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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73화 (473/1,009)

나는 수천 년 지나 마침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얼리어답터 기상.”

빛과 어둠의 영혼을 가진 마초가 일어났을 때, 보이는 건 내 허벅지에 누워서 잠든 라리루라 뿐이었다.

잘린 팔의 단면과 가슴부터 배까지 이어진 상처에 퀴퀴한 냄새가 나는 붕대가 감긴 상태였다. 아마 고약을 발라둔 게 아닐까. 딱히 맡기 좋은 냄새도 아닐 텐데, 라리루라 녀석은 잘도 내 옆에서 자는군.

─욱씬.

상반신을 일으키자 약간 아팠다.

상처가 덧나는 느낌은 없었기에 몸만 슬쩍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마 영주 저택의 손님 방일까.

로마니아에서 건물의 호화로움에 인플레이션을 겪은 내 눈에는 사르가디스의 죠테루 영주 저택보다 못해 보였다. 정작 나는 이것만 못한 집에서 살지만 말이다.

이게 그 유명한 ‘자기 돈 주고 차를 사 본 적 없는 사람은 자동차 보는 눈이 높아진다’ 이론이다.

“으음…….”

내가 다리를 움직이는 동작에 깬 걸까. 라리루라는 졸린 듯 눈을 비비다가 내가 깬 것을 보고 약간 부루퉁해졌다.

“드디어 일어나셨네요.”

“나 얼마나 잤음?”

“저번에 꿈에서 뵙고 5일만이에요.”

많이도 잤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내 몸뚱이가 그렇게 오래 회복기에 들어가 있었다니 놀랍다. 하긴 몸도 씹창나도 마나통도 한껏 혹사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아, 아. 흠흠.”

나로서는 한순간이었지만 5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한테 좀 삐졌던 게 가라앉은 걸까. 라리루라는 칼칼한 목을 풀고서는 평소처럼 발랄하게 말했다.

“오늘 쯤이면 일어나실 거라고 들어서 보고 있었답니다☆!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살 맛 나네. 죽을 맛도 좀 나고.”

“말하는 보면 멀쩡하신 모양이네요! 다행이에요♡”

잘 알아먹는 걸 보면 이제 노르드 회화 1급을 딴 모양이군. 벌써 내 개소리에 쫓아올 수 있게 되다니, 성장속도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였다.

“아앗! 그래도 일어나지 말고 계세요! 선배은 아직 환자시라구요, 환자!”

─톡.

라리루라는 몸을 일으키려는 내 이마를 밀쳐서 베개에 뉘이고서는, 괜히 뺨이 스칠 만큼 얼굴을 갖다댔다. 애교가 많은 얼굴은 그러고만 있어도 좋다는 듯 능글거리며 웃었다.

“야, 부담 돼. 나 기절하고 세수도 안 했어.”

“제가 매일 닦아드렸으니까 괜찮아요. 아랫쪽까지 완벽히 케어해 드렸답니다!”

“세상에 마상에.”

내 존엄성은 내가 기절한 사이에 무자비하게 유린됐던 모양이다.

가장의 위엄은 어디로 가 버린 것……?

“흐……. 그래 뭐, 아무튼 고맙다. 노인 간호도 아닌데 고생했겠네. 근데 어쩌다 네가 내 간호를? 내기라도 했어?”

“네.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어요.”

“……이겼어? 진 게 아니고?”

“완전 이겼는데요? 슈퍼 퍼펙트한 승리였어요. 눈물 없이 보지 못할 매정한 서바이벌 매치였죠. 저도 슬픔을 삼키고서 사랑하는 언니들을 쓱싹 해치워야 했답니다.”

우리 아내님들은 뭘 두고 내기를 한 것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어, 음. 그래. 그래서 다른 애들은?”

“저랑 티르시 언니 빼고는 유적 탐사에 나가셨어요.”

─쪼르륵. 라리루라는 물을 따라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얘기를 들어보자, 다나는 바로 다음날 일어나서 하루 정도 몸을 추스리고 바로 조사에 나갔다고 한다.

만능 도적 프랑과 여전히 신분증이 없어서 곤란한 일이 더 많은 베로니카는 거기에 따라갔고, 장인어른과 마을 사람들 몇 명이 호위로 붙었다는 얘기였다.

“오늘이 조사 이틀째 되는 날이에요. 안에 몬스터는 없고, 오늘내일 중으로 한 번 돌아온다고 하셨어요.”

“글쿤.”

그 눈나도 일어난지 얼마 안 됐을 텐데 거침이 없구만.

“그러면~ 저는 티르시 언니를 불러올게요~?”

라리루라는 내 가슴을 묶은 붕대를 꼭 조여주고 말했다.

“솔직히 선배랑 한참 더 같이 놀고 떠들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지만, 아파하는 선배를 붙들고 생떼를 부리진 못하는 어른스러운 저였답니다. 어떠세요? 의젓하죠? 사랑스럽죠?”

“그 부연 설명은 굳이 필요 없는디요.”

“네에? 뭔가요~ 매정하시긴.”

내가 딱 잘라 말하자 라리루라는 삐진 듯 내 어깨를 자꾸 찔러댔다.

“이래면 5일 동안의 피로 피를 씻는 가위바위보 쟁탈전에서 연승한 보람이 없잖아요? 저 이러다 울 것만 같아요. 아뇨, 울 거에요. 10초 드릴 테니까 귀여운 후배의 눈물을 닦으면서 칠 멘트를 생각해 주세요.”

“아니 5연승이었음? 운빨 미쳐버렸고.”

그쯤 되면 실력 아닐까? 나는 감탄하며 라리루라의 귓볼을 살짝 집었다.

“기절한 멍청이를 5일이나 간호해 줬는데 귀엽게 안 보일 리가 있겠어? 나처럼 못난 남자한테는 과분하다니까.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늘 그렇지만.”

“……따로 선배가 못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라리루라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실실 웃었다.

“그거 고마운 말씀. 그래도 내가 훨씬 더 잘나져야지 너도 마음 고생을 덜할 거 아냐.”

지금까지 온갖 개고생을 해 왔지만, 오늘처럼 크게 다친 건 처음이다.

해 온 일에 비해 상처는 적은 만큼 내 딴에는 나름 선방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가 앞에 ‘나름’이나 ‘비교적’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는 건 아직 완벽한 남편으로서는 모자라다는 뜻이다.

한 명 사귀기에도 과분할 만큼 사람 좋고 뛰어난 아내들을 이렇게나 많이 독점한 욕심쟁이는, 그만큼 노력을 하든 뭐를 하든 해서 자신의 잘남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네~. 바보 같은 소리시네요. 여심을 모르는 발언, 아쉽게 감점 1점이에요.”

─꾹.

그런데 라리루라는 내가 생각하는 것 쯤 뻔하다는 것처럼 내 손을 꼬집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젠장, 오답이었나. 뭐가 틀렸어?”

“선배 혼자 하늘만큼 잘나지셔서 전부 해결하려고 드셔도 걱정되는 건 똑같거든요? 지금도 잘 하다가 잠깐 삐끗해서 이 꼴이 됐는데 저희가 잘도 다녀오세요~ 하고 보내드리겠네요.”

그건 그렇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곤란하네. 네가 홀딱 반한 남자는 혼자 고생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데.”

“아핫♡! 그 점이라면 걱정 마세요!”

능청맞게 말하며 운을 띄워주자, 라리루라는 일류 선수의 서브를 받은 듯 가슴을 폈다.

“선배의 최고로 챠밍한 아내, 프리실라가 그 짐을 덜어드릴 수도 있답니다? 게다가 지금이라면 이 모든 서비스를 무려 키스 1번 가격에 받아보실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오? 대출혈 특가네. 놓치면 아깝겠어.”

“잘 아시네요! 그러니 이 찬스를 놓치기 전에 서두르시는 게 어떨까~ 하고 타당한 어드바이스를 드리는 바에요♡!”

라리루라는 어서 해달라는 듯이 뺨을 내밀었다. 나는 피식 웃고 가볍게 키스를 해 줬다. 쪽 하는 소리에 어쩐지 나까지 낯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휙!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자, 라리루라는 뺨을 붙잡고 빨간 얼굴로 물러났다.

“그렇게 붙잡고 있어봤자 키스의 흔적이 남는 건 아닌데?”

“냅두세요~. 영수증이 나올 때까지는 잡고 있을 거에요~.”

라리루라는 깡총 뛰며 방을 나갔다.

나는 누가 지켜보고 있었거나 머리가 식으면 나도 쟤도 꽤 수치심에 몸부림을 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응?”

그렇게 내가 부끄러움과 기분 좋음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이던 중이었다.

뭔가 위화감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내 몸에 어딘가 기능부전이 일어난 기분이었다.

‘……뭐, 오랫 동안 누워 있어서 그렇겠지.’

어련히 중한 일이면 조만간 알게 되겠지. 나는 대충 신경 끄기로 했다. 생각해 봤자 알 수 없어서였다.

─드르륵.

그렇게 다시 누워서 천장의 무늬를 세고 있자, 10분도 안 되서 다시 방문이 열렸다.

한 바구니 가득하게 뭘 챙겨든 티르시와 그 뒤를 따라들어오는 라리루라.

“일어나셨네요.”

연금술 학파의 실험복─핑크색 간호사복이랑 비슷한 그것─을 입은 티르시는 복잡한 심경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내가 샐쭉 웃자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환자가 아파 죽겠는데 한숨을 쉬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얌전하고 멀쩡한 환자라면 그랬겠죠. 애초에 저는 수녀가 아니니까 조금 퉁명스러워도 천벌은 안 내릴 걸요?”

티르시는 고개를 저으며 다가와서는 내 배를 눌렀다. 악!!

“놀린 것에 대한 보복 치고는 드럽게 아픈데요. 혹시 억하심정이라도 있으신 건 아니죠?”

“별로 세게 누르지도 않았어요. 생각보다 엄살이 많은 편이시네요.”

“폼 잡다 죽을 뻔 했으니까 앞으로는 엄살도 좀 부려보려 했죠.”

“후훗. 애초에 엄살 부릴 일이 없는 게 제일 아니에요?”

내가 입만 살아서 나불대자 티르시도 그제야 픽 웃었다.

“엄청 오랫 동안 방치된 유적에서 내장이 빠져나올 정도의 상처를 입고 뒹구셨잖아요? 그야 아플 만 하죠.”

“선배 치료해 주러 오셨던 수녀님이 얼굴이 새파래지셨던 거 아세요~? 말도 없이 돌아가셨다니까요?”

티르시에 이어서 라리루라도 한 마디 했다. 미인들이 같이 재잘대니까 시끄러워도 듣기 좋긴 하군. 내가 웃음을 흘리자 티르시는 눈썹을 역 八자로 만들었다.

“그 더러운 먼지를 흠뻑 뒤집어썼으니 원. 염증에 고열에 정말 말도 아니었어요. 살아난 게 기적이라구요?”

“제가 좀 미라클한 남자긴 하죠. 저랑 친하게 지내실 거면 적응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러죠 뭐. 다음엔 반 죽음이 되서 찾아오셔도 약이나 좀 타 주고 쫓아내 드릴게요.”

“아니 이 마법사님이 중간이 없으시네.”

악덕 간호사 같으니. 내가 넌더리를 내자 티르시는 농담이었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서 가져온 바구니를 근처에 올려두고 이것저것 타서 뭔가를 뚝딱 제조했다.

“그건 또 뭔가요? 포션?”

“굳이 말하자면 탕약이죠. 포션 종류는 지친 몸에는 되려 독이라구요.”

─달그락. 팅!

티르시가 완성한 탕약에 수저를 털고 내려놨다. 흰 도자기 그릇에 찐한 배즙 비슷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맛은 끔찍하게 없겠지만 꾹 참고 마시세요. 사탕도 가져왔으니까 정 힘들면 다 먹고 입 달래는데 쓰시구요.”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러지? 나는 벌써부터 겁이 나서 저 한약 냄새 나는 액체에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킁킁…… 으엑.”

나처럼 궁금해 하던 라리루라는 나 대신 탕약의 냄새를 맡았다가 질색팔색을 했다.

“냄새만 맡아도 완전 끝장이네요! 저는 이거 먹을 바에야 그냥 죽고 말래요.”

“약초 뿌리를 달인 탕이라서 그래요. 애초에 자양강장제에 맛을 바라면 못 쓰죠.”

“티르시 씨. 그런 편견은 약학의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자기합리화가 아닐까요?”

“합리적인 사람은 보통 반죽음이 될 때까지 싸우지 않죠?”

“저어는 보통 남자가 아니라서.”

“팔이 잘렸다가 다시 붙는 게 보통 체험은 아니긴 해요.”

“테에엥.”

이세계인들 말빨에 또 좆발렸네. 되도 않는 소리를 주워섬기던 나는 라리루라가 얼른 마셔서 치워버리라는 듯 내민 잔을 떨떠름하게 받았다.

음~ 스멜. 냄새부터 벌써 하드코어 칡즙 수준이네.

유서라도 미리 써 두는 게 맞지 않을까.

“죄인 노르드는 사약을 들라.”

─후룹.

“……………….”

나는 한 입 먹고 내려놨다.

요시, 나는 지금부터 안아키다. 백신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어지는군.

“입만 댔는데 뒤질 것 같은 걸 보니까 사약 맞나 보네요. 이제 약빨만 돌면 골로 갈 텐데 더 안 마셔도 되죠?”

“안 죽으니까 엄살 말고 드세요.”

거짓말 마. 당신 사실 영국인이지.

아니지 쓰벌. 영국인들은 적어도 차에는 진심이다. 이 약은 영국인에게 비유하는 것조차 실례다. 양산해서 뿌리고 다니면 1달 안에 국제법 조례로 금지될 거라는 데에 내 오른팔을 걸 수 있다.

“아핫♡ 여기 사탕 드세요, 사탕~.”

라리루라는 내가 오만상을 쓰는 게 재밌는지 방실대면서, 종지에서 사탕을 꺼내서 내 입에 넣어줬다.

“자, 얼른요. 아~♡”

“아~이엠 그루트.”

그냥 아무 향도 없는 각설탕이었지만 이상하게 달달했다.

마냥 좋은 웃음을 가득 띄운 라리루라가 먹여줘서 그런가.

존나 호사스러운 병상 생활도 다 있군. 쫌 부끄럽구만.

“티르시. 이거 얼려먹어도 되요?”

“……위에서 녹기만 하면 상관이야 없죠. 약효가 도는 게 약간 늦어지겠지만요. 어쩌시게요?”

약간 꽁해 있던 티르시가 허가를 내리자, 나는 마법으로 내 마나를 얼음 케이스 모양으로 만들었다.

작고 동그란 얼음이 되도록 냉기를 둘렀다.

거기에다가 이 사약강장제를 붓고, 꽁꽁 얼려서 알약 먹듯 물로 삼켰다. 약간 녹아서 뒷맛이 남긴 했지만 이쪽이 낫다. 액체형 약 따윈 21세기 현대인에겐 쌉에바지.

주섬주섬 냉동 탕약을 삼키자 티르시는 신기한 듯 말했다.

“신기한 복용법이네요. 약효에 거부감도 적겠어요. 운반이 힘들어서 상용화하긴 어렵겠지만요.”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약을 가루로 만들어서 상온에서 잘 굳는 식용 지방질 같은 걸로 감싸고, 삼키는 거죠. 그러면 별 맛 없이 위에서 녹아서 약효가 돈다던데요.”

오블라토라고 하던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수의사가 동물들한테 멕이는 약은 딸기잼 같은 거에 타서 먹게 하던가, 그냥 주사로 푹 꽂고 주입하니까.

“그것도 동양의 신비인가요?”

“제가 알기론 서양의 신비입니다. 아무튼 논문으로 쓰시면 어떻습니까? 따라하기 쉬우니 돈 벌긴 어렵겠고, 마법사 길드에서 연금술 학파에 제출하면 승급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정말요? 주신다면 기쁘게 받을게요.”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내가 티르시의 생명의 은인이긴 하지만, 직장생활에 자꾸 훼방을 놓았으니 이 쯤은 선의로 내줘도 되겠지.

내가 이걸로 돈 벌겠다고 써 먹자니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니까.

쬐끄만 얼음을 꿀떡 삼키던 나는 옆의 테이블에 꽁꽁 싸맨 길쭉한 걸 발견하고 물었다.

“저건 뭔가요? 점심용으로 사다놓은 바게트?”

“당신 팔인데요.”

“뭐야 시발 돌려줘요.”

“줘 봤자 붙히지도 못할 거면서.”

짧고 저렴한 팩트가 아프다. 천원 짜리 오백원 짜리… 존나 아파….

쓴맛의 액기스 같은 사약을 쳐 마셔서 그런가. 내 세치 혓바닥의 예리함이 죽은 느낌이다.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가? 책사로군, 티르시 아르마슈나스.

─우르르!

그렇게 내가 혀를 내두르며 매지컬 방부제를 친 나의 분리 합체식 오른팔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 1층 방의 밖에 모여드는 인기척을 느끼고 인상을 썼다.

“……뭐죠?”

저번 아르마 슈나스 빙의 사건 이후로 감각이 예민해졌던 걸까. 티르시도 기척을 눈치채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척!

들킨 걸 눈치챈 걸까. 밖에 가득한 성기사 같은 꼬라지의 남녀가 열을 갖춰서 정렬했다. 뭔데 시발.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 노르드는 들으라!”

방패병들의 호위를 받는 고위 사제는 어딘지 구속영장 삘이 나는 두루마리를 펼쳐 읽으며 말했다.

“금일로부터 3일 전! 그대를 치료한 포모나 교단의 수녀로부터 그대의 몸에서 어둠과 음의 마나가 다분히 검출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우리 천공신 교단의 카일루스 기사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드러내고 자시고 님들이 쳐 기어와서 창문에서 들여다보고 계시잖아요.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눈쌀을 찌푸렸다가── 조금 늦게 눈치를 깠다.

‘이 상처인가?’

뒤져가던 나를 억지로 살려낸 가슴의 납땜.

이건 분명 그 원념 가득한 훌두폴크의 옛 유적에 그득하던 어둠과 음의 마나가 작용한 것이었다.

이 상처를 치료하던 수녀가 그걸 느꼈다면?

라리루라 말한 ‘치료하던 중에 안색이 파래졌다’는 얘기도 그런 뜻이었겠지.

“아, 아우둠라 길드의 모험가! 노르드는 들으라!”

내가 상황을 파악해기 바빠서 말이 없자, 그 사제는 엄청 긴장한 투로 다시 한 번 복창하고서 말을 덧붙였다.

“그대에게 흑마법사 혐의가 걸려 있다! 차, 참고로 혐의를 갤 방법도 있다! 움직이기 힘들면 사람을 보내도 좋고!”

어째 대표로 말씀하시는 것 치고는 되게 궁상 맞으시네.

나는 눈을 끔뻑거리며 왜들 저렇게 바짝 긴장해 있는 건지 궁금해져서 눈을 굴리다가, 눈치를 챘다.

‘아, 맞다.’

나, 이제는 진짜로 오러전대 육편 메이커였지.

그럼 저건 미스릴 클래스 레이드 파티인가.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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