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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62화 (462/1,009)

오러.

그것은, 달인급의 전사가 자신의 수족과 같은 무기로부터 뿜어내는 파괴의 마나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전신에 마나를 두르게 된 것은 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강북호는 웅녀의 후예 K-피플.

그리고 곰은, 말 그대로 전신이 흉기인 생물이니까.

─쿠웅!!!

공전절후의 살상력을 가진 필살의 마나로 몸을 덮고, 나는 한 달음에 호르샤와의 거리를 줄였다.

대검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빠르게 내 머리를 노렸다. 아니, 내가 지쳐서 동체시력이 떨어진 탓이겠지. 하지만 나는 좆도 개의치 않고 하나 뿐인 팔로 전력의 펀치를 날렸다.

부우웅─!!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기세를 담은 내 보폭을 읽어내고 딱 내 머리에 내려꽂히는 대검! 하지만 그 검은 형광색의 오러에 닿는 순간, 마치 커다란 반발력이라도 받은 듯 튕겨나갔다.

[오러로 방어를……?!]

찰나지간의 격돌에 호르샤가 경악도 삼키며 멈칫했다.

오러의 기능은 공격력 버프다. 방어력을 올려주진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나처럼 이렇게 몸에 둘둘 두른다면 어떨까.

쿠위이이이이잉──!!!

대검에 맞은 내 마빡은 쪼개지지 않았다.

아니, 상처를 입지조차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해온 대검의 칼날을 순식간에 갈아버리고 있었다. 그라인더에 넣은 쇠파이프처럼 엄청난 불똥을 일으키며 호르샤의 대검이 깎여나갔다.

‘오러란 마나를 강력한 파괴의 격류로 만드는 것!’

그렇다면, 그 오러가 몸에서 무수히 뿜어져나오는 상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정답이 여기에 있다.

오러를 몸에 두른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내가 살아있는 라이트세이버가 된다는 뜻!!

격투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세상에 씨발, 전신에 공격 판정이 달려 있다니. 그야말로 씹 OP라고 말해도 모자랄 밸런스 파괴 캐릭터였다.

오러를 두른 나는 그야말로 피부에 스치는 모든 것을 분쇄해버리는 교수 도살자인 것이다!!!

[나 화났다, 호르샤──!!]

짐승보다 우렁찬 노호성으로 망국의 도시를 뒤흔들며, 내 주먹이 형광색의 빛살을 그렸다.

[오아-!!!]

─투콰과과아아아아아아앙!!!!!!!!

격이 다른 충격이었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파괴의 여파가 소리조차 날려버렸다.

수류탄이 정면에서 터진 듯한 폭발과 함께 호르샤의 마나 코팅이 박살나며 내 주먹이 그의 명치를 터트렸다. 빨간 피가 튀면서 마초답게 튼튼한 인간 남캐의 찌찌가 곤죽이 됐다.

[크허아아악!!!!]

준 만큼 돌려받은 호르샤는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나갔다.

통했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추격하려다가 발을 멈췄다.

[게호엑……!]

─울컥. 진탕이 된 내장이 충격의 여파로 피를 토했다.

도무지 뚫지 못했던 야수회귀의 마나를 뚫고 데미지가 통한 건 좋았지만, 나도 상황은 전혀 좋지 않았다. 타르를 발라놓은 듯한 가슴의 상처도 다시 덧나고 있다.

이 상처가 터지면 뒤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래도── 멈춰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튕겨나간 호르샤에게로 달려들었다.

전신에 오러를 두른다.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 짓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순수한 전사라도 실력이 늘면 마나량이 느는 법인데, 그런 달인급의 전사들도 오러만 켜면 감도가 3000배가 된 것처럼 마나 조루가 돼 버리는 법이다.

하물며 그걸 전신에 다 두른다? 내 마나가 품절되기까지 30초나 걸릴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더는 1초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크하아아아아아압──!!]

─퍽!! 호르샤는 가슴의 상처가 특수분장인 것처럼 거칠게 일어났다. 내 오러가 항성처럼 뿜어내는 빛에 드리워진 그의 얼굴에는 통제 못할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놈이!!!! 이번에야말로 그 몸을 반쪽으로 쪼개주마──!!!]

호르샤는 파워의 차이에서 밀렸지만 겁 없이 달려왔다. 내 눈은 정확하게 그 대쉬를 포착했다. 넘쳐나는 투쟁심과 상반되는 냉정함이 내 입을 차분하게 움직였다.

[내가 괴물…? 천만에. 나는 악마다.]

호르샤에게 있어서는 그럴 것이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 건 결국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교수들에게는 올바르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일도 대학원생에겐 극악한 폭력일 수 있다는 뜻……!

그것이 이 세상의 잔혹한 현실이다. 호르샤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역사는 힘을 가진 승리자의 관점에서 쓰여지니까!

우리는 이미 누가 옳고 그른지 죽음으로밖에 가를 수 없는 곳까지 온 것이다!!

[오아-!!]

나는 모든 기술을 버리고 최단거리 최고속도의 궤도에 딱 하나 남은 주먹을 실었다.

한 팔로 격투술을 재현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였기에, 그저 힘과 속도에 모든 것을 맡긴 훅과 스트레이트의 연발로 나와 호르샤의 결착을 끝맺기로 결단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대폭발.

내 주먹은 오러와 야수회귀의 마나를 덮고 호르샤의 검과 정면에서 부딪혔다.

─퍼억!!! 재질도 모를 대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박살나서 중후한 소리를 내며 파편을 뿌렸다. 나는 그 파편조각마저 내 오러로 갈아버리며 필살의 일보를 디뎠다.

주먹이 하나 뿐이라면── 2배로 때릴 뿐!

[오아-!! 뿌워-!! 오아-!! 뿌워-!! 오아-!!]

[크학-!! 끄악-!! 크학-!! 끄악-!! 크학-!!]

콰앙─!! 쿠웅─!! 콰앙─!! 쿠웅─!! 콰앙─!!

짐승에게 유린당하는 듯한 비명과 파괴음이었다.

용서없는 매질이 호르샤의 급소란 급소를 남김없이 쳤다. 오러를 먹은 주먹은 전기톱처럼 야수회귀의 마나가 보충되는대로 싸그리 갈아벌렸다. 나와 호르샤의 마나는 제로 지점을 향해 달려갔다.

이게 명실상부 최후의 일격이다.

팔이 잘려나간 오른팔에 ᛒ(Berkanan)의 룬으로 형광색의 오러를 모았다.

잃어버린 팔을 대신하는, ‘빛의 손가락(Shining Finger)’!!

[더러운 피를 토해내라, 호르샤!!]

나는 손톱을 세운 오러를 짐승의 턱처럼 휘둘렀다.

콰아아앙──────!!!!!!!

빛의 손가락은 그로기 상태로 멈춰선 호르샤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핵융합로를 방불케 하는 초 고에너지의 공격이었다. 야수회귀도 꺼져가는 호르샤의 맨몸이 버틸 방법은 없었으며, 그렇기에 내 손에는 사람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아 보이는 심장이 찢겨나왔다.

……펑!!

나약한 심장은 오러의 파괴에 견디지 못하고 폭발했다.

후두두둑…….

어느새 모든 버프가 사라진 나는 외팔이로 돌아와서 빨간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팔을 휘두르며 스쳐지나간 자세에서 무거운 무릎을 꿇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아서자 가슴의 2/3을 잃고도 쓰러지지 않은 호르샤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내, 패배로군.]

호르샤가 지반에 가로막힌 천장을 보았다.

[혹시 오러라는 걸 사용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만…… 그게 그렇게 온몸에 두르고 싸울 수 있는 거라고는 서적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패인은 지식의 부족이군.]

[……비슷한 처지지, 새끼야. 나도 지하가 또 있는 줄 알았으면 거기서 니한테 칼침 안 맞았어.]

…비틀.

나는 스톤헨지의 암반을 하나 골라서 걸터앉았다. 가슴의 상처가 쓰라려서 도저히 운신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실로 모순적인 일이었다.

진화와 각성으로 지혜를 얻은 두 짐승이, 결국 야만스러운 야수의 본능을 일깨우며 적의 피와 살을 탐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였다.

그리고 짐승의 재생력을 버린 호르샤로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훗……. 결말이 나 버리면 이토록 허무한 법인가.]

그의 눈은 자신을 찾아온 사신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유영했다.

나는 그 시선이 쫓는 곳을 쫓으며 말했다.

[……니가 그랬지? 역사는 승자에 의해 다시 써진다고.]

이 새낄 동정하려는 마음은 없다. 교수 슬레이어가 사악한 교수에게 향해도 좋을 감정의 픽업 리스트에 연민의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건 딱히 동정심이 아니다.

[너희들의 선조의 국가가 잊혀졌듯이, 이 시대의 국가들도 언젠간 잊혀질 거라고 말이야.]

[……………….]

호르샤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겠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생김새는 180도 달라졌지만, 그 눈빛에는 싸우기 전에 보여주었던 현기가 조금 돌아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고고학자로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이나 역사 공부 등에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피에 젖은 손으로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그건 바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다는 거야.]

고고학자란 역사의 비밀을 찾는 직업이다.

이 이세계에 도대체 얼마 만큼의 유적이 잊혀지고, 숨겨져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유적에는 또 얼마나 되는 과거의 미싱 링크가 저 태양 아래로 드러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잊혀지거나, 잊혀지고 싶었던 과거의 흔적.

그것을 찾고 시간의 흐름을 역주행하는 자들.

그게 우리들 고고학자였다.

[아무리 잘 숨겨놨을 작정이어도,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서 잊으려고 해도, 과거라는 건 남의 의지나 자신의 실수로 세상에 드러나더라고.]

이세계인들 중에서 대체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비밀을 가지고 살며, 그 숨기고 싶던 치부를 남에게 들켜왔을 것인가.

내가 싸워온 적들도 그랬다.

크림 뭐시기 서커스의 유괴범부터 시작해서 코난드, 호르샤까지.

자신의 치부나 악의를 감추고 있던 이들은 내 손에 그 비밀을 까발려졌다. 마치 어릴 적에 나무 밑동에 묻어두었던 사악한 타임 캡슐을 노획당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실, 나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고.]

내가 만들었던 위장 신분들도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들키며 끝나지 않았던가.

비밀이란 게 그렇게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더라.

생명은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이 약속되는 것처럼, 비밀은 만들어졌을 때부터 언젠가는 파헤쳐지고 마는 게 순리였다.

[……잊혀지는 역사는 있어도 사라지는 역사는 없어. 뭐든 똑같지. 죄든, 업적이든, 다 그런 거지. 그래서 우리 인간도 비슷한 역사를 반복하는 거겠지만.]

푸우….

단 숨을 길게 내쉬며 나는 픽 웃었다.

[아무려면, 역사에 우리 같은 놈들 한 명 없었을까.]

[……크흐흐흐. 크하하하하하!]

내 농담이 마음에 들기라도 했던 것일까. 호르샤는 기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해 놓고서, 결국은 지난 날의 반복이었는가…. 그래, 그랬군….]

─쿨럭.

피를 토해낸 그는 눈에서 빛을 잃어가며 말했다.

[과연… 그렇다면… 당해내지 못할 만도 하지…….]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남자는 목숨을 잃었다.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다리로 굳게 선 채로── 손에 넣고 싶었던 저 넓은 하늘보다, 되찾은 과거의 영토보다 더 낮고 어두운 지저에서 말이다.

그러한 최후에는 호르샤라는 남자의 선악을 논하기 이전의 장절함이 있었다.

[……………….]

나는 가볍게 성호를 긋고 ᚨ(Ansuz)의 룬을 사용했다.

진혼의 룬으로 호르샤의 영혼을 띄웠다. 아무련 미련조차 남지 않은 듯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은 그의 영혼은, 초록색 피부의 괴물이 아닌 건장한 전사의 모습이었다.

─툭.

나는 패자에게 보내는 경의로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 손이 닿자 그의 영혼은 빛이 되어서 사라졌다.

사람의 영혼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이 판타지 랜드에서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죽은 자의 처벌은 나의 일이 아니다.

산 자에겐 산 자를 벌할 자격이 있을 뿐이었다.

뭣보다 산 자가 죽은 자에게 갖는 감정이란, 결국 살아있는 사람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람은 제사를 지내며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것이겠지.

죽어서 안식을 얻거나, 혹은 사후의 세계에서 심판을 받을 자들이다. 이젠 없는 이들을 원망해 봤자 상처입거나 가슴이 쓰라린 것은 결국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사악한 교수였던 그에게 담담하게 작별을 고할 수가 있었다.

[……졸업을 축하한다. 한때 대학원생이었던 남자여.]

─화륵.

희박하게 피어난 푸른 불꽃이 호르샤의 몸에 붙었다.

스톤헨지의 구석에서 곧게 선 전사의 시신은 그렇게 어둠 속에 잠긴 선조의 고향을 비추는 것처럼 오랫 동안, 정말로 오랫 동안 타오르며 빛을 자아냈다.

그리고 나는 그 열기를 등으로 받으며 어둠의 너머로 걸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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