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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77화 (377/1,009)

“이거 한시바삐 움직여야겠어요!! 다쳤다고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셀레나는 그리 말하면서 완성된 계약서를 갖고 떠나갔다.

뭔가 굉장히 바빠 보이는데, 나야 뭐 정기적으로 연금 타듯 들어오는 날을 다나 쮸쮸 빨면서 기다리면 될 일!

일을 전부 끝낸 나는 흥겹게 하렘방── 아니, 손님방으로 돌아갔다.

“나 왔어. 프리실라는?”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

“와우, 리을리?”

보니까 베로니카의 무릎에서 코 자고 있다. 내 베개를 끌어안고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미안하네.’

그치만 프리실라는 애기야…… 굳세게 키워야 돼…….

“응?”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보자, 무슨 일인지 우리 방으로 찾아와 있는 손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보상인 모드로 저택의 밥을 축내던 캐서린이었다.

〈어, 마침 잘 됐다. 캐서린? 잠깐 얼굴 좀 보자.〉

〈네? 앗, 네.〉

내가 손을 까딱거리자 그녀는 군말없이 따라나왔다.

나는 우리방 문을 닫고 미네르바한테 받은 선물을 꺼냈다.

〈너, 이거 어떻게 쓰는지 혹시 아냐? 효과는 설명서 보고 알았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더라.〉

〈아…… 수액형 호박 계열의 보물인가요?〉

훔칠 물건을 탐색하는 괴도 정보상인답게, 캐서린은 내가 꺼낸 물건의 가치를 금방 알아차렸다.

〈매직 아이템을 만들 때 녹여서 흡수시키면 되요. 물론 꽤 실력이 필요한 일이라서, 함부로 시도하셨다간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시고요.〉

〈그래? 고맙다.〉

나는 〈쌍성의 호박〉을 챙겨넣었다.

어디에 쓸지는 이미 정했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도 있다.

이왕 얻은 거, 잘 써봐야지.

〈그리고 조만간 네 언니랑도 인사하려는데, 괜찮냐?〉

〈아, 곧 떠나신다고 듣긴 했는데요. 편지 한 통이면 되지 않겠어요?〉

약간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대답하는 캐서린.

나는 꼴마초 거짓말 탐지기에 삐리릿 하고 반응을 느꼈다.

〈야, 니들 설마……〉

〈오, 오오, 오해하시는 것 같은 일은 안 했는데요!〉

캐서린은 소리를 빽 질러댔다.

〈그냥 그 있잖아요? 도시가 난장판이 됐으니까, 적당히 이 소란을 틈타서 쪼오끔…… 아시죠?〉

〈얼씨구.〉

나는 골치가 아파졌다.

치안이 무너지면 도적이 횡행하는 게 자연의 이치라지만, 이 녀석들은 아직 자기들 처지를 이해 못 한 모양이었다.

〈이보세요, 여동생 괴도 씨. 너네들 저번에 나랑 경매장 턴 거 기억 안 나?〉

〈네? 아, 물론 기억 나죠. 저희 작업 중에서 최고로 스릴 넘치는 하루였는걸요.〉

스릴이라신다. 존나 이거 진짜 푼수떼기네.

나는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는 걸 파악하고서 말했다.

〈그러면 이 멍청아. 느그들이 다음에 괴도 자매로 잡히면 형량이 얼마나 나올 것 같냐?〉

〈……느에?〉

스릴 같은 소릴 하던 캐서린은 머리에 얼음물을 끼얹어진 것처럼 흥분이 사라졌다.

〈그, 그치만 훔친 물건들은 제대로 주인들한테 돌아간 거 아녜요?〉

〈돌아간 건 돌아간 거고, 너희들이 자수해서 돌려줬냐? 그 장물들이 디아볼로가 점령한 저택에서 발견됐으니, 너는 귀족 살해 미수 및 영지 습격사건의 주모자인 흑마법사랑 공범으로 간주할 걸?〉

〈느에에에에엑──?!〉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존나 어울리는 꼬락서니로 경악하는 캐서린.

여기에 오드리가 없는 게 유감이다. 리액션이 무지 찰져서 그런가. 걔는 또 어떻게 놀랄까 궁금해지네.

그녀는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날 붙잡고 눈물을 터트렸다.

〈그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오오! 사전에 그런 말씀은 안 하셨잖아요오오!!〉

〈당연히 안 했지. 그래야 니들이 날 따라올 거고, 끝나고 나서도 다시는 도둑질을 안 할 테니까.〉

눈물로 습기찬 캐서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거기 담긴 감정은 감동이나 놀람이 아니라, 배신감이다.

〈처,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계셨군요?!〉

〈내! 맞워요~!〉

나는 팔을 쫙 펼치며 대협처럼 껄껄 거렸다.

〈제 버릇은 남 못 준다지만, 설마 잡히면 인체의 신비전 찍게 생겼는데 도둑질을 하겠어? 이번 경험을 발판으로 다음부터는 착실하게 살려무나!!〉

〈히야으오헤오아에…….〉

─풀썩.

캐서린은 현실을 알고 힘이 빠진 것처럼 쓰러졌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댄디한 목소리로 그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디 가서 내 이름 팔 생각은 말렴. 사건을 수습한 주도자가 나라서 말해봤자 아무도 안 믿어.〉

〈그 정도는 저희도 알거든요오오…….〉

〈걱정 마. 정보상인 하면 되잖아? 아니면 능력을 살려서 딴 일을 찾아봐도 되고.〉

〈저희가 괴도 말고 무슨 일이 가능한데요오…….〉

고건 고렇지.

나는 울먹이는 캐서린을 위로할 멘트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전투가 안 되니까 모험가는 불가능하겠고.’

탐험가도 비슷한 이유로 난항을 겪겠지.

합법적으로 도둑질을 해도 되는 흑마법사 같은 놈들은…… 흠.

‘찾는 것부터가 일인데다가, 대부분 거지 새끼들이라서 털 가치가 없겠군.’

나는 그렇게 따져보고 상냥하게 웃었다.

〈그걸 찾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 아닐까?〉

〈씨이, 할 말 없다고 개소리야…….〉

어허, 개소리라니. 맞는 말을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잖냐.

내가 어깨를 으쓱해 주자 캐서린은 그냥 엎드려서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니 말대로 오드리한테는 편지 한 통 써 놓을게. 나중에 받아가.〉

나는 캐서린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고 일어났다.

〈아, 맞다. 이 얘기부터 하고 건네주면 읽지도 않고 찢을 것 같으니까, 괴도 폐업은 편지 읽고 나서 알려줘라?〉

〈흐으으, 알게써여…….〉

울면서도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괴도라는 일은 스스로 관두느냐, 잡혀서 ‘관둠’ 당하느냐의 갈림길 아니겠는가.

괴도 짓을 하다 보면 늦으나 빠르나 이렇게 될 처지였다. 그녀들도 그건 알고 있었겠지.

오히려 이것이 헤스왈드 자매에게도 가장 평화로운 은퇴일 것이었다.

‘이렇게 또 두 사람의 경범죄자가 선한 길로 들어서는군.’

나는 흐뭇한 미소로 그 등을 바라보았다.

이세계는 범죄자들에게 냉정하다.

나도 살인범을 상대로는 얼마든지 가혹해지는 마초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아직 죄를 갚고 잘못을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 않은 경범죄자!

그렇다면 형벌과 함께 교화를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머지않아 지구로 돌아갈 21세기 코리안 강북호에겐, 가끔 이렇게 고향의 습성을 되살려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좆부랄럼의 귀족 씹새끼들은 조금 털려도 되지 않을까?’

며칠 상대해 본 로마니아 귀족들이라면 그래도 싸다.

절대왕정 로마니아에선 귀족들이 도난맞은 돈을 메꾸려고 세금을 올리거나 영지민들을 수탈하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헤스왈드 자매 때문에 큰 피해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 몰라. 이만 하면 내 선에서 할 건 다 했어.’

어떤 범죄가 어떻게 처벌받아야 하냐니, 그런 센시티브한 범죄학개론은 나랑 안 맞는다.

죽거나 다친 사람만 없으면 됐지 뭐.

양지에서도 좋은 직업을 찾길 기도해 주자.

***

헤스왈드 자매가 올바른 길로 들어선 다음날.

장장 며칠 동안, 나는 셀레나에게 붙잡혀서 레나폴리스의 사방으로 끌려다녔다.

‘웨 내가 엘릭서 사업의 밑준비에 크리쳐처럼 따라다녀야 하는 것?’

알 수가 없어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셀레나는 웃음이 빵 터져서는 대답했다.

“아─ 핫핫핫핫!! 노르드 씨의 이름값을 빌리는 거에요!!”

내 이름값이라고?

나는 그 소릴 들었을 때는 의문으로 느꼈지만, 며칠을 더 시달려보고 나서 눈치챘다.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잦았던 것이다.

하늘에서 거인이 내린다니? 레나폴리스 사람은 물론이고, 로마니아 전국에 알려져도 이상할 것 없는 스캔들이다.

그래서 그 일을 해결한 정체불명의 이중국적 옐로 몽키의 존재도 널리 알려졌다.

그럴 만 했다. 당장 내가 싸우는 걸 본 사람이 몇 명인가.

디아볼로를 족칠 때도 혼자서 메인 탱커를 맡았지.

티르시 레이드도 공략대로 솔플했지.

끝에는 가죽 욕심에 요툰 잔당 사냥까지 나섰다.

영지민들이나 병사들도 내가 그 가죽 괴물들을 원샷원킬로 따버리는 걸 봐 버렸다.

일이 그렇게 되자 소문이 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예전에 내가 유니콘 가슴에 칼을 꽂아줬던 것도 있어서, 그 피부 노란 꼴마초 창쟁이의 이야기는 거의 레나폴리스의 도시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존나 상전벽해로군.

“근데 제 브랜드 값이 도움이 돼요?”

“공동창업자로 이름을 올려드리면 된답니다! 당신과 적대해 가면서까지 저희를 방해하려면 무척 용기가 필요하겠죠!!!”

그렇다는 모양이다.

공방이 완성되고 레시피가 복구될 때까지, 비밀리에 사업을 준비할 시간을 벌려는 걸까.

‘건드리면 저 미친 원숭이가 나설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그게 몇 달 정도만 유지돼도 셀레나한테는 개꿀인가 보다.

‘까놓고 보면 나는 양봉업자 셀레나한테 꿀 받아먹는 곰 쯤 되는 위치인데 말이지.’

그럼 이 순회는…… 어…… 말하자면 곰의 영역표시 같은 건가? 존나 양봉업자가 아니라 포켓몬 마스터였네.

물론 꿀벌 일은 셀레나가 고용할 일꾼들이 해 주겠지.

내가 직장이 무너진 YOU들의 고용창출에 도움 드렸다. 늘 감사하십시오. 4대보험? 그건 헤르마이온 길드에 물으시고.

아무튼 그렇게 실딱이 모험가 노르드는 하루 아침에 교수 슬레이어에서 스타일리시 흑마법사 슬레이어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거 출세인가? 존나 아무리 생각해도 좌천 같은데?

‘그도 그럴게, 돈이 안 되는 실적에는 가치가 읎자너?’

이게 뭐 고고학계나 모험가 길드에서 진급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쓸데없이 이 이름값 땜에 흑마법사들한테 공공의 적만 되는 건 아니려나 몰라. 안 그래도 한 마리 놓쳐서 찝찝한데.

다음부터는 흑마법사랑 만나면 선택지에서 ‘대화하기’ 커맨드에 잠금 걸려 있을 듯.

아니 뭐, 흑마법사를 상대로 대화로 해결을 본 적은 없긴 하지만 말이다.

“씨발. 이제 의뢰도 끝물인데 일을 해야 할 줄이야…….”

힘을 낼 이유는 충분하지만, 오랫만에 출근이나 등교하러 나가는 기분이라서 조금 좆 같았다.

게다가 바쁘다고 마냥 일만 하면 안 되는지라, 아내들과의 적절한 커뮤니케이션도 취했다.

그 왜, 의사처럼 돈 많이 버는 직종이 의외로 부부 간의 금술이 안 좋다잖은가.

부부 간에 서로 얼굴 볼 시간이 너무 적어서 그렇다나.

‘아내들이랑 거리감이 생기면 안 되지.’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진짜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반지하에서 알콩달콩 하렘 차리기 VS 펜트하우스에서 혼자 호화롭게 딸치기. 당연히 닥전 아니냐?

그래서 셀레나의 사업 준비에 ‘거래 성사율 +30%’ 정도의 능력치가 달린 크리쳐로써 따라다니는 한편, 나는 짬이 나는대로 아내들이랑도 열심히 어울렸다.

라리루라랑 손가락이 익사체처럼 불어터질 때까지 욕조에 잠겨 있거나.

베로니카가 ‘그러고보면 나만 그대와 단 둘이서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구나?’ 같은 소리를 해서 데이트 계획을 짜거나.

프랑이 배달 온 거인 가죽을 만져보며 옷 도면을 짜는 걸 구경하고, 어깨를 주물러 주거나.

다나가 저 거인들이랑 역사 속 요툰들을 비교해서 적당한 논문을 써 보겠다는 걸 돕거나.

그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수수께끼의 괴도 오드리 헤스왈드로부터 ‘이 편지는 로마니아에서부터 시작되었고……’로 운을 떼는 행운의 편지를 작별 인사 대신 받은 날.

아르마알스 가문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니, 아니지. 약간 말이 잘못됐다.

〈프리모르는 여기 있나.〉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왔다.

집사, 메이드, 기사, 노예 등등.

대충 봐도 50명을 넘는 사람을 대동하고서,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老紳士)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부(媤父)가 왔다고 전하도록.〉

현 원로원 상원의원.

황제의 바로 뒤를 잇는 로마니아 최대의 권력자.

아르마알스 가문의 당주.

누가 봐도 휘황찬란한 타이틀만 쏙쏙 골라서 자기 이름을 장식한 위대한 귀족.

프리모르의 시아버지, 코르넬리우스 폰 아르마알스였다.

셀레나가 머리를 쥐어뜯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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