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64화 (464/1,009)

***

─카앙!!

눈부시도록 환한 석실에 불똥이 튀었다.

프랑이 던진 나이프가 검은 연기로 변한 텔츠즈를 맞추지 못하고 석벽에 꽂히며 발생한 불똥이었다. 견제에 실패한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10명으로 불어나는 메마른 트롤에게 남은 나이프를 전부 던졌다.

“……흡!”

가녀린 팔에서는 상상도 못할 근력이 근육을 융기시키면서 쏜살처럼 두 팔을 휘둘렀다.

─퓨퓨퓨퓨퓽!!!

명중을 바랄 수 없는 막무가내 식의 투척이었지만, 그녀의 손재주는 손목의 조정과 손가락을 놓는 타이밍을 조정하여 100%의 명중률을 성사시켰다.

주술을 영창하던 허허실실의 분신들 중 9마리가 미간에 한 자루씩 나이프를 기르고, 본체는 혀를 차며 공중에서 머리를 비틀었다.

[방해하지 마라!!!]

트롤 주술사는 몸에 익힌 주술과 지혜도 잊고 분노에 차서 고함을 토해냈다.

그 이유는 프랑도 눈치채고 있었다.

석문 건너에서 들리던 소리가 멈추었을 때, 텔츠즈는 자기 분신의 주문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전투의 결말이 신경쓰였던 건 프랑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그 행동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보였던 것은 커다란 구멍과 그 안으로 보이는 어둠 뿐이었다.

아마도 남들은 경험도 못할 높이에서의 추락을 살면서 몇 번 씩이나 겪고 있는 그녀의 남편도 저기로 떨어졌겠지.

프랑은 그가 ‘추락 사고는 야바위꾼의 숙명’이라고 하는 걸 평소의 헛소리려니 하고 넘겨들었었는데, 이젠 진지하게 뭔가 해주라도 해 보는 게 어떨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흡!!”

생각과는 별개로 프랑의 몸은 행동했다.

그녀는 근처를 구르는 돌맹이를 주워서 하늘을 나는 주술사에게 던졌다.

무기를 전부 잃은 그녀의 궁여지책이었지만, 투석에 담긴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시로나의 주술을 상대하며 일격필살 급의 견제까지 방어해야 하는 텔츠즈의 눈에 빠르게 초조가 깃들었다.

키이이이잉─!!

그의 초조함을 더 거세게 만드는 것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열등종이 빚어내고 있는 검이었다.

막대한 빛의 마나에는 단 한 줌의 살기도 없었지만, 그의 민감한 영감은 지하에 보낸 코난드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발생한 마나의 파동을 깨닫고 있었다.

저 검은 위험하다.

물고기도 아가미가 고장나면 물에서 익사한다.

트롤의 재생력으로 견디지 못할 거라는 주술사의 감각이 그의 생존본능을 헤집었지만, 정작 그의 의식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보다는 다른 쪽에 향해 있었다.

[폐하, 폐하, 폐하……!!!]

텔츠즈는 조급해진 마음으로 승부를 서둘렀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는 왕이 진정한 모습을 되찾고 미혹을 떨쳐내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열등종 치고는 강한 전사여도 진정한 힘에 눈뜬 왕에게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조금 전, 호르샤에게 넘겼던 지휘권의 절반은 그에게 돌아왔다.

기백의 부하를 통제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허용량을 넘어선 정신지배의 부담보다, ‘지휘권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텔츠즈의 이성을 무디게 했던 것이다.

‘노르가 이긴 거야.’

프랑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표정을 보면 그가 자신의 주인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 눈에 확 보였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그녀의 감각에 희미하게 전해지던 남편의 전투가 끝난지 한참이 지났지만, 지상으로 올라오는 기척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남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여유가 있다면 당장 위로 달려올 사람이다.

어쩌면 최악의 결말조차 있을 수 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순간, 프랑의 눈빛이 변했다.

─팟.

외투 밑에서 손을 움직였다. 프랑은 예르나와 싸우기 전에 그녀의 남편이 만들어주었던 마법 내성의 부적을 뜯어냈다. 트롤의 주술은 막지 못하는 부적이었기에 떼나 마나 의미가 없었지만, 지금부터는 없는 게 나았다.

《신으로서 일어나라(Dd.f xa m nTr).》

하나 뿐인 마법을 영창해서, 원 액션만을 수행하는 골렘의 팔을 생성했다.

─쾅!!

바위 골렘의 주먹이 가볍게 뛴 프랑의 발을 쳤다. 프랑은 마법 내성 등에 전혀 삭감되지 않은 충격을 탄력 있는 무릎의 힘으로 흡수하고, 자신의 각력까지 더해 도약했다.

[흥!]

하지만 텔츠즈는 회피와 방어를 동시에 전개하며 무모한 돌격을 피해냈다.

반격은 하지 않았다. 돌진을 실패한 적은 아무래도 좋다. 텔츠즈는 자신이 주의를 돌린 틈에 날아올 게 확실한 빛의 검에 최대의 집중을 쏟았고── 그래서 후방의 기습을 놓쳤다

“── <영구의 동토(Dominion of Permanent)>.”

[──커흑?!]

─쩌저적!! 얼음 관이 텔츠즈를 감쌌다.

[뭐, 뭐가──]

공중에서 수족이 얼어붙은 텔츠즈가 눈을 돌렸다. 트롤의 밤눈에 선분홍색의 발광체가 명멸했다.

“<확산: 복사 방출(Spread: Emission of Radiation)>!!”

─쿠화아아아앗!!

10개의 광선이 휘어가며 텔츠즈를 포위했다.

빛의 화살은 그를 감싼 텔츠즈를 두들기며 순식간에 감옥을 형성했다. 흩날리는 얼음 조각과 몸을 후려치는 충격에 텔츠즈의 비명이 파묻혔다.

물론, 그 기회를 놓칠 다나가 아니었다.

[이만 좀 뒤져, 끈질긴 새끼야!!]

─쐐애애액!!

코난드를 해치울 때보다 불사자의 카운터에 특화시킨 빛의 검이 날아들었다. 한때 그녀가 당해내지 못했던 예르나의 분신이라도 한 방에 재기불능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만큼, 재생 능력자의 파괴에 치중된 마법이었다.

[크으으으, 아아아아악──!!]

텔츠즈의 안구에서 핏물이 터졌다. 그의 몸이 수십 갈래의 검은 연기로 갈라졌다.

─콰아아아아!!

억지로 짜낸 분신은 망령처럼 일그러진 몸과 얼굴로 분홍 빛의 광선을 붙잡고 멈추었다. 속도가 느린 빛의 칼날이 텔츠즈로부터 10cm 어긋난 곳을 관통해서 스쳐지나갔다.

타격에 흔들리던 얼음 관의 한 구석이 흐트러졌다.

기회였다. 텔츠즈는 바로 텅 빈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탓!!

그리고 그때, 천장을 박차고 뛴 프랑이 관에서 빠져나오는 텔츠즈의 지척에 근접했다.

[꺼억……!!]

얼음 관의 빈틈이 함정이었다는 걸 깨닫는 트롤 주술사의 가슴에 빛의 검이 꽂혔다. 프랑이 빗나간 빛의 검을 붙잡고 그대로 찔러들어온 것이었다.

정확하게 파티원과의 콤비네이션에 성공한 프랑은 차갑게 속삭였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저세상으로 쫓아가서 데리고 와.”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프랑은 빛의 검을 놓고, 그걸 붙잡고자 만든 흙 골렘 글러브로 텔츠즈의 안면을 거세게 후려쳤다. 타격에 움푹 파묻힌 얼굴이 순식간에 부풀어올랐다.

…퍼엉!!!

왕을 보필하며 몇십 년을 살아온 트롤 주술사는 그렇게 단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나갔다.

바닥에 내려온 프랑은 쓰라린 다리도 아랑곳 않고 석문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있는 건 거대한 꼭두각시와 익숙한 세 사람이었다.

베로니카와 라리루라, 티르시까지. 사르가디스에 있던 파티원들이다.

“베로니카! 노르는……!”

눈물 범벅인 라리루라의 품에서 기절한 그를 보고 프랑은 말을 잊었다. 편하게 자는 얼굴과는 전혀 상반되게도, 남편의 배 위에는 잘린 팔이 올라가 있었다.

잘려나가고도 창을 꽉 붙든 손은 얼마만큼 격렬한 싸움이 있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프랑은 찰나의 충격에 말을 잃었다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다, 다나…… 다나! 다나!!”

비명 섞은 부름에도 쓰러진 다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계까지 마나를 쥐어짠 대가로 실신했던 것이다.

베로니카는 숨이 멎는 것처럼 목이 메여가는 프랑을 안고 등을 두들겼다.

“그만. 진정해라, 프랑. 다나도 떨어진 팔이나 내장은 못 고친다. 티르시의 포션으로 가능한 한 치료했으니 걱정 말고.”

베로니카는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의 발밑에서 룬 문자의 만다라가 꺼지자 프랑의 가슴도 그에 맞춰서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괘, 괜찮은 거지……? 그렇지……?”

울먹거리면서 묻자, 베로니카도 약간 부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명에는 지장 없다. 노르드도 엘릭서 사업이 어쩌고 하지 않았느냐. 조만간 잘린 팔도 붙일 수 있겠지.”

“……하아아.”

마음이 놓인 프랑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다들 여긴 어떻게 왔어?”

“가진 돈으로 마나 포션을 잔뜩 사서 마시고, 수면제까지 구해서 1시간에 1분씩 깨면서 자고 일어났다. 덕분에 꿈에서 기절한 그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만.”

“훌쩍……. 저희는 호위로 왔어요. 베로니카 씨는 여기까지 오는 데에 마나를 거의 다 써버렸으니까요.”

티르시도 코를 훔치며 말했다.

노르드의 상태를 확인한 베로니카는 즉시 행동을 정했다. 당연히 그녀 혼자서면 그를 도우러 와봤자 의미가 없었기에, 다른 두 사람의 힘을 빌렸던 것이다.

베로니카는 프랑의 뺨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상황은 대충 알았다. 이 밑에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유적이 있더구나. 하지만 우리 남편의 건강보다 소중하지는 않다. 그렇지?”

─끄덕. 프랑이 수긍하자 베로니카는 픽 웃었다.

“그럼 돌아가자꾸나. 일단은 그 알윈이라는 곳으로 가야 할 듯 하다만…… 이만큼 노력했으면 너희는 할 만큼 했다. 저 트롤 주술사의 시체만 가지고 돌아가자꾸나.”

싸움에는 직접 참전하지 않았지만 베로니카는 싸운 이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게 마나를 혹사시킨 뒤였다.

거기에 몸을 축내는 수면제의 부작용까지 고려하면 〈공간이동〉 같은 위험하고 섬세한 이동 방식은 자살이나 마찬가지겠지. 걸어서 알윈으로 돌아가려면 승전의 증거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 유적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었다. 프랑은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못 말리겠구나. 하긴, 나도 밑에서 운 걸로는 프랑 너 못지 않았다만……”

쓴웃음을 지은 베로니카는 손수건으로 프랑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텅그렁. 지팡이도 내던진 시로나는 다나를 안고 말했다.

“……사위는 내가 치료하마. 빨리 완쾌하려면 체력부터 채워두는 편이 낫겠지. 대신 초면에 미안하다만, 우리 딸을 좀 업어줄 수 있겠나?”

“아, 네. 저한테 맡겨 주세여…….”

코맹맹이 소리를 낸 라리루라가 꼭두각시 인형을 시켜서 다나를 업었다. 시로나가 잠시 노르드의 상처를 치료한 뒤, 잠시 휴식한 일행은 베로니카의 기억을 토대로 지상까지 올라갔다.

그렇게나 긴 싸움이었는데도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달이 휘영청 빛나며 어슴프레한 숲에 빛을 드리웠다.

─저벅.

쓰러지고 싶은 몸을 가누며 프랑은 꼭두각시의 품에서 두 눈을 감고 쓰러진 두 사람을 들여다 보았다.

그들은 프랑의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과,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둘 다 창백한 얼굴로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안색이 좋지 않았다.

겨울 바람이 부는 숲은 고요함이 지배했다.

프랑은 다시금 달을 올려다보았다.

“……바보 같아.”

말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속내를 말하자면, 프랑은 그에게 지켜지기만 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억지를 부려서 네가 싸우는 곁에서 함께 싸워줄 수 있다고 주장해 왔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가 그를 도울 만한 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

방해가 되지 않을 뿐.

옆에서 약간의 조력을 줄 수 있을 뿐.

그래서는 발목을 잡지 않을 뿐이다. 계속 뒤를 신경써야만 하는 사람은 동료가 아니다. 짐꾼일 뿐이다. 그게 물건이든, 적이든, 노르드의 어깨의 짐을 약간 덜어받고 돕고 있다면서 기뻐하는 바보 천치일 뿐이다.

한때 프랑은 노르드에게 말했다. 네 꿈의 끝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그건 프랑의 바람이면서, 한편으로는 결의였다.

가진 것도 돌아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던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 반쪽짜리 드워프. 알지도 못하던 악의와 기만에 부모를 잃고 세상에 내쳐진, 자라다 만 꼬맹이.

그런 그녀가 노르드라는 남자의 꿈에 따라가고 말겠다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결의다.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여선 안 됐다.

주륵….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서 프랑은 급하게 닦아냈다. 조금 앞에서 걷는 일행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쓸데없이 걱정을 끼치는 것도 좋지 않을 것이었다.

달은 프랑이 첫사랑을 품은 날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그녀 자신이다.

──그러니까.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으면, 변해야만 하는 것도 있는 거겠지.

변해서는 안 되는 건 마음이고── 변해야 하는 건 그것을 전하는 방법이다.

프랑은 스치는 깨달음에 입술을 벌리고, 배에서 몰아치는 무언가를 혓바닥으로 자아냈다.

【──ᚨ(Ansuz).】

─휘리리릭.

태생에 축복받은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꼭두각시에게 안겨서 잠든 노르드와 다나에게 작게 룬을 새겨졌다.

“……미안해, 노르. 나는 조금 더 밤잠을 설칠 것 같아.”

사랑하는 남편의 뺨에 키스하고서, 프랑은 헤헤 웃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다나랑 좋은 꿈 꿔.”

마음을 전하는 룬이 두 사람의 심념을 연결했다.

찡그려졌던 눈썹이 곧게 펴지면서 앙 다물린 입도 풀렸다. 프랑은 깊게 숨을 토해내고서, 괜히 다나의 뺨을 찔러주다가 휙─ 등을 돌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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