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09화 (409/1,009)

크롬웰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만 보내고, 나는 에들린과 함께 길피 길드로 이동했다.

“멋진 곳이군요.”

길드 안을 둘러본 나는 칭찬 반 진심 반으로 감탄했다.

길피 길드 사르가디스 지부에 와 보는 건 처음이지만, 겉멋 든 멘사 모험가들이라는 내 개인적인 감상에 걸맞은 곳이다. 예술적인 명화(名畵)나 화분 등이 놓여져 있어서인지 의뢰를 넣으러 온 사람들도 주눅이 들 것 같다.

“품위를 지키는데 예산을 상당히 들였죠. 경건한 곳에서는 사람들도 자기 옷깃을 여미게 되잖아요?”

“그렇군요.”

손님을 숨 죽이게 만드는 분위기는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미술관 같은 분위기는 양식 있는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조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듯 했다.

세간에 알려진 모험가의 이미지랑은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긴 하지만 말이다.

“점심은 아직이시죠? 같이 어떠세요?”

“감사한 제안이지만 늦게 끝날 일이 아니라면 가족과 먹고 싶군요.”

“매정하셔라.”

생판 남인 유부남이랑 유부녀가 둘이서 밥 먹으러 가는 게 더 문제 아니냐?

나는 속내를 감추며 웃고, 그림을 구경하면서 에들린의 집무실까지 따라갔다.

“2층의 그림들은 제가 특히 좋아하는 컬렉션이랍니다.”

“그렇군요. 어쩐지 로비에 비해서 격이 높아 보이더니.”

나는 황금색 모피를 두른 마법사의 그림을 보고 감탄 아닌 감탄을 흘렸다. 캔버스에 그리는 예술이란 건 이세계에서나 지구에서나 큰 차이가 없었기에 순수하게 감탄할 수 있었다.

─휙!

집무실에 들어간 에들린이 완드를 휘둘렀다. 찻잔이 공중을 춤추다가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차를 내놓았다. 실용적이라면 실용적인 마법이로군.

“술이라도 걸치고 싶지만 아직 대낮이니, 곧장 의뢰 얘기로 넘어갈까요?”

“좋죠.”

존나 노가리는 아까 마법사 길드에서도 잔뜩 깠잖아. 착석하고 바로 이어지는 편이 나도 시간 낭비가 없어서 좋다.

“황금 늑대의 모피를 구해주셨으면 해요.”

에들린은 차에 각설탕을 넣으며 말했다.

나는 입을 달싹였다. 뭔가 대충 어떤 새낀지 상상이 가는 이름이긴 한데, 나는 오늘 처음 들었다.

“황금 늑대…… 말씀이십니까?”

“네. 방금 전에 보셨던 초상화에도 그려져 있었죠? 그 금색 모피가 황금 늑대의 모피랍니다.”

그 그림인가. 확실히 염색으로는 나올 수 없을 듯한 선명한 황금색이었다.

그림이라서 과장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걸까.

“……들어 본 적이 없군요. 지식이 일천한 게 들통나는 것은 부끄럽습니다만,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제가 원해서 드리는 의뢰인걸요?”

에들린이 완드를 다시 휘두르자 하늘에 작은 환영이 피어올랐다. 황금색 늑대였다.

‘오 시발, 개꿀?’

나는 바로 오딘의 눈을 켜서 그 환영 마법을 분석했다.

못해도 지부 한 곳을 맡을 정도의 전문 마법사가 쓰는 환영 마법이다. 알아 둬서 손해는 안 볼 것이다.

게다가 이제부턴 설명충 타임이니까, 잠깐 묵묵히 듣는 척 하면서 대꾸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마 될 듯.

“대단한 몬스터는 아니에요. 고블린들이 타고 다니기 위해 사육하는 늑대들 중에서 간혹 등장하는 녀석이죠.”

나는 경청하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엄하게 느껴지도록 쌉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필수였다.

“하지만 타고나길 몹시 교활하고, 고블린들 중에서도 주로 강자나 우두머리만을 기수로 삼죠. 다시 말해서 찾기 힘들단 뜻이에요. 강자의 기척을 느끼면 도망부터 치거든요.”

─스윽. 눈을 반개하는 나.

의미심장한 행동에 에들린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맞아요. 그게 바로 이 황금 늑대의 가죽이 값비싸고 기품 있게 여겨지는 이유죠. 단지 힘만 강한 자가 아닌, 지혜를 발휘하는 자만이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글쿠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레짐작 오졌죠?

자신의 똑똑함에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답게 알아서 해석을 해 주는군.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곁눈질로 해독한 환영 마법에서 알짜배기 술식만 뽑고 오딘의 눈을 껐다. 공짜 마법 제공 땡큐베리머치.

“하지만 그걸 왜 저에게? 저보다 더 현명한 길드원 분들도 많을 텐데요.”

“흑마법사의 위치를 추리하시던 모습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어서…… 라고 하면 거짓말로 들릴까요?”

“다른 분들도 욕심을 내고 있나 보죠?”

“후후. 숨겨 봐야 소용없겠네요. 네. 바로 맞추셨어요.”

─팅. 에들린이 티스푼으로 찻잔을 쳤다.

“저희 길드원들은 대부분 전업 모험가가 아니에요. 학계, 마법계, 사교계 등과 이중 소속을 하고 있죠.”

“네. 애초부터 식자들이 모험가 사회에서 차별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활동하고자 세운 길드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길드장님의 이념이랍니다. 하지만 덕분에…… 함부로 장기 모험을 나갈 수 없는 저는 기댈 사람이 없어요.”

슬픈 듯 눈을 감추며 훌쩍대는 에들린. 뭐지? 40대 중년의 충만한 감수성을 암시?

“길드원 분들도 모피를 원하거나, 다른 분께 선물하고 싶어 하는가 보군요.”

“맞아요. 그러니까 의뢰를 드리고 싶네요. 이 가죽을 다른 곳에 팔지 말고 제게 가져다주세요.”

나는 거의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습니다. 마도서를 발주받고 대금만 치러주신다면.”

“……망설임이 없으시네요?”

“추적이 특기라서요. 제게는 쉬운 일이죠.”

늑대라는 새끼가 동물 한 마리 없는 곳에서 살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상대는 한낱 돌연변이 늑대 새끼에 불과하다. 늑대인간도 족쳐본 드루이드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걱정되는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 황금 늑대의 목격 보고는 있었나요?”

만약 이게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놈들 일단 잡아 와달라는 요청이라면 존나게 귀찮다.

집을 비우고만 있어도 불안한데, 로마니아 출장을 끝낸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판국에 또 멀리 나가라고?

그건 시발 쵸큼 에반데. 누굴 양산형 폰겜의 아이템 탐사 캐릭터로 아나?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라!

존나 24시간 탐사에서 복귀하자마자 같은 지역에 그대로 파견하는 건 고문 아니냐? 솔직히 폴리곤 데이터인 게임 캐릭터들도 휴일도 없이 그딴 식으로 작업 뺑뺑이만 돌리면 눈치껏 삥끼 칠 것이 분명하다.

“보기 드문 돌연변이라고 하셨는데, 언제가 됐든 찾는 대로 구해 달라시는 건 아닌 듯 하군요.”

“눈치가 귀신 같으시네요. 맞아요. 얼마 전 사르가디스 인근에서 발견 보고가 나왔죠.”

와우. 또 이 주변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 홈 타운 주변에선 유독 고블린과 관련된 사건이 많군요.”

“고블린은 쥐랑 다를 게 없는 생물이에요. 어느 영지이든 그 녀석들로 귀찮음을 겪지 않는 곳은 없겠죠.”

“그럴까요? 아무튼 제 손해는 아니군요. 당장 내일부터라도 착수할까 하는데, 괜찮으시죠?”

“행동이 빠르시군요. 물론 저야 기쁘지만…….”

에들린은 마치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처럼 각을 엿보다가 물었다.

“혹시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딘가 초조해 보이세요.”

“흠.”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초조해 하고 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별로 접점도 없고 걱정할 이유도 없는 상대에게 걱정받을 만큼 티가 났던 걸까.

이건 좋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나도 모르게 시야나 생각하는 방법이 좁아질 수 있었다.

마초는 쫌팽이 같이 굴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싸웠던 적대 세력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왔거든요.”

어디까지 말할지 고민한 끝에, 나는 앞뒤를 자르고 그렇게 걱정거리만 내뱉었다.

평소에 접점이 적은 상대는 이럴 때 좋다.

시도 때도 없이 신세 한탄을 하는 지인만큼 귀찮은 사람은 없잖은가?

하지만 접점이 적다면 조금이라도 상대로부터 친밀감이나 호감을 얻어 내고자 할 때가 많기에, 적당히 불평을 해도 적극적으로 들어 주는 것이다.

입조심만 하면 약점을 잡히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다.

“후환을 남긴 걸 걱정하고 계신다는 건가요? 그리고 적대 세력이라고 하시면…… 로마니아의 암회라거나?”

봐라. 바로 물었다. 나는 불평조차 계산적으로 해대는 자기 자신이 웃겨서 실없이 웃었다.

“그런 셈이죠. 지금까지는 그래도 잘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반쯤 죽여놓고 놓쳤으니 언제 보복하려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타협이 가능한 상대도 아니어서 더 곤란하죠.”

“그렇군요. 그건 어떤 일을 하든 수준이 높아지면 맞닥뜨릴 트러블이니까요.”

에들린은 차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조언이라기엔 거창하지만, 한 마디 해 드려도 될까요?”

“부디.”

“권력을 손에 넣으세요. 그런 범법자들과의 악연은 개인의 무력이나 재력이 아니라, 명분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단체의 한 자리를 꿰차면 쉽게 해결된답니다.”

권력?

내가 예상 밖의 대답에 눈을 끔뻑거리자, 에들린이 말했다.

“저랑 크롬웰이 그런 경우죠. 만약 저희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이 저희에게 보복한다면, 그들은 길피 길드나 마법사 길드에게 다시 보복받을 각오를 해야 할 걸요?”

“……길드의 이름을 걸고 임명한 지부장님들께서 해를 입으셨는데 그냥 넘어간다면 대외에 위신이 안 서니까요.”

북한에서 쏜 미사일이 미국의 빌딩을 무너트리면 사상자가 없어도 ‘안 쥬거씀 돼써!’ 하고 끝날 수는 없는 법!

자기 사람이 좆 되건 말건 내버려두는 단체는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권위를 챙기려면, 당연히 엿을 먹은 만큼 대가를 치르게 하겠지.

“거기까지 아신다면 더 입 아프게 설명할 것 없죠. 예전에 당신도 말씀하셨잖아요? 흑마법사라는 족속은 광인이나 정신이상자에 불과하지만, 머리는 비상하다고요.”

그런 말도 했었나? 그때 흑마법사 대책 연합에 꼽사리 낀 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섬겼어서 뭔 소리를 했는지 좆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

듣기만 해도 똑똑해 보이는 대사 아닌가. 그러면 내가 한 게 맞겠지. 크헤헤헤헤.

“그것과 마찬가지에요. 머리가 장식이 아니라면 보복으로 얻는 이득과 손해를 계산해서 움직이겠죠. 사악한 단체라면 더 그래요. 멍청하고 사악하다면 진작 들켜서 토벌됐을 테니, 그 단체의 장(長)은 충분히 현명할 거에요.”

“그럴까요? 아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에들린의 말을 곱씹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100% 맞는 말은 아니다. 권력에도 장단점은 있겠지. 하지만 마냥 개인주의 집단만 아니라면 소속할 가치는 차고 남을 만큼 있을지도 몰랐다.

고고학계요? 거긴 학자가 뒤지면 뭐 쓰다 만 논문 주워 먹을 거 없나 랩실이나 기웃대는 하이에나 소굴인걸? 고고학계만큼 개인주의 단체의 아이콘 같은 집단이 또 없다.

나는 콧김을 뿜으며 팔짱을 꼈다.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고 했던가.’

이걸 뒤집어서 말하면, 충분한 의무는 그에 걸맞은 권리를 보장한다는 뜻이다.

‘나나 내 가족을 해치는 게 내가 속한 단체와 전면전이 될 정도의 권력과 위치를 손에 넣는다면……’

나를 걱정하게 만드는 적이니 암살자니 하는 것들에게도 큰 압박이 되겠지.

핵 미사일 버튼을 가진 남자의 가족을 몰래 죽이는 것과, 미국 대통령의 가족을 죽이는 것.

적의 강함은 비슷해도 결과나 느낌은 천지차이다. 그리고 그 후폭풍의 차이는 소속 단체의 여부가 낳는 것이었다.

‘내 최종 목적을 위해서라도 권력은 나쁠 건 없어.’

나는 장차 더 높은 스테이지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내 미래에 권위를 한 스푼 얹는다고 손해는 아니었다.

당연히 귀찮은 일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아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 귀찮음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

솔직히 께름칙하긴 한데, 다나가 습격당했다고 착각했을 때의 그 초조함은 진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

그걸 막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었던가.

“염려가 앞서시는가 보군요. 사실 권력이란 게 그렇답니다. 손에 넣기 전까지는 걱정부터 들기 마련이죠.”

내가 고민을 거듭하자, 에들린은 자기가 지나쳐온 길목에 발을 내디딜까 망설이는 후배를 보듯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모험가들은 자유를 구속받는 걸 싫어하고, 권력이라는 것에도 몸을 사리죠. 그래서 귀족들을 상대할 때에도 현명한 사람일수록 지나치게 겸손하게 굴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반개하는 그녀.

내 마음이 훤히 보이는 것도 아닐 텐데, 귀신 같은 통찰력이었다. 이게 연륜이라는 걸까. 본인한테 말하면 내가 아줌마라는 소리냐며 화를 낼 것 같지만 말이다.

‘……분명 내가 귀족이나 그에 준하는 권력자한테는 일단 숙이고 들어가는 버릇이 있긴 해.’

그게 이상한가 하고 물으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짜 머리를 박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조심하는 정도로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다면 좆대로 지랄하다가 뒷감당에 고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근간에는 다 이유가 있댔지.’

내가 권력자에게 겸손한 건 ‘사회적 권력’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정체 모를 위압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히 힘이 쎄고 돈이 많다고 국가의 권위에 주먹을 날려대고 싶진 않으니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개틀링건이 주먹보다 약한 건 아니잖은가.

하지만 만약, 내가 권력자를 상대로 느끼는 이 거북함과 망설임을…… 나를 지들 애미애비의 원수처럼 여기는 씨팔럼들에게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흐음.”

그거 아주 매력적인데?

“감사합니다. 과연 현자들이 즐비하다는 길피 길드의 지부장님. 멋진 조언, 꼭 참고하겠습니다.”

내가 고민을 끝내마치고 말하자 에들린이 웃었다.

“그렇죠? 그러면 저희 길드에 가입하실래요? 지금 가입하신다면 실적 보너스도 있어요!”

아니 쓰벌 그건 좀.

니들은 내가 동물 드론을 쓴다고 하면 옐로 몽키는 동물의 존엄도 안 챙기냐면서 빼애액 거릴 것 같단 말이지.

존나 그런 틀니 딱딱 꼰대 집단은 고고학계 하나면 충분한 거에요. 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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