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릭서 사업 설계로 바빠 죽을 듯한 이 시기.
원로원 상원의원이 저택을 찾아왔다는 초유의 사태에, 셀레나는 중대에 별이 떨어진 중대장처럼 기겁을 하고 말았다.
대처법을 고민할 시간도 없었겠지만, 다짜고짜 찾아오는 귀족에도 적응한 것일까.
셀레나는 생각보다 깔쌈한 대응를 했다.
상원의원이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프리모르에게 그 대처를 일임한 것이다.
당연히 프리모르가 오기 전까지 집 주인 대리로서 코르넬리우스를 환영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겠지만, 그 자리에 내가 불려간 건 아니었기에 어떻게 됐는지까지는 몰랐다.
“여보님들아, 준비하고 있자.”
나는 창문으로 정문을 쳐다보다가 겉옷을 챙겨입었다.
노신사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정문 앞에서 굳건히 기다렸다.
분명 저 일행은 우리와 프리모르를 가문으로 데려가고자 온 거겠지.
‘설마 가주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우리도 불려나갈 것을 생각하면, ‘불리는대로 따라나가서 출발할’ 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딱 들어맞아서, 우리는 프리모르를 따라 정문 앞까지 불려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한층 더 바글바글 거리는 무리일세.’
누가 한 나라의 최고위 권력자 아니랄까봐, 호위기사들도 하나같이 존나 쎄 보였다.
최소 미스릴 클래스는 될 듯한 풀 플레이트 메일의 기사가 보이는 듯한 느낌은 내 착각이 아니겠지.
전투력 인플레이션 오지네. 야무치가 된 기분이다.
〈……아버님.〉
대표로 나선 프리모르는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어쩐 일로 편지 한 통 없이 친히 찾아오셨습니까……?〉
〈그러는 너는 어디 말하고 떠났더냐? 사후통첩이라도 되는 양, 편지만 두고 떠난 녀석이 별 걸 다 묻는군.〉
시리도록 차갑고 메몰찬 말투였다.
─흠칫. 프리모르가 어깨를 떨었다.
〈장례가 채 끝나지도 않았건만 어딜 쏘다니나 했거늘…… 가문의 기사들을 데리고 나가서 복수를 해? 그게 귀족가의 안주인이 할 일이더냐?〉
노신사는 말뽄새부터 동작 하나하나까지 싹 다 날카롭게 선 칼날 같았다. 보는 내가 다 침이 바싹 마른다.
그냥 졸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프레셔!
그게 좋든 나쁘든, 태어날 때부터 키우고 자란 신념 같은 게 있는 사람에게 나오는 카리스마였다.
슈퍼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게 이런 건가.
프리모르는 침착하고 기품 있는 자세였지만, 잘못을 아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게 침울하던 눈빛은 노신사의 다음 말에 부릅뜨였다.
〈이미 이혼 절차가 진행 중에 있다. 네 친가와도 상의가 끝났지.〉
〈……네?〉
〈몇 달 후부터는 나를 아버님이라 부를 이유도 없겠군. 그 동안 어디에서 머물지는 스스로 정해도 좋다. 출가 중에 만난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상관 없다.〉
─슬쩍.
노신사의 눈빛이 잠시 나를 겨눴다가 원위치로 돌아갔다.
이혼을 언급하는 그는 마치 아파트 단수 일정을 통보하는 경비원처럼 시큰둥했다.
그러자 프리모르는 목소리를 쥐어짜내듯 입을 열었다.
〈이, 이혼이라뇨? 저는 그이와……!〉
〈상호 간의 자식도 없고, 혼약한 기간도 지극히 짧았다. 네 결혼식을 거행한 당시부터 이미 흑마법사에게 탈취당했다는 결론도 나왔지. 파혼 사유로는 충분하군.〉
〈아니오! 조금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프리모르는 지팡이를 짚은 노신사에게 항의하듯 외쳤다.
〈자유 따윈 바란 적 없습니다! 복수를 꿈꾼 날부터, 저는 남은 삶을 낭군님께 바치겠다고──〉
〈내 아들의 장례식 중에 빠져나왔으면서 말이냐?〉
그녀의 입이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닫혔다.
〈……네 이야기가 세간에 퍼다하다. 남편의 장례식 중에 도망친 신부라고. 내가 친히 사실이 아님을 공표했으나, 어떤 추문이 돌고 있을지는 네 자신이 가장 잘 알겠지.〉
노신사는 그런 프리모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새 남편을 찾아서 가정을 꾸려라. 너는 이제 우리 가문과 무관하니.〉
정말 일말의 온정도 느끼지 않는, 선을 긋는 듯한 눈과 말이었다.
프리모르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못 했으며, 그걸 지켜보는 기사들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흠.’
하지만 나는 눈치를 챘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저 노신사의 눈빛에는 프리모르를 향한 분노가 경멸의 감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감정이다.
연민, 그게 아니면 미안함일까.
내가 뭐 궁예도 아니고, 사람 눈깔만 보고 속내를 알아챌 수는 없다. 그게 되면 돗자리 폈지.
근데 내가 미륵까진 못 되지만, 신의 눈을 가진 마초이긴 하잖은가?
뭣보다 이혼 통보를 할 거라면 직접 올 것까지도 없다.
코르넬리우스는 프리모르가 이혼한 후에도 새 인생을 살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흐으으음?’
근데 그밖의 사정까지 전부 눈치까고 말할 타이밍만 잡던 내가 보기엔, 이 대화는 싸그리 무의미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앞으로 나섰다.
〈담화 중에 실례합니다, 가주님. 예의를 모르는 야인(野人)에게도 한 마디 거들 영광을 주시겠나이까?〉
〈……자네는?〉
다 알면서 뭘 물어. 나는 착해 보이는 미소를 의식하면서 대답했다.
〈이번에 프리모르 님께 초청받은 노르드라고 합니다.〉
〈그렇군,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했나? 말해보게.〉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가주님의 말씀에서 조금 의아한 점을 발견해서 말입니다.〉
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표정은 변화가 없는데 눈에서만 레이저가 나올 것처럼 변한 것이다. 존나 신기하네.
〈무슨 뜻이지? 설마 내 며느리의 정절을 의심하는가?〉
〈아니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회심의 패를 던졌다.
잼민이 시절, 친구랑 유희왕을 하며 함정 카드를 발동할 때처럼 말이다.
〈──혹시 프리모르 마님께서, 이미 회임(懷妊)하셨을지도 모릅니다.〉
***
나의 그 말에 저택의 정문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크으, 반응 봐. 진짜 나 아니었음 어쩔 뻔 했어? 응?’
하지만 나는 그 사실에서 조금의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의 추리력에 새삼 감탄하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사악한 무뢰배로 볼지도 모를 만한 웃음이었다.
프리모르가 임신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염두하게 된 건, 티르시가 깨어난 날에 처음으로 〈강림〉의 일기장을 읽은 직후였다.
‘일기장에 따르면, 〈강림〉의 조건은 초대 원로원 가문의 혈족이 네 명 이상 모이는 거였지.’
그런데 의식 당시에는 고작 세 명밖에 없었다.
티르시, 시냐티오, 레나폴리스의 영주.
이렇게 세 명뿐.
하지만 디아볼로 새끼는 우리가 찾아왔을 때, 〈강림〉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건 다시 말해서, 그 씨팔쉑은 처음부터 네 번째 인물── 프리모르가 임신한 아이의 존재를 눈치깠다는 뜻!’
물론 의식이 개량되면서 변경된 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 사실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증거가 많았지.’
최근 그녀의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여도적의 언급도 있다.
프리모르가 힘들어하자 디아볼로가 사람을 시켜서 그녀를 보살피려고 했다고도 했었고 말이다.
거기에 드문드문 감정적으로 굴던 프리모르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99% 확실하다.
‘귀부인이 복수를 하겠다고 직접 나서놓고, 정작 그 남편이 준 반지는 그냥 버려버리려고 한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그런 충동적인 행동이나 컨디션 난조도, 임신한 상태여서 그랬던 거라면 설명이 된다.
감정 기복은 임신 초기의 입덧에서 자주 보이는 증세니까.
‘여기까지 알면 결론을 내는 건 개껌 아님?’
나는 자신의 뇌지컬에 흐뭇하게 웃었다.
〈강림〉 의식을 성사시킨 마지막 인물은 바로, 프리모르의 뱃속에서 자라나고 있던 태아였던 것이다!
〈이, 이이, 이이이……!!〉
부르르르……!!
나는 그런 내용의 추리극을 기똥차게 펼쳐보겠다고 입술에 침을 발랐는데, 코르넬리우스가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이? YEE? 뭐라는 것이지?
내가 고개를 모로 꼬았을 때, 그는 갑자기 눈에서 번갯불을 튀겨가며 칼을 뽑았다.
〈이 때려죽일 개 놈의 새끼이이이잇──!!!〉
〈아닛?!〉
─스릉!
그가 짚고 있던 지팡이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신사답던 태도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악귀나찰을 방불케 하는 면상의 코르넬리우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너무나도 좋은 소식에 기뻐하다가 그만 주화입마에라도 들었단 말인가?
〈감히 우리 며늘아가르으으으으으으으으을──!!!!! 절대로 용서 못 한다아아아아악──!!!〉
코르넬리우스는 정신병 환자의 비극적인 병세를 악의적으로 비하하는 듯한, 무차별적이고 착란적인 칼부림을 일으켰다!
조금의 장난기도 없는, 100% 진심인 살기!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혼란과 당황 속에서 일단 공격을 피했다.
〈브, 브릿지 회피!!〉
─부웅!! 내가 허리를 뒤로 젖히자 날이 바짝 선 칼날이 내 모가지가 있던 곳을 훑고 지나갔다!
이 씨발!! 저 미친 노친네, 방금 진짜로 죽이려 들었어!!
〈쯔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와아아아아아아압──!!〉
〈으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