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35화 (435/1,009)

─투가가가가각!!!

[크으으으……!!]

창에서 뻗어나간 회오리는 습격자의 몸에 꽂혔다. 마법사 새끼는 굵직한 목소리로 신음을 눌러참았다.

내 시그니쳐 무술인 무무역역무의 찌르기 연발에다 바람의 사출을 담은 기술이었다. 나름 필살을 노린 기술이었지만, 놀랍게도 놈은 여러 방을 정통으로 맞고 버텼다.

‘옷도 거의 멀쩡해! 방어력으로 버틴 게 아니다!’

그리고 바람이 흩어지는 저 모양! 심히 낯이 익었다.

‘공격 마법에 내성을 주는 ᚦ(Thurisaz)의 룬!’

물론 내 창술은 마법이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깃든 바람의 마나는 내가 현대 마법의 술식을 응용한 물건이었다. 룬에서 발전한 마법사 길드의 바람 마법 말이다.

그러니까 상대의 룬 숙련도가 높다면, 저 마법 내성에 데미지가 줄어든 게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씨발 근데 또 룬이냐!!!]

존나 저거 인류한테는 마이너한 마법이랬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뒤늦게 눈치챘다. 공중에 바위를 소환해서 떨구는 건 갑작스러운 재앙을 상징하는 ᚺ(Hagalaz)의 룬의 효과 아니던가.

거기에 저 무식한 덩치와 룬 마법.

떠오르는 적수가 2명── 아니, 2마리 있었다. 나는 절대 인간으로 볼 수 없는 4미터 이상의 덩치와 찢어진 옷 틈에서 보인 녹색 피부로 적의 정체를 추리했다.

‘아무튼 일단 족쳐놓고 생각한다!’

나는 가속하면서 창을 당겼다. 혈수마공의 창술 응용도 안 통할 것이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타오르는 손길(Burning Hand)>에서 불꽃의 술식을 떼어다가 붙인 무술이니까.

다행히 내게는 룬에 기반하지 않은 마법이 있었다.

내 몸에 야수회귀의 마나를 피어올랐다. 킬각이 보였다.

[……열등종!! 네놈이 감히 어떻게!!]

습격자는 날아오는 익룡을 밟고 나를 보고 우렁차게 포효하면서, 공격을 막고자 마법을 발동했다.

[ᚺ(Hagalaz)!! ᚦ(Thurisaz)!!]

룬 주문을 영창하자 가시가 가득 솟은 룬 방패가 생겨났다.

이 가속도 그대로 들이박으면 가드레일에 부딪힌 티코처럼 뒤지기 딱 좋을 것이다. 마법사의 덧니가 삐져나온 주둥이가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슈팟!!

나는 냉정을 유지하고서 창을 내질렀다.

기교를 빼낸 【게르튀르】 공격기 제 2품새였다. 담백한 찌르기 한 방이 습격자의 실드에 닿고── 룬으로 만든 3겹의 방어막을 송곳이 콘돔 뚫듯 관통했다.

[크헉학!?]

습격자가 인간과 다른 색의 피를 토해냈다. 나는 이죽대며 쏘아붙였다.

[미안하다. 내 창이 남의 마나를 좀 많이 역겨워 하거든.]

타인의 마나를 거절하는 창대의 힘이었다.

룬 마법이라도 결국 마나로 구성된 언령이다. 마법은 마나가 흐트러지면 무의미하다. 메이지 슬레이어인 것은 공격 마법 내성을 떡칠한 니새끼만이 아니란다.

[야. 개구리 뒷구녕에 폭죽 넣고 터트려 본 적 있냐?]

나는 창날에 마나를 압축시키며 말했다.

어릴 적의 일이었다. 농촌 친가에 올라간 나는, 거기 살던 시골 소년들이 개구리에게 천 원 하던 폭죽을 꽂고 터트리는 잔혹동화를 리얼 타임으로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게 니 미래야, 오우거 새끼야.]

[크아아아악──!!!]

순진무구하기에 더 잔혹하던 시골 소년처럼 중얼거리면서, 나는 스프링 점프처럼 압축시킨 마나에 불 속성을 부여하며 터트렸다.

─퍼억! 창대에 의해서 마법 내성이 해제된 오우거 마법사 새끼의 몸은 클레이모어가 터지듯 전방으로 폭발사산했다.

땅이 바로 코앞이었다. 나는 오우거의 대갈통을 밟고 점프했다.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어디 보통 사람인가? 나는 추락 에너지를 각력으로 상쇄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다나는 간신히 상황이 마무리되자 무릎을 꿇었다.

“후우, 후우……! 씨발, 지금 거 뭐였냐……?”

“오우거야. 오우거 마법사.”

“씨발 그게 뭔 개풀 뜯어먹는…… 잠깐. 너 예전에 비슷한 새끼랑 싸웠다지 않았냐?”

다나는 내가 해줬던 얘기를 듣고 표정을 바꿨다. 진지해진 누나에게 대답하면서 나는 오우거의 시체를 뒤졌다.

“그래. 티르시랑 저주 풀리기 전의 베로니카랑, 승급 시험 치루러 갔다가 졸지에 오우거도 잡고 왔었지.”

그때 그 놈도 사람의 말을 하고, 룬 마법을 썼었다.

내가 품을 뒤지고 있는 건 그것 때문이었다.

‘이 개새끼, 옥새나 뭐 그런 거라도 갖고 있나?’

그때 그 오우거 놈은 옥새에서 지식을 얻고 기고만장해진 정신병자 오우거였다.

아마 뇌를 쪼개봤으면 그 안에 2번째 머리가 되지 못한 뇌가 한 덩이 더 붙어 있거나 했을 것이다. 그 뇌가 독전파를 쏴서 그런 망상증 병신이 된 것이었겠지.

이 놈도 비슷한 상태라면 아이템도 줍고 추리의 증거물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마인드로 품을 뒤져본 나였는데, 내 손에 떨어진 건 전혀 예상 밖의 물건이었다.

“……허미 씹?”

염색한 실을 뜨개질하듯 엮은 부적이었다.

장인어른이 주신 것에 비하면 조잡하고 크기도 컸지만, 그 생긴 꼬락서니는 누가 봐도 같은 부류의 물건이었다.

‘이 새낀 또 왜 이런 걸 들고 다녀?’

설마 사람을 잡아먹고 기념품으로 챙긴 건 아니겠지?

나는 의문으로 생각했지만 일단 쌔벼뒀다.

그밖의 다른 아이템은 룬 마법의 보조 아이템 정도가 고작이었다. 솔직히 좆도 쓸모가 없어 봬서 그냥 버렸다.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둘 다 고마워. 다친 데는 있어?]

리루아가 달려와서 물었다. 나랑 다나는 동시에 프랑부터 살폈다가,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단 걸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족친 익룡도 저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걸 보면 싸움은 일단락이 됐다고 해도 되겠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예. 마을 사람들도 다친 곳은 없으시고요?]

[응. 저 픽트 인 여자애…… 다나 덕분에.]

나이 스물 아홉에 여자애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다나는 쑥쓰러워 하기도 벅찬지 숨을 쌕쌕 거리기만 했다. 본인의 마나량에 비해서 많은 량을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슈콰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그런 우리 눈나를 놀려대려고 낄낄 거리려다가, 주저앉은 다나에게로 날아드는 창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생각하기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였다.

다나의 옷을 당겨서 그녀의 몸을 투창의 궤도에서 빼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투창은 정말 경악스러울 만큼 빨랐고, 내 몸을 빼낼 만큼의 시간은 도저히 확보할 수 없었다.

─촤아악!!

야수회귀의 마나를 끌어올려서 버텨보려던 나를 구해준 건 리루아였다.

그녀는 토끼를 덮치는 육식동물처럼 창에 달려들면서 몸을 비틀었다. ─콰아아아앙!!! 창은 위력을 간직한 상태로 땅에 메쳐져서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진 쇠젓가락처럼 흙먼지를 피어올리며 멀리까지 날아갔다.

[으큭.]

리루아가 손이 저린 것처럼 금색 꼬리와 귀를 바짝 세웠다. 나 또한 최대까지 치닫은 긴장감과 들끓는 분노를 느끼며 저 먼 숲의 안을 노려봤다. 창은 거기서부터 날아왔던 것이다.

─쿵, 쿵, 쿵, 쿵.

“……노르.”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프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점차 가셨다.

어지간해서는 나를 믿는 프랑이라도 그렇게 될 만큼, 경시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였다.

[올로루트는 죽었나. 똑똑한 친구였거늘.]

[공명심이 앞선 대가입니다. 선봉장이 되고 싶었다면 그는 마법보다는 검술을 길러야 했어요.]

나는 숲에서 등장한 몬스터 무리를 보고 손이 살짝 떨렸다. 가오가 상해서라도 인정하기 싫었는데, 스스로 부정할 수도 없을 만큼 죽음의 공포가 솟아났던 탓이었다.

오우거와 트롤이 최소 100마리.

지능을 가진 듯 대화를 나누며 마을을 포위하며 진군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무장 상태도 충실했다.

수괴로 보이는 트롤은 남들보다 한 바퀴는 더 큰 덩치에다 동물 가죽을 감았다.

사천왕처럼 따라가는 3마리의 오우거/트롤들도 모험가 팀 뺨치는 장비였다.

전부 숲에서 주울 수 법한 장비였지만, 금속보다 생물 드랍템이 튼튼한 몬스터 헌터식 이세계 장비관에서 그건 수준이 높은 장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잡졸로 보이는 부하들도 녹슨 투구라도 하나씩 낀 데다가, 곤봉이나 검으로 무장했다.

말이 좋아서 곤봉이지 단두대나 공성추에 손잡이를 달아놓고서 무기라고 지껄이는 수준이었다. 태어난지 30초 된 갓난애기라도 저것에 맞으면 뼈와 살이 분리되겠다는 걸 깨닫고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염병. 미치고 팔짝 뛰겠네. 저 새끼들은 또 뭐야?”

마나 중독의 증세일까. 다나는 현실감을 못 느끼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오, 오우거야! 오우거의 군대!!]

[꿈인가? 난 이방의 전사에게 맞고 기절해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다른 이들의 반응은 절망적이었다. 사냥이나 싸움을 좋아한다는 수인들조차 몬스터가 무장을 하고, 같은 에린의 말을 쓰며 자기들을 포위했다는 상황에는 경직되고 만 상황이다.

나는 360도를 포위한 몬스터 군대를 보고 혀를 찼다.

“애1미, 지랄 났네. 영역 밖으로 안 나온다매.”

“그래, 씹놈아. 내가 죽을 죄를 졌다 아주. 살아 돌아가면 내 엉덩이나 실컷 때리든가. 살아 돌아갈 수 있으면.”

다나가 억지로 일어나며 말했다. 듣기 싫을 정도로 불길한 말이었지만, 팩트는 팩트였다.

오우거와 트롤의 혼성 군대.

그것도 전부 다 무장을 하고 인간에게 지지 않는 무술이나 마법, 지능을 갖춘 부대다.

나도 1마리라면 이길 자신이 있다.

아마 2마리여도 가능하다. 3마리가 동시에 덤벼도 비벼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5, 6, 7마리라면?’

완전히 단위를 달리 해서, 100마리라면?

미스릴 클래스가 여럿 있어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다.

달인에게 숫자는 의미가 없다지만 저 새끼들은 질도 무시할 게 못 되잖은가.

테란의 황제가 컴퓨터랑 8대 1로 떠서 이길 수는 있어도 ‘폭풍 저그 X 8’ 같은 식으로 밸런스에 개지랄이 나면 절대 못 당한다. 몇 분 버티느냐의 싸움이 될 뿐이다.

씨부랄. 마나를 다루는 골드 클래스 몬스터 100마리라니? 저건 거의 국가도 전복시킬 수준의 재앙일지 몰랐다.

아까 전의 놈은 마법 내성을 과신한 걸 기습적으로 해치운 거다.

만약 전사의 기량을 갖춘 놈이었다면 저렇게 바나나 껍질 벗기듯 간단하게 좆발라버릴 순 없었을 것이다.

[……정신 차려!! 멍하니 있지 마!!]

몬스터의 군대를 발견하고 10초는 지났을까. 충격에서부터 헤어난 리루라가 총괄자답게 외쳤다.

[뒤로 도망가! 픽트 인 애들 마을에도 알리면서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벗어나야 돼!]

[어머니! 뒤도 막혔다!]

[적이 도망칠 구멍에 더 많아!]

[길은 내가 뚫을게! 그만 얘기하고 얼른 움직여!]

분주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퍼졌다. 우리의 기색이 변한 걸 느낀 듯 수뇌로 보이는 트롤이 등에서 대검을 뽑았다.

놈이 다나에게 창을 던진 새끼겠지. 나는 눈에서 분노 어린 살기를 터트리며 놈을 쏘아보았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트롤 새끼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 포효했다.

[Umgf!! Roooooooooo──!!!! (가라!! 살육이다!!)]

[Roooooooooo──!!!!]

─쿵쾅쿵쾅쿵쾅!!! 호령에 맞춰서 포위진이 순식간에 마을 외곽을 뒤덮었다.

─쿠웅! 투구를 쓴 보병 오우거들은 지들이이먈로 진정한 광전사라는 듯 돌담에 달려들었다가, 그대로 튕겨져나갔다.

[세상에 좆쩐다!! 리루아 씨!! 저 돌담 뭐에요!!]

[정령의 방비! 가족한테서 가족한테로 전해지는 돌!]

오 씨발, 고대 문명의 결계인가!

이 사람들의 뿌리는 게르마니아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난 기대감을 품으며 얼마나 막을 수 있느냐고 물으려다가, 돌담 위로 펼쳐진 보이지 않는 결계 같은 게 금이 가는 걸 보고서 바로 아가리를 싸물었다.

“아 애1미!! 결계란 것들은 부숴지지 않는 걸 못 봤어!!”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달려!! 부숴진다!!”

다나의 외침에 나는 시키는대로 따랐다. 마을의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수인들은 꽁무니가 빠져라 달려갔다.

남침 빨갱이 트롤들의 본거지로 북상할 수는 없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더 많은 별동대가 이미 우리가 후퇴할 장소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 들창코 녹조라떼 새끼들!!! 몬스터 나부랭이가 짱구를 굴려서 전술까지 써!!!”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들, 그러고 보면 아까 상공에서 내려봤을 때는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은엄폐를 철저히 하면서 진군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만한 대군이 말이다!

철저한 군기와 통솔력이 없다면 불가능할 일!

그리고 썩어도 몬스터이니, 그건 암만 인간 뺨치는 지능이 있어도 세치 혀로는 절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이 군대의 수뇌는 그만한 괴물인 것이다.

아까 날아온 그 창만 봐도 안다. 투창에 쓰려고 만든 돌창이었는데도 리루아의 도움 없이 맞았으면 내 허리가 존나 노인용 실버 폴더폰처럼 곱게 접힐 뻔 했으니까!!

─콰창!!!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나마 진군을 막았던 돌담의 결계가 와장창 조사졌다는 걸 눈치깠다.

“윽, 큭……!”

다나의 발도 점점 느려졌다. 무리한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마나 중독의 증세는 마나를 준다고 해결되는 일도, 힐을 해서 풀리는 일도 아니었다.

이대로 가면 잡혀버린다!

앞쪽을 뚫으려는 사이에 후방을 따여서 후로게이 샌드위치 기차놀이처럼 칙칙퍽퍽 당해버릴 것이었다!!!

“──흐읍!”

내가 엘리트 대갈통을 가동하려 했을 때, 프랑이 한 발짝 먼저 행동에 들어갔다.

─퍼버버버벅!! 멈춰서서 가죽 갑옷 안에서 코어 나이프를 꺼낸 프랑은 그 나이프를 땅바닥에 한 번에 던져 꽂았다.

“노르!! 나한테도 마나 빌려줘!!”

“……젠장!! 무리하면 안 된다!!”

프랑이 하려는 걸 눈치채고 품 안의 옥새를 쥐었다.

내 분신은 안 된다. 그건 질량이 없다.

이대로 튀어도 따라잡힐 처지라면, 할 수밖에 없다!

“윽, 으으으으윽……!!!”

아내의 작은 어깨에 손을 대고, 거기에 저장해뒀던 마나를 프랑의 가냘픈 몸에 거침없이 밀어 넣었다.

《……태양신의 아들!! 아메넴헤트의 진성(眞聲)!! 진리의 계시를 통해 선언한다!!》

프랑은 겪어본 적 없는 마나량에 이빨을 갈다가, 피를 토하듯 영창했다.

《신으로서 일어나라──!!!!》

“Ugogogogogo── GOOOOO!!”

─콰르르르륵!!

흙더미가 뭉쳐지면서, 작고 굴강한 골렘들이 땅을 부수며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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