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NTR일까, 아니면 NTL일까.
뭐? NTR이고 NTL이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내가 저 씨팔럼한테서 다나를 빼앗아 온 건지, 아니면 저 씨팔럼이 나한테서 다나를 빼앗으려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전문 용어니까 모를 수 있다.
나도 가능하다면 모르고 싶었다. 저런 걸 좋아하는 건 미친 놈들이 틀림없다. 아마 본인들도 자각은 있을 것이다.
“크르르륵! 크르르륵! 아르르르르르! 알알!!!”
아무튼 극한의 분노에 한 마리의 호랑이급 치와와가 되어 버린 나는 분노에 이를 빠득거렸다.
만약, 만에 하나라도 저 모친과 부친의 합이 홀수로 나올 듯한 씨팔럼과 다나가 과거에 무슨 연이 있었다면?
저 새끼가 어릴 적의 다나의 첫사랑이거나 한다면?
물론 진짜 그렇다곤 해도 지금의 남편인 내가 분노하지 못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지만, 나는 최소한 그 답이 나올 때까지는 기다리기로 했다. 다나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다.
R인가, L인가.
크리피카 교수의 그 유명한 ‘우측선택 이론’을 동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희대의 난제였다.
그리고 급발진 프로포즈를 받은 다나의 반응은 극명했다.
[뜬금없이 그게 뭔 개소리야, 빡대갈통 새끼야!!]
그녀는 자기 다리를 끌어안고 허리를 흔들려는 병든 늑대를 본 소녀처럼 질색팔색을 하며 주먹을 내질렀던 것이다.
당황스럽고 좆 같으면 일단 주먹부터 나가는 박사 학위의 얼스터 인(29세)의 진면목이다.
[끄악!!]
─퍽!! 상쾌한 타격음이 보라 머리 마법사의 명치에서 울려퍼졌다.
그의 등이 활어처럼 휘었다. 설마 방어 마법 하나 발동하지 않고 쳐맞을 줄이야. 다나의 펀치력을 얕봤던 모양이지.
아무튼 다나의 그 명쾌한 대답은 여러 면에서 올바른 판단이었다. 일단 나의 남편으로서의 졸렬한 질투심을 눈 녹듯이 녹여줬다는 점에서 몹시 그렇다.
역시 우리 눈나야.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폐급 연애박사 클라스 어디 안 가죠?
진짜 마초이즘과는 거리가 먼 치졸한 사고관이기는 한데, 다나의 저런 반응이 아니었으면 1초 뒤에는 저 내로남불 로맨티스트의 가슴팍에 내 창이 꽂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나 씨발, 이게 뭐람?”
나는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창을 팔찌로 되돌렸다.
프로포즈를 들은 순간부터의 필름이 3초 가량 끊겨있었다. 물 끓는 냄비 옆에서 라면 스프를 뜯는 기분으로 투창 준비를 하고 있었던 느낌이다. 〈임모르탈리스〉의 자객이 백신으로 내 뇌를 조종한 게 틀림없군. 암, 그렇고 말고.
[그, 그렇게 싫어할 것까진 없잖아!]
[없기는 뭐가 없어 또라이 새끼야!! 지보다 10살은 더 어린 년한테 결혼하자는 소리가 잘도 나온다, 미친 놈아!! 내가 닐 처음 만났을 때 벌써 니한테 아내가 있었는데!]
다나는 듣던 나까지 벙찌는 사실을 밝히면서 고참쳤다.
‘저 와꾸로 40살이 넘었다고?’
얼스터의 방계인 걸 감안해도 쎌 만 하네. 재능 있는 놈이 저 나이가 되도록 단련을 열심히 했으면 당연히 쎄지겠지.
일단 아내가 있는 몸으로 프로포즈를 한다는 건 넘어가자. 키타이 노 씨가 말해봤자 누워서 침 뱉기밖에 안 된다.
[크흠.]
청년 곁에서 우물쭈물 거리던 그의 일행이 헛기침을 했다. 그도 다나가 질색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정신병자 사제 새꺄! 내 나이가 지금 몇인지나 알고 그딴 소릴 하냐?! 나도 올해면 벌써 스물 아ㅎ── 씨발 아무튼! 20대 후반에 고향을 나온지 20년인데 남편 정도는 구했지!!]
[겨, 결혼 했다고?]
청년은 명치를 누르며 일어나다가 입을 쩍 벌렸다. 얼스터 인들은 내가 볼 때마다 결혼 가지고 난리를 피우네.
꺼벙하던 그의 눈깔은 다나의 왼손으로 굴러갔다.
[하, 하지만 지어미의 문신도 없고, 결혼 반지도──]
[아니씨팔조용히해개새끼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면서, 다나와 저 눈치 없는 새끼 사이에 히어로 랜딩을 시전했다.
─콰앙!!!
운석이 떨어지는 것처럼 요란하게 착지하는 나.
기분 같아서는 저 나잇값 못하는 보톡스 중독남에게 플라잉 족발당수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이 노 픽시 덤프 트럭 같은 새끼의 급발진에 그럴 여유도 없이 뛰쳐나오고 말았다.
[누, 누구냐!!]
[우리 마누라 남편이다!! 이 불륜등산회 회장 새끼야!!]
─터엉!! 나는 중년의 불륜남이 무심코 뽑아든 듯한 완드를 창대로 후려쳐서 하늘로 날려버렸다.
석사탈주의 보법으로 근접해서 공격의 자세로 전환, 그대로 제압을 가한 것이었다. 튕겨나간 완드가 연구소의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기사단장과의 목숨을 건 특훈 덕분일까? 보법을 이동에서 공격으로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에 조금의 막힘도 없었다.
그 개고생을 한 보람이 없지는 않았던 듯 했다.
“아, 노르! 너 이 새끼 마침 잘 왔어!”
다나는 댓번에 화색이 돼서는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진 몰라도, 저 미친 새끼들이 뜬금없이 우리 연구소에 들이닥쳐서 얘기 좀 하자고 지랄을 해대더라! 내가 직접 패는 건 아무리 그래도 조금 그러니까, 죽지만 않는 선에서 몇 달은 침대 신세를 지게 만들어 버려!”
“리을리? 니 남편은 하라면 하는 남자인데? 나는 놀랍게도 폭력에 대한 모티베이션이 비교적 높아요?”
“알아 병신아!”
그걸 아는 눈나가 저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진짜 140% 리얼 빠따로 저 염부랄 놈들을 복날을 맞이한 가여운 시골 잡종개처럼 만들어줘도 된다는 뜻이었다.
“삐빅. 즉살 모드(Instant kill) 가동합니다.”
─탁! 탁! 나는 우리 아버지께서 잼민이 강북호를 교육하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회초리를 드시던 때처럼 창대를 들어 손바닥에 쳐댔다. 여기 담긴 자비심의 깊이가 느껴지는가? 이 창대야말로 참된 사랑의 매였다.
아버지 몰래 참나무 회초리를 내다버렸을 때를 웃도는 찰진 그립감이다. 심히 만족스럽다.
[소매 걷고 거기 딱 엎드려. 그럼 곤장 10대로 봐 준다.]
[무, 무슨!]
내가 다가가자 불륜남이 당황하면서 가드를 올렸다. 남이 베푼 호의를 저런 적대적인 태도로 거절하다니, 역시 다나네 고향 사람도 방계라고는 해도 얼스터 인답게 호전적이었다.
다나랑 비슷한 보라 머리니까 보라돌이라고 부를까?
아니, 이런 천하의 불륜티스트를 그런 귀여운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은 텔레토비 동산에 대한 모욕이다.
이 놈은 남의 아내랑 바람이나 피우려 드는 불륜남일 뿐! 이딴 새끼의 호칭은 미남 또도가스 정도면 족하다!
나는 잠시간의 NTR 체험으로 쌓은 분노를 터트렸다.
[불륜의 상처──!!!]
나는 아르마알스의 검술을 어레인지하면서 습득한 비행 타입 기술을 사용했다. 내 창대에 두꺼운 바람이 감겼다.
휘오오오오─!!
─까앙!!
바람으로 강화된 창을 휘두르자 또도가스는 실드를 펼쳐서 막았다. 몸에 마법을 새기는 기술. 저번에 얼스터 부락에서도 봤던 모사 마법이었다.
하지만 결계와 창대가 닿은 순간, 결계의 표면은 비눗방울처럼 출렁거리며 약해졌다.
나는 그 현상의 정체를 빠르게 눈치깠다.
[이것은…… 결계를 부수는 철쇄아의 힘!!]
내 것이 아닌 마나를 튕겨내는 창대의 부가 옵션이 발동한 것이었다.
솔직히 예르나를 족치고서는 마법사랑 싸울 기회가 너무나 적었다 보니까 나도 살짝 깜빡하고 있었다. 최근에 싸운 흑마법사 새끼들은 어째 흑드라군처럼 마법으로 버프 걸고 물리로 때리는 타입이었단 말이지.
쩌저적……!!
─파킨!!!
“어억?!”
실드를 부수고 들어간 창대가 또도가스의 옆구리를 전자레인지에 10초 돌린 몽쉘처럼 파고 들어갔다. 굳어 있던 얼굴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손맛이었다.
─퍼버버버벅!! 나는 굿 비용으로 500만원을 받은 무당이 흥겹게 칼춤을 추듯, 창을 거꾸로 쥐고 봉춤을 추었다.
[손 내려 씨발!! 막지 말라고 늙다리야!! 뼈 부러진다!! 니 나이 먹고 뼈 나가면 잘 안 나아!!]
[그, 그럴 거면 때리질 말든가!!]
[지랄 마!! 젊을 적에 부러져 버릇 해야 뼈다구도 튼튼해지고 그러는 거야!!]
또도가스는 나름 실력이 있는지 마법사치곤 능숙하게 팔을 휘둘러가면서 방어했다. 하지만 원래 실드에 방어를 맡기고 싸우는 타입이었던 건지, 허벅지를 찰지게 매질해주자 끝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라!!]
그는 무릎을 꿇었지만 추진력을 얻지는 못했다. 내가 텅 빈 턱주가리를 창대로 후려까서 기절시켰기 때문이다.
[꾸웩……!!]
턱이 돌아가자 외마디 신음을 남기고 혼절하는 또도가스.
마나에서 느껴지는 실력은 뛰어난 편이었지만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심과 당황, 그리고 실전 부족이 눈에 띄는 패배였다.
초딩 포켓몬을 들고 텅구리한테 좆발리는 잼민이 같군.
[댁은 안 덤빕니까?]
또도가스를 처리한 나는 뒤에서 멍청하게 지켜보던 남자에게 물었다.
실은 이 새끼가 진국이고, 요 또도가스 놈은 갈비집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양념 게장 정도의 포지션이 아닐까 하는 경계심에서였다. 그게 아니어도 이 새끼의 호위라면 얘보다 약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봐 주십쇼. 저는 저 인간을 말리러 온 겁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어림도 없다는 것처럼 손사레만 쳤다.
[상식적으로 어릴 적에 몇 번 본 남자한테 시집을 간다는 게 말이나 된답니까? 자아도취한 늙다리의 헛소리죠.]
[요 놈 나이가 그만큼 많아 뵈진 않은데요.]
[머리는 나빠도 힘은 강하니까요. 세월의 흐름도 시퍼렇게 선 칼은 피해가는 법이죠.]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고, 그럴싸한 비유에 나도 납득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 사람들도 은근히 말재간이 오졌지.’
꽤 오랜만에 현학적인 이세계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살기를 가라앉히며 창을 팔찌로 되돌렸다.
***
얌전하게 투항해서 잡힌 그를 구석에 방치해 두고, 우리는 또도가스 친구를 연구소의 한 방으로 데려갔다.
그의 일행은 근처의 방에서 대기 중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다나의 증언이 있어서였다.
“남편놈아. 저 보라 머리 아저씨 이름 알려줘?”
“그런 무익한 걸 기억할 뇌세포 따윈 없어.”
다시 말하지면 또도가스면 됐다. 남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어렵단 말이지. 이세계인들 이름도 한국식으로 장발장이나 뭐 그런 식이면 외우기도 쉽고 좋을 텐데.
[우리 친구, 일어나 봐요. 웨이크 업.]
─챱챱! 기절한 또도가스의 눈에다가 마법의 빛으로 눈뽕을 갈겼다.
처음에는 몸도 묶어둘까 하다가, 마나도 충분한 마법사를 묶을 만한 밧줄이라곤 내 마나-형태변화밖에 없어서 일단 자제했다. 사지를 마나로 구속당하면 이 새끼 주댕이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진 않거든.
[으윽……? 여, 여기는……?]
[정신이 들어?]
혼미한 정신을 되찾는 또도가스.
역시 기상 눈뽕이야. 성능 확실하구만. 나는 꺼벙하게 얼을 타는 그의 눈앞에다 손가락을 튕겼다.
이 연구실은 지금부터 최소 30분 간, 요 씨팔럼을 따듯하게 보살피는 그린 캠프가 되어줄 것이었다.
[아까 우리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있었잖아요? 이제라도 왜 우리 친구가 제 마누라를 찾아와서 프로포즈를 했는지 씨발 존나 물어보고 싶어서요. 알아듣죠?]
또도가스는 나랑 다나의 안색을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군.
[일단 다친 것부터 치료하죠. 포션이에요. 치료약, 알죠?]
나는 대접에 담은 액체를 내밀었다.
이 연구실에는 손님용 컵이 없어서 실험도구인 대접에다가 담았고, 이딴 새낄 치료하는데 내 돈을 쓰기는 아까워서 물도 탔기에 농도도 꽤 낮았다.
하지만 일단 하급 양산품 포션이긴 하다. 맞아서 생긴 멍 정도는 금방 고쳐줄 것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대접을 받고는 물었다.
[……당신이 다나의 남편입니까?]
[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요? 불만이라도 있어요?]
내가 사납게── 아니지. 다정하게 묻자, 그는 포션을 마시려다가 내려놓고 내 왼손을 훔쳐봤다.
[하, 하지만 다나한텐 결혼 반지가──]
[코스모 블루 플래쉬!!!!]
─첨벙!!! 나는 눈치 없는 새끼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포션 대접에다 머리를 쳐박았다.
[꾸르르르르르꾸륵──?!]
발을 구르며 포션을 마시는 또도가스. 반응이 굉장히 격한 게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몸에 좋은 약이 입에도 쓰다잖은가. 아마 포션도 그럴 것이다.
‘그보다 이 씨발럼,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거냐?’
그게 아니라면 왜 자꾸 남의 결혼 반지 얘기를 쳐 꺼내는 것이지? 혹시 뒤지면 지네 본진에서 리스폰하나?
나한테도 계획이랑 일정이란 게 있단 말이다. 나는 속으로 성질을 부리며 또도가스의 와꾸를 포션에서 건져냈다.
[푸흐와아악──!!]
음료수 광고처럼 포션을 뿌리는 미스터 또도가스.
아무 것도 모르고 고백을 한 대가로는 조금 엄혹한 처사일지 모르지만, 남편 눈 앞에서 신혼의 신부에게 프로포즈를 하고도 몸 성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이걸로 용서해라, 사스케.
[포션 맛이 참 좋죠? 근데 방금 뭐랬어요?]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기운 찬 대답이 듣기 좋았다. 자기 같은 불륜 시도자에게도 포션을 베푸는 것에 감격한 모양이다.
느그 마을엔 이런 거 없지? 피부에도 좀 양보하려무나.
[니 거기서 딱 기달려. 그리고 앞으로 그 반지 얘기 한 번이라도 더 꺼내 봐. 가축 거세용 고무줄을 니 손으로 느그 쥬지에다가 감게 시킬 거야. 알아들었어?]
[옙!!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안면의 모공으로 포션을 흡수하는 그를 내려버두고서 다나를 데려왔다. 혹시 몰라서 내보냈었는데, 이 새끼 하는 걸 보니까 그렇게 해 두길 잘 했다.
─덜컹.
문을 열고 다나를 데려오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는 남자를 보며 한숨부터 쉬었다.
[……그래서, 뭔데? 왜 20년이 넘도록 관심도 없다가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청혼 따윌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