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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83화 (383/1,009)

─딸랑딸랑.

노르드가 집무실을 나간 뒤, 코르넬리우스는 벨을 울렸다.

〈호위를 교대하겠네.〉

핸드벨 소리를 듣고 찾아온 집사장에게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기사단장에게 눈짓했다.

기사단장은 그 뜻을 눈치채고 말했다.

〈상급기사 켈르트르를 부르시지요. 그라면 저를 대신하여 목숨을 걸고 가주님을 지킬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집사장, 데려오게.〉

기사단장은 노르드에게 가르침을 줘야 했기에, 그를 대신할 호위를 부른 것이다.

집사장이 교대인원을 부르러 나가자, 코르넬리우스는 턱수염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가르침이라. 어떻게 생각하나?〉

〈짐작하건대, 다음 경지에 대한 갈망일 것입니다.〉

기사단장도 생각하던 의문이었기에 그의 대답은 신속했다. ─톡톡. 코르넬리우스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쳤다.

〈한층 강해지고자 가르침을 청했다는 말인가? 듣던 바로는 그도 자네 못지않은 실력자일 텐데.〉

헤르마이온 길드장의 저택을 방문하기 전, 코르넬리우스는 레나폴리스의 어느 유명한 해결사 사무소에 사람을 보냈다. 프리모르가 편지에 적어보낸 노르드라는 이방인의 위업이 그만큼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보상인을 겸하는 캐서린 헤스왈드라는 여인은 어디론가 떠나려던 차였지만, 그가 보낸 하인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알 수 있었던 것은 딱 거리에 퍼진 정도의 정보였다.

하지만 코르넬리우스에게는 그 정도의 정보로도 충분했다. 노르드는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검술 실력으로 명예귀족에 오른 남자를 해치우고, 창칼이 통하지 않는 거인을 일격으로 사살하던 오러 사용자일세. 저 수준의 달인이 고작 가르침 몇 마디에 연연할까?〉

코르넬리우스도 그 흉측한 거인의 흉포성에 대해서는 귀동냥으로 들은 바 있었다. 레나폴리스에서 거인을 사냥하고, 그 가죽을 획득한 귀족들이 벌써부터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장비 소재로도 일급품인 가죽이다. 강한 빛에 취약하다는 게 조금 문제이긴 하지만, 그 점도 장비로 가공하기 전에 적절한 마법을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노르드는 그런 강인한 가죽으로 몸을 감싼 괴물을 단 1합의 기술로 몰살했다.

오러 정도가 아니면 베이지도 않는 가죽의 몬스터를, 방금 전투를 치르고 온 몸으로 몇 마리나 해치웠다는 것이다. 목격정보도 한둘이 아니었기에 사실이라는 증거도 확고하다.

〈미스릴 클래스만한 실력자라면 이제 와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크게 변하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가 노르드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하사하기는 힘들 것 아닌가.〉

〈그 점은 사실이니 미안해 하실 것 없습니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일지도 모르죠.〉

한계에 맞닥뜨린 전사가 벽을 넘을 방법을 강구하는 마음은 그만큼 절박한 법이었다.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였기에 확신하는 것이었지만, 기사단장은 구태여 그 사실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사단장은 미스릴 클래스에 오른 뒤로 무려 7년 이상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의 실력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성장이 지진부진하다는 사실은 전사로서 가슴이 무거워지는 일이었다.

마스터 클래스의 벽은 그만큼 높다. 노르드가 기사단장과 비슷한 마음이라면, 수준이 비슷한 그에게도 가르침 정도는 청할 법 했다.

〈그런가.〉

코르넬리우스는 더 이상 깊게 고민하지 않고 납득했다.

그는 젊은 날에 검의 길을 포기하고서 가주에 뜻을 두었던 자신의 의구심보단, 충성스런 기사의 안목을 더 신용했다.

〈가문의 비검(飛劍)을 몇 줄 알려주도록 하게. 단, 하급 기사들에게 가르치는 범주로 제한하겠네.〉

〈예.〉

가주의 판단에 기사단장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 정도의 달인이다. 스스로도 가문의 검술이 품은 이치를 깨달을 것이야.’

하급 기사에게 가르치는 검술이라고 해서 얕볼 순 없었다. 가문의 검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핵심을 쳐내긴 했지만, 비검(飛劍)의 무리(武理)는 하급 기사의 검술에도 남아 있었다.

코르네리우스는 노파심에 말을 덧붙였다.

〈기술을 하나하나 봐주지는 말게. 핵심만 알려준 다음 자리를 비우게. 훈련 과정을 엿보는 건 예의가 아니야.〉

〈물론입니다. 자칫하면 노르드 님의 실력이나 습득력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알면 됐네. 나이를 먹으면 걱정만 늘더군.〉

코르넬리우스는 그렇게 말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너스레에 기사단장도 투구 속에서 미소지었다.

〈맡겨 주십시오. 노르드 님께서도 오러를 다룰 정도의 달인이십니다. 타고난 재능도 뛰어나실 테니, 필요 이상으로 가르쳐도 그 분의 시간을 헛되이 빼앗을 뿐입니다.〉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라면 자세하게 가르치려고 드는 게 더 쓸데없는 짓이다.

설마 노르드가 자신보다 한참 못한 수준의 기사들처럼 오러의 체계적인 습득 방법이라도 원하겠는가? 뛰어난 전사에겐 적당히 영감을 줄 정도의 수업만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그 점이 코르넬리우스와 기사단장이 공유하는 암묵적인 이해였다.

─똑똑.

〈가주님. 집사장입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집사장이 다음 호위를 데리고 돌아왔다. 기사단장은 코르넬리우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섰다.

─끼이익, 쿵!

경계할 사람도 없었기에 호위로 온 상급 기사는 집무실의 문 밖에서 경비를 섰다. 혼자가 된 코르넬리우스는 눈을 감고 방금 전의 대화를 반추했다.

로마니아의 원로를 상대로 주눅들지 않는 노르드의 자세는 몹시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겸손함을 모른다는 듯 구는 것도 아니었다. 언외에서 느껴지는 지성(知性)도 썩 마음에 들었다.

굳이 이러한 계기가 아니었어도 코르넬리우스가 노르드를 만났다면 그의 후원자가 되었을 것이다. 도움을 받기까지 한 지금이라면 가문의 문양 정도는 내 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르마알스의 이름을 사리사욕에 남용할 인물로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후우…….〉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인데, 떠오르는 것은 어릴 적의 추억이었다.

코르넬리우스는 어느샌가 감성적으로 굴고 있는 자신을 눈치채고 픽 웃었다. 아들의 죽음이 아직도 그의 가슴에 자책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운명이란 건 참 얄궂군, 레티시아.〉

로마니아의 원로는 다른 평범한 노인들과 같이, 젊은 날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시발, 좆 됐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말하자. 나는 지금 무척 좆이 돼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미친 재능충 새끼들이 이상하리만치 허들을 높여놨기 때문이다.

‘데에에에……?’

아르마알스 가문의 기사들이 연습한다는 연무장에서, 나는 몇 달만에 칼 한 자루를 쥐고 뒤통수를 후려맞은 허수아비를 방불케 하는 멍청한 표정으로 혼자서 서 있었다.

맞다. 혼자다. 나를 가르치겠다고 온 기사단장은 어디론가 가 버린지 오래였다.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가이우스 리터 베인입니다.

투구를 벗은 기사단장은 그렇게만 말하고서 나를 이 연무장으로 데려왔고, 아르마알스 가문의 검술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잘생긴 금발의 미남이었으며, 또 나랑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재능충이었다.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저희 가문의 검술에서 기초가 되는 일곱 동작입니다.

휙휙휙휙─!

붕붕붕붕─!

기사단장은 상쾌한 미소로 이름을 밝히고 내 앞에서 검을 딱 일곱 번 휘둘렀다.

나는 10초만에 대충 품새만 보여진 그 검술에 박수를 쳐 주었다. 당연히 한 번의 일련동작을 보여주고, 다음부터는 저 동작을 하나씩 설명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존나 안일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대충 3초 쯤 걸렸다.

─보셨죠?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훈련 힘내십시오!

─뭐요?

공중에 대충 칼질을 몇 번 한 기사단장은 그렇게 상쾌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잘생긴 낯짝으로 탈주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제서야 일이 어떻게 굴러간 것인지 깨달았다.

저 씨발럼은 나를 가르친다는 핑계로 근무 시간에 농땡일 피우려는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나는 맹렬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뭔가 오해가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에게 나를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적어도 검술의 동작을 설명하거나 여러 번 보여주는 정도의 정성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일뽕 과도비만 미국인이 일본도를 들고 깝을 치는 것처럼 지랄염병을 떨다가 진짜로 떠나버렸다!!!

“씨이이이발…… 그냥 돈이나 달랄 걸…….”

나는 몸을 떨고 치를 떨며 기사단장이 떠난 자리를 노려보았다. 감탄스러울만큼 훌륭한 월급 루팡이었다.

이래놓고서 내가 못 배우면 다이어트 보조 식품을 파는 홈쇼핑 광고처럼 ‘니가 못 해서 그런 건데 왜 나한테 지랄임??’ 하고 퉁칠 게 분명했다. 간만에 이세계 매운맛에 제대로 데인 기분이었다.

‘애1미. 오딘의 눈이라도 키고 있을 걸.’

그냥 눈앞에서 휘리릭 챱챱 하다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 마나의 움직임을 읽거나 할 타이밍도 없었다. 내 기억에 남은 건 칼을 들고 댄스 한 판 벌이다가 떠난 기사단장의 비웃음 뿐이었다.

달인급 전사를 상대로 사륜안으로 카카시 흉내나 내보려고 했는데, 까놓고 보니까 나는 그냥 록리에 불과했다.

이런저런 치트를 빼놓고 성실하게 결과를 내라고 하면 나는 노력의 천재밖에 되지 못할 것이었다.

로맛잎 마을의 통수는…… 두 번 친다…….

〈큭큭, 왜 그러십니까? 멍청하게 서 있고만 계시고.〉

그렇게 내가 엘리트라도 치밀하게 짜인 사기에는 어어 하는 사이에 당하는 수밖에 없구나~ 하고 회환에 잠겨 있자,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바리처럼 머리를 바짝 깎은 기사들이었는데, 이세계인답게 색깔이 형형색색해서 존나 웃겼다.

세상에 씨발! 파란색으로 염색한 빡빡머리 서양이라니!

나는 웃음을 참고자 입을 꾹 다물었다. 턱에 힘줄이 불쑥 솟아났다.

미친 놈들이 헤어스타일에서 개성을 드러낼 거면 잘생기기라도 하던가. 개그 센스가 딸린다고 피지컬로 웃기려고 드는 건 반칙 아니냐? 사람이 어떻게 도색하다 만 고구마처럼 생길 수가 있는 것이지?

〈이거이거, 저희는 엄청 대단한 전사라고 들었는데요? 왜 그러고 계십니까?〉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던 나는 그들의 찐고구마 같은 얼굴에서부터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대표로 나선 파란 고구마는 인종차별자 특유의 오만한 못생김을 안면에 띄우며 으스댔다.

〈어어? 왜 그러십니까, 그렇게 노려보시고. 저희한테 한 수 가르쳐 주시기라도 할 겁니까? 실버 클래스 모험가 님?〉

지들끼리 뭐가 좋다고 낄낄대는 고구마와 감자들.

노려본 게 아니라 너그들 얼굴 보고 빵 터질 뻔 한 거야, 병신들아.

‘……근데 이것들은 대가리가 많이 후달리나?’

웃음을 참아낸 나는 이번에는 의문을 느껴야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새끼들이 나한테 시비를 털려고 왔다는 건 분명했다. 지금은 엿을 먹어버리고 말았지만, 일단은 가문의 손님이자 가주에게 후원을 받는 나한테 말이다.

숫자는 넷 정도 되는데, 연무장에 이 새끼들 말고 다른 기사들은 없었다. 나는 그 점에서 대충 결론을 내렸다.

‘보충 훈련을 받으러 나온 병신들이군.’

원로원 가문 치고는 기사들의 수준 관리가 허접하군.

아니, 가만 보면 이 뿌리식물 새끼들도 나름 실력은 괜찮은 듯 했다. 물론 그 어줍잖은 실력이 비뚫어진 성격에 박자를 가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해 보았다. 이 개씹새들의 얄팍한 대갈통 상황을 추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아마도 이것들은 소문으로만 들은 내 실력을 의심하고 있던 거겠지.

자기들은 쉬는 날에도 훈련을 받으러 나왔는데, 감히 옐로 몽키 사기꾼 새끼가 구라를 까서 가주한테 후원까지 받는 게 아니꼬운 것이다. 말하자면 질투심이라고 하면 될까.

그렇게 아니꼽게 보고 있다가, 방금 기사단장한테 엿 먹는 꼴을 보고 진짜 만만해진 모양이다. 말뽄새는 그럭저럭 선을 지키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시비를 걸려고 들 정도니까.

출세를 하니까 이런 병신 같은 질시도 받아보는군.

〈……응?〉

그때였다. 나는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에 눈을 빛냈다.

‘기사단장이 대충 보여주고 튀었던 하급 기사의 검술이란 거…… 이 놈들도 쓸 수 있는 거 아냐?’

딱 보니까 수준 낮은 것들이다. 하급이든 중급이든 내가 질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반대로 이 새끼들한테는 좀 전에 몇 초만에 끝났던 검술의 자세한 부분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흑마법사 마피아 새끼한테서 뺏은 스킬 캡처도 있다.

내가 이 새끼들한테서 아까 전의 검술을 카피하고, 당신이 보여준 검술은 다 습득했다, 다른 건 없냐~ 하고 물어본다면 기사단장도 좀 더 가진 걸 보여줘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그 새끼의 오러 사용법을 훔치면 돼!’

좋다. 완벽한 계획이다. 나는 흡족하게 미소지었다.

〈즈기요, 까까머리 기사님. 나더러 한 수 가르쳐 줄 거냐고 물어봤죠?〉

〈예?〉

─챙그랑! 나는 검을 내팽개치고, 가장 좆 같이 굴던 파란 고구마에게 손짓했다.

〈덤벼 보십셔. 사내 새끼가 추하게 질투하지 말고.〉

먼저 도발기 걸렸는데 넘어가면 마초의 이름이 울지.

간만에 죽지 않는 선에서 진상 새끼 좀 패 보게 생겼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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