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건 사랑하는 남편이 능력을 인정받고 랩실의 한 사람으로 들어오고 약 1년이 지나, 마음이 맞았던 그와 다나가 조금씩 말을 놓기 시작하던 무렵의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유적 탐사로 먼 현장에 나갔다가 밀림의 나무에 팔을 쓸린 그는 가벼운 옻독 비슷한 것이 올라 있었다.
친구가 티도 내지 않고 통증을 참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다나는, 휴식 시간에 그를 불러 간단한 치료를 베풀었다.
─이거 뭐 세포 노화나 수명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님? 노예 핫산은 존나 걱정되는 것이에요.
아직 노예였던 그는 다나의 마법이 신기한지 연신 농담하듯 오두방정을 떨었다가 문득 궁금해진 듯, 그런 것을 물었었다.
당시부터 진작 그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것에 적응해버렸던 다나였지만, ‘세포 노화’가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다. 전문 마법사라면 모를까 그녀는 고고학자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배운 치료 마법의 작동원리를 크게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던 다나다. 그녀의 잘 모르겠다는 대답에 그는 머리를 좌우로 기우뚱거리면서 실실댔다.
─않이 우리 석사님, 자기가 쓰는 마법인데 원리를 모르면 어떡하자는 것이지? 잠깐 여따가도 그 마법 써 볼래? 균류의 세포 증식에 어떤 영향이 나올지 존나 궁금하네.
그때 탐사 중이던 곳은 던전화된 유적이 아니었기에 마나를 아끼지 않아도 됐었다. 다나는 그가 채취해 온 버섯 조각에 흔쾌히 마법을 퍼부어주었다. 호기심이라면 그녀도 남에게 지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그는 그런 시시한 실험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방실거리며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힐 마법으로 노화 문제는 발생 안 하나? 존나 마법 편의주의 오졌다. 우리 잠깐 다른 실험도 해 보자. 얘한테 증식할 영양분을 충분히 주고 과잉 회복을 시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그의 흥미진진한 눈빛에 다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치유 마법으로 식물의 생장을 돕는 것.
비슷한 시도는 많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고 들었다. 사업화를 할 만큼 비용 절감이 불가능했거나 올바른 형태로 자라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모나 교단이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는 신기한 지식과 자신 못지 않은 머리를 가진 청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그녀는, 그 무렵부터 이미 그에게 반해 가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
투콰아앙──!!
“……칫!”
추억을 반추하던 다나는 날카로운 바람을 피하며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그럴 만도 했다.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던 걸 방해받았는데 즐겁기는 힘들겠지. 하지만 딴 생각이나 하기에는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흙먼지를 마시며 다나는 우측에 몸을 던졌다.
“잘 피하는군요! 당신의 아버지가 가르쳐 준 호신술입니까! 어설프지만 미녀의 추태는 봐줄 만 하군요!”
방금 전에 언변에서 밀렸던 것이 못내 불쾌했던 것일까. 코난드는 계속 마법을 쏘아내며 다나를 죽이는 것보다 말로 희롱하는 것에 더 집착하는 모양새였다.
정말이지 속이 좁은 남자다. 진심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은 다나에게 검은색 천 뭉치가 날아왔다. 프랑이 던진 외투였다.
“다나!! 그거 빌려줄게!!”
고마움보다 당황이 앞섰다. 다나는 굳이 말하자면 수녀나 사제였다.
호신술 몇 동작을 배우고 마나로 몸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외투를 둘러봤자 언제까지고 마법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나를 아끼고자 실드를 펼치지 않고 있지만, 코난드가 조금 더 탄막의 밀도를 높이면 외투 한 겹은 의미가 없다.
“……읏!”
하지만 펄럭거리지도 않고 날아온 외투 안에서 무게추로서 기능하던 물건을 발견하고 다나는 숨을 삼켰다.
그녀들의 남편이 보험 삼아서 맡겼던 오우거의 옥새였다. 다나는 외투를 두르며 옥새를 뒤로 감췄다.
“잔꾀를 부리시는군요! 놓쳐줄 것 같습니까!”
코난드가 트롤 손에 불벼락을 소환했다. 그는 옥새의 힘과 존재를 몰랐지만, 다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농밀한 마나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다시 망치가 사슬을 뻗으며 그의 목에 감겼다. 빠른 판단으로 사슬에 손을 끼워넣고 숨통을 확보한 코난드는 적을 얕보는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도 잔재주 일변도군요. 하긴 좀도둑 혼혈 드워프에게 바랄 게 따로── 큭?!”
─파르르! 경멸의 말을 무시하고 강하게 조여오는 사슬에 거의 튀어나왔던 코난드의 눈이 크게 떨렸다. 아까보다 훨씬 강해진 완력이었다.
“그 잔머리도 없어서 노르한테 된통 당한 사람한테는 듣고 싶지 않거든!”
망치의 본체를 잡고 사슬을 감은 프랑의 어깨에 시로나가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서 주술의 문신이 빛났다.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저것은 타인에게 적용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코난드가 배웠을 때는 분명 그랬다.
시로나만의 응용일까. 코난드가 놀라서 불벼락을 던지려는 대상을 스승이었던 여성으로 바꾸었다.
“늙어빠진 마녀가 건방지게!!”
“사람이길 포기한 당신이 뭐가 잘났다고 화를 내!!”
프랑은 불벼락이 방향을 트는 것보다 먼저, 사슬에 앞서서 천장에 던졌던 나이프로 골렘을 생성했다.
─쿠르르릉!
잘 깎인 건물의 천장에 꽂힌 나이프가 거칠게 요동을 쳤다.
영창을 생략하고, 코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골렘은 형태를 갖추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나이프는 그 과정 중에 천장의 지반을 무너트렸다. 드워프의 눈으로 생매장되지 않을 포인트를 파악하고, 그곳의 암반을 무너트린 것이었다.
─콰앙!!
지하 던전의 천장이 무겁게 땅에 꽂혔다.
암반이 떨어진 위치는 코난드의 목으로 팽팽하게 이어진 사슬이었다. 프랑은 암반의 무게가 느껴진 순간 손을 놓았기에, 목줄에 쇠말뚝이 꽂힌 듯 억류된 건 코난드 뿐이었다.
“으으아아아아아아아──!!”
몸의 반이 트롤이 된 코난드도 집채만한 바위보다 무겁진 않았다.
뒤로 넘어진 그는 일어나려고 들지도 않고, 급하게 끼워넣었던 손으로 질식을 막으며 목이 터져라 고함쳤다. 완벽하다. 다나는 훌륭하게 시간을 벌어준 프랑에게 감사하며 웃었다.
“새끼, 존나 잘 어울리네. 주인을 무는 개새끼한테는 줄을 채워 놔야지.”
마법을 발동한다.
다나는 건틀렛과 자신이 발동한 술식에 옥새에 남은 마나를 거침없이 밀어넣었다.
고르갈리아의 얼스터 인들에게 받은 이 건틀렛에는 공격을 위한 마법이 없었다. 적의 발을 묶거나 상처를 치료하고, 방어막을 펼치는 등의 마법밖에 부여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아마 일자무식한 전사가 힘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곤궁을 타파하게 만들어줬던 유물일까.
진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비슷한 마법을 이중발동해서 효율 좋게 출력을 높여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빛의 검(Claiomh Solais).”
─채앵!
검이 칼집을 빠져나오듯 빛의 검이 하늘에 솟았다.
치유의 마나의 힘으로 언데드를 퇴치하는 검이었다. 건틀렛에 깃든 치료 마법까지 불어넣었기에 중상자도 단숨에 치료할 만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뭐?”
사슬을 부수려던 코난드는 예측 못한 마법에 하던 것마저 멈추었다.
‘왜 [빛의 검]을? 아니, 대상이 언데드가 아니라면 치료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어째서 그에게 치료 마법을 가하려 든다는 말인가?
트롤의 몸을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걸까? 무의미한 짓이다. 그의 트롤화는 변이 마법의 현상이다. 상처를 회복시키는 마법 따위로는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상처를 없애서 트롤화의 속도를 제지하려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런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짓에 쓰기엔 너무 많은 마나였고, 너무 아까운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그, 그만!!”
완전히 예측불허의 공격에 오히려 소름이 솟았다. 미지의 탈로 정체를 감춘 공포가, 쓸모 없을 거라며 배우지도 않았던 검의 프레셔를 더하며 코난드를 떨게 만들었다.
‘방어를── 제기랄, 늦었다!’
쐐애애애액─!! 퍽!!
혼란한 코난드는 빛의 검을 제때 막지 못했다. 빛의 마나를 품은 칼날이 때 늦게 피한 목을 놓치고, 어깨에 꽂혔다.
이게 공격 마법이었다면 그는 다나와 그의 스승도 애용하는 실드로 가뿐하게 막아보였겠지. 하지만 이해 못할 행위에 위기감 없이 경직됐던 시간만큼 방어가 늦어진 게 원인이었다.
단지, 예상했던 대로 고통은 없었다.
[빛의 검]은 마나를 파괴력으로 바꾸는 술식이 존재하지 않는 마법이다. 살갗을 뚫고 박혀봤자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하!! 무슨 멍청한 짓을!! 절호의 찬스를 허무하게……?!”
꾸르르르륵……!!
혼란을 억누르고 비웃으려던 코난드는 이상한 소리에 스스로의 어깨에 눈을 돌렸다. 이끼 색의 피부는 일그러진 육편 덩어리처럼 부풀어오르며 그의 머리보다 커져가고 있었다.
“끄, 하아아아악?!”
순식간에 부풀어오른 살점이 그의 승모근과 목의 피부와도 융합하며 기도를 막으려 들었다.
─부글부글!! 과잉 회복된 어깨는 목에 감긴 마나의 사슬과 손가락까지 뒤덮이며 흉한 종기처럼 튀어나왔다. 재생 능력의 잘못된 발현에 몸 내부의 기관이 뭉개지며 끔찍한 통증을 일으켰다.
“캬아아아아악!! 내 몸,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코난드는 고통에 버둥거리며 마나의 사슬을 막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카칭!! 바닥을 얼린 마법이 사슬의 마나를 흐트러트렸다. 목을 감은 사슬이 사라지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른 손은 이미 목과 어깨의 융합에 휘말려서 떨어져나올 기미가 없었다.
“갸흑?! 아, 아아아아아아아악!!”
조금만 손을 움직여도 어깨부터 목까지 격통이 달렸다.
꼭 자신의 배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환부를 꿰맨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에 코난드는 몸서리쳤다. 인간 시절의 감각이 남았던 만큼,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이형이 돼 버린 자신의 몸에 대한 거부감이 그의 움직임마저 멈췄다.
‘재, 재생 능력에 마법의 회복을 더해서 내 몸을 과도하게 치유시켰어?’
코난드는 지금까지 습득한 지식으로 원인을 규명해냈다. 운 나쁘게도, 그의 예측은 정확한 정답이었다.
신체를 과도하게 회복하게 만들고, 세포를 착란시켜 이상 증식을 유도하는 것.
그게 다나가 노렸던 일발역전의 수였다.
“통했다!”
다나는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환희했다.
한때 노르드가 회복 포션을 몇 방울 떨어트린 버섯 균류로 간이 실험을 벌였을 때였다.
장난 삼아 벌인 실험이었지만 그 버섯의 포자는 원래 형태에서 벗어나 징그럽게 부풀어올랐었다. 치유의 마나로 식물의 생식을 유도하려는 실험의 흔한 실패 예시였다.
인간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할 결과였지만, 다나는 트롤의 재생력이 몸에 불균형하게 퍼져 있던 코난드라면 이 공격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만 있어, 빌어먹을 새끼야! 눈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다나는 고함을 지르며 추가로 빛의 검을 발동시켰다. 코난드는 죽음의 예감에 눈을 부릅떴다.
손이 파묻힌 살점이 증식하면서 숨통을 조여왔다. 상체의 균형이 어긋난 탓일까. 마나의 사슬을 부숴놓고도 제대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다.
“크, 으…….”
목울대까지 화끈해지는 통증을 참고 손을 빼내면, 이 환부는 원래대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런 끔찍한 종기 같은 모양으로 재생할 것인가?
만약 이 흉측한 형상이 영원히 유지된다면, 저들을 죽이고 살아남는 의미는 있는 것인가?
“……으으으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든 생각을 내던지고 코난드는 흩어졌던 불벼락을 소환해 발사했다.
자연의 낙뢰를 불꽃으로 착각했던 얼스터의 선조가 마나로 그 현상을 재현한 벼락의 주술이다. 모험가 나부랭이가 쏘는 화살보다 아득하게 빠르고, 코난드가 휘두르는 주먹보다 무거운 마법이 무방비한 다나의 머리를 터트리려는 듯 쇄도했다.
─투확!!!
승산을 잡은 다나가 그만 경솔하게 방어를 잊고, 번갯불에 까맣게 탄 살점이 되기까지 1초도 남지 않은── 바로 그때.
“피닉스 윙(Phoenix Wing).”
암반의 위에서 뛰쳐오른 남자가 푸른 불꽃을 감은 손으로 그 벼락을 쳐냈다.
─콰르릉!! 천장에 흐르듯 튕겨나간 붉은 벼락이 흙먼지를 터트리며 남자의 얼굴을 가렸다. 그는 방해되는 먼지를 팔을 휘둘러서 순식간에 걷어냈다. 푸른 불꽃과 녹색의 마나가 어둠을 몰아냈다.
다나는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등골이 송연해졌다가, 이런 어두운 지하에서도 오롯이 광채를 뿜어내는 남편의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다.
“존나 늦었네, 씨발럼이. 니 1초만 더 늦었어도 느그 아내 셋으로 줄었어. 알지?”
“아니 알긴 아는데, 쓰벌. 남편놈은 사천왕 10마리 10분컷하고 왔는데 왜 누나는 3대 1로 뒤져가고 있음?”
“니가 싸워 봐. 저 새끼 저거 존나 쎄.”
“그런 것 치곤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크크. 좋다. 딱 대라. 내가 탱킹 씹오지게 해 드림.”
그는 넓은 등으로 다나의 앞에 서서, 사납게 눈을 일그러트리는 코난드를 시시한 듯 쳐다보았다.
“그 꼴은 뭐지? 디스트릭트 9의 후속작을 암시?”
─화륵.
혈수마공의 불꽃이 쥐불놀이를 방불케 하며 원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