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부터 야수회귀를 고성능으로 쓰고, 짐승이 되는 부작용도 겪지 않는 건── 애초부터 내가 짐승에서 진화해 지혜를 얻은 지구의 인류이기 때문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야수회귀를 다룰 수 있던 건.
정말 말 그대로── 내가 ‘인간’이라는 이름의 짐승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뜻이었다!!
“……아니 존나 개씨발아! 그게 말이 돼?!”
나는 아이까지 낳은 아내가 사실 어릴 적에 헤어진 여동생이었다는 소식을 들은 중년인처럼 넋이 나가버렸다.
외치는 목소리에 섞인 토혈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가 존나 개쓰레기 이세계 판타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미친 뇌절 전개까지 예상하라는 건 암만 그래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
충격이 너무 커서였을까. 나는 반생반사의 상황인 것마저 잊고 고개를 젖혔다.
원래 죽어가는 환자한테 이런 충격적인 사실은 알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씨발 진짜 말 그대로 억울해서 뒤지겠네.
분명히 내가 ‘여의좆’이나 ‘옐로 몽키’ 같은 개소리를 자주 읊기는 했다.
분노할 수록 파워 업을 하는 원숭이인 것도 맞다.
하지만 씨이발!! 설마 그게 복선이었다니!!!!
“지구용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Z-전사였다니!”
사이어인 맙소사! 누가 알았겠는가!!!
이 모든 게 정말로 내가 어드밴스드 몽키인 지구인이라서 가능했던 거란 말인가!!
“개 같은 이세계 새끼들……. 니들 그거 지구인 혐오야…….”
예언의 몽키헤딘이다 씨팔롬아…….
“레훼에엥…….”
나는 눈물이 나올 듯한 기분에 눈가를 덮었다.
그야말로 내 이세계 인종차별 경험담을 새롭게 쓸 정도의 충격이었다.
‘느그 조상 원숭이’ 같은 패드립을 이런 장대한 복선을 깔아가며 치다니? 누가 생각한 건진 몰라도 패 죽여버리고 싶다.
아니, 이러다간 그 새낄 찾아서 패버리기 전에 존나 나부터 어이가 없어서 죽어버리겠다. 부검의가 내 시체를 해부하고서 ‘사망 원인: 어이 없음’이라고 적어도 할 말이 없겠지.
나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애.
‘씨발, 하지만…… 이게 정말 단순한 우연일 리는 없지.’
미쳐버릴 것만 같은 혼란에서, 나는 간신히 엘리트 마초의 이성을 되찾았다.
지혜 스탯에다가 몰빵한 어드밴스드 원숭이가 우연히 이쪽 세상에 흘러들어와서 이세계 깽판물을 찍을 운명이고, 그게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우발적으로 벌어진 기적이었다고?
우리 제발 그런 개지랄 헛소리는 자제하자.
아무리 그래도 그런 안드로메다식 전개는 믿겨지지 않는다. 믿고 싶지도 않다.
너무 말도 안 되고, 허무맹랑한 소리다.
‘그렇다면 믿지 않으면 그만이지.’
누가 그딴 뇌절 전개를 받아들일 줄 알고?
믿기지 않는다면 다른 가설을 세우면 그만이다.
과학이란 의심과 의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니까.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나는 가설을 한 가지 세웠었다.’
카르미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때부터, ‘이세계인의 일부가 지구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었다.
그 가설이 아니면 이세계와 지구의 신앙이 이렇게까지 닮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세계에 정말 쥐뿔도 유사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공통점이 우연히 일치할 가능성은 너무 낮다. 존나 내가 미친 과학자에게 전기 자극을 받는 통 속의 뇌일 가능성보다 더 희박할 것이었다.
‘……이세계의 인류는 신들이 창조한 생명이야.’
반면에 지구인들은 동물에서부터 조금씩 진화한 생물이고 말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논증으로, ‘지적 설계’라는 얘기가 있다.
만약 당신이 들판에서 시계를 줍는다면, 그건 우연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어떤 지적인 존재가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해서’ 만들어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현실적인 발상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저 창조론자들의 사이비 과학에 불과한 궤변이다.
‘……지구의 인류만을 두고 본다면 말이지.’
나는 스톤헨지에 새겨진 원시의── 신대의 그림을 봤다.
짐승에서 자아를 되찾는 것으로 태어나는 예언의 울프헤딘.
짐승에서부터 진화해 온 지구의 인류.
그리고, 내 고향 지구보다 역사가 긴 게 확실한 이세계의 문명과 신들의 존재.
이것들의 단서를 억지로라도 엮어 본다면?
‘……아무런 근거도 없기는 하지만, 혹시 지구라는 문명의 시작은….’
─뚜벅.
때와 장소도 잊고 고찰에 잠겼던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씨발, 지금 이딴 걸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지!’
존나 시체인 척을 해서 호르샤를 유인하고, 저 새끼에게 내 남은 목숨을 부딪혀서 아내들이 살아돌아갈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올려야 하지 않은가.
지구의 기원 따위 알게 뭔가.
그딴 건 곧 뒤질 몽키헤딘에게는 좆도 의미가 없는 과거의 역사일 뿐이었다.
─뚜벅.
눈을 감은 상태로, 시체를 연기하며 보이지 않는 기척에서 빈틈을 찾는다.
그래. 찾아야 하는데……
‘……좋지 않군.’
눈까지 감으니까 진짜 뒤질 것 같았다.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진짜다. 안 그래도 의식이 철야한 뒤에 1시간 자고 랩실에 출근한 것처럼 눈만 감아도 잠깐씩 끊길 지경인데, 아예 꿀잠각을 노리는 것처럼 눈을 꾹 감고 미동도 안 하려니까 이대로 잠들어버릴 듯 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의 잠은 죽음일 뿐이다.
영면이라는 말을 몸으로 체현해 버리고 말겠지.
‘빨리 와라, 씨발럼아! 빨리……!’
초조한 나머지 그만 먼저 움직여 버릴 것 같았다.
호르샤 이 씹새는 그런 내 심정을 안다는 것처럼 일부러 느릿하게 걸어오려는 듯 했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물러나거나 달려오겠지만 말이다.
숨을 들이쉬고 싶어지는 걸 죽어라 참았다. 의식이 죽음과 수마에 녹아들었다.
이제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눈을 감던 실눈을 뜨던, 야수회귀의 빛까지 사라지자 이제 시야에는 칠흑 뿐이다.
─우뚝.
혹시 나는 벌써 죽은 건 아닐까 의심했을 때였다.
접근해 오던 호르샤는 구덩이처럼 깊은 곳의 스톤헨지에 추락한 날 내려다보면서 멈추었다. 육식동물이 관찰하는 듯한 기색이 눈을 감고 있어도 느껴졌다.
[……………….]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 씨팔럼이 내려올 생각을 좆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개씨팔 씹새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엘리트끼리는 통하는 바가 있다.
호르샤는 저기서 몇 분이고 죽치고 있을 생각이다.
존나 개똑똑한 발상이었다. 내 상처를 보면 몇 분 정도의 시간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냅둬도 픽 뒤질 것이고, 그 사이에 위쪽의 전투의 추이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니까!!
‘……아, 이건 좆됐네.’
이래서야 뭐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왔다.
이 구덩이의 구릉을 단박에 뛰쳐올라서 공격하기엔 마나도, 체력도, 상처 상태도 좆씹창이 나버린 상태였다. 일어나봤자 언덕을 기어오르다가 호르샤의 발밑에서 꾀꼬닥 죽고 말겠지.
저 새끼의 신중함을 얕봤다.
이 결투는 나의 패배로 끝난 것이다.
“……하아.”
나는 결국 승산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눈을 떴다.
호르샤의 얼굴이 보였다. 저 새끼도 인간이 되었기에 야수회귀의 빛이 없다면 나를 볼 수 없을 것이지만, 이미 뿌얘진 시야는 안경을 벗은 저시력자의 시야가 이럴까 싶을 만큼 흐릿했다. 존나 뜬 의미도 없군 그래.
‘마지막으로 보는 게 폴리모프한 트롤 수컷 찌찌라니.’
가능하다면 아내들의 젖에 질식사하고 싶었거늘.
나는 인상을 쓰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그럴 생각이었다.
─스멀.
시야의 한 구석에서 어둠이 기어왔다.
그것은 마치 저 구릉 위에서 내리쬐는 야수회귀의 빛 따위 빛도 아니라는 듯 시꺼맸다. 칠흑 그 자체였던 지저의 도시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습한 마나였다.
나는 그게 뭔지 눈치챘다.
예르나와 싸웠을 때, 나를 잠식했던 그 기운과 닮은 것도 같았다.
‘지금은 몸이 말이 아니라서, 딱히 화를 낼 기운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의견이 어떻든 어둠은 내게 들러붙으며 상처로 스며들었다. 죽어가는 중에도 이건 100%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못할 상태의 나는 저항할 기운도 없었다.
죽음의 뒤에 도래하는 것이 찾아온다.
그런 예감이 죽어가는 전신을 지배했을 때였다.
──파앗!!!
하얀 빛이 터져나가며 내 앞에서 사람의 모습을 빚어냈다.
──────!!!
시꺼먼 어둠은 털을 세우는 고양이처럼 사납게 위협했다.
하얀 불꽃 같은 인간의 형상을 어둠이 침식하고 더렵혔다. 하지만 그 그림자는 그딴 건 좆도 알 바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 자리 굳건하게 서서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나는 그 허여멀거죽죽한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교수 슬레이어?”
내 안에서 태어난 환상이자, 내가 품은 분노를 해방하라며 충동질하던 또다른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