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알스 가문의 연무장.
노르드가 가문의 기사단장에게 오해로 인한 속성교육만을 받고 벙쪄 있을 때, 휴일에까지 끌려나와서 훈련을 하던 포에토 슬리트는 동기들에게 중얼거렸다.
〈……야, 저 새끼 마음에 안 들지 않냐?〉
〈뭐? 누구?〉
자기 단련에 집중하라는 이유로 머리를 빡빡 밀린 그의 동기생은 호기심에 포에토가 보는 방향을 따라갔다가,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가문의 빈객을 발견하고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커졌다.
〈포에토. 내가 눈이 삔 게 아니면, 여기서 우리 말고 ‘저 새끼’라고 말 만한 사람은 저기 계신 손님 뿐인데?〉
〈그래, 그니까 저 새끼. 재수없지 않냐고.〉
〈니 미쳤냐!〉
또다른 동기생이 포에토에게 낮게 으르렁거렸다. 실력이 영 모자라다며 주말까지 빼앗긴 자식이 가문의 빈객한테 저따위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운이 나쁘면 그들까지 연대책임으로 감봉이나 처벌을 받을지도 몰랐다.
아니, 그 정도면 그나마 낫다. 빈객에 대한 무례를 이유로 비검 기사단에서 쫓겨났다간 앞길이 막막해질 것이다.
손님에게 무례를 저질렀다가 쫓겨난 하급 기사를 맞이해줄 가문? 그런 곳은 뒤가 구린 곳밖에 없다. 화살받이로 쓰이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아마 틀림없이 모험가 같은 하루살이 인생으로 살아가야만 하겠지.
그것은 그들과 같은 3류 기사들에겐 자주 있는 말로였다. 어떻게 들어온 등용문인데 하급 기사로 끝날 수는 없었다. 모험가 길드의 술집에서 내가 소싯적엔 기사였는데~ 같은 소리나 하는 인생은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지만 포에토는 그런 그들이 갑갑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니, 이 멍청한 새끼들아. 딱 보면 몰라? 저 새끼, 하는 꼬라지만 봐도 순 사기꾼이잖아!〉
동기들은 이제는 안색이 새파래져서는 듣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히 저 검은 머리의 키타이 인 빈객은 듣지 못한 듯 했고, 그렇지 않아도 도련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기사단장이 빡센 훈련을 시킨 직후였다. 그들 말고 주말 단련을 나온 기사들은 없었다.
포에토는 그런 동기들의 침묵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입을 계속 놀려댔다.
〈봐. 그 깐깐한 단장님께서 왜 저렇게 건성으로 가르치고 떠났겠어? 아니지. 떠난 거야 둘째치고, 빈객이 연무장까지 왔다는 건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뜻일 거 아냐.〉
〈이유? 무슨 이유?〉
〈저 새끼가 사기꾼인 걸 단장님도 눈치채신 거라고. 그러니까 저 새끼의 실력을 보려고 여기 데려온 걸 게 분명해.〉
〈자기가 자청해서 온 걸 수도……〉
그렇게 말하던 포에트의 동기는 입을 다물었다. 손님으로 초대된 몸이지만 자기단련을 하려고 나왔다? 저렇게 멍하니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어대는 모습은 절대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다.
동기들의 눈빛에 의혹이 떠오르자 포에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사기꾼이면 끝까지 거절했을 거고, 진짜 가문의 후원을 받을 만큼 잘난 놈이었으면 왜 저러고 있겠어? 저건 일이 원하던대로 안 풀린 새끼의 전형적인 반응이잖아. 저 놈 억지로 끌려나온 거야.〉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교육을 받아온 포에트의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동기들은 머뭇거리며 반론했다.
〈무슨 더럽게 쎈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디아볼로 경…… 이젠 아니었지. 그, 임모르탈리스의 흑마법사도 이겼다는데?〉
〈새끼가 소식이 느리구만? 몬스터야 다른 놈들이 체력을 갉아놓은 걸 마무리지은 걸 거고, 디아볼로랑은 어디 혼자서 싸웠냐? 그 미네르바 장군님이 귀족님의 사병들을 지휘했단 얘기는 못 들었나 봐?〉
〈……단장님께서 저 새끼의 실력을 확인하려 하신 거면, 왜 옆에서 지켜보지 않고 떠나신 건데?〉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이제야 말이 통하네.〉
─딱! 포에트는 손가락을 튕겼다.
〈단장님도 어디서 숨어서 지켜보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저 새끼한테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 단장님도 본인의 뜻을 알아차렸다며 칭찬하실 걸?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진짜 실력자면 어쩌게?〉
〈씨발, 그렇게 쫄리면 가만히 보고 있던가. 적당히 예의나 차리면서 저 새끼가 빡치도록 살살 긁어주면 되잖아.〉
계속되는 반문에 열이 오른 포에트가 욕설을 뇌까렸다.
〈뭐가 그렇게 문젠데? 만에 하나 저 새끼가 진짜로 달인이어도, 적당히 가르침 감사합니다~ 하고 튀면 될 거 아냐.〉
퇴로까지 준비한 치밀한 계획─그들이 보기에는 그랬다─에 다른 동기들도 약간 혹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멍청하다는 듯 쳐다보는 포에트의 눈빛에 욱 한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입신양명을 꿈꾸며 기사가 된 것은 좋았지만, 다른 동기들 중 몇명은 진작에 중급 기사까지 승진한 마당에 그들은 아직 하급 기사였다. 상사의 좋은 평가에 목마른 입장인 것이다.
게다가 그들도 막대한 지원을 받아가는 후원 수혜자들의 대우에 대해서는 질투심이 없잖아 있었다.
하물며 자신들보다 실력도 못하고, 노력도 없이 방탕하게 사는 모험가 나부랭이가 거짓말로 그 혜택을 받아간다면?
그건 가문의 기사로서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추한 질투심을 접어두고서도 넘어가면 안 되는 문제였다.
〈큭큭, 왜 그러십니까? 멍청하게 서 있고만 계시고.〉
포에트의 동기들은 그렇게 변명하며, 자신의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는 포에트의 등뒤에서 킥킥거렸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안일한 판단을 후회하기까지는 10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검, 날은 안 세웠어도 철로 만든 건데요?〉
내 도발에 얼굴을 굳힌 게 거짓말인 것처럼, 파란 빡빡이 고구마는 으스대며 말했다. 내가 칼을 던져버리고 대련장에 올라선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는 척 놀려대는 것이었다.
〈급소는 피해 드리겠습니다만, 잘못해서 팔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시려고──〉
〈한 수 알려달라는 게 검술이 아니라 수다였습니까? 그럼 저보다는 가문의 메이드 분들께 부탁드려 보시죠. 아니면 진작에 들이대다가 까이고 오셨습니까?〉
이젠 맞다이 뜨면서 짬짬이 도발기를 날리는 것도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일까? 본능적으로 도발 커맨드를 꽂자 파란 고구마는 태극 무늬처럼 위아래로 빨갛고 파란 색이 되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슥. 날을 죽인 가검(假劍)을 곧추세우는 고구마. 시팔럼이 눈을 왜 그렇게 떠?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 전에, 저한테 핸디캡을 몇 개 걸죠.〉
파지지직─!!
내 손가락 위에 <번개의 화살(Lightning Missile)>이 하나 나타났다. 화살보다는 거의 투석구에 가까운 크기였는데, 생각보다 좀 커서 마법을 쓴 나도 약간 놀랐다.
‘쓰벌, 간만에 써서 위력 조절이 안 되네.’
그렇게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도록, 〈화살〉을 내 주변에서 한 바퀴 회전시켰다. ─콰르르릉! 위협용으로 폭발까지 시키자, 화살은 난폭하게 스파크를 튀겨댔다.
파란 고구마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아저씨, 칼 끝 떨려요.
〈이렇듯, 저는 전사이면서 마법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거리를 두면서 싸우면 기사님께 훈련이 안 되겠죠.〉
핑계를 댄 나는 손목에서 마나의 파이프라인을 뽑아냈다. 흑마법사 코뤤투스한테서 파쿠리한 흡성대법이다.
─촤악! 뻗어나간 초록색 마나로 나랑 파란 고구마의 손목을 밧줄처럼 연결했다.
〈이, 이게 뭡니까?〉
〈마나의 밧줄입니다. 길이는 3미터로 설정했죠. 저는 이 밧줄의 범위 밖으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리를 둘 때도 3미터 안쪽에서만 움직이겠다는 선언이었다.
3미터. 긴 듯 하면서도 짧은 거리다. 현대인이라면 1미터짜리 핸드폰 충전선이 얼마나 짧은지 알 것이다.
3미터는 그 3배이기는 해도, 절대로 길거나 먼 거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팔과 칼의 리치에 들어가는 간격이고, 무기를 안 든 나한테는 가장 불리한 거리였다.
─까드득!
내가 핸디캡을 설정하자 〈번개의 화살〉에 쫄았던 파란 고구마가 이를 갈았다. 꼴에 기사이기는 한지, 전투에서 거리의 중요성을 아는 모양이다.
〈저희를 너무 얕보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한층 꼽을 줘 볼까 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도 귀찮을 듯 해서 생각을 바꿨다.
‘오러 사용법은 잠깐 물 건너갔지만, 이렇게 부담없이 줘팰 수 있는 샌드백도 드물지.’
티르시 구출 작전을 펼치면서 내가 얻은 무술만 3~4개는 되는데, 나는 아직 이것을 완벽하게 체득하지 못했다. 당장 【게르튀르】의 후반부 초식도 못 쓰는 판국인걸.
‘하나씩 시험해 보면서 소화해 볼까.’
─까딱, 까딱.
나는 한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손을 까딱거렸다. 달인다운 도발 자세였다.
야수회귀는 발동하지 않았다. 마나 코팅을 덮어쓰면 이 새끼들이 백날 칼을 휘둘러도 나한텐 생채기 하나 안 날 거고, 그러면 우리 교보재 친구들이 의욕을 잃어버릴 것이니까.
〈……한 수 배우겠습니다!!〉
파란 고구마는 핏줄을 세우며 검을 높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