇게 눈을 번쩍거리지는 않았을 듯 하다.
“……푸핫! 크흐흐흐!”
나는 셀레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웃음보를 터트렸다가, 손을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필요 없습니다. 다른 분들이랑 계약할 때도 맘대로 빌려다 쓰십쇼. 황제 폐하의 눈 밖에 나지 않는 선에서.”
“정말인가요!! 와아, 감사해라!!”
그렇게 대답해 주자 셀레나는 순박하게 웃었다. 나랑 다시 만난 이후로 가장 밝은 미소였다.
법적 효력도 없이 저작권을 주장하는 건 어렵겠지만, 이번 계약에서 배운 경험을 어떻게 살릴지는 그녀 나름이겠지.
아무튼 간에, 상인이라는 건 돈에 미친 사람이 아니면 못 하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