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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47화 (447/1,009)

멀쩡한 성문을 두고 벽을 박살내버리는 무식한 공격!

우리가 서 있는 성벽도 크게 흔들렸다. 가신들은 네 발로 주저앉으면서 머리를 안았다.

“서, 성벽이! 성벽이 부숴졌다!”

“척후의 보고와 다르잖나! 어떻게 된 일이냐!”

가신들은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아니겠지. 지휘관으로선 빵점이지만 내가 남탓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나는 아내들을 놓으며 장모님께 외쳤다.

“제가 아래로 내려갑니다! 적군의 본대가 몰려올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성벽에서 전황을 지켜봐 주십셔! 그리고 저 트롤 킹은 가짜일 겁니다!”

코가놈과 벤자민은 가짜 트롤 킹으로 특공 중이었다. 저게 가짜라는 걸 모르겠지만, 멈추기엔 늦었다. 있어봐야 별다른 조력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냅두면 된다.

성벽은 무너졌지만 위협적인 적은 1마리에 불과했다. 나는 지휘관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야수회귀의 마나를 변형시켜 글라이더처럼 펼쳤다.

“프랑, 다나! 먼저 간다!”

아내들에게 말하고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활강 쯤은 헤스왈드 자매랑 괴도질을 할 때도 해 봤다. 내 발은 쉽게 지면에 착지했다. 쌍수 트롤이 무너진 성벽의 잔해에서 도끼를 뽑고 있는 모습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놈의 뒤편으로 보이는, 비척거리며 일어나는 트롤들!

오우거 새끼들은 진짜로 뒤졌지만 트롤 중 일부는 작전대로 죽은 척을 하며 때를 기다렸던 듯 했다. 나는 그 꼬라지를 보자마자 열이 뻗쳐서 외쳤다!

[마!!! 느그들 수리비 지불할 자신 있나!!!]

[호! 그때 폐하와 싸웠던 전사인가!]

호승심을 드러내며 트롤이 투구를 벗어던졌다. 나는 일단 오딘의 눈을 다시 켜면서, 뭉게뭉게-석사탈주로 급속 접근을 감행했다. 착지 위치가 가까웠기에 접전까지는 금방이었다.

─채앵!!

도끼와 창이 부딪히자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졌다.

투구를 벗은 쌍수 도끼 트롤은 털이 무성한 풍성충이었다. 세상에 씨발, 트롤 새끼가 구렛나룻과 턱수염이 혼연일체가 돼 있다니! 내 안구에 대한 정신적 공격인가!

마초다운 관상이었지만 나는 이 생물을 마초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생리적 거부감이 창의 속도를 가속시켰다.

[그 마법! 역시 왕과 같은 야수회귀를 쓸 수 있는가!]

털복숭이 트롤이 외쳤다. 이 새끼들, 역시 지 대빵이 쓰는 버프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윙글링 인의 마을에서 족쳤던 오우거도 내 야수회귀를 알아본 것도 같다.

[이 솜씨! 방심하지 않겠다!]

─카가각! 미스릴 창과 마나가 깃든 철 도끼가 부딪혔다가 튕겨났다.

적은 줄창 나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다. 나는 이 새끼가 선쿨을 땡겨서 큰 기술을 갈기려는 걸 눈치깠다.

‘씨발럼이 선빵부터 때리고 3초 매너를 찾아? 닌 뒤졌어.’

나랑 털복숭이가 격돌하자 죽다 살아난 트롤 졸병들은 휘청거리며 흩어졌다. 문제 없다. 성벽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오는 우리 아내들도 보였고, 도시에 퍼져도 아직 경비대나 야만인 전사들도 있지 않은가.

나는 잡몹들한테서는 신경을 끄고, 일부러 이 털복숭이에게 반 호흡의 빈틈을 내줬다.

[빈틈!!]

트롤 새끼는 좋다고 뒤로 백 스텝을 밟았다. 멍청한 새끼. 나는 입을 삐뚜름하게 비틀었다.

내 발바닥에 폭발하는 수증기와 괴도의 보법이 펼쳐졌다. 후퇴보다는 전진이 빠르다. 자명한 상식이다.

나는 물러나는 트롤 새끼를 1초만에 쫓아가 달라붙었다.

─투확!!

반 호흡을 들여서 응축하고 폭발시킨 뭉게뭉게-가속이 ᚨ(Ansuz)의 룬을 새긴 창날에서 터져나왔다.

【게르튀르】까지 사용한 회심의 일격!

[그으으으윽……!!]

졸병으로 위장하고자 방어구도 두고 온 털복숭이 트롤은 그 잔털이 무성한 왼팔을 내주었다. 피보라가 일면서 팔뚝이 내 머리 옆을 스쳐지나가다가 땅에 떨어졌다.

[이 정도 상처, 아무렇지 않다!!]

트롤은 재생력으로 바로 상처를 메웠다.

비명도 참은 근성은 칭찬해 줄 말 했다. 하지만 전투 중에 팔이 날아간 이상 순식간에 재생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1초에 2번도 더 죽을 수 있는 초고속 전투라면 더 그랬다.

‘틈을 줬지만 영창이나 합장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이 놈, 야수회귀는 못 쓴다!’

오딘의 눈이 빠르게 놈의 장비와 마나를 분석했다.

‘하지만 영지의 성벽을 원콤으로 부쉈다. 저게 무조건으로 나가는 평타면 이 새끼가 킹 자릴 꿰찼겠지. 뭔가가 있어!’

무술, 마법, 매직 아이템.

아마 이것들 중 어떤 힘을 빌려서 해낸 업적일 것이었다.

─스스스스!

털복숭이 트롤의 마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딘의 눈이 저 새끼가 두른 인상미채의 룬을 뚫은 것이다.

이 새끼도 구신의 마나는 가지고 있다. 투박하게나마 룬을 배운 것인가? 성벽을 부순 것도 그 힘일까?

‘아니. 성벽을 부순 건 무술이나 마법이 아냐.’

저런 위력은 달인급이 아니면 마나가 많아도 불가능한데, 이 새끼의 동작에는 달인다운 세련미가 없었다.

마법이었을 가능성도 나가리다. 성벽을 부수려면 절대천공영역을 갈겨도 가능할지 아닐지 모르는데, 이 새끼의 마나량으로는 그만한 출력은 힘들어 보였다.

‘결론이 나왔군.’

나는 【게르튀르】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구신의 마나가 내 마나-카테터를 적셔들어갔다.

몸이 순식간에 가벼워지자 그에 반비레하듯 내 성량은 더 커졌다.

[이 템빨충 새끼이잇──!!]

쿠오오오─!!

【게르튀르】의 후반부 초식이 창에서 뿜어져나왔다. 나는 내 어깨를 노린 도끼를 창날로 휘감고 흘려냈다.

분석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오딘의 눈은 필요가 없었다. 이 트롤은 마법사나 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힘을 모아서 한 번에 방출하는 도끼로군! 이 씹새가 템 한 번 좋은 걸로 꿰찼네!!]

[……이, 이 놈! 그걸 어떻게!!]

비장의 무기를 들킨 트롤은 도끼를 빼내려는 것처럼 뒤로 빠졌다.

[아닛?!]

하지만 헛수고였다. 내 창은 갈고리라도 건 것처럼 트롤의 도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촤악!! 트롤이 물러나려는 움직임에 맞춰서 그 더럽게 굵은 손목을 베어갈랐다. 공격해 오는 무기를 억류하면서 적의 몸을 가르는,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5품새다.

창을 든 내 손은 교묘하게 움직이며 트롤의 손목을 벌집 삼겹살처럼 저몄다. 마치 날아가려는 새에게 잠자리채를 씌운 듯한 요란한 움직임이었지만 마나로 속박한 도끼는 끝까지 빠져나가지 못했다.

[큭! 도끼를 쓸 수 없다면──!!]

털복숭이 트롤의 결단은 빨랐다. 도끼를 쥐면서 팔을 잃은 어깨로 숄더 태클을 날린 것이다. 나는 눈을 빛냈다.

─탁! 뒤로 뛰면서 가드를 올렸다. 몸을 던진 트롤과 나는 근처 상가의 벽을 부수며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두 바퀴 구르고 낙법을 취하며 일어났다. 상가 찬장에서 웬 여성의 초상화가 내 앞에 떨어졌다. 가게 주인의 아내나 딸이 아닐까.

“수리비는 관청에 청구하세욧!!!!!”

나는 사죄의 말을 외치며 창을 어깨 뒤로 젖히듯 당겼다. 무너진 벽을 디딘 털복숭이 트롤 새끼가 급 브레이크를 밟고 도끼의 힘을 해방하려는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민속놀이, 투전(鬪牋)의 힘을 보아라아아앗!!!”

【게르튀르】의 공격기 제 3품새에 바람의 마나를 섞었다. 내던진 미스릴 창이 바람을 감고 회전하며 트롤의 눈깔에로 홀 인원에 성공했다. 중삐리 시절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보람이 있었다.

─퍼걱!!

트롤의 머갈통은 할로우 탄에 맞은 것처럼 회전하며 넓게 터져나갔다. 예르나 년처럼 원자력 발전소급 마나를 연결한 분신이 아니고서는 살아날 방법이 없는 치명상이었다.

“사장님 나이스 샷.”

─주륵. 나는 창에 부여한 〈꼭두극〉으로 무기를 회수했다.

나이스 샷이라곤 했지만 기분은 착잡했다. 이걸로 이번에 쳐들어온 트롤과 오우거들은 전부 족쳤다고 봐도 될 테지만, 도저히 이겼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꼴랑 서른 마리 남짓에게 성벽이 뚫린 것 아닌가. 이래선 패배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내밀고 사람들이 피난한 길목을 봤다.

뻥 뚫린 성벽은 갑옷 거인도 지나올 수 있을 듯한 크기다. 성문 옆에 성문급의 개구멍이 뚫려버린 수준이었다.

‘……저만큼 무너졌다면 보수하긴 힘들겠지. 적의 총진격이 오면 거의 성벽을 낀 백병전이 될 거야.’

나는 혀를 찼다. 전략에 밝지 않아도 적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대군으로 습격했다면, 우리는 절대 성벽에 접근하게 두지도, 성벽 앞에서 도끼에 힘을 충전하게 두지도 않았겠지. 일부러 우리의 방심을 노린 거다.’

나는 따로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가신들이 척후가 어쩌고 하는 걸 보면 처음부터 저 빈약해 보이는 부대를 파견시켜서 자신들을 얕잡아보도록 한 것이다.

트롤 킹이 우리의 보고가 신뢰받지 못할 거라는 점을 알고 이용했다고 하면, 알윈은 트롤 킹을 상대로 지혜에서 패배한 셈이었다.

“그런데…… 카미카제 특공대 친구들. 그건 실수한 거야.”

나는 바닥에 떨어트린 찰흙 조각상처럼 개박살난 털복숭이 트롤을 쳐다봤다.

적 본대의 습격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성벽에 오기 전에 평야에서 전멸하기 싫다면 적들도 진형을 짜야 할 것이었다. 지금 바로 습격해 오는 게 아니라면 못해도 몇 시간 정도는 여력이 있겠지.

‘그리고 그 몇시간이면, 역공을 가하기엔 충분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 싸움은 다대 다의 전쟁이라기보다는 보스몹을 따면 끝나는 레이드에 가까웠다. 나는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털복숭이 트롤의 시체를 노려보았다.

품에서 꺼낸 룬 스톤 옥새가 빛을 발했다.

“ᛈ(Perth).”

참된 뜻을 담아서 읊조린 룬의 힘이, 털복숭이 트롤에게서 기억을 추출해냈다.

─휴르르르르륵!

이 새끼들은 예르나처럼 정신에 방벽을 세워두지 않았다. 내 손에는 고스란히 이 트롤 놈의 과거사 전반이 들어왔다.

“이건 예상 못 했지? 씹새들.”

나는 씨익 웃었다.

상처가 재생하는 굳건한 트롤 전사에게 정보를 캐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았기에, 트롤 킹 새끼도 이 작전을 짜면서 포로로부터 정보가 유출될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

“형 맵핵 켰다. 대가리 깨부수러 가 주마.”

기억을 완전히 해석하는 건 무척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새끼가 돌아가려고 했던 본진만 알아낸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트롤 킹에게 기습을 가할 수 있으니까.

“──작전명, 픽트 상륙 작전.”

역습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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