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40화 (440/1,009)

“뭐야. 아는 사이인가?”

벤자민── 그러니까 저번에 우리한테 지랄하다가 꺼졌던 병신 귀족이 말했다.

그 옆자리엔 나한테 깝싸다가 빽의 레벨 차이에서 쳐발린 참모 놈도 있었다. 이름은 까먹었다.

뭐더라. 셀틱? 차두리가 소속 구단에서 뛸 것 같은 이름이로군.

“예. 과거의 인연이죠. 이미 청산은 끝냈습니다.”

코난드인가 하던 마기마기의 대빵 놈이 자리에 앉았다. 그 잠깐의 인사가 끝나자 상석에 앉아 있던 인물이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복잡한 소개는 필요 없겠군.”

첫인상만 놓고 말하자면, 심약해 보이는 귀족이었다.

─찌르르.

수능 공부로 한국사에 몰두하던 내 직감이 말했다.

‘장남이 죽거나 쌉병신이어서 나가리가 되서, 대신 후계를 이은 차남이나 삼남이군.’

단, 원래 군주로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약한 게 흠인 타입이다. 역사의 흐름에서는 자주 있는 얘기였다.

‘이런 경우에는 형이 살아 있으면 지랄 나기 딱 좋은데.’

나는 븅딱 귀족의 아니꼬워 하는 와꾸를 보고 갑자기 피곤해졌다.

일이 돌아가는 꼴이 거의 아는 게 없는 나한테도 보일 정도였다.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나 같은 엘리트 마초는 직감적으로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게 트롤 군대만이 아닐 거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던 것이다.

“잘 왔네, 사제장. 옆의 두 사람은 일행인가?”

“……예. 현장에 있던 이들입니다.”

“알겠네. 우선 앉게.”

장모님은 탈주 제자의 엔트리에 곤혹하시면서도 일단 착석하셨다. 우리도 따라서 앉았다.

“본론부터 들어가지. 그대들의 말로는, 기백에 달하는 오우거와 트롤의 혼성 군대가 남하 중이라고 했던가?”

“하! 들을 가치도 없군!”

─쾅! 말을 끊으며 테이블을 내려친 건 당연히 그럴 만한 권위와 멍청함을 가진 병신이었다.

우리의 씹 븅딱 트롤러, 벤자민이다. 씨발 여기에 트롤 킹 스파이가 있었네.

“오우거와 트롤이 함께 움직여? 말을 하고 마법을 써? 그 숫자가 백을 넘어? 하나 같이 헛소리로밖엔 안 들리는군! 술 취한 음유시인도 돌에 맞을 소리다!!”

“……형님. 이미 우수한 척후를 여럿 보내 놓았습니다.”

영주는 머리가 아픈 것처럼 눈두덩이를 감쌌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확인하고 오면 됩니다. 저희는 거짓이 아닐 때를 대비하는 것이고요.”

“하! 거짓인 게 당연하지! 속임수라는 게 들통나는 날에는 네년들은 모조리 극형이다!”

그건 좀 좆 같은데 씹년아. 트롤들이 잠깐 쉬다가 오기로 하면 우린 단두대 직행이냐?

‘만약 그렇게 되면 부수고 튀어야지.’

다행히 눈을 누르던 영주가 입 모양으로 씨발 거리는 꼴을 보면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저 영주는 병신이어서 저런 븅딱을 계속 냅두나? 아니면 아직 명분이 없나?

모르겠다. 급한 일은 그게 아니니까 넘어가자.

“벤자민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점은 별로 문제가 안 될 듯 싶군요.”

그런데 갑자기 닥치고 있던 전직 차기 사제장이라는 놈이 주댕이를 놀렸다. 나는 어디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눈을 돌렸다가 그 새끼랑 눈을 마주쳤다.

씹새야, 뭘 쪼개.

“몬스터의 숫자가 정말 100마리를 넘어도 해치우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저희들 마기마기의 유능한 마법사들이 성벽을 보강하고 몬스터들의 머리 위에서 폭격하여 섬멸하면 사태는 끝입니다.”

“……코난드라고 했지. 자신이 있어 보이는군.”

“물론입니다. 파괴와 섬멸이야말로 마법의 진면목이죠. 그 정말로 몬스터들이 말을 하고 마법을 쓴다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 개의 마법을 버틸까요? 영주님께서는 일이 끝난 뒤 엉망이 된 성벽의 해자를 수복해 주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나는 얼핏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리는 개소리에 바로 오딘의 눈을 켰다.

내 생각대로였다. 픽트 인의 차기 사제장이라더니, 새끼가 몸에 몇 개의 마법을 문신을 새겨뒀는지 한 순간에 읽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대충 서른 개는 될 것 같았다.

자신감의 원천은 저 마법들이겠지. 사기꾼 새끼지만 마법사들을 부하로 부릴 근간은 있는 모양이다.

‘장모님이 교육을 잘 하셨군.’

단, 도덕과 윤리 점수는 빵점이다.

“자네는 저들의 말이 사실이어도 문제가 없다고 말하려는 건가?”

“하하하! 바로 그렇습니다! 오히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다른 것입니다.”

“그거 나도 궁금하군! 말해 보게.”

이때라는 듯 끼어드는 우리의 븅딱 귀족이었다. 미리 말을 맞춰둔 모양이군.

“하하. 다름이 아니라 말입니다……. 제가 아는 게 맞다면, 픽트 인들은 몬스터나 재해에 맞서는 대가로, 영주님의 신민도 아니면서 북부에서 사는 걸 허락받은 몸 아니던가요?”

“그런 조건은 없었다. 서로 존중과 경의를 가졌을 뿐이지.”

“암묵의 룰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윈은 마을의 벗이고,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것은 픽트 인의 의무라고 가르친 건 다름 아닌 당신이 아닙니까?”

장모님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코가놈은 그걸 비웃는 것처럼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영주님! 보십시오! 작금의 저들은 어떻습니까!”

스승이었던 장모님께 삿대질까지 하며, 코난드는 모가지에 핏대를 세웠다.

“선조 때부터 살아온 땅이라며 토지를 점거해 왔으면서도, 정작 위기에 처하자 그 땅조차 내버리고 영주님의 비호 하에 도망쳐 왔습니다! 그야말로 무책임의 극한! 자신만을 생각할 뿐인 야만인의 작태가 아닙니까!!”

“우리더러 죽을 때까지 맞서 싸웠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말씀을 조심하시지요, 사제장! 저는 더 이상 당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

장모님은 눈을 반개하면서도 조용해지셨다. 묵묵한 얼굴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코가놈은 입꼬리를 틀어올리며 말했다.

“대저 저들이 알윈 가문의 터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던 원인이 무엇입니까! 오우거와 트롤 같은 재해로부터 가문의 토지를 비호하겠다는 암묵의 조건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까!”

“크흠…….”

이번엔 영주가 헛기침을 했다.

목청이 찢어져라 외치며 늘어놓은 궤변이면서도, 상황 상 그것을 부정하기도 힘든 말이었다.

‘선동에 능하군. 새끼가 야부리 좀 털어봤나 본데.’

나는 인상을 썼다. 영주도 고민스럽겠지. 코난드의 궤변을 부정해서는 얼스터와 윙글링 사람들이 ‘그럼 우린 싸울 의무 없네?’ 하고 떠난데도 막을 수 없게 돼 버리지 않은가.

군주 개인의 선량함과 위정자의 의무는 상충할 때가 많은 것이다.

‘씹새들. 꽤 용의주도하게 구는군.’

만약 이 상황에서 정말로 우리가 떠나버리면 알윈의 멸망은 시간 문제였다.

영주라도 함부로 입을 열기 힘든 이유가 그것이다. 정말로 좆망각을 보고 있는지는 몰라도, 아쉬운 건 영주였다.

여기서 삔또가 상한 픽트 인/윙글링 인들이 떠난다? 그럼 마기마기의 지랄을 그의 사병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나저나, 저 띨빡들은 트롤 킹의 습격이 북부 자체의 패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저 새끼와 그 스폰서인 벤자민의 생각을 추측했다.

단, 나처럼 지혜로운 엘리트 마초가 아닌 빡대가리의 뇌내 망상에 맞춘 추리다.

‘알윈이 무너져도 북부에 다른 영지가 없는 건 아니지.’

이미 전령들이 그 영지의 주인들에게도 소식을 전하러 간 뒤일 것이며, 그들이 합세해서 트롤 킹의 군세를 퇴치한다면 사태는 종식된다. 퇴치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알윈의 영주, 그러니까 벤자민의 동생을 도시를 제대로 못 지켰다는 명목으로 축출한다? 뻔하군.’

그렇게 하면 벤자민이 알윈의 영주로 군림할 수 있다.

‘저 놈 밑에 붙은 마기마기에도 그만한 세력이 생길 거고.’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에들린의 말을 떠올렸다.

─네. 완전히 색다른 마법을 상품으로 내걸지 않으면 재판에서는 못 이길 겁니다.

─그 자들이 정말로 새로운 마법 계통을 만든다면, 그건 그것대로 저희가 역사의 한 순간에 참여하는 거잖아요? 저는 냅둬 두고 싶네요. 마법사 길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죠.

마기마기가 마법사 길드의 일개 파쿠리 단체로 고소 당해서 좆망하지 않으려면, 그들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마법을 상품으로 내걸어야 한다고 했던가.

‘……얼스터의 마법은 룬에 기반한 게 아니야. 새끼, 차기 사제장이었다더니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군.’

픽트 인의 모사 마법.

마나의 문신을 새기는 것으로 영창 없이 마법을 발동하는 기술!

그걸 체계화해서 판매할 수 있다면 분명 소송에서도 승산이 있었다.

‘윙글링 인의 유물까지 손에 넣으면 이길 가망은 더 커질 거고. 지랄만 떨어대는 줄 알았더니, 나름 계획이 있었구만.’

그리고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군자금을 저 븅딱 저능아 귀족한테서 뜯어낼 생각인가.

‘하지만 계획대로 잘 풀려봤자 알윈은 100% 개좆창이 날 텐데? 좆망한 뒤에 자금을 원조받을 여건이 되나?’

계약서 같은 걸로 받을 돈을 약속받아도 그 재산을 쌓아둔 알윈이 트롤 킹의 손에 화끈해져 버리면 벤자민이 파산을 때리고 목을 매달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북부의 영주들도 그렇다.

그들도 뒤지긴 싫으니까 협력은 해야 하겠지만, 병사들을 내보내고 개평도 못 받고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저 계획대로 굴러가면 알윈 가문이 통치하던 땅은 벌레에 파먹힌 듯 여기저기에 떼 줘야 할 판국이었다.

벤자민이 영주 자리를 얻으려면 그것 밖에 없지만, 좆망한 알윈의 재흥에 돈과 빚이 존나 들 건데? 거기서 어떻게 원래 목표치였던 만큼의 금액을 받아낼 생각이지?

‘아, 그랬지. 저 새끼는 트롤 킹의 군대를 직접 못 봤던가.’

아마 저 배은망덕한 사기꾼 놈은 던전에서 트롤들이 조금 튀어나온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하긴. 개씨발 오우거랑 트롤이 사이 좋게 힘을 합쳐서 100마리 넘은 군세를 꾸린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게다가 그걸 통솔하는 게 말하는 트롤이랑 매지컬 오우거?’

이야. 씨발. 이세계 소설도 무시할 게 못 되네. 82kg 귀족 영애의 역하렘 야설보다는 읽을 만 하겠다.

나도 신문으로 읽었으면 ‘이세계 기레기들 필력 오졌구요’ 하고 감탄하며 웃어넘겼을 것이었다.

‘실제로 그 트롤 킹을 본 입장에선 존나 똥볼 찰 게 뻔한 계획이지만, 우리가 설득해도 좆도 안 믿을 거고.’

트롤 킹의 군세는 일반적인 몬스터의 대량 발생과 차원을 달리 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들은 이 안개 낀 도시를 결코 재흥이 불가능할 만큼 파괴하는 것도 간단하겠지.

‘설득은 불가능하고, 냅두면 전황을 좆창내 가면서 염병을 떨겠군. 진짜 트롤 아녀.’

나는 조용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저 놈들에게는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건곤일척의 승부다. 내가 어르신 가문의 문장을 내밀며 엣헴 엣헴 거려도 씹고서 강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야말로 좆밥 아다 마법사들이 서큐버스의 유혹을 떨쳐낼 확률에 필적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 그만!”

─쿵쿵! 영주가 지팡이로 바닥을 찧었다.

코가놈이 입을 다물자 그는 근엄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그대들 사이의 싸움을 들을 시간도, 이유도 없네. 자네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간단합니다. 만약 저희가 그 몬스터의 군세를 물리치는데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면, 저들이 점거하고 있는 땅을 본래의 주인에게 맡겨 주시길 바랍니다!”

코난드는 그 질문을 원했다는 것처럼 물고 늘어졌다. 놈의 시퍼런 눈이 사냥감을 앞에 둔 매처럼 번뜩였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들이 행하지 않았던 영지 수호의 의무를 저희 마기마기가 해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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