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나는 코난드 새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하품을 했다. 진지하게 대꾸하면 욕 밖에 안 나올 것 같아서였다.
코가놈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는 듯 지껄였다.
“조금 전의 회의에서는 많이 의외였습니다. 소문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 당신의 정체는 짐작이 갑니다만, 다나 베르베이아가 아직도 저렇게 고향을 위해 열을 올릴 줄이야.”
“글쎄다? 20년 넘게 연락을 안 했다던데. 너도 옆에서 본 게 있지 않냐? 사제장님이 왜 그러셨다던가 몰라?”
“알죠. 사제장님은 딸인 다나 베르베이아의 실종 이후, 절 가르치는 중에도 한숨을 쉬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겠죠. 10살배기 딸이 가출해서 소식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코난드는 계속 나불댔다.
“제가 아는 사제장님은 잔걱정이 많은 분이십니다. 입장을 분별하시기에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죠. 딸의 소식을 알아보겠다고 밤 늦게까지 브리타니아의 말을 배우시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그래? 그런 점은 내가 아는 다나랑 같군.”
“네. 하지만 그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저 모녀는 자신들의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방도가 없었다는군요.”
나는 복도의 옆─어두운 통로의 바로 앞─의 벽에 등짝을 기대고 있었지만, 코난드의 와꾸 상태는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누구든 저 새끼의 말에 웃음기가 섞여 있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죠.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니새끼가 편지를 빼돌려서?”
코난드의 목소리에서 좆 같던 웃음기가 싹 가셨다.
“……흥미로운 의견이군요. 논리가 비약됐기도 하구요. 왜 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흥미는 니 좆빡통 대가리가 더 흥미롭군요, 개씨발 놈의 새끼여. 내가 말 했지? 니처럼 찌질한 새끼들의 습성이란 건 다 고만고만 하다고.”
나는 꼴 받으라고 팔짱을 끼고 말했다.
“20년이야, 병신아. 2년도 아니고 20년. 누가 사제장님이 다나의 소식을 찾는 걸 방해하려면, 옆에서 실시간으로 마킹하는 게 아니면 불가능한 시간 아니냐?”
“그래서 제가 범인이다? 악감정이 섞인 추측이군요.”
“니가 탈주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을에 다나의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게 우연일까? 그래. 그럴 수 있겠지.”
조금 아쉽다. 하드보일드한 펄프 픽션의 탐정처럼 담배를 피울 타이밍인데, 나는 엘리트한 타입의 마초라서 담뱃잎에 독뎀을 받아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화륵.
그래서 나는 손가락 끝에 불꽃을 피웠다. 언변이란 말만이 아니라 손짓 발짓도 포함하는 능력치니까.
“운송 길드 사람들이 사제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러고 보면 요즘 따님이 안 보이네요?’ 하는 질문도 안 했다고? 사제장님은 다나를 찾아 헤매기까지 했는데?”
다나에게 들은 얘기다.
우리 누나가 2년 간 알윈에 머물다가 우연히 운송 길드의 사람이랑 마주쳤을 때, 그들은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면서 놀라했다고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장모님은 운송 길드원들에게 ‘알윈에 가서 내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나 편지를 맡기셨을 것이다.
그러면 길드원들이 다나의 실종을 모른다는 건 여러 가지 부분에서 모순적이다.
장모님이나 다나. 어느 한 쪽에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이라도 했어야 정상 아닌가.
장모님이 20년 넘게 그 위화감을 눈치도 못 챘다니. 좆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나가 없어지고 얼마 안 가서 니새끼는 차기 사제장으로 뽑혔지. 차기 사제장 자리가 어필 좀 해서 따낼만한 자리는 아닐 테니까, 이건 심증으로 삼기에도 뭣한 걸로 치자고.”
“……………….”
“하지만 그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일도 있지. 예를 들어 ‘체면 상 외부인과 교류하기 힘든’ 사제장님을 대신해서 편지 심부름을 하거나, 운송 길드의 중핵과 친분을 다지는 거.”
나는 피워올린 불꽃의 모양을 졸라맨처럼 만들어냈다.
“20년 동안 흠이 드러나지 않으려면 편지를 삥땅치는 것 정도로는 부족하지. 마을을 탈주한 뒤에도 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운송 길드 알윈 지부의 간부급을 매수하는 게 확실해.”
“야만인 꼬맹이가 무슨 재주로 바깥 세상의 운송 길드원을 매수한답니까?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마법사들이 마도서 같은 고가의 물품을 옮길 때에는 운송 길드도 한 몫 끼잖아? 알윈 지부의 부패 관리가 용기가 있고 능력이 된다면, 밀봉해 놓은 마도서를 베껴서 유통할 수도 있었을 걸?”
에들린에게 〈동물 회화〉 마법을 받으려고 했을 때였던가.
마법사 길드의 지부장이나 에들린 수준의 인사(人士)라면 지부에서 지부로 마도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에들린의 의뢰를 받아서 황금 늑대 모피를 줍줍하러 갔던 게 그래서였지.
“알윈의 운송 길드가 원래부터 마도서 밀유통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다면, ‘모사 마법’이나 ‘제 2의 마법사 길드’라는 미끼에 혹했겠지. 사제장님이 매일 가르쳐준 마법을 현물로 넘겨줄 수도 있었을 거고.”
─퍽! 나는 픽 웃으며 졸라맨을 딱밤으로 터트렸다.
“이야, 가만 보면 하나같이 존나 우연이네? 니가 세웠다는 자칭 마법결사도, 아직 길드 승격이 못 돼갖고 ‘마도서 유통 상회’로 등록돼 있지 않던가? 그럴 자금이나 기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담? 응? 대답해 봐, 이 씨밸럼아.”
픽트 인의 마을에 찾아와서 지랄하던, 셀 뭐시기라고 하던 자칭 대마법사가 떠올랐다.
좆병신이기는 해도 귀족인 벤자민도 모르던 아르마알스의 이름을 알던 새끼.
‘명색이 귀족놈이 상대인데 네임밸류도 없는 중간관리직을 붙였을까? 지랄. 마기마기에서도 나름 직책이 있는 놈일 걸?’
그리고 그런 놈이 아르마알스가 로마니아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실감하고, 나와 마찰을 피하려 들었다고?
그것도 저 븅딱대가리 벤자민을 설득하려 들 정도로?
“셀 뭐시기 하는 새끼가 전직 간부거나 그쪽에서 뽑아 온 사업 팀일지도 모르겠군. 그게 아니어도 니가 마을을 탈주했다고 증거인멸 삼아서 묻어버리진 못했을 것 아냐?”
마기마기는 아직 정식 길드가 되지 않았다.
토사구팽해 버리기엔 시기상조다.
각 잡고 털어보면 뭔들 안 나오겠는가.
“……증거는 있습니까?”
“와! 개 헛다리 증거로 깝사다가 팩트 맞고 좆망하신 분이 말씀하시니까 설득력이 존나 오져버리네여!”
나는 보란 듯이 낄낄대다가 불꽃을 어두운 복도에 던졌다.
“나한테 엿 먹었다고 빡돌아서, 따로 불러내갖고 찌질하게 복수나 해 볼 생각이었냐? 내가 말해봤자 니가 부들부들 빡돌기만 하지, 증거라도 찾을 수 있겠냐~ 하는 기분으로?”
─호로록. 좆만한 불똥이 일그러진 코난드의 낯짝을 비췄다.
자고로 사람이라면, 엿을 먹으면 빡치는 게 당연하다. 받은 만큼 되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은 만민에게 공통된 것이다.
정당한 복수! 권선진악! 사이다!
그런 걸 추구하는 것은 함무봐라 법전에도 적혀 있는 우리 인류의 건전한 본능 아니던가.
하지만 병신 새끼일수록 지가 악당이고, 치졸한 새끼라는 사실만 형편 좋게 잊어버리고 만다.
남의 사유지에 숨어들어와서 어린아이가 열심히 만든 눈사람을 좋다고 부수다가도, 제풀에 자빠지면 그 집 사람들한테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그런 새끼들.
어느 세상에서나 뻔하디 뻔한 일이었다.
“야. 내가 왜 니한테 이런 걸 알려주는지 아냐?”
나는 후광처럼 마나를 피우며 코난드에게로 다가갔다. 놈은 위축된 것처럼 물러서려다가, 달밤에 가오에 취한 병신들을 방불케 하는 악다구니로 발을 멈췄다.
“너는 이제부터 아까 병신 같은 착각으로 싸지른 똥을 치우기도 바쁠 텐데, 내가 말한 심증이나 장부까지 때에 맞춰서 다 수습해 둘 수 있겠냐? 곧 트롤들이랑도 싸워야 하는데.”
“……크, 으윽….”
코가놈의 와꾸가 울그락불그락해졌다.
‘크, 씨이벌……. 이 맛에 인성질 합니다…….’
미안해요, 아내님들. 실은 니들 남편놈도 인성 많이 씹창난 새끼인가 봐.
“생각해 봐도 각이 안 나오지? 니가 벤자민한테 붙여뒀던 친구는 몇 대 패주면 니 부랄털 갯수도 불게 생겼더라.”
나는 코가놈을 내려다보며 사람 좋게 웃었다. 역시 이럴 땐 비웃음보단 스윗한 미소가 딱이지.
21세기 대한 건아의 우량발육은 진짜 골방쟁이 마법사를 압도했다. 혹시 음침하게 사기 계획이나 짜대는 건 마초다운 근육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호르몬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존나 킹능성 있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떡대 좀 있는 조폭보다는 이 새끼처럼 빼빼 마른 놈들이 타투나 문신에 집착하지 않던가.
물론 나도 아내들 배에 큥큥 문신을 새겨대던 몸이니만큼 문신 자체는 나쁘게 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더 빡치는 것이다. 이런 놈들이 문신한 사람들의 이미지를 족치는 것이니까.
“능력껏 똥꼬쑈 해 봐라. 누가 알아? 전과를 많이 세우면 개좆될 게 좆 되는 선에서 끝날지.”
물론 그래봤자 이 새끼는 우리 눈나랑 장모님을 괴롭혔던 대가를 치루게 할 생각이지만 말이다.
“……집어치워!”
드디어 반말을 깐 병신은 씩씩대며 돌아갔다. 나는 미소를 띄우며 그 새끼가 정신승리를 하며 닷지하는 걸 구경하다가, 문득 웃음을 지우며 눈을 반개했다.
내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20년이나 다나와 장모님을 힘들게 했던 대가는 목숨으로 치뤄도 모자라다.
하지만 그건 법률적으로 어렵다.
귀족에게 사기를 쳤다는 걸 포함해서 모든 죄를 다 물어도, 운이 좋으면─우리 입장에서는 운이 나쁘면─ 사형이 아니라 복역 정도로 끝날 것이다.
이세계의 감옥에 인권 존중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탈옥 등을 생각하면 좋은 것도 아니다.
나는 어떤 가설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절벽까지 민 건 나다. 하지만 여기까진 네 자업자득이지.’
나머지는 저 놈이 어떻게 선택할지였다.
일이 어떻게 되든 저 새끼의 인생 좆망각은 설계가 끝났다.
파멸은 늦거나 빠르거나의 문제다. 조급할 것 없이 정의의 흑막처럼 포도주라도 빠는 기분으로 관망하면 된다.
‘사적으로 보복하면 내가 교수랑 다를 게 뭐야?’
저 새끼가 악독한 살인범이면 트롤이랑 싸울 때 뒤통수를 까도 정의구현이겠지만, 내 눈에 아니꼽다고 다 죽여버리면 내가 당당하게 교수들의 악행에 항의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교수에 맞서는 대학원생의 투쟁은 으레 성스럽지만, 다른 교수의 악행을 지적하는 교수들의 언변은 아무리 세련되어도 그저 탐욕스러울 따름이다!
자신에게 떳떳한 자만이 타인의 흠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수와 싸우는 자는 스스로 교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는 미스터 니체의 명언을 마음에 새겼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나는 내 긍지를 걸고서 아내들 앞에서 당당한 마초로 있겠다.
“……녹이 슬면 두 번 다시 세우지 못하고, 제대로 쥐지 못하면 제 몸을 찢는다(If it rusts, it can never be trusted. If its owner fails to control it, it will cut him).”
나는 오랜만에 경건한 마음으로 성호를 그으며 성경의 한 문구를 중얼거렸다.
“그렇다. 긍지라는 것은 칼날과 같다(Yes. pride is like a blade).”
──목 막힌 대학원생이 될 지언정, 사이다패스인 교수가 되지는 않겠다.
‘그리고 사이다를 마실 줄 아는 대학원생이 되면 최고겠지.’
의사들도 적절한 복수는 오히려 몸에 좋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구둣발을 울리며 눈부신 복도를 걸어갔다.
떡밥은 뿌렸다.
이제 결과는 붕어들의 몫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