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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13화 (413/1,009)

혹시 당신은 딸딸이를 치다가 중간에 멈추고 일하러 가본 적이 있는가?

당연히 나도 그딴 짓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오늘의 경험을 거름 삼아서 쉽게 상상할 수는 있었다. 2~3발 싸고 끝낸다는 게 이렇게 찝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다나와 애매하게 섹스하다가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펜을 잡고 연구에 몰두했지만, 집중은 잘 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찐퉁 마법사들 사이에서 빡집중을 해 봤자 뭘 하겠어.’

실전형 야매 마법사인 나는 마법 이론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결국 30분쯤 지나서부터는 클럽 얘기로 열띈 토론을 나누는 인싸들 사이에 낀 아싸 집돌이처럼 침묵하는 결말.

결국 내 역할은 여기서도 번역기였다. 랩실…… 연구…… 무료 번역기……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으윽, 그들이 제 뇌를 더럽혔습니다.”

“헛소리 말고 걷거라. 프랑이랑 라리루라가 기다리고 있을 것 아니더냐.”

“신경 쓰고 가자. 저 새낀 냅두고 가면 알아서 따라와.”

“아니 남편 취급이 산책 나온 개새끼랑 동급인 거 뭔데.”

아무튼 그렇게 그날의 연구를 끝내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티르시는 피곤했는지 길드 기숙사로 돌아가서 꿀잠을 자려는 모양이어서 배웅해주고 오는 길이었다.

“남편 왔다.”

“나도 왔느니라.”

“으와, 베로니카가 병신한테 물들었어….”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복귀해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내일 잠깐 의뢰 나갔다 올게. 빠르게 하면 2~3일 컷으로 끝날 것 같긴 한데, 다들 미안해.”

“일인데 어쩔 수 없지. 모험가 의뢰야?”

프랑이 컵을 홀짝이면서 물었다. 빨개진 볼이 깜찍하다. 콱 깨물어주고 싶네.

“아니, 사적인 청탁. 근데 나중에 뒤에서 적당한 의뢰서를 하나 만들어서 내 실적에 한 줄 추가해 주기는 할 것 같애. 그때는 프랑 너랑 라리루라도 이름 넣어달라고 하게.”

“아, 그래줄래? 헤헤. 고마워.”

“고맙기는. 너희도 실버 클래스는 달아야지.”

지금 당장은 별로 의미 없을지 몰라도, 긴 안목으로 보면 준비해 둘 만한 일이었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타이틀 업적작은 가성비만 좋다면 절대 손해가 안 되니까.

온 가족의 미스릴 파티.

거 무림세가도 아니고 존나 쎄 보이는 일가족일세.

“글고 후배님아. 가기 전에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시간 좀 내 줄래?”

과일을 깎아서 1개 집어먹고 베로니카 앞으로 밀어준 나는 소파에서 캣닢으로 테레사랑 장난치던 라리루라에게 손짓을 했다.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면서 싱글벙글거렸다.

“네? 뭔가요? 고작 2~3일 못 본다고 저랑 알콩달콩 하고 싶어지셨나요? 어쩔 수 없네요.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다 알고도 넘어가주는 맹랑한 저였답니다.”

“누가 얘 술 멕임?”

“프랑한테는 줬는데.”

다나가 내가 사온 술을 마시다가 대답하자, 잔을 낼름대던 프랑이 허겁지겁 변명했다.

“나 안 취햇어! 이케이케 물 타서 마셧어!”

“응. 아무도 안 물어바써.”

술판 연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개판이네. 나는 픽 웃다가 라리루라에게 근엄하게 말했다.

“라리루라. 다른 세상에서 왔다고 하면, 웃을 거야?”

“누가 이 선배 술 먹였어요?”

부부 사이의 불신, 이대로 괜찮은가?

존나 가족끼리 신뢰가 없어요, 신뢰가.

***

그날밤 나는 라리루라에게 고향 얘기를 해 주었다.

─……신기하긴 한데, 사실 신이 어쩌고 하는 얘기만 해도 벌써 제 놀람의 역치를 넘어 있어서 그닥 놀랍진 않네요!

우리 후배님은 반신반의하다가 그렇게 매듭을 지었다.

그래도 피곤하긴 했는지 라리루라는 방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내 침대에서 코코낸내 잠들었고, 나는 그녀가 깨어나지 않게 새벽에 몰래 빠져나와야 했다.

아무튼 어찌어찌 아침 일찍 출발한 나와 베로니카는 황금 늑대가 발견됐다는 마을에 도착했다.

정확한 위치 정보의 출처는 캐서린을 거쳤고,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이었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기도 전이었다. 나는 산 중턱에 걸린 태양을 가엾게 바라보았다.

“느리구나. 퇴근하는 것조차.”

후후, 태양 놈. 이 신속한 전개를 따라오지 못하는군.

퇴근이 느린 건 직장인에게 치명적인 단점이었으나, 휴일도 없이 수만 년을 저러고 있으면 태양도 출퇴근에 미적거리게 될 법도 했다. 태양신 파이팅이다.

나는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며 여관을 찾았다.

─와글와글.

어떻게 황금 늑대의 소문이 돌았던 걸까. 모험가들은 당연하고, 정체도 수상쩍은 놈들까지 구석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딱히 걱정할 수준은 아니겠지. 진짜 위험한 놈이면 이런 시골 마을의 작은 여관에 방을 잡지는 않을 것이니까. 노숙을 하든 뭘 하든 좀 더 그럴싸하게 가오를 잡을 터였다.

“식사 2인분요.”

밤이어도 행동이 어렵지는 않았기에 바로 출발할 생각이던 우리는 식사를 주문했다.

양심이 있는 주인장인지, 아니면 딴 손님들한테 이미 된통 깨졌는지 바가지 가격은 아니었다.

좁은 자리를 잡고 식사를 기다리고 있자 무장한 모험가가 알딸딸한 와꾸로 다가왔다.

“오? 거기 후드 쓴 언니 미인 같은데? 그런 미련해 보이는 새끼는 내버려두고, 우리랑 술 한 잔──”

“아, 쏘리. 분량 상 통편집 좀 할게.”

“엉? 그게 뭔── 커흑?!”

“끄에에엑──?!”

─우지끈! 쿠당탕!

허탕을 치고 분풀이로 깝싸대는 병신들을 NTR 시도죄로 몇 대 갈궈주고 정보를 캐냈다.

우리 베로니카가 얼굴을 가려봤자 턱선이나 몸매에서부터 미모가 느껴지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봐줄 이유는 없었다.

후드까지 씌워놨구만 찝적대는 건 무슨 심보여. 팍 씨.

“……평야 쪽은 허탕이라고? 니들은 시발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고블린이 평야에 어케 둥지를 트는데? 형 병신이야?”

“사, 산쪽도 성과는 지진부진하다고 하던데요…….”

“그럼 내가 시발 니들 따라서 평야로 갈까? 염병할 새끼가 아주 그냥 자살 시도를 하네. 대가리나 박아, 새꺄. 멍청하면 몸이 고생해야 해.”

식전에 인터뷰를 개시해 봤지만 개새끼한테서 나오는 건 개소리밖에 없었다.

황금 늑대는 몰라도 허연 개새끼는 요 있네. 화이트 도그는 충분히 쉬었다. 네 발로 걸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렴.

“식사 나왔슴다.”

대충 취객들 사이의 다툼 선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오자 딱 맞게 밥이 나왔다.

주인장은 익숙한 건지 영업이 건성인 건지 패싸움을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아마 음식 수준을 보면 후자일 것이다.

베로니카는 뻘건 국에 둥둥 떠다니는 뿌리 야채를 수저로 휘젓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 이 마을의 전통 요리인가? 나름 풍취가 있구나.”

“우린 사회적으로 이걸 역겹다고 하기로 했어요.”

브리타니아 음식 수준 평균을 잊고 있었다. 주문해서 돈만 손해 봤다.

뭐라고 따지려다가 포기했다. 이 좆 같은 괴식의 나라의 국격이 거기거 거기다 보니까 소 귀에 경 읽기일 게 뻔했다.

하는 수 없이 세레브한 고급 건량을 우물거리며 출발.

잠깐 테이블에 앉아서 쉰 것에 의의를 두도록 하자. 카페 커피에 붙은 자릿세 같은 개념이다.

‘늑대랑 고블린이 싸우고 있다고 했던가.’

나는 수풀을 창으로 썰어대며 정보를 떠올렸다. 술 기운이 싹 달아난 놈들을 인터뷰해서 들은 내용 중에서, 딱 하나 유일하게 쓸모 있는 정보가 그것이었다.

이 협곡의 고블린이나 늑대들은 대대적인 영역 다툼, 혹은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댄다.

물론 오늘 갓 찾아온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동물들이 영역 다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기에 뭘 물어보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나의 동물곤볼 레이더의 기념할 만한 첫 패배가 이런 식이라니. 덕분에 아닌 밤 중에 고생 좀 했다.

“오, 씨발?”

아마 1시간 정도는 헤맸을까. 나무 뒤에 은신한 나는 멀찍한 곳에 보이는 고블린 무리를 발견하고 창을 감췄다.

“고블린의 둥지더냐?”

“설마. 그냥 밤에 싸돌아다니는 놈들 같은데? 그 둥지라는 것도 여럿 있을 테고.”

그중에서 황금 늑대가 있다는 곳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다 헤집고 다니면 도망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늑대를 확보한 뒤에나 생각해야 하겠지.

‘오랜만에 이러고 있으니 추억 돋네.’

오랜만에 실딱 모험가 다운 의뢰여서 그런가. 좆밥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했다.

소환사의 협곡에서 정글러 어머니 안부를 묻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숲에서 부엽토 내음을 킁카킁카 하는 것에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되다니. 내 인생도 참 파란만장하군.

“냠냠.”

“뇸뇸.”

주저앉아 킁킁거리며 열매를 먹는 고블린들.

나는 들키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 고블린들을 관찰했다.

“쟤네도 나 못지 않게 고생 중이네.”

꾀죄죄한 놈들이 흙 파고 앉아서 열매를 쳐먹는 걸 보니까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정심이 아주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콸콸콸 솟아오르는데 그래.

“베로니카. 쟤네들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다른 모험가들은 건드릴 것 같구나.”

“아, 그럼 취소.”

─샤샤샥! 난 대번에 의견을 철회하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가히 10미터는 될 듯한 높은 나무다.

“거긴 또 왜 올라가느냐?”

“흐흐. 보고만 있어 봐.”

작게 속삭이고서 나는 싱긋 웃었다.

옛말에 이르길, 입장은 점프가 개념이라 하였다.

─파앗!!

프로 레슬러를 흉내내어 아름답게 도약.

내 몸은 중력에 이끌려 지상으로 추락했다.

“선수 입자아아앙!!!”

“데고륵?! (뎃?!)”

─쾅!!

나는 나무열매의 맛을 즐기던 고블린의 머리통에 원 펀치를 내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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