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uuuuuuuuu───!!]
달밤에 베르세르크의 하울링이 울려퍼졌다.
근처에서 제일 높은 건물에 올라간 리루아의 울음소리였다.
여우보단 늑대 같았지만, 같은 개과니까 뭐 비슷하겠지.
두두두두두…!!
저 멀리까지 울리는 하울링에 양동 겸 별동대인 듯한 트롤 새끼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우거도 한둘 있었다.
프랑이랑 달리 좆간인 나는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육중한 발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얼마 안 가서 도시의 불꽃에 비춰지자 그 낯짝도 보였다.
“다 아는 얼굴들이구만.”
털복숭이 트롤의 기억에서 봤던 새끼들이었다.
친위대라고 하면 될까. 부하는 없었다. 빠른 행군에 따라올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이 새끼들, 일부러 밤까지 기다린 이유가 이거였나.’
내가 노획한 기억에서 듣지 못한 작전.
아마 벤자민이 동족이라는 걸 깨닫고 급조한 계획이겠지.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친위대를 크게 우회시켜서, 벤자민 새끼들이나 할 법한 도주 계획을 역이용한 것이었다.
실패하면? 다시 회군시키면 된다.
‘우리가 성벽을 버리고 공격에 나서진 않을 테니까.’
아주 인류는 기만전술을 거는 족족 당하기만 하는군. 무슨 롬멜이랑 싸우는 이탈리아 파스타 군대가 된 기분이다.
“저, 적습!!! 적습──!!!!!!”
성벽 위에서 어둠을 경계하던 경비병들은 내 고함에 무슨 일인가 당황하다가, 발구름 소리를 듣고 하늘에다가 폭죽을 쏘았다. 여러 색의 불꽃이 하늘에서 폭발했다.
퍼버버버벙! 펑─!!
서커스에서도 보던 폭죽 마법이 하늘을 수놓았다. 이렇게 쓰라고 만든 마법이었는갑다.
휘리릭, 척─! 리루아가 지붕에서 내려왔다.
[우리 마을 아이들을 불렀어.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와 줄 거야.]
목이 칼칼해진 듯한 그녀가 말했다. 폭죽을 쐈으니까 트롤 킹의 본대도 바로 진군을 하겠지만, 저 친위대 새끼들에게 등 뒤를 내주면 좆 된다. 진영 이탈은 용서를 바라자.
트롤 킹의 친위대가 조금씩 커다래졌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셋이서 먼저 가! 가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
나는 장모님과 아내들을 예정된 포인트에 밀어넣었다. 몇 번 없는 〈공간이동〉 찬스를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알았지? 그 은신처에는 트롤 킹 새끼랑 그 부하인 주술사밖에 없어! 어둡다고 불 켜지 말고 프랑의 감지 능력에 의지해서 숨을 죽이고 있어! 10분, 아니 20분 안에 따라갈게!”
“야!! 넌 어쩔려고!!”
“베로니카한테 다시 연락하면 돼!! 나 하나 날려보낼 마나 정도는 남을 거야!”
부족하면 마나 포션 좀 마시면 그만이다. 나는 불안함을 채 숨기지 못하면서도 예정 시각이 되기 직전에 세 사람을 밀어넣었는데, 내 팔을 꽉 잡는 손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무척이나 작은 손. 프랑이었다.
“걱정 마. 노르야말로 서두르다가 다치면 안 돼?”
트롤 킹의 친위대가 달리는 발소리와, 지붕 위를 달려오며 어머니의 부름에 응한 베르세르크 계보의 전사들의 하울링이 내 귀를 어지럽혔다. 밤의 적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춥고 사나운 심야였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프랑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
나를 보는 아름다운 푸른 눈이 믿어달라는 듯 빛났다. 난 그 영롱한 빛에 그만 어깨에 힘이 풀렸다.
“……그래. 걱정 끼치는 건 너희가 아니라 내 일이지.”
“흥. 알면 됐구.”
프랑은 뾰로퉁하게 웃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마나를 더 담은 옥새를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싸우게 되면 써. 트롤 킹 새끼가 그거야 환장하더라.”
“응. 얼른 와야 돼? 늦으면 나두 화낼 거야?”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듯 가벼운 회화를 나누는 우리.
바로 그 찰나의 후에 빛이 터져나오며 세 사람을 감쌌다. 나는 〈공간이동〉에 휩쓸리지 않게 뒤로 물러섰다.
사락…….
빛의 가루가 하늘로 뻗듯 기둥처럼 허공에 남았다.
공간의 이동에 남겨지는 입장이 된 건 처음이었다. 잠깐의 여운에 잠기는 내 귀를 사나운 진격음이 어지럽혔다.
[……발정난 개새끼들 같군. 방금 싸이월드 감성 쩔었는데, 만끽할 틈도 없게 말이야.]
나는 결혼반지를 낀 손에 남은 감촉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강하게 쥐었다.
창의 팔찌로 향하려는 손을 멈췄다. 여러 의미에서 맨손을 써서 때려패고 싶은 기분이었다. 센티멘탈한 기분을 느끼는 처녀자리의 여운은 마초이즘 펀치로 깨부숴야 할 것이었다.
[너도 가지 그랬어. 우리면 충분한데.]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리루아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친근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아뇨. 이 위기를 찬스로 바꿀까 해서요.]
웃음과 달리 내 눈빛에는 섬뜩한 살기가 서렸다.
저 애미 자궁에서 어떻게 기어나왔는지 모를 덩치 큰 괴물들은 전부 다 무장 상태가 쩔었다. 즉, 구신의 마나를 획득한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기도 했다.
‘내 마나 계승 현상의 공통점은, 적이 구신의 마나를 가진 놈이라는 거지.’
그 점을 고려하면 이건 레이드 직전의 레벨 업 타임이다. 이 버닝 찬스와 벤자민 새끼 덕분에 랭크 업 한 야수회귀로 트롤 킹과의 격차를 메워야 했다.
단, 창은 쓸 수 없었다.
윙글링 인 마을에서 족쳤던 오우거 마법사나, 털복숭이 트롤을 창으로 족쳤을 때는 놈들에게서 구신의 마나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애먼 곳에 빨리기엔 마나 한 점이 아까웠다.
[리루아 씨야말로 괜찮습니까? 손해보는 역할인데요.]
[우리도 도망쳐서 저 녀석들한테 유물을 내줬는걸. 책임? 이란 게 있어.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꽁무닐 빼고 도망치면, 마을을 떠났던 젊은 애들이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려.]
─까드득. 주먹을 울리며 묻자 리루아는 꼬리를 낮추면서 대답했다.
[우리, 픽트 인들이랑은 같은 땅에 사는 친구야.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싸우진 않아. 하지만── 쟤들은 친구가 아니야.]
─샤샥, 샤샥, 샤삭!!
트롤 킹 친위대가 가까워질 수록, 성벽의 군세에서 이탈한 윙글링 인들도 지붕을 밟으며 넘어왔다. 벌써 이 주변에 나랑 겨뤄봤던 사자 수인도 도착한 상태였다.
[Rrrrrr…….]
윙글링 전사들은 설명을 들을 것도 없다는 것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리루아는 그 최선두에 섰다.
[그리고, 손해보는 역할? 그건 아니야.]
소녀의 손목에서 자란 짐승의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왔다.
[잊은 건 아니지? ──우리는 싸움을 좋아한다는 거.]
소녀처럼 웃는 얼굴로 그렇게 속닥거린 뒤, 리루아는 마치 번개가 꽂힌 듯 짐승 같은 표정으로 거칠게 포효했다.
[Ruooooooooooo──────!!!!]
[Ruooooooooooo──!!!!]
[Ruooooooooooo──!!!!]
소녀 모습의 어머니를 따라서 떼창한 윙글링 인들이 각자 하이그라운드를 선점하고 무기를 들었다. 나는 픽 웃고서 내 옆에서 방치된 마차를 쳐다보았다.
“오, 온듀아악!!! 놈듀리 온듀아아아아악!!!!!!”
벤자민은 트라우마가 발병한 것처럼 시체가 되기 몇 분도 안 남은 몸으로 버둥거렸다. 쓰레기가 아직도 살아 있었나. 뭔 해석도 안 되는 트롤 어를 지껄이고 앉았군.
“흐흐흐흐흐…….”
나는 그 추태에 끌어오르는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했다.
극한의 분노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것.
이 역시 한국인의 넋인 것이다.
“고맙다, 좆팔럼아. 잘 생각해 보면 니가 트로이의 목마를 미리 발견해 준 셈이네.”
저 새끼들이면 경계가 옅은 성문 정도는 부쉈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 이렇게 적을 분단해서 내 버닝 이벤트를 열어주지 않았는가. 나름의 공로가 있다고 해도 될 것이었다.
원래 양동 작전이란 간파당한 시점에서 전력의 축차투입이라는 좆병신 빡대갈통 전술이 돼 버리니 말이다.
“샤, 샬려져!!! 녀도 마랫쟈나!!! 냔 먀벼베 죠죠당해쓸 쀼니닷!!!!!”
뭐라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파파고가 인식을 못 하는 언어라니, 대체 어디 출신의 트롤이란 말인가!
혹시 이 새끼라면 임모르탈리스의 정체 모를 씹새끼가 준 책을 해석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개화해버린 벤자민에 가능성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죽다만 놈이…… 잘도 버텼다만, 슬슬 끝낼 시간이 온 것 같구나.”
우지끈……!!
나는 마차를 들어올려서 베어 허그로 박살냈다. 페트병의 분리수거를 연상시키는 폐차 과정에 안쪽에서 뭉개지는 듯한 신음이 들려왔다. 흘러넘친 피가 내 발을 적셨다.
인생의 마지막 피 축제까지 빨갈 줄이야. 철저하게 훈련을 받은 트롤이로군.
“안 댸!!! 규먄도라!! 이 위샹 먀챠률 뷰슈지먀!!! 규만뎌어어──!!!”
유언 꼬라지 하고는. 팔에 더 힘을 불어넣으며 그가 들을 마지막 말을 비웃음로 장식했다.
“벤자민, 가라!!! 추악한 기억들과 함께!!!!”
나는 뭉개진 마차를 혈수마공의 불꽃으로 불태워, 지척까지 달려온 트롤에게 투척했다.
─슈왓토!!!
쏜살처럼 날아간 플레임 마차는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불꽃의 바퀴처럼 폭발사산하며, 성문을 넘어오던 트롤 한 마리의 차디 찬 겨울에 소중한 귀뚜라미 보일러가 되어 주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뀨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 마리 트롤의 단말마가 하모니를 이루었다.
투척하고 바로 성벽 위를 힐끗 체크.
병사들은 자초지종을 못 본 것 같군. 그 사실을 파악하자 내 얼굴에는 즉시 월급을 못 받으며 야근하는 회사원처럼 비통한 기색이 서렸다.
“이 트롤 놈들!! 감히 영주님의 친형님을 해치다니!!!! 용서하지 않겠다앗──!!!!!”
나는 불꽃이 작렬하며 매우 밝아진 도개교를 향해 마지막 싸움을 장식하듯 대쉬했다. 불의 혀가 내 뺨을 핥으며 야수회귀의 강력해진 코팅을 달궜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캘러미티 엔드(Calamity End)
불꽃에 덮인 수도로 유물 메이스를 받아치면서, 나는 푸른 피닉스와 함께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