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398화 (398/1,009)

─퓨퓨퓨퓨퓽!!

검끝에 피어난 마나가 바람의 화살처럼 쏟아졌다.

심록의 마나는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마치 오우거가 나무를 뽑아서 내던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컥……?!〉

〈큽, 커헉!! 쿨럭, 쿨럭……!!〉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집중했던 몇 사람의 기사들은 아예 사레까지 들려가며 허리를 꺾었다.

자기가 가이우스 대신 저 자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대련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자 경악하며 숨을 삼키다가 사레에 들려버린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집중력에 비해서 아직 단련이 모자라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가혹한 훈련 끝에 얻은 냉정함으로 한심한 꼴을 면한 상급 기사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말도 안 돼!!’

‘틀림없이 돌진기인 비약(飛躍)의 자세였는데……!!’

분명히 가문의 검술에서 나오는 기술인데도, 기사들이 난생 처음 보는 검술이었다.

그들은 저 찌르기가 저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수준을 넘어서, 뒤통수가 얼얼해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가문의 검술이라면 노르드보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그가 기사단장을 상대로 가문의 검술을 쓰려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그 분노는 곧 검을 든 노르드를 얕보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상급 기사들은 그게 바로 방심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실전이었다면 이미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적의 실력을 잘못 계측한 대가였다. 허황된 자부심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기사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기까지 했는데, 얄팍한 추측으로 집중을 잃고 방심하다니……!’

‘한심한 놈! 상급 기사가 되고 나서 해이해진 거냐?’

‘설마 저 분은 우리에게까지 이런 가르침을 주시려고, 굳이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가능성은 있었다. 노르드가 무기를 바꾼 것은 그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한 수 훔쳐 배우겠다고 모여든 다음의 일이었다. 원래는 창을 가져달라고 했지 않았던가.

자신과 호각인 가이우스를 상대하면서, 불청객에 불과한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다니?

그 넓은 아량과 그것을 실천해내는 달인의 실력에 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말을 잃었다.

‘저 분은 우리의 한심한 정신머리를 때려고쳐 주시려던 게 분명하다!’

‘부끄러워도 고개를 들어라! 무언가 배워가지 못하더라도, 저 분의 가르침에서 눈을 돌릴 수만은 없다!’

기사들은 그렇게 믿고 구경하던 자세를 똑바로 했다.

사실 여부는 어쨌든 간에 말이다.

─타앗!!

만감과 온갖 시선이 스치는 대련장에서 가이우스는 바람의 화살을 피해냈다.

두꺼운 화살은 목표를 잃고도 멀리까지 날아갔다. 화살에는 그러고도 남을 위력이 있었다.

다행히 참격을 날려대는 검술의 특성 상, 가문의 대련장은 사람 머리보다 높은 곳에 설치돼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멍하니 구경하던 기사들 중 몇 명은 오늘 머리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척! 공격을 피한 가이우스는 발을 멈추었다.

〈……돌진기의 요령을 팔에서 펼치셨군요.〉

그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가주가 보유한 수십 점의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환희가 가슴에 넘쳐났다.

〈응축한 마나를 찌르기에 응용하신 겁니까? 거기에 다른 무언가를 더해서 참격으로 뿜어내신 거군요!〉

저 검술의 무리(武理)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가이우스는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노르드만한 천재라면 보는 것 만으로도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검술이 ‘비검(飛劍)’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은 응축한 마나를 폭발시키며 뿜어내는 그 참격 때문이다. 이것이 비검기사단이라는 이름의 유래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이우스조차 검술의 정형을 따라서 참격을 뿜고, 또 그것을 다른 오의에 접목하는 시도는 해 보았어도── 그 참격을 찌르기로 발휘하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찌르기에서 발전한 비검의 오의는 노르드가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바람 계통의 마법에서 술식을 몇 개 뜯어서, 대쉬나 찌르기에 섞어 봤습니다.〉

노르드는 이번에도 오딘의 눈을 켰다가 끄느라 조금 늦게 대답했다.

〈처음 가주님의 검술을 봤을 때부터 상당한 쾌검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마법사에게 ‘빠름’이라고 하면 보통 번개나 바람입니다만, 번개의 마나는 컨트롤이 어려워서 마법이 아니면 전개하기가 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노르드는 오딘의 눈으로 마법의 술식을 몇 개 해체하고, 거기에서 몸에 있는 마나를 바람의 마나로 바꾸는 술식들을 검술에 섞어보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방금 전의 찌르기였다.

〈마법의 술식을…… 검술에 섞으셨다구요?〉

얘기를 들은 가이우스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며 경악했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노르드는 센스가 부족했기에 마나를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검술과 마법을 분리하는 일에 그럭저럭 애를 먹었다.

마법을 쓴다면 훨씬 쉬웠겠지만, 기사단장에게 ‘마법이나 좀 배워 보시겠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고생은 했지만, 결국 노르드는 마법에 대한 이해가 무지해도 실력만 된다면 검술에 바람을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성공했다.

〈대쉬에 섞으면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고, 찌르기에 섞으면 보신 바와 같이 참격이 나갑니다.〉

간결한 설명이었지만 그 이상의 이해는 노르드의 머리론 불가능했다. 어휘력 문제도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도 된다면, 노르드는 이 검술에 그렇게까지 가치가 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냥 마법을 부여해서 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대쉬나 다른 기술에 바람의 마나를 섞는 건 어렵다.

노르드 자신도─자기가 개발한 기술인데─ 본인의 기술에는 거의 접목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찌르기로 원거리 공격을 하는 것 정도는 마법과 섞어보면 창술에도 응용할 수 있겠지만, 그게 다였다.

어렵기만 하고 쓸모는 없다는 게 그의 개인적인 평가였다.

〈고작 며칠 정도만에 이렇게까지…….〉

하지만 노르드의 평가가 얼마나 하향 곡선을 찍든, 검술의 재능을 타고난 가이우스는 노르드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까지도 간파했다.

가이우스가 보기에, 저 기술의 발전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무술이다. 어떤 마나든 섞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세상의 어느 검술이든 불이나 번개를 뿜어대지 않았겠는가.

그 수많은 마나 중에서도 단 하나, 바람의 마나가 가문의 검술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증명한 것만으로도 노르드는 비검기사단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직 노르드 님 정도의 천재가 아니라면 이해하고, 사용하지 못할 기술이다.’

하지만 만약 검에 바람을 담는 기술을 제대로 체계화해서 누구라도 노력 여하로 배울 수 있도록 개량한다면?

아르마알스의 비검에는 장차 바람이 깃들고, 새로운 검술이 태어날 것이다.

〈눈이 탁 트이는 듯한 기분입니다. 오늘 이 잠시간의 대련에서, 제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시는군요…….〉

찌르기와, 베기.

동일한 기반에서 출발해서 전혀 다른 방향에 도달한 그의 천재성에 가이우스는 사심 없이 전율했다.

수백 년의 달하는 개발 끝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고여가는 듯 하던 가문의 검술에, 새롭게 활로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을 가로 막던 벽에도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 그랬던 거군요.〉

가이우스는 대련 중인 것도 잊고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기사단장이 된 이후로, 저도 젊을 때처럼 예전처럼 마음 가는대로 검을 뽑는 일이 줄었죠. 노르드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바람은 멈춰버리면 더 이상 바람이 아니죠.〉

〈……예? 제가 그… 그런 말을 했었나요…?〉

〈검에 담은 바람은 멀리까지 날려보내던 주제에, 정작 저 자신은 직책에 안주하기도 바빴습니다. 가주님께 충성을 바친 일에 후회는 없지만, 저는 어느샌가 기사단장이니 미스릴 클래스니 하는 헛된 자존심과 오만에 갇혀 있던 거였군요.〉

〈저…… 뭔가 깨닫고 계시는 중에 죄송한데, 다 끝났으면 저도 슬슬 내려가 봐도 될까요……?〉

〈제 마음이 한 곳에 갇혀서 움직이지 않았으니, 경지도 제자리 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바람이 멎었는데 더 돛대마저 접고 더 나아갈 욕심을 부렸다니, 지난 세월이 부끄럽습니다.〉

가이우스는 눈을 감고 손끝에 걸린 깨달음에 미소지었다.

이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구명줄 삼아서 걸어간다면, 그는 언젠가 마스터 클래스에 다다를 것이다. 노르드는 가문의 검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그의 가슴에도 청명한 새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던 것이다.

〈이만한 깨달음을 주셨으니…… 저도 보답을 해야겠죠.〉

가이우스는 검을 세우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노르드 님!!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가르치는 능력이라곤 없는, 부족한 몸이라 죄송할 따름이오나…… 이 가이우스 리터 베인!! 기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전사로서, 노르드 님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예? 어? 아뇨,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

채애앵──!!

노르드는 그의 열의에 당황했는지 입을 열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가이우스의 검을 막고서부터는 눈을 빛내며 입을 다물고 일어반구도 하지 않았다.

본인 왈, 집중하면 말수가 줄어든다고 했던가.

중간부터는 검에 건 마법도 풀고 창술까지 사용한 걸 보면 그도 진심으로 대련에 몰입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의 천재성은 분명 그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말미암아, 무언가의 깨달음을 노르드에게 선사할 것이었다.

‘부디 내 부족한 검술이 그의 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가이우스는 그렇게 빌면서 가열차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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