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머리를 기대고 기도하는 나와, 대검을 든 호르샤.
우리는 탄 내음조차 없는 석실에서 침묵을 교환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호르샤도 어느새 빡겜 모드가 되어 표정을 지우고 나를 양단할 틈을 전력으로 물색하고 있었다.
호르샤와 전사상을 태운 열기에 석실의 습기도 도망친 듯 사라졌다. 달빛이 드리우지도 않는 이곳에 우리들의 결투의 막을 올려줄 사인 같은 건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바깥이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저 각성 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트롤 주술사 새끼도 다 알고 있었겠지.
마나의 파동을 느꼈을 우리 아내들과 장모님이 그 주술사 새끼와 대처하려는 듯 석실 못지 않은 긴장감이 당겨진 실처럼 팽팽하게 전해져왔다.
─통.
그렇게 무언가의 계기가 그녀들에게 발생했던 듯, 스텝을 밟는 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콰아아앙!!!
나와 호르샤는 묵직한 격돌음을 퍼트리며 살기 어린 창칼을 부딪혔다.
[……씹!]
먼저 혀를 찬 건 나였다.
야수회귀의 오라를 감아도 휘어버리는 창대에 인상을 쓰며 좌측으로 석사탈주의 보법을 밟았다. 호르샤는 덩치가 아까 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는데, 파워는 트롤이었을 때보다 2배는 강해진 것 같았다.
실전 경험과 지혜를 재료로 내 엘리트 대갈통이 번개처럼 작전을 세워갔다.
‘찌르기는 안 된다! 공격이 막히면 내가 뒤져!’
창술의 찌르기는 크게 분류하면 진심 찌르기와 간잽이 찌르기로 나뉜다.
하지만 야수회귀는 공방일체의 마법!
간잽이 찌르기론 저 마나 코팅을 돌파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진심 찌르기를 날렸다가 튕겨나면?
티거 전차의 측면에 반자이 자살돌격을 감행한 일본군처럼 몸이 옆으로 튕겨나가겠지. 허리가 돌아가서 자세가 무너지면 3토막이 나서 노/르/드가 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그렇다면 노려야 할 건 하나!’
나는 눈을 찢어져라 벌리며 날뛰는 코끼리를 정면에서 상대하듯 공격을 받아쳤다.
채채채채채채채채챙──!!!!
여러 명의 무형문화재 난타꾼들이 식칼로 난타를 벌이는 것만 같은 초고속의 초식 교류!!
야수의 힘을 휘두르는 두 전사의 혈투에 공기가 버티지 못한 것처럼 떨렸다. 나는 순간의 틈을 꿰뚫듯 검처럼 쥔 창을 내려쳤다. 호르샤가 튕겨내려는 동작을 보였지만 내 창은 그 꾀를 간파하고 억눌렀다.
[10만 볼트, 방전──!!!]
─파지지지직!!!!!
창날의 룬 버프를 더해서 뿜어진 뇌격이 검을 타고 호르샤에게로 흘러들었다.
[……느금맙소사!!!]
하지만 내 번개가 교차한 무기를 넘어서 야수회귀의 마나 코팅을 타고 올라간 순간이었다. 나는 마나의 반발에서 전해지는 감촉에 이번에도 계산 착오를 깨닫고 전율했다.
[그 책략, 간파했다!!]
부웅─!! 대검이 측면에서 날아왔다. 번개를 감은 창을 반 바퀴 돌려서 막아냈지만 음속으로 도는 회전마차의 말에게 뻥 차인 듯한 충격에 이가 저절로 악물렸다.
[으, 그그그그그극──!!!]
씨발!! 야수회귀에 소모되는 마나가 살살 녹는다!!
나는 발을 떼고 아예 충격에 몸을 맡기고 뒤로 날았다. 휙 날아가는 나를 쫓아서 대검을 내려치는 호르샤였지만, 내가 〈구름 소환〉으로 쓰러스트 공중 가속을 일으키자 바닥에다 대검을 내려치는 것에 그쳤다.
호르샤는 승기를 잡은 것처럼 거칠게 추격해온다!
[내가 마법을 막는 룬을 장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구나!! 어리석긴!! 네놈의 마법과 마나량을 보아놓고도 그런 실책을 저지를 것 같은가!!]
[이 씹게이 쫄보 새끼!! 남자의 맞다이에 저격 세팅을 들고 와?!]
나는 식은땀을 맹렬한 움직임으로 떨쳐내면서 뇌까렸다.
호르샤는 내 작전을 예측하고 있었단 말인가? 자신은 직접 전장에 나올 생각도 없었으면서?
‘역시 이 새끼도 엘리트급 지능의 마초!’
나는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몰아치는 공격을 피하고 받아쳤다. 그렇게 방어에 급급하는 것조차 야수회귀의 버프만으론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법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위험했다. 코난드를 족치면서 70% 가량까지 내려간 마나통이 뙤약볕 밑에서 걷는 회사원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빠른 속도로 소모되어 간다!
‘야수회귀도 마법이야! 마나통이 바닥내면 못 쓰게 돼!’
그 사실은 내 인생의 좆망각을 날카롭게 세우는 현실이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호르샤 새끼에게 이길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승산이기도 했다.
‘이 새낀 이제 트롤이 아니다! 야수회귀만 꺼트리면 모가질 쳐내지 않아도 죽일 수 있는데!’
호르샤와 싸우기 전, 나는 이 새낄 족칠 방법을 몇 가지나 생각해 왔었다.
심폐정지술? 아웃.
야수회귀는 혈수마공 이너모드만 봐도 알듯이 안팎으로 마나를 두른다. 내장을 때리면 겉가죽보단 효과적이겠지만 죽을 때까지 급소만 노린다는 건 현실서 없는 작전이다.
절대천공영역? 아웃.
마법의 발동까지 걸리는 시간을 얼마나 줄여도 0.1초만에 승패가 갈리는 씹마초의 세계에서 그 선딜은 너무 길다. 내 번개옥을 직접 본 호르샤가 그걸 좌시할 가능성은 0%였다.
그렇게 고민해서 내린 답이 마나 소모전이었다.
체력이든 마나든 상관없다. 놈의 전력을 깎으면 이긴다.
[노르드! 네놈이 나보다 우월한 마나를 가졌더라도, 힘으로 겨룬다면 필패다! 거기다가 야수회귀의 마나 소모량은 심히 낮지! 정면에서 뚫을 자신이 없었나! 네놈이야말로 겁쟁이 그 자체로군!!]
호르샤는 우직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올곧고 거침 없기에 강력한 패도적인 검술이다. 내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쉼없이 새겨졌다.
[그래서 네놈은 생각했을 것이다!! 내게 공격 마법을 써서 ᚦ(Thurisaz)의 룬을 발동시키면, 야수회귀의 마나를 깎아내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내 마나의 총량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그래 씨발!! 정답이다, 연금술사!!]
그 작전을 실행하고자 나는 이 새끼에게 번개를 쏟아냈던 것이다.
이 새끼가 아무리 걸물 트롤이라도 마법 & 물리의 하이브리드 만능캐인 내가 마나량으로 밀릴 가능성은 낮았다.
내가 마법 상쇄를 억지로 발동시키면 월 50만원으로 능히 1달을 버티는 직장인의 통장에서 가챠비용을 빼내듯 빠르고 확실하게 호르샤의 마나를 오링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켰으면 킹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누가 더 마나 조루인지 승부다──!!]
나는 내던졌다. 결사의 각오를 드러내며 전술을 바꿨다.
내 몸을 덮은 야수회귀의 마나가 사라졌다!
[──멍청한 짓을 하는군!!]
찰나의 경악도 킬각을 노리는 전사의 본능을 이기지는 못 했다.
호르샤가 가드가 텅 빈 내 몸을 노렸다. 피하기도 어려운 부위면서, 저 대검 앞에서는 모두 급소나 마찬가지다. 가로로 썰렸는데 급소의 위치가 문제겠는가?
─투확!!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대검을 피해내면서 첫 유효타를 호르샤의 허리에 갈겼다.
마나 코팅조차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지만, 손끝에 느껴진 확실한 감촉의 적의 마나를 깍아냈다는 증거였다.
[……이 놈!! 또 속임수를 부렸군!!]
[오빠!!! 우리 사이에 뭘 그래!!! 아마추어 같이!!!]
──야수회귀 이너 아머 모드.
혈수마공의 전단계 기술이었다. 소모되는 마나를 줄이면서 버프 효과를 남기는데는 이게 최선이다.
물론 단점은 있다.
안 그래도 밀리는 스펙에서 방어력을 없애버린 것 아닌가. 스치면 골절에 맞으면 치명상이다. 마나의 소모량은 확실히 줄었기에 불리한 처지에서도 승산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내 리스크도 커졌다.
단, 그 리스크를 받아들일 만한 장점도 있다.
[겉에 두른 코팅을 다 깎아내면 너도 알몸이다!! 쫄리는 게 아니면 드루와 봐, 오스트랄로 트롤쿠스 새꺄!!!]
맞으면 뒤진다고? 그러면 안 맞으면 된다.
무기술은 내가 뛰어나다. 장기전을 포기하면 나도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크으음……!!]
─채애앵!! 호르샤가 처음으로 방어를 시도했다.
이 새끼도 불사신은 아니다. 내가 쉽게 맞아줄 리도 없는데 계속 몸빵으로 때우다간, 마나가 먼저 바닥난다. 맨몸이라면 아무리 각성한 뒤라도 나를 이길 수는 없겠지.
말하자면 이것은 마나를 판돈으로 한 포커 승부였다.
판돈이 많지만 카드가 좆허접으로 나오는 나.
판돈은 적지만 카드 운빨이 미쳐도는 호르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최소한의 판돈을 걸고 승부를 따내서, 적의 지갑─마나통─을 먼저 오링내기 위한 싸움!!
‘──무기를 부순다!!!’
호르샤는 나랑 다르게 무기에 야수회귀의 마나를 두르지를 못한다.
보통 경우라면 단점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기로 막으면 저 새끼의 마나는 소모되지 않는단 거니까.
호르샤가 내 공격을 무기로 막아버리면, 공격을 가한 내가 더 마나를 소모한다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저 새까만 대검을 부숴야만, 저 새끼의 몸뚱이를 후려쳐서 마나를 깎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공격을, 방어를, 반격을 0.1초 단위로 주고 받으며 서로의 뼈와 살보다 소중한 마나를 깎아냈다. 내가 흘려대는 피는 마나를 대신하는 것이었으며 줄어드는 호르샤의 마나는 그의 남은 목숨과도 같았다.
─쿠르르릉!!
문 바깥에서도 소란이 벌어지는 게 들렸다. 우리 아내들도 장모님과 힘을 합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되서 지고만 있을 순 없다. 나는 정말로 짐승이 된 것처럼 사납게 창을 휘둘렀다. 녹색의 마나가 무수하게 빛의 선을 그리며 석실의 어둠을 베어갈랐다.
[새끼, 존나 튼튼한 대검이군!! 하지만 얼마나 버틸까!!]
[잡종들의 마을에 잠들어 있던 대검이다!! 트롤스베르드(Trollsverd)라고 하더군!!]
[씹지랄! 베르세르크 인들이 짐승이 되다 말았다는 이유로 잡종이라 부르는 거냐!! 그딴 오만한 태도로 굴 만큼 잘난 선조를 두지는 못했을 텐데!!]
─채앵!! 마초 아가리 파이터들은 자존심을 부리며 목숨을 겨루는 찰나에까지 주둥이를 놀렸다.
팩트 폭력을 가하며 대검을 흘러넘겼다. 무술다운 검형(劍形)이라곤 전혀 없는 공격이긴 했지만, 어르신 댁의 기사단장과 대련했던 경험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오만은 패왕의 덕목이다!! 권위의 표출은 지배자의 미덕인 것이다!!]
[느그 부하의 8할은 내 손에 뒤졌어!! 나머지도 멍청하게 알윈에 꼴박해 놨으니 곧 있으면 다 뒤질 거다!!]
흘려내는 검이 무겁다. 나는 잇몸에서 피가 흐를 만큼 턱에 힘을 줬다.
마법은 안 된다. 순간 폭딜은 높지만 야수회귀에 비하면 그 가성비가 너무 구리다.
겜창들이 말하는 지속딜 폭딜의 차이였다. 지금 필요한 건 지속적인 딜링을 통한 더 많은 누적 데미지였다.
적의 마나 코팅을 관통해서 죽여버릴 수 있다면 쓰겠지만, 창에 전해지는 굳건한 방어력은 도저히 적을 한 번에 죽이는 이미지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창은 리치를 살려서 거리를 유지한다면 모를까, 부딪히는 병장류 간의 방어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게르튀르】의 반격기가 쉼없이 뿜어져나왔다. 신대의 창술이 아니었다면 이미 몸 어딘가는 날아갔을 것이다.
[암!! 전사들의 죽음은 진즉 알고 있었다!! 네놈의 어깨의 그 견장!!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그건 나를 섬기던 전사에게 맡긴 제국의 보배가 아니더냐!!]
[네, 쌔벼가 놓고 지들 꺼라고 주장하는 섬나라식 인성 잘 봤구요!!]
[쿠하하하하하─!! 유린당하고 빼앗기면 뭐든지 잊혀지는 법이지!! 나의 옛 조국이 그러했듯, 네놈들의 국가도 내가 지배할 새로운 시대에서는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큭!]
반박하려다가 검을 피하기 바빠서 입을 다물었다.
호르샤의 검은 무협식으로 말하면 패도였다.
자신의 방어력을 믿고 거침없이 들어오는 검술!
단순무식한 검술이지만 받아치기는 어려웠다. 방어를 염두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반격에 나서봤자 동귀어진 이상을 바랄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무식하긴 해도 자신에게 맞는 좋은 검술이다.
어떤 전차도 보병을 상대로 전술을 구사하진 않으니까.
[역사는 승자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그렇지 않나!! 너는 우리 훌두폴크의 역사를 알았느냐!! 죽여온 이들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의 말로였다고 알았느냔 말이다!!]
[알아봤자 바뀔 건 없지! 동족을 죽이지 않는 생물도 없고! 니새끼도 자아가 없는 동족을, 알윈의 병사들을 죽였잖냐!!]
같은 사람도 길을 엇나가서 사람을 해하는 교수가 된다면 죽어 마땅할진대, 인간이었던 적조차 없는 괴물을 죽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원리라면 지구인들은 원숭이도 죽이지 못할 것이었다.
트롤이나 오우거를 떼죽음으로 몰아넣은 호르샤에게 들을 이유가 없는 비난이었다.
막아내며 후퇴, 쫓아오는 빈틈을 관통하며 쓰러스트 대쉬. 스친 대검에 허벅지가 쓰라렸지만, 치명상은 피해냈다.
[아니, 그건 다르지!!]
까앙─! 물리 에너지를 상쇄하는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4품새를 무위로 돌린 호르샤가 외쳤다.
[옥새에게 선택받을 자질도, 도움을 받아서 각성할 능력도 없다면!! 놈들은 신세계의 인류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눈을 뜨는 것!! 그것이 훌드폴크의 신민이 지녀야 할 최저조건이다!!]
[그래서 부하가 아닌 놈들은 ‘몇 마리인가’로 세는 거냐!!]
가슴에 빈틈. 찔렀다가 막혔다. 실수했다. 급소를 노려봤자 약점이랄 게 없는 야수회귀의 방어력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 씨발 치트 마법 같으니. 적으로 돌리면 이토록 무서운 마법이었단 말인가.
─서걱!!
방금까지보다 반 박자 빠른 공격이 팔뚝을 갈랐다. 공격을 실패해서 반 호흡을 내줬던 탓이다.
야수회귀의 마나도 거인 가죽 갑옷도 갈라졌다.
애미 씨발. 견장마저 없었으면 지금 그걸로 팔을 움직이기 힘들 만큼의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것보다 이 가죽, 수선이 가능한지도 모르는데!!
염병할 새끼가 내 고오급 무스탕 풀세트의 내구도를 깎아!! 나는 없던 분노까지 짜내며 포효했다.
[대가리 딸리는 티가 확 나는군, 멍청한 새끼!! 눈에 차지 않는다고 밑대가리들을 내쫓는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라 훌두폴크 친목 커뮤니티에 불과해──!!]
[흥미로운 의견이군!! 언쟁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휘두를 힘이 없다면 어떠한 정론도 패배자의 변명이 될 뿐이다!!]
[그건 맞는 말이네. 씨발아!!!!]
누가 봐도 키배에서 줮발려놓고 현피를 뜨자고 하면 그건 치졸한 일이다.
하지만 현피부터 떠서 좆털린 녀석이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쏘아붙이는 말에 설득력이 없는 것도 팩트였다. 욕이라면 이 새끼가 뒤져가며 유언할 시간을 뺏어서 퍼부어줘도 됐다.
─조금이라도 빠른 공격을!
─조금이라도 적은 소모를!
우렁찬 포효와는 달리 아까보다 예리해진 격돌은 더 이상 공기를 떨게 만들지 않았다. 내 창과 호르샤의 대검은 마치 탄환처럼 관통하며 피와 살점과 마나를 흘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어이 그 때가 왔다.
─푸슉!
아주 희미한 상처.
맨몸으로 숲을 걷다가 나뭇가지에 살짝 긁힌 정도의, 다친 걸로도 보기 힘들 만한 혈액이었다.
하지만 호르샤의 팔뚝에 난 상처는 메워지지 않았다.
[……크으으으으으으으!!]
상처는 미미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호르샤도 나도 엘리트한 대갈통으로 그 의미와 차후의 전개까지 희미하게 직감했다.
[크, 오오오오오오오오──!!!]
그래서였을까. 호르샤는 드디어 건곤일척의 승부로 나왔다.
슈르르르르르──!!!
까만 대검이 마나를 들이마셨다. 마나를 물처럼 쓰는 유물이다. 그만큼 사용을 망설이고 아껴뒀던 비장의 한 수겠지.
‘하지만 예상 범주 내다!!’
나는 【게르튀르】의 반격 초식을 전개했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왕이나 되는 새끼가 챙긴 유물 무기다. 저게 그냥 튼튼한 대검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병신이나 아마추어나 할 짓이었다.
숙적의 생각은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다던가.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나도 어느새 호르샤의 성격이 감이 잡혀가고 있었다.
‘이 새끼는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선호한다!’
전술과 전략 모두에서 공통되게 보이는 전술.
호르샤는 소모를 피하고 더 확실한 승리를 노리는 새끼다.
돌출된 전력인 나를 막고자 스스로 싸우고, 밀리기 전까진 체력 소모가 심한 야수회귀를 아끼며, 알윈을 노릴 때도 지 병력을 아끼려는 양동 작전을 애용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지혜와 별개로 전술 전략은 개인의 호불호가 드러난다.
이 새끼가 비장의 한 수를 쓴다면── 그건 궁지에 몰려서 더는 소모를 생각할 수 없게 됐을 때.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지금이다!!
─쿵!!!
결투의 막은 결말로 치닫는다.
발동 전에 방어를 뚫어낼 확신이 없는 나와, 그걸 깨닫고 나를 방어 째로 끝장내려는 호르샤의 최후의 한 수다.
…콰르릉!
그리고 그 결말을 좌우한 것은, 홈의 어드밴티지였다.
[──애미?]
모든 신경이 높이 치켜든 대검에 집중한 순간, 바닥이 푹 꺼졌다.
그야말로 랭전 중에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당혹감이 나를 덮쳤다. 굳게 디뎠을 생각이었던 자세가 흐트러졌다. 지반이 무너지며 그 아래로 펼쳐진 넓은 공간을 야수회귀의 마나가 충돌하는 빛으로 비춰냈다.
──땅 밑의 국가.
빛도 들지 않는 곳임에도 초목이 자라나고, 본 적도 없는 양식의 건물과 탑이 망국의 생존자들이 남긴 미련처럼 세워진 장소였다.
집념이 녹아든 암흑 속의 도시는 내 고고학자로서의 의식을 정말 아주 한 순간, 완전하게 빼앗았다.
얼스터의 방계 인종, 훌드폴크 인의 고향.
──고대 문명의 잔흔, 콰르트고니아.
[우리들의 국가를 재건할 초식이 되어라, 노르드──!!]
바닥을 부숴서 나를 허공에 내던진 호르샤는, 내가 완전히 선택지에서 치워뒀던 마법으로 자세를 되돌리는 것보다 아주 약간 빠르게 나를 자신의 대검의 리치에 넣었다.
─푸확!!
그렇게 다음 순간, 나는 창을 든 팔과 함께 가슴을 깊숙이 쪼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