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68화 (468/1,009)

“여기가, 네가 돌아가고 싶은 세상이구나.”

돌아가고 싶은 세상, 인가.

설마 다나가 이 잠깐의 여흥을 그렇게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나는 하얗고 고운 손을 기지개를 펴듯 쭉 펴면서, 오늘 하루의 감상을 말하듯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서 살다 왔으면 우리 세상에서 살던 4년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겠어. 돌아가고 싶어질 만도 하네.”

“처음에는 그랬지. 아마 너희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러고 있었을 거고.”

“역시 그렇지? 멋지네. 신들이 만든 세상다워.”

“아니, 인간이 만든 세상이지.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아. 봐.”

─슥. 내가 하늘을 가리키자 다나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별이 없네?”

“있어. 하지만 안 보이는 거야.”

이런 눈부신 광경을 만든 대가라고 하면 될까.

따로 깊은 문제의식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조금 아니지 않은가. 그건 비겁한 짓이다.

“나도 내 고향에 마법이나 마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있지만 숨겨지고 있는 건지는 몰라. 그래도 문명이나 문화가 얼만큼 차이가 난들, 사람의 본질은 거기서 거기더라고.”

“그런 건가?”

“그런 거지. 두 세상이 그렇게 차이가 났으면, 내가 다나 너한테 이렇게까지 반할 수 있었겠어?”

애정 공세 일발 장전. 1살 연상의 아내는 기쁜 듯이, 부끄러운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맞는 말이네. 너 같은 놈이 한가득하다고 생각하면 대충 어떻게 굴러가는 세상인지도 상상이 가.”

“그건 착각인데? 나는 원래 세상에서도 엘리트였거든요?”

내가 너스레를 떨자 다나는 배를 잡고 낄낄댔다.

“웃기고 있네. 거기서는 뭐 하고 살았는데?”

“……동물 치료하는 사람 지망생? 음. 우리 아내님이랑 좀 비슷하네. 털 달린 생물만 치료하는 사제 같은 건데.”

“푸흐흐. 보통 사제보다 못한 거 아니냐?”

“쓰읍. 너 그거 칼 맞을 발언이야.”

“아하, 그러시군요. 그럼 남편놈 놀릴 때만 써야지. 근데 왜 하필 동물만? 사람 치료하는 게 여러 면에서 좋지 않아? 아, 너희 세상은 다른가?”

“별로 그렇진 않지.”

수의사보다는 그냥 의사가 더 돈 벌기 편하고 준중도 받기 쉽지 않은가. 업무 강도는 논외로 두고서 말이다.

나는 벤치 등받이에 손을 얹고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친가가 시골이라는 건 말했지? 거기서 동물을 키웠는데, 나는 어릴 적에 잠깐 거기 살았던 적이 있었거든.”

“시골에?”

“응. 본격적인 농장은 아니고, 소나 돼지는 할아버지 친구 농장에서 구경하는 정도였는데…… 그때 같이 장난치고 놀던 시골 똥개가 한 마리 있었거든.”

얼굴도 생각나는 시골 잡종견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꽤 노견이었는데, 하필 내가 있는 동안에 병으로 죽었어. 병원에 데려가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더다라고. 하지만 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어서 자다가 낑낑대는 소리에 일어났던 내가 뭘 할 수가 있었어야지.”

“……그래서 동물을 치료하는 직업을 고른 거고?”

“음, 연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만약 그 똥개 녀석이 다음날 식탁에 올라왔으면 나는 극렬 동물보호가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우리 할아버지께선 기르는 개를 보신탕으로 끓이는 분은 아니셨다.

그런 경험을 겪고 가축으로 길러지는 동물과 애완 동물의 차이를 생각하다가, 수의사가 되고 싶어졌다는 얘기다.

장래희망의 동기 치고는 나름 내러티브가 있는 편 아닐까.

덕분에 자소서는 쓰기 편했지만 말이다.

“그치만 어디 인생이 맘대로 풀리기만 하진 않잖아?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거지.”

나는 야경이 비추는 호수를 보며 턱을 괬다.

“그러니까 운 좋게 괜찮은 대학에 붙었다고 좋아하다가도 다른 세상에 떨어지기도 겪는 거고…… 그 불행에 적응하고 보니까 남 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는 행운을 얻기도 하는 거 아니겠냐.”

“……푸흐흐. 그건 아주 공감 가는 얘기네. 나도 운이 좋았다면 너랑은 못 만났을 거고, 그건 결과적으로 운이 나빴던 것보다 훨씬 못 한 결과가 됐을 거 아냐.”

내 능청맞은 소리에 다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닮은 꼴로 다리를 꼬고, 거기에 턱을 괘며 비슷한 미소를 나눴다.

다나는 야경의 빛에 잠긴 미소를 띄웠다.

“그래도, 돌아갈 거지?”

“물론이지. 너희랑 같이 돌아갈 거야.”

그게 안 된다면 남는 게 낫다.

몇 번이고 했었던 얘기고, 다나도 아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처럼 다나는 팔다리를 뻗으며 개운해 했다.

“그거면 됐어. 그래야 나도 우리 남편놈 돕는데 망설임이 없어지지.”

“돕는다고?”

“왜? 못할 것 같아? 너, 박사 달고 유명해지려던 게 차원 이동 연구의 밑바탕을 깔려는 생각이었잖아.”

다나는 씨익 웃으면서 우쭐댔다.

“근데 이게 뭔 일이래? 굳이 아득바득 학위를 달 것 없이, 지금 당장 연구소 하나 책임지고 있는 박사년이 너네 마누라 아냐? 이걸 안 써먹으면 등신이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생각은 해봤던 점이다. 다나에게 도와달라고 해 볼까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입 안에서만 맴돌다가 밖으로 나오지는 못한 제안이었다.

나는 이미 지 맘대로 굴면서 사는 새끼 아닌가. 그런덴도 다나가 쌓은 캐리어까지 자길 위해서 써 달라고 한다니? 그런 건 너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요구로 느껴져서였다.

“괜찮겠냐?”

“뭐 어때? 내가 하고 싶은 연구가 있던 것도 아닌데. 누구 덕분에 어설프게 헤어졌던 엄마 아빠랑도 다시 화해할 것도 같은걸. 남편놈 귀성길 돕는 거, 인생 목표로는 괜찮지 않나?”

그렇게 말한 다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 지원금이나 권위를 생각하면 니 아내가 교수가 되거나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괜찮냐? 무슨 교수 슬레이어인가 하는 지랄병 도질 거면 관두고.”

“그건 이제 문제 없지. 네가 여기까지 데려와준 덕분에 좀 깨달은 게 있거든.”

세상에 절대적인 선(善)은 없다.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악(惡)도 없다.

나는 그것을 호르샤와의 싸움에서 배웠다.

내게 교수라는 건 직책이기도 하지만 개념이기도 하다. 이 직위를 달고 선하게 사는 자가 있으면 타인의 삶을 유린하고 그들의 행복을 약탈하는 자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교수에도 분명 선한 교수가 있고 악한 교수가 있고, 논문 도둑질을 잘하는 교수, 선량한 교수 등 다양한 교수들이 존재하지.”

트롤과 같은 일부 몬스터의 유래?

지구가 탄생한 이유?

오러의 습득?

그런 것들은 ‘교수에게는 선함도 악함도 없다’는 깨달음에 비하면 다 하잘없는 수확에 불과했다.

‘교수는 그저 오롯이 교수일 뿐이다.’

하이로메인처럼 스스로 대학원생처럼 인생을 갈아가며 연구하는 교수가 있으면, 대학원생으로 시작했지만 끝내 교수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자기합리화를 시전한 호르샤 같은 녀석도 존재한다.

세상의 선악을 이분법으로 나누려고 했기에, 나는 미스릴 클래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한 나에게, 더 이상의 미혹은 없다.

……아니지 시발. 아예 없다는 건 좀 에바인가. 나는 약간 거북한 것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게 현실이었으면 적절한 타이밍이었는데. 장소나 분위기나.”

그래서였을까. 무심코 나온 혼잣말이 생각보다 조금 컸다.

물론 보통 사람은 못 들을 성량이었는데── 우리밖에 없는 호숫가에서, 키스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던 박사님의 귀에는 톡톡히 들렸던 모양이다.

“타이밍?”

고개를 모로 꼬던 다나는 여자의 직감이 발동한 듯 안색이 바뀌었다. 의문, 놀람, 환희의 순서였다.

아 씹, 망했다.

“……야, 맞아?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응?”

“어, 그…… 맞는 것 같긴 한데, 지금? 실물도 없는데? 나 북부 오기 전에 주문해놓고 아직 수령도 못 했다고.”

“아, 그딴 거 알 게 뭐야!! 나중에 줘도 되잖아!!”

다나는 조바심이 난 것처럼 소리치고는 옷매무새를 빠르게 정리했다. 전혀 안 어울리게 다소곳한 자세로 모은 두 다리와 한가득 상기돼서 미소를 참는 얼굴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딴 거라니. 그거 하나 때문에 멘탈 깨져서 정신 나갔던 사람이 할 말인가.

‘……에라 시발, 모르겠다.’

나는 이 누나랑은 정말 계획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탄식하고서, 벤치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나쁘지 않긴 하다.

당신과 같은 꿈을 꾸겠다고 맹세하는 것 아닌가. 둘이서 내 고향의 꿈을 꾸는 지금만큼 적절한 때는 없겠지.

그래도 현물이 없는 건 허전하다.

나는 클라라에게 주문을 넣어두었던 상자와 반지를 그대로 재현했다.

─달칵.

야경을 등지며, 무릎을 꿇고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거기에는 기존과 동일한 미스릴 반지가 들어 있었다. 처와 첩을 두고 격의 차이를 나타낼 때가 아니라면 결혼 반지는 똑같게 맞추는 게 이세계의 풍습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쌍성의 호박(Amber of Twin Star).

미네르바의 남편이라던 꼬마가 준 그 보석을, 나는 미스릴 반지에 전부 녹여넣었다.

얼만큼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상대의 위치와 건강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물건이다. 다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자체적인 가호도 깃들어 있다.

팔이나 잘라먹는 남편과, 그 멍청한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다나에게 딱 맞는 반지일 것이었다.

“흐우우…….”

다나가 깊고 길게 숨을 골랐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도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내 얼굴도 저럴까? 아마 그럴 것이다. 피차 기습적인 상황이니 말이나 태도를 정돈할 여유가 없었다.

──그치만, 뭐.

우리에게는 이러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하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와 다나만이 아는 야경이 빛을 비췄다. 별빛이 없는 하늘을 인공의 불빛이 대신하며,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자 했던 그날의 감정으로 심장에 불을 지폈다.

가짜 경치에, 가짜 반지. 전부 환상일 뿐인 프로포즈다.

하지만 모두 다, 언젠가 내가 성취해낼 미래다.

지금은 그저 환상이고 말 뿐이라도── 반드시 그 환상을 당신에게 선사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프로포즈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다나.”

거창한 멘트는 필요 없다.

알 거 다 알고 볼 장 다 본 우리 사이다. 들킬 것이 뻔한 허세라니, 쪽팔린 것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그래도.

“──고마워. 나를 받아들여 줘서.”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평생토록 폼을 잡는 것.

그게 그날밤 나를 피하지 않았던 다나에게 해줄 수 있는, 내 최대한의 애정 표시일 것이었다.

“………………하여튼 나쁜 새끼.”

다나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애틋하게 보고, 억지로인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려다가.

“빨리도 말해요, 진짜─!!”

끝내 참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내게 안겨들었다.

─꼬옥! 굳게 안겨드는 다나를 들어올리면서 나는 뱅글뱅글 춤을 추듯 돌았다. 무도회장도 뭣도 아니었지만, 우리 둘 뿐인 밤의 호숫가와 도시의 야경은 그 어떤 파티장보다도 아름다웠다.

다나는 정말 아이처럼 기뻐하며, 10살 무렵의 순진무구한 웃음 그대로 미소지었다.

아직 도달하지 못할 도시의 빛을 쐬며,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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