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24화 (424/1,009)

다다음날.

나, 프랑, 다나의 3인조는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집을 뒤로 하고 마차를 타고자 현관을 나섰다.

“저도 다나 언니 고향에 가 보고 싶었는데. 선배 나빴어요.”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자 라리루라는 불퉁하게 투덜댔다. 빨리 돌아올 생각이니까 이해해 줬으면 고맙겠다.

“좀 봐 주라. 이 선배가 너네 단장님을 보러 가서 겪었던 그 가시방석만은 피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이곳 사르가디스에 어느 정도 전력을 남겨둬야 했다. 티르시가 휴가를 못 받고 있고, 누군가 우릴 노린다면 사르가디스로 찾아올 확률이 높으니까.

특히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베로니카는, 그래서 더 우리 집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녀가 여기 있으면 만의 하나에 사태에서도 문제를 알고, 빨리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 무슨 일 있으면 알지? 우리 위치 좌표는 도착한 다음에 꿈에서 전해줄게.”

“그래. 아무 일 없기를 서로 기도하자꾸나.”

나는 남아 주는 아내들에게 키스를 해 주고 마차 승차소로 떠났다.

이세계의 마차는 21세기 한국의 시골 촌구석이랑 비교해도 까마득하게 배차 기간이 길었다. 특히 북부처럼 별 것 없는 곳으로 가는 마차는 더 그렇다.

“브리타니아의 북부는 진짜 별 게 없다던데, 실화임?”

“항구도 남부가 더 유명하니까. 더 북쪽으로 가 봤자 작은 섬 하나 있는 게 고작이라더라.”

“이거 이거 시골 촌년이었네.”

“지랄 마. 니 고향보다는 유명함.”

그렇겠지. 지구의 존재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나는 자기가 지구인인 줄 아는 정신병자일 뿐인데.

시시덕거리면서 넓은 마차에 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 북부로 가는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아으읏…….”

그리고 프랑은 마차의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가 계속 불편한 듯이 자세를 바꾸었다.

프랑이 저러는 이유를 아는 나는 먼산을 바라봤고, 다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프랑 너 왜 그래? 엉덩이 다쳤어? 치료해 줄까?”

“……아냐. 이틀이나 지났는걸. 위화감이 좀 있을 뿐이야.”

“위화감?”

“으, 응. 그런 게 있어.”

아무렴, 있지. 암캐의 날이라고.

해피 국제 남성의 날로도 불린다.

“출발합니다~!”

그때 마부가 채찍을 내려치며 출발을 알렸다.

이번 마부는 무려 연세도 지긋해 뵈는 아줌마였다. 마나빨로 남녀평등이 실현된 이세계답다. 지구에 살 때 여자 버스 기사에는 적응했지만, 여자 마부는 또 처음이구만.

─다그닥, 다그닥!

흔들리는 마차에서 나는 잠깐 명상을 했다.

원래 출퇴근길 이동이 세상 좆 같듯이 마차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즐거울 수가 없었다. 수상쩍게 여겨지는 걸 무시하고 〈공간이동〉을 남발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후우.”

하지만 그런 나도 다나만큼은 좌불안석은 아닐 것이었다.

“다나. 한숨만 벌써 10번째야. 출발한지 몇 시간이나 됐다구 그래.”

프랑이 나보다 먼저 다리를 떠는 다나의 손을 잡아줬다.

“……10번? 내가?”

“어. 많이 불안해? 너무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거라서?”

“아하하! 뭐래.”

다나는 반사적으로 허세를 부렸다가, 입을 굳게 다물었던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한 듯 어깨의 힘을 뺐다.

“불안…… 그렇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남한테 의뢰비를 주고 나는 결과만 듣고 싶을 정도야.”

“정말 그럴래? 나랑 노르가 다녀오는 동안, 근처 도시에서 쉬는 것도…….”

“안전에 떽떽대는 남편놈 때문에 못 할 일이네요. 그리고 뭐, 혈연이라는 건 눈을 돌린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끄으응…! 다나는 지겹다는 것처럼 기지개를 폈다.

“가 봐야지. 혼쭐이 나든 대판 싸우든, 괜스레 너희들까지 눈치 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야.”

“혼날 때는 나도 같이 털려 줄게.”

“내가 혼나면 너는 맞아서 입원해야 할 걸. 그때는 내가 잘 돌봐줄 테니까 안심하고 하프-식물인간 해.”

“식물인간한테 물 준다고 머리에 냉수 끼얹을 년. 걱정한 남편한테 인신공격이나 가하고, 잘 하는 짓이다 아주.”

우리는 다나가 딴 생각을 앓도록 잡담을 계속했다. 어차피 고민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면,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게 밝고 행복한 삶을 사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하루하고도 반나절 뒤, 나는 그 망할 지름길이 문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소, 손님. 제가 지름길로 왔는데, 저기 앞쪽에서 무슨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것 같아요!”

문제의 원인은 이 마부 씨였ㄷ4k.

드라이빙 고수들이 헛된 자부심이 언제나 그렇듯, 이 미친 아줌마는 네비에도 없는 지름길을 달리다가 우리를 개좆망한 이세계 네셔널 지오그래픽 촬영장에 떨궈버렸던 것이다.

김 여사 운운하는 얘기는 성차별이라서 싫어하지만, 이건 성별 이전의 문제다.

개 지랄 맞은 지름길 부심이나 부리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폭주 택시의 전형례였다.

이세계에는 돌아가는 길이 가장 지름길이라는 명언도 없는 걸까?

내 잘못도 아닌데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존나 마차 가챠 좆망했다 씨발.

마부가…… 똥 쌌다고…….

“발소리가 크네. 몸무게가 사람의 몇 배는 되겠다.”

나처럼 자다가 깬 프랑은 다나를 깨우며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발소리를 들으면 2족보행 같아. 오크나 오우거 아닐까?”

“아니, 쓰벌. 그게 길거리에서 만날 법한 상대여?”

무슨 상견례 치루러 가다가 호랑이랑 마주친 양반이 된 기분이로군. 오우거고 오크고 마차 전용 도로에서 버스킹 하다가 차에 치여도 책임 못 지는데.

고속버스 승객처럼 꾸벅거리며 잘 졸고 있었는데 이게 웬 청천벽력인지.

“아줌마. 마차 멈춰요. 돌아갈 순 없죠?”

“기, 길목이 좁아서 후진하다가 들킬 겁니다.”

목소리가 나지막해서 왜 일케 차분한가 했는데, 쫄아갖고 소리를 죽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모험가처럼 바리바리 무장했으니까 도와달라고 빈 거겠지.

“……의뢰비는 됐고, 요금이나 2배로 돌려주십쇼. 저희가 가서 좀 확인해 보고 오죠.”

“가, 감사합니다……!”

암튼 여기가 지름길이 맞기는 하겠지.

어떻게 하든 피하지도 못할 싸움, 빨리 해치우고 여관에서 푹 쉬어야──

“데에……?”

미스릴 클래스에게 줘팸 당한 경험을 살려서 자신감 있게 나서던 나는 입을 벌리며 우두커니 섰다.

적이 강해서? 아니, 그렇지 않다. 강하긴 하지만 기사단장 아재나 그밖의 강적들에 비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Sopweq!!! (죽어라!!!)”

“KiarrrrrrrrrrR!!! (죽인다!!!)”

좁은 바위 길목에서 오우거랑 트롤이 영혼을 건 맞다이를 펼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싸움의 결말이 지어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중상을 입은 오우거는 한쪽 팔이 꺾여서 무기를 놓치고서, 트롤에게 뚝배기가 깨져버렸다. 즉사였다.

“Kuuu……!”

“Quss qusssss!!! (크하하! 크하하하!!)!!!”

─쿠웅! 육중한 몸을 못 이기고 자빠지는 오우거.

트롤도 배에 빵꾸가 났지만, 그 상처는 이미 거의 활동에 지장이 없을 만큼 메워졌다. 싸움은 트롤의 승리였다.

“오우거가 트롤한테 당하다니!!!!”

그리고 그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나는 마치 원고가 날아간 3류 작가처럼 비명을 질렀다.

“트롤 새끼 주제에 오우거를 이겼다고? 말도 안 돼!! 이런 건 현실이 아니야──!!”

나는 이성 수치를 깎는 광기의 산물에 비명을 질러댔지만, 다나는 그런 리액션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뭐? 그거야 트롤이 오우거보다 강하니까 그렇지. 개소리 말고 빨리 싸울 준비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 씨발아 좀. 개새끼 또 정신병 도졌네.”

나는 인지부조화의 끝에 도플갱어를 본 오우거처럼 살의를 일으켰다.

──몇십 번을 반복해도 실험의 결과가 기존의 정설을 뒤집어버릴 때, 대학원생은 갈림길에 놓인다.

그 이론을 정리하고 수정한다는 미쳐버린 업무량을 견디면서 집에 돌아가길 포기할 것인가.

혹은── 그 ‘오류’를 교수 몰래 처분하고 퇴근할 것인가.

이 광경은 그런 대학원생의 딜레마와 한없이 닮아 있었다. 세상의 발전이나, 개인의 행복이냐 하는 딜레마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용기 없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한다. 내가 좀 더 고생하더라도 새로운 발견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꼴마초이즘을 단련한 나는 다르다.

꼴마초가 지닌 반인륜적인 수준의 자기애는, 다른 뭣보다 나와 내 주변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을 져버려도, 세상이 나를 져버릴 수는 없다!!”

타락파워마초 조조의 대사를 읊으며 나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팔코니아의 그리피스 교수는 말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자는 공포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공포의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오우거보다 강한 트롤? 인정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저 트롤을 구축해 버릴 각오를 다졌다.

우리가 지나갈 길목을 막고 있다느니, 트롤이 사람을 야무지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별점을 매기는 운송 길드의 인간 빼먹충이라거니 하는 이유는 둘째였다.

세상의 모든 판타지 작품에서 트롤이 재생력 빨로 오우거를 이기는 게 ‘상식’이더라도, 우리의 국산 판타지에서만큼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고래(古來)에서부터─── 코리안 오우거는 트롤보다 강하다고 정해져 있으니까!!!

“이 병신 같은 3류 판타지 같으니라고!! 하프 오크가 취췩 거리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SsssssssssssaAAAA!! (시끄럽다!!)”

트롤은 우리 마차를 알아차리고 통나무 같은 몽둥이를 무식하게 휘둘렀다.

밥 좀 먹으려는데 초파리가 자꾸 앵앵대자 전기 파리채를 휘두르는 깡패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어엿한 트롤-라자는 몽둥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트롤 새끼들의 상대는 소환사의 협곡에서도 질리도록 한 20대 청년다운 대범함이었다.

몸에 마나를 감은 나는, 거친 기합성을 뿜어내며 손톱을 내질렀다.

“제미니이──!!!!”

쿠와아앙──!!!

흑마법사 마피아 보스한테서 뱃은 무술과 트롤의 몽둥이가 공중에서 강렬하게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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