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욕을 섞은 말에, 회의실이 뒤집어졌다.
나는 요란을 피우는 노땅들을 차분하게 꼬라봤다.
“트롤 킹의 군대는 예전부터 징조가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 잘 생각해 보게!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말은 ‘오우거들이 땅을 되찾고자 돌아오리라’는 뜻이야! 인류의 영토에서 쫓겨난 몬스터들이 다시 나타날 거란 의미 아니겠나!”
영주의 가신들은 오두방정을 떨면서 시끄럽게 굴었다.
그리고 다나한테 ‘너가 추측한 건 전부 틀렸어 쓸모 없는 버러지 같은 놈아’라는 비아냥을 들은 코난드는 표정을 싹 지우면서 정색을 빨았다.
‘저저 씨발럼이 태세 전환 하는 것 봐라?’
내 제육-센스에 따르면, 저것은 수컷 페미니스트가 만만한 여자 앞에서 정색을 빨며 지 좆대로 휘두르려고 할 때의 표정이었다. 팍 관자놀이를 망치로 두들겨서 움푹하게 만들어뿔라.
“이 천박한 야만인 년이! 네년이 뭘 안다고 떠드는 게냐!”
벤자민은 감히 내가 후원하는 단체의 대가리한테 욕을 한 거냐며 빼액거렸고, 다나는 그걸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흘러넘겼다.
피부색이 하얀 걸 빼면 얼스터 계열 인종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우리 눈나다. 하지만 옆에 쏙 빼닮은 픽트 인 장모님이 계시니─단, 가슴 크기는 제외한다─ 출신을 들킬 만 했다.
“진정! 진정 좀 하게!”
─쿵쿵!
영주는 고등학교 학급 회의에서 월급 루팡질에만 전념하는 담임 대신 회의를 떠맡은 반장처럼 고함을 쳤다.
하지만 천만 다행히도 그는 고삐리 반장과는 달리 권위가 높은 영주였다. 가신들은 빠르게 아가리를 싸물었다.
“고고학자. 그 말, 책임 질 수 있겠나?”
“시간만 있다면 충분한 증거 자료도 첨부해 드리겠습니다. 제 박사 학위를 걸고 확신합니다.”
다나가 부스럭대며 고고학자 브로치를 꺼내자 영주의 가신 중 한 명─아까 카르미네 대학의 인장을 알아봤던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하하! 멍청한 것! 그렇다면 더 문제다!! 네년들은 지금 같은 사태를 예측했으면서도 숨겨오다가, 일이 벌어지자 우리에게 도와달라는 듯 도망쳐 왔다는 뜻 아니냐!!”
벤자민은 자기를 영주로 만들어줄 배경이 와르르 무너지자 동네 코찔찔이 애새끼가 자기 부랄이라도 까고 튄 것처럼 풀발하며 날뛰었다.
도와주긴 누가 누굴 도와주냐 병신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랄도 저만큼 떨어대면 예술의 경지였다.
“저희가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저나 거기 계신 착각이 심한 마법사 분 같은 예외를 빼면, 픽트 인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아요. 저 문구가 에린의 말로 쓰인 문자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요?”
븅딱 귀족의 지랄을 구경한 다나는 어떤 지구인한테 배운 꼴받는 말투를 140% 사용하며 대답했다.
말로는 예의 바르게 말하면서도 악센트나 인터네이션에서 ‘나는 당신을 좆으로 보고 있습니다’ 라는 암시를 주는 어법!
아주 이 악독한 눈나가 나쁜 건 빨리도 배운다니까.
“게다가 이것과 같은 글귀는 알윈 가문의 서재에도 있다고, 방금 전에 벤자민 님 본인께서 말씀하셨지 않나요?”
“뭐, 뭐야? 그, 우, 우리도 얼마 전까지는 몰랐다! 모르고 한 일에 대해서 추궁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네. 저희라고 이런 일이 될 거라고 알았겠어요? 귀족 님들께서도 똑같은 조건에서 전혀 모르던 일인데.”
─휙! 머리를 뒤로 넘기며 다나는 싱긋 웃었다.
“설마 벤자민 님께서 친히 후원하시는 마법사 님도 해석을 잘못한 고대 문자를, 외국어라곤 브리타니어밖에 모르는 픽트 인들이 완벽하게 해석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시죠?”
“큭, 크으으……!!”
벤자민은 ‘니새끼는 눈깔이 삐어서 번역도 병신 같이 하는 새끼를 돈 주고 후원한 것?’ 이라는 말을 용케 알아들었다.
이야, 븅딱이라 빙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감탄하고 있자 가신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영주님. 잠시 손님께 질문해도 괜찮습니까?”
“그리 하게. 회의 중에 거수는 필요 없네.”
“감사합니다. 베르베이아 박사라고 했나? 그러면 저 자는 무엇인가?”
그는 자아를 가지지 못한 돌하르방처럼 굳어버린…… 씨발 또 이름 까먹었네. 아무튼 지 조상이 오우거라고 주장했던 모 시골 청년을 가리켰다.
“오우거가 인간과 아이를 볼 수가 있었나? 내 지식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기분이군.”
졸지에 선조님들 오시는 제사상에 인육을 올리는 미친놈이 돼 버린 시골 청년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다나는 시크하게 미소지었다. 보는 남편이 뿅 갈 것 같은 차가운 웃음이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라면 저 분께선 학계에 센세이션을 부를 표본이 되어주실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름이 우연히 곂쳤거나…… 가계도를 손 보지 않았을까요?”
“하하! 그게 하프 오우거의 후손이라는 얘기보다는 차라리 말이 되는군!”
아까 청년에게 으름장을 놓았던 가신은 껄껄대며 웃다가, 보란 듯이 표정을 싸늘하게 했다.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을지 모르나, 그대들의 주장이 영주님의 눈을 호도하려는 궤변일 뿐이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군. 무언가 반론할 내용이 있다면 듣겠네.”
“멍청한 소리! 저 년의 말이 진짜라는 증거가 있나!”
“벤자민 님. 말씀하신 것과 같은 논리로 따지자면, 저 청년의 가계도가 사실이라는 증거 또한 제시 받지 못했습니다.”
“이, 이 놈…!!”
나는 하나씩 아가리를 싸물어가는 벤자민과 그 따까리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원래는 저 주장을 내세우면서 천천히 픽트 인들의 터전을 빼앗으려고 했겠지.’
하지만 트롤 킹의 군대의 습격 소식을 듣고, 그걸 역으로 이용하려던 게 패착이었다.
‘아직 체급이 덜 큰 킬딸충이 킬각을 잘못 봤다? 그럼 뒤지셔야지.’
건곤일척의 강력한 책략은 역전을 당하면 좆망 각이 된다.
조금씩 픽트 인과 윙글링 인들의 입지를 좁혀갔다면 이런 반박 한 방에 영주와 가신들의 신뢰도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일발역전을 선호하는 책략가는 말아먹는 것도 순식간이야.’
원래 역사의 세계대전이나 주식 시장 등이 몇 번에 걸쳐서 증명한 사실이었다.
오르쿠스 코인에 꼴박한 마기마기는 이걸로 제대로 다지지조차 못한 기반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말이다.
“……분명 저희 마기마기의 해석에 오역이 있었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군요.”
코가놈은 계속 싸물고 있던 아가리를 벌렸다.
“누가 옳은지는 차차 확인해 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그 증명을 파악해줄 제 3자를 초청하기엔 상황이 좋지 못하죠.”
“예언대로 오우거의 습격이 나타났으니 말이야.”
영주는 이때다 하고 수긍했다. 그로써는 지랄을 떠는 형의 오른팔을 족쳐버리는 것 만큼, 트롤 킹의 군대로부터 영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실례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예언보다는 예측에 가까울 듯 합니다.”
다나는 조금 기세에 타서 잘못 말했던 것을 정정하려는 듯 말했다.
“오르쿠스는 ‘사람을 먹는 괴물’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경우에는 과거에 누군가가 오우거, 트롤과 같은 몬스터들의 집단을 예측하고 경고를 남겨두었다고 생각해야 해요.”
“우리 가문의 서재에까지 그 문구가 있다면 그게 더 말이 되겠군. 과거에 이곳을 찾은 누군가는 사람의 말을 하고, 마법을 쓰는 트롤이나 오우거의 존재를 알았다는 말인가……?”
콧잔등을 찡그리던 영주는 고민해도 쓸데없다고 생각한 듯 한숨을 쉬었다.
“길고 복잡해졌던 곁가지는 쳐내지. 저 청년의 선조가 이 땅의 주인이었다는 말은 당장 받아들이기 어렵다.”
영주의 눈이 장모님에게 돌아갔다. 나는 그걸 따라가다가 우리 장모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눈치깠다.
웨 그러시죵. 도와드렸는데 꼬우신 건 아니리라 믿겟읍니다.
“따라서 우리 영지의 우애로운 벗들에게서 거주하는 땅을 내놓으라는 자네의 청 역시 각하한다. 단, 사실이 어떻게 밝혀지든 그대들의 활약 나름으로 징벌이나 포상의 내용에 감안하겠다. 승복하는가?”
다시 말하면, 누가 옳고 그르든 좆 빠지게 싸워서 퀘스트 보상이나 처벌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내라는 말이었다.
길었던 언쟁을 매듭 짓는 깔끔한 정리였다.
영주 자리를 공자왈 맹자왈로 따낸 건 아닌가 보다.
“저희 픽트 인은 승복합니다.”
“어? 아, 응. 네. 저희도요.”
리루아는 과고 애들이 영어로 토론하는 현장에 던져진 중간고사 5등급 여중생처럼 당황하며 동참했다. 브리타니아 말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저희 마기마기도 승복합니다.”
코난드는 이를 악물고 씹어 뱉듯이 말했다.
새끼, 꼬시다. 존나 싸우다가 트롤한테 잡아먹히면 육개장 먹으러 장례식에 가 줄 용의 정도는 있음.
“흐응? 그렇다면 마기마기 여러분도 전투에서 많은 활약을 기대해도 되겠네요?”
나는 코가놈이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걸 보고 어느 정도는 만족했지만, 다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듯 했다.
쥐새끼들의 도주로를 막는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나긋하게 말을 거는 다나에게 코난드가 눈을 부라렸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희더러 성벽 밖에서 싸우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겠죠?”
“어머? 제가 그렇게 바보 같고 양심 없는 생각을 떠올리겠어요? 후후. 어지간히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면 그런 멍청한 발언을 내뱉었다가 자기 평가를 낮추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을 것 같은데요?”
…뿌득.
나날이 예리해지는 내 청각에는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려왔는데, 굳이 누구 이빨에서 난 소리인지 말할 건 없다고 본다.
‘선인장에 꽃이 피었군.’
부부는 닮는다고 하던가.
남편놈이랑 티키타카 하면서 기른 인성질이 아주 무르익은 우리 눈나였다. 인성질 스승으로서 자부심이 치솟네.
“합의는 끝났나? 그러면 척후의 보고를 기다렸다가 교전에 들어가겠다. 마법사 길드와의 협의도 남았으니, 남은 이들은 그만 물러가도 좋다. 해산하도록.”
“예.”
영주의 해산 명령에 우리는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나는 다나와 장모님, 리루아를 따라서 회의실을 나왔다. 그 길에 스쳐지나간 코난드와 븅딱 귀족의 표정이 씹창난 것을 보자 체증이 좀 내려가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
그렇게 밖으로 나오자 장모님은 어딘가 하고 싶은 말씀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셨다.
하지만 이미 ‘얘기는 일이 끝난 뒤에 하자’는 말을 해 버린 상태셔서일까. 머뭇거리기만 하시고 뭔가를 묻지는 않으셨다.
[……다나, 고맙다. 그리고 자네도.]
침묵을 뚫고 질문 대신 나온 듯한, 어색한 감사의 말이었다. 나랑 다나는 그만 픽 웃어버렸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진 재주가 이 정도밖에 없어서.]
[그렇게 깎아내릴 것 없다. 내가 못 했던 일을 해 주었어. 나는 거기서 더 시간을 주었대도 놈이 가져간 문구의 남은 부분을 언급하면서 트집을 잡는 정도밖에 못 했겠지.]
[……남은 문구가 또 있어?]
다나가 눈을 반개하며 묻자 장모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네 말대로 나는 뜻을 알지 못하니까, 물어봐도 얼핏 떠오르는 글자를 써 주는 정도밖엔 못 하겠지만 말이다.]
[혹시 그거라도 써 주시겠어요? 아, 거기 메이드 씨? 혹시 이 주변에 빈 방 있나요?]
나는 지나가던 푸짐한 인상의 중년 메이드를 잡아서 작은 방으로 안내받고, 거기서 가지고 다니는 펜과 노트를 장모님의 손에 들려드렸다.
[어설픈 기억이다만, 아마 이런 글자였다.]
─슥슥.
장모님이 써주신 글자는 초등학생이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훈민정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다가 대충 알아본 글자를 문맥에 맞춰서 수정해 보았다.
[이런 글자가 맞나요?]
[으, 음. 아마도. 내 기억과 거의 일치하는군.]
장모님은 얼떨떨한 듯 대답하셨다. 그렇게 놀라시면 못난 사위 놈의 어깨가 으쓱거립니다. 헤헤.
[흐응……? 이대로라면 해석이 좀 달라지는데?]
다나는 내가 수정한 마지막 문구를 읽고 눈을 찌푸렸다.
우리 누나의 말이 맞았다. 고대 고르갈리아 어는 영어처럼 쉼표가 붙은 뒷부분이 있으면 문맥의 해석에 영향을 끼치는 언어였기에, ‘느금마’랑 ‘느금마 만수무강’ 정도의 큰 해석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었다.
입으로 발음을 속삭이던 다나는 자신 없는 듯 중얼거렸다.
[……옛 오우거의 땅 위에 세워진 모든 왕국은, 그들의 창에 의해 무너지리라?]
[응. ‘영지’가 아니라 ‘왕국’이야. 오우거 새끼들이 나라를 갈아엎을 거라는 예측이었나 본데.]
트롤 킹의 군세를 본 나로서는 무시하지 못할 예측이었다.
‘장인어른의 말씀으로는 트롤이란 게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랬지.’
그리고 오우거를 뜻하는 ‘오르쿠스’도 땅 밑에 살고, 사람을 먹는 괴물을 의미한다.
이 경고문은 ‘언제고 저 새끼들이 돌아와서 개지랄을 떨 것’이라는 뜻인 것이다.
[쓰으으읍…….]
나는 가장 먼저 윙글링 인의 마을을 노린 매지컬☆오우거 새끼를 떠올리고, 장모님께 물었다.
[저, 혹시 이 물건이 뭔지 아십니까? 제가 장인어른께 받은 부적이랑 몹시 닮았는데요.]
오우거 새끼가 갖고 있던 물건을 보여드리자, 장모님은 그 색깔이 칙칙한 부적을 만지다가 인상을 쓰셨다.
[……정령을 달래는 부적이 맞군. 열악한 완성도지만 구전되는대로 땋은 물건이야. 이걸 오우거가 가지고 있었다고?]
[예. 사람을 해치고 훔쳤던 걸까요?]
[어? 우리 중에 오우거에게 당한 마을 사람은 없는데.]
[픽트 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훔친 물건이라기엔 낡지도 않았고. 수수께끼로군.]
[그렇군요.]
리루아와 장모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툭. 내 눈빛이 가라앉자 다나는 또 뭔 생각을 하냐는 듯 옆구리를 쳤다. 나는 표정을 풀고 그냥 웃었다.
[암 것도 아냐. 척후가 살아돌아오길 기도하자.]
[새끼가 별 재수없는 소리를 다 하네. 아무튼 우리도 이만 대기 장소로 가자. 아빠가 기다릴 거야.]
다나가 말하자 장모님이나 리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 장소라기엔 그냥 정원에 깐 피난 텐트 같은 느낌인데, 식사는 제공된다니까 상관없겠지. 아마 하인들은 우리가 묵을 방을 만들기도 바쁠 것이었다. 으윽, 노예 시절의 추억이 샘솟네요.
…우뚝.
그렇게 내려가던 중에 나는 문득 발을 멈췄다. 그리고 내 옆을 걷던 다나에게 옥새를 건네줬다.
“눈나. 이거 들고 먼저 가. 룬을 새겨둬서 GPS 노릇을 할 테니까, 내가 쫓아가면 됨.”
“……또 왜? 너 이 새끼 자꾸 밖으로 나가돌래? 아내 두고 외박 외근이 잦으면 이혼 사유다?”
“울고불고 떼 써도 절대로 이혼 안 해줄 건데? 금방 올게. 귀족 저택 화장실 좀 써 볼라고.”
나는 전봇대처럼 우뚝 선 다나를 떠밀어서 보내고, 1층의 복도를 잠깐 걸었다.
창문에 암막이라도 쳐둔 걸까. 시꺼멓게 물든 복도 입구가 나타났다. 나는 그 옆의 벽에 등을 기댔다.
“제가 그녀를 해치기라도 할 것 같았나요?”
“못할 건 또 뭐야? 주먹부터 휘두르다가 좆발리면 법 갖고 개지랄. 법을 내세우다가 개털리면 주먹질. 머가리 후달리는 사기꾼 새끼들 습성이 다 그건데.”
나는 벽에 기댄 채로 그늘진 복도에 대고 말했다.
“그래서 뭔데, 씹새야. 내가 니 입장이었으면 인생 조져지기 전에 뭐라도 해볼라고 존나 바쁠 텐데.”
“과연. 스승님께 듣던 것보다 입담이 거칠더니, 다나 양이 누구에게 배웠는지 알 것도 같군요.”
코난드는 복도에서 번뜩이는 안광을 가느다랗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