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썰리는 소리는 딱히 듣기 좋지 않다.
그건 목숨을 건 싸움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썰어젖히는 데 이골이 난 전사에게도 그렇다.
그게 내 몸에서 들려온다면 더 그렇고 말이다.
휘이이잉─!!
나는 창을 쥔 오른팔이 어둠에 잡아먹히듯 어딘가로 날아가버리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호르샤도 발판을 잃었기에 더 이상 나를 추격해 오지는 못했지만, 최후에 순간에 간신히 두른 야수회귀의 마나도 그의 진심을 담은 공격은 막지 못했다.
팔뚝과 가죽 갑옷, 견장의 방어력 버프에다 마나 코팅까지 잘리고도 내 가슴부터 배까지 길게 피가 터져나올 정도였다. 아마 이너 아머 상태로 맞았으면 노르드 탕탕이가 됐겠지.
“……크흡!!”
─쿠웅!! 치밀어오르는 핏구역질에 목울대를 울렸을 때, 나는 짧은 비행을 끝마치고 어딘지도 모를 공간에 등판을 강하게 부딪혔다. 하늘에서 추락한 것이다.
“크학!! 애미 씹……!!”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 팔뚝에서 수도꼭지를 잠그는 걸 잊은 호스처럼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붉은 절단면에 〈얼어붙는 손길〉을 갈겼다.
쩌저적…!!
“씨이, 바아아아아아아아아알──!!!!!”
위치를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비명을 참을 수는 없었다.
이딴 미친 지혈 방식은 나도 하기 싫었지만, 과다 출혈은 위험했다. 전투속행 능력 이전에 죽음의 문제다.
하지만 그딴 걸 생각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가슴의 상처를 보고 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길게 찢어진 상처의 깊이를 확인하고서, 내가 쇼크로 기절하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해졌다.
‘……와, 염병. 배에서 곱창 튀어나왔어.’
존나 손바닥에 빨간색 덩어리가 묻어나왔다.
이거 강북호 내장탕은 아니겠지. 애미. 핑크핑크한 게 맞는 것 같은데?
‘……포션은….’
인벤토리 석판에 손을 뻗었다.
후두둑….
하지만 집히는 건 만들다가 실패한 달고나 같은 돌 조각이 전부였다.
그래도 존나 익숙한 색이었다. 공간 마법이 걸린 석판이다.
“이야, 씨팔…. 이게 박살나네…….”
하긴 게임이 아니니까.
존나 박터지게 싸워놓고 주머니 속 템이 멀쩡하길 바라는 게 철없는 생각이긴 하지.
인벤토리의 좌표 포인트는 베로니카가 아니까 복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딴 게 문제가 아니었다.
회복 포션을 꺼내도 살까말까하는 상황인데 내 인벤토리에 잠금이 걸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노르드는 자체 회복기가 없는 순수 딜탱이었다. 애미 뒤진 개똥캐네.
“이건 씨발 츠나데도 죽는다…….”
나는 바닥에 등을 두고 엎어졌다.
마나도 바닥을 보이는 와중에 내장이 복근 밖으로 까꿍☆ 하는 상황이다. 솔직히 이러고도 살아남길 바라는 게 과욕이 아니면 뭐가 과욕이겠는가.
다나가 나를 치료하러 내려와준다면 혹시 모르지만, 헛된 희망이겠지.
“……후우. 쿨럭, 쿨럭…!”
죽음을 앞두고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과 상념이 목을 타고 튀어나오는 각혈에 끊어졌다.
“염병. 가슴을 베였는데 각혈이 나오네.”
배에서는 기침할 때마다 길쭉한 게 삐져나온다.
그 덕분일까. 내 입술에서도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도 수의사 지망생이다. 어딜 얼마나 다쳐야 가슴을 베여놓고 각혈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꼴이 된 환자가 살아날 가망이 얼마나 낮은지도 충분히 잘 알 생각이다.
치명상이라는 말도 우습다.
지금 나는 의식이 남은 시체에 가깝다.
아마 내가 인간을 초월한 전사가 아니라면 진작 뒤지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아드레날린으로 훼까닥 할 것 같은 정신줄을 죽어라 붙잡았따.
‘……죽는 건 어쩔 수 없지.’
실수해서 죽었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반성점은 있겠지만 그것도 뒤져버리면 좆도 의미 없는 후회다.
단, 그건 내 죽음에 한정한 이야기다.
아내들까지 죽게 둘 수는 없다.
내가 진짜로 이렇게 뒈져버리면 그 뒤에 그녀들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기도 싫지만, 싫건 말건 그렇게 될 상황이었다. 내가 고민해봤자 답이 없는 부분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야 하는 건 호르샤를 어떻게 할지다.
‘살려보낸다면 위로 올라가서 아내들을 공격하겠지.’
그렇게 되면 전멸이지만…… 그 씹새의 성격은 잘 안다. 그 새끼는 아마도 이곳까지 올 것이다.
내 죽음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확실하게 죽여두고자 하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때를 노려서 남은 마나를 꼴박한 기습을 갈기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죽음을 위장하려고 가빠져 오는 숨을 참았다.
폐에 차오른 피 덕분에 존나게 아팠다.
금방 입을 벌리며 피 섞인 기침을 쿨럭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렇게 죽은 척을 하는 걸로 아내들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참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뭐지?’
나는 피워올렸던 야수회귀의 마나까지 꺼트리려다가, 누운 위치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서 잠시 행동을 정지했다.
고인돌? 아니군. 무슨 돌을 세워둔 유적 같다.
‘스톤헨지였나……? 그래. 그걸 닮았군.’
π 자로 쌓아둔 돌이 원형을 이룬 유적이었다. 지구에서도 사진으로 봤던 유적을 떠올리다가, 나는 그 한가운데에 놓인 돌의 존재를 눈치채고 눈을 깜빡였다.
[기록한다. 기억한다. 남긴다. 속죄한다.]
[기록한다. 기억한다. 남긴다. 속죄한다.]
[기록한다. 기억한다. 남긴다. 속죄한다.]
스톤헨지에 새겨진 것은 예전에 사르가디스에서 발견했던 야수회귀의 유적과 같은 문구였다. 아마 오감 문자가 발명되기도 전에 쓰여진 걸, 뜻도 모르고 대충 막 베껴써둔 거겠지.
‘……사르가디스의 그 고인돌 유적도 스톤헨지였던 건가?’
그때도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유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소도 훼손되기 전에는 이곳과 비슷했을까.
나는 호르샤가 오면 알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이면서 석비에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글의 대부분은 호르샤가 말했던 것이다.
‘예언의 울프헤딘’이라는 존재를 암시하는 전승 말이다.
그런데 그 석비에는 이 석비를 세운 새끼가 기억하고 있던 그림 문자를 새겨둔 듯, 몇 줄의 그림 문자가 있었다.
신으로 보이는 그림이 인간을 만드는 장면.
그 인간이 빛─아마 야수회귀─에 감싸이다가 짐승이 되는 장면.
그리고 그 짐승이 ‘인류의 진화’ 그림처럼 점차 인간이 된 끝에, 마치 신의 그림처럼 숭고하게 승천하는 장면이다.
“이게 뭔…… 쿨럭, 쿨럭!”
숨을 참다가 기침을 한 나는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입술의 피를 닦았다.
‘……씨발. 잠깐만.’
아니, 진짜 잠깐만.
생각해 보자. 띵크(Think), 강북호. 띵크!
‘울프헤딘은 짐승이 되지 않는 존재라매? 쓰벌, 그러면 왜 저 그림에는 짐승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중간 과정이 그려져 있는 건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호르샤가 구라를 깐 건가?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 새끼는 저 그림을 보고 자기가 울프헤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짐승─트롤─이었던 자기가 인간으로서 자아를 되찾았으니까, 이제 겉모습까지 인간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 트롤 교수가 나불대던 전승의 울프헤딘에 가장 가까운 나는, 짐승이 된 기억이 전혀 없다.
나한테 야수회귀는 거의 패시브다. 됐어야 한다면 진작에 나도 ‘짐승’이 됐어야 한다.
쥬지가 커진 날, 하룻밤만에 환골탈태하듯 짐승화-인간화 테크를 밟아버렸다?
그것도 무리가 있는 추리다. 티르시의 검사로 내 몸의 변이 현상은 쥬지에 국한된 것이었다고 확증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째서지?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엘리트한 대갈통에게 답을 촉구했다.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인가?’
그거다.
확실하다. 저 그림이 가리키는 건 ‘진화’다.
그것도 디지몬이나 포켓몬처럼 갑자기 돌연변이 현상을 일으켜서 벌이는 진화가 아닌, 진짜 진화.
이세계에선 연전연패를 기록하던 다윈이 주창한, 진화론의 ‘진화’다.
세대를 거치며 일어나는 DNA의 변화.
짐승에서 인간이 된 생명.
다시 말해서── 지구인이다.
“……진짜로?”
나는 고통도 잊고 입을 벌렸다.
이세계의 인간은 신이 흙을 빚어서 만들었다. 일단 자기가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물체니까 동물이라고 불러도 되지만, 학술적으로 말하는 ‘동물’은 아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지구인은 동물이 맞다.
내가 예전에 농장에서 싸웠던 워킹-고라니 새끼들과 도긴개긴인 환골탈태 원숭이니까.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설마 내가 야수회귀를 페널티 없이 사용 가능하고, 울프헤딘이라는 거창한 존재가 된 게 전부──
‘──내가 유인원에서부터 진화 테크를 밟은 지구인이라서, 같은 병신 같은 이유는 아니지?’
니미 씨발. 제발 아니라고 해 줘.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충격적인 가설에 그렇게 기도해 버렸지만, 내 직감은 이게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야수회귀를 고성능으로 쓰고, 짐승이 되는 부작용도 겪지 않는 건── 애초부터 내가 짐승에서 진화해 지혜를 얻은 지구의 인류이기 때문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야수회귀를 다룰 수 있던 건.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인간’이라는 이름의 짐승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