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85화 (385/1,009)

〈……한 수 배우겠습니다!!〉

파란 고구마는 핏줄을 세우며 검을 높이 들었다.

진심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존나게 갸륵하구나. 평소에도 그랬으면 쉬는 날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됐을 건데.

저 새끼들 주말수당은 받나 몰라.

키이잉─!

나는 방금 전에 기사단장이 도망쳤을 때의 반성을 살려서 오딘의 눈을 켰다. 그의 발치에 모여드는 마나는 익숙한 형태였다. 프리모르의 호위 기사가 쓰던 스프링 점프인가?

‘대쉬해 올 생각이군. 하지만 발동이 너무 느려.’

파란 고구마가 칼을 든지 벌써 2초나 지났다.

2초. 이 역시 짧은 듯 보이지만 긴 시간이다.

메이져리그의 타자가 야구방망이를 내리고 2초 동안 멍 때리고 있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2초는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찰나에 승패가 갈리는 실전에서 2초면 공격이 3번도 넘게 날아들고도 남았다.

존나 상상 그 이상의 개허접함이다.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하긴, 보충훈련이나 받는 새끼한테 바랄 걸 바래야겠지. 이 정도라면 오딘의 눈을 킬 것도 없겠다.

〈흡!〉

3초 째에 고구마가 돌진해 왔다. 속도는 꽤 빨랐지만, 다 간파하고 있는 기술은 빠르나 마나 의미가 없었다.

‘우선 이 기술부터.’

나는 뒷짐을 지고 헤스왈드 자매한테서 배운 석사탈주의 보법을 전개했다. 괴도질을 하면서 사용법을 깨닫고, 티르시의 공간절단 마마무를 피해내며 전투에서도 쓸 수 있게 된 보법이었다.

─휙!!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과 회피에 올인한 보법은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내가 옆으로 피하자 놈의 칼은 파워레인저를 흉내내는 잼민이의 칼질 놀이처럼 허공을 갈랐던 것이다.

〈어, 어느새!!〉

애꿎은 대련장 바닥에 가검을 후려친 파란 고구마는 저린 팔을 붙잡고 허겁지겁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는 지랄이. 브레이크도 못 밟을 속도로 대쉬해대니까 그렇지.

‘어디, 다음은 이건가.’

벙쪄버린 까까머리에게 로우킥을 날렸다. 흑마법사 코뤤투스한테서 파쿠리── 아니지, 오마쥬해 온 기술이다.

발끝에 마나의 칼을 달고 카포에라 같은 비-보잉을 펼치는 발차기 무술인데, 당연히 죽일 생각은 없기 대문에 이번에는 칼날 없이 킥만 날렸다.

─쩌억!!!

〈끄아아아악!!!〉

내 신발끝이 파란 고구마의 허벅지에 꽂혔다. 아마 저 새끼한테는 허벅지 근육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충성 서약을 맺는 기사 같은 자세였다. 개쩐다. 내가 참교육 좀 해 줬다고 댓번에 주인을 갈아치우려는 태세전환 속도였다. 나는 픽 웃었다.

〈호들갑 떨지 마십셔. 사용하는 마나량은 댁이랑 비슷하게 맞춰드렸습니다.〉

눈대중으로 잰 거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쓰는 마나량 그가 가진 마나는 엇비슷했다.

마나평등주의를 실천한 이유는 여러 개가 있는데, 일단 첫 번째 이유는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면 대련이 아니라 폭행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조금 좆같아도 어르신 댁의 기사인데 반신불구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준이 비슷해야 나한테도 훈련이 될 듯 해서였다. 곰이 사람을 상대로 진심으로 싸우면 스파링을 하는 의미가 어딨겠어.

〈크으으으윽……!!〉

다행히 무릎을 짚고 넘어졌던 게 무척 쪽팔렸는지, 완전히 개빡쳐버린 그는 진심으로 오기를 부려주었다.

─휙! 휙휙!!

나는 질서정연하게 펼쳐지는 검술을 한 뼘 간격으로 피해내면서 느긋하게 딴 생각을 했다.

나와 파란 고구마를 연결한 흡성대법의 파이프라인에서 저 검술의 사용법이 전해져왔다. 기사단장이 대충 보여주고 튀었던 칼질이 정확하게 어떤 거였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개꿀.’

기술 흡수율 좋고. 이대로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어주마.

고 3때 수능을 준비하며 상상하던 ‘USB로 뇌에다가 직접 지식을 전송하기’를 실천하는 듯한 감각이다. 잘 발달된 마법은 과학과 구분되지 않는 법이구나.

〈하아아압!!〉

파란 고구마가 다시 커다랗게 검을 휘둘렀다. 제딴에는 좆 빠지게 휘두르는 칼인데 내가 너무 느긋하게 피해대서 눈이 돌아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쓰는 마나가 비슷해도 나랑 그는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내가 습득한 기술은 야수회귀를 빼고도 전부 특 S급의 무술 뿐이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수준과 효율이 하늘과 땅 차이였고, 전투경험도 내가 압도적이다. 눈 먼 칼에 맞을 리가 있나.

나는 손바닥을 박수치듯 검의 궤도에 끼워넣었다.

─채앵!! 내 어깨를 노리던 검이 내 손바닥에 잡혔다. 마치 짐승의 턱에 끼워진 것처럼 말이다.

일단 이것도 코뤤투스한테 베껴온 기술이다.

〈끄허억……!!〉

맨손에 칼을 잡히자 파란 고구마가 놀라서 호흡을 흐트러트렸다. 물론 쇳덩이를 그냥 막을 수는 없어서, 이번만큼은 나도 손바닥에 혈수마공의 요령으로 이너 아머를 깔았다.

그리고 어차피 혈수마공을 펼친 김에 짐승의 턱 같은 무술에다가 야수회귀의 손톱을 추가해서 휘둘러봤다.

예수게이의 정체를 들킬 수도 있으니까, 불꽃은 뺐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평범한 수도(手刀)로 보일 것이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엔드(Calamity End)

─까앙!!

혈수마공의 권각술에 일류 수준의 권법이 더해지자 철검이 뚝 부러졌다. ─팽그르르르. 불똥을 튀겨가며 회전하던 검의 반쪽은 대련장에 떨어져서 쇳소리를 냈다.

좆밥 모험가 시절에 습득한 베를린의 붉은 비.

그 기술은 이제 한없이 진보한 끝에, 철검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위력과 강도를 얻은 것이었다.

〈내 수도(手刀)에 걸리믄 쇠떵으리로 반으로 갈라져 뒤져뿌제잉…….〉

…풀썩!

내가 중얼거린 순간, 까까머리 기사는 앞으로 자빠지며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훈련 시에 입는 가죽갑옷의 명치가 살짝 파여 있었다. 검을 부러트리고 지나치면서, 그만 척추반사로 명치에다가 펀치를 날려버렸던 것이다. 무술을 결합시키는데 집중하다가 빈틈을 거침없이 찔러버린 게 원인이다.

‘……나도 아직 어설프긴 하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너무 약해서 무난하게 이기기는 했는데, 내 눈에는 차지 않았다.

‘기술 간의 연계 등에서 헛점이 많았어.’

예를 들어, 회피의 보법인 석사탈주.

공격할 때는 쓸 수 없는 기술이지만 씹OP 이동기인 것은 팩트였다.

나로서는 막기 힘든 공격은 이걸로 피해대다가 재빠른 반격으로 전환하고 싶다. 맨날 좀 쎈 상대랑 붙으면 몸빵으로 떼우던 내게 드디어 제대로 된 회피기가 생긴 것이니까.

하지만 실제로 연계하면 움직임이 뚝뚝 끊긴다. 속도에 큰 변화가 생겨서 빈틈이 노출되는 것이다. 커브를 돌 때 드리프트를 못 하고 감속해야 하는 느낌이랑 비슷하다.

야매 전사 노르드, 약간 반성.

‘어차피 오러를 쓰려면 몸 안의 마나-카테터도 단련해야 할 것 같고, 마침 딱 좋은 기회군.’

─부웅!! 나는 검의 피를 털듯 수도를 휘둘렀다.

기사단장을 다시 부를 때까지 개인적인 단련에 써먹을 샌드백들이 생긴 것 아닌가. 생각하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확실히 재깍 반응해주는 상대가 있는 만큼 혼자서 훈련하는 것보단 도움이 된다.

아내들이 상대라면 이렇게나 거침없이 주먹질을 할 순 없으니까. 나는 성취감에 흐뭇하게 웃으며, 어째서인지 절망하고 있는 다른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네~ 다음 분 들어오세요~.〉

***

─성큼, 성큼!

가이우스 리터 베인은 몇 달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무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프리모르의 회임이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는 것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군이 아들을 잃은지도 벌써 2달이 넘게 지났다.

그걸로 부족해서 도련님의 죽음 이후, 그의 아내였던 프리모르가 복수심에 불타 가출까지 해 버렸던 것이다. 최근 2달 동안, 아르마알스 가문의 사람들은 복도를 걷는 것조차 칼날 위를 거닐듯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침체된 시간도 이젠 끝이다.

이 가문을 이어야 했을 유일한 후계자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죽기 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존경하는 아버지에게 자식을 남겨주고 떠날 수 있었다.

프리모르의 아이가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이, 방금 전 포모나 교단에서 찾아온 대주교의 증언으로 확실시된 것이다.

비극의 끝에서 핀 꽃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가이우스에게 남은 일은 프리모르의 아이가 대성할 때까지 가주가 외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않게 보필하는 것이었고, 다행히 가이우스는 그 일에 자신의 긍지를 걸고 매진할 의지가 충만했다.

그의 주군, 코르넬리우스도 대희(大喜)하며 웃었다. 그래서 가이우스는 노르드가 그런 주군과의 저녁 식사에 늦지 않도록, 그를 부르러 가고 있던 것이다.

물론, 구태여 따지자면 이런 사소한 호출은 기사단장이나 되는 가이우스의 업무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상으로 혼신을 다해서 주군을 보필해야 하는 그였다.

자신이 가로막힌 벽을 깨부수는데 노르드의 의견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가이우스였기에,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과 동격 이상일 달인에게 오늘 하루의 성과를 묻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가문의 검술을 얼마나 간파하셨을까.’

가이우스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군침을 삼켰다.

가이우스나 노르드처럼 달인의 경지에 오른 전사라면 적의 무술을 보기만 해도 장점과 단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부감할 뿐인 일이다. 그조차 못한다면 애초에 미스릴 클래스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해서 잠깐 보여주었을 뿐이지만, 노르드도 검을 휘두르며 가이우스가 펼친 견본을 복기했다면 그 일곱 자세에서 어떤 검술이 파생될지도 쉽게 짐작하겠지.

‘가능하다면 가르침 따위가 아니라, 나와의 대련을 요청해 줬으면 했지만…….’

그건 가이우스가 빈객에게 먼저 요청할 수 있는 부탁은 아니었다.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연무장으로 걸어가다가, 그 안쪽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기합소리를 듣고 멈춰섰다.

〈정신으으으을──!!!!!!〉

〈차리자아아악──!!!!!!〉

아니, 이건 정말로 기합소리일까?

가이우스는 검의 달인답게 혼란을 빠르게 수습했지만, 의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기합보다는 비명 같았다. 극기 훈련 중에도 이런 참담한 비명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저절로 가이우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서둘러 달려간 가이우스가 목격한 것은 그 비명만큼이나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훈련병!!! 목소리가 작습니다!!! 연무장 한 바퀴 더 뛰고 싶습니까!!!〉

〈아닙니다아아아악──!!!!!〉

검을 든 노르드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하급 기사 한 사람의 등에 앉아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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