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74화 (474/1,009)

***

─꿀꺽.

성기사 감무스는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바로 옆에 선 동료들도 비슷하게 할버드를 꽉 쥐고 있었다.

그도 저들도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열 중에 잡담을 나눌 만큼 군기가 엉망이지는 않았지만, 감무스의 머릿속에서는 몇 시간 전의 대화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흑마법사라고?

─쉿!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단 얘기야, 그럴 수도!

소문을 좋아하는 동료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렇게 말했다.

성기사라는 직책이 이름처럼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남들보다 2배는 성기사답지 않은 여성이었다.

함께 대기 중이었던 감무스나 다른 동료들보다 몇 시간은 일찍 소문을 캐치해 왔으니만큼, 누구라도 그녀의 친화력과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번 몬스터 침공에서 활약했다는 사람들 중에서 노르드라는 모험가가 있대. 그건 들었지?

당연히 아는 얘기였다.

우라누스 신을 섬기는 천공신 교단은 종교단체이긴 하지만, 국가의 틀이나 돈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부끄럽게도 교단 내에서 암투(暗鬪)가 일어난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천공신 교단에서도 온갖 일을 덮어두고 가장 우선시하는 점이 있었다.

그게 바로 흑마법사의 척결이었다.

─근데 포모나 교단에서 나오신 수녀님이 그 놈이 기절한 동안 치료를 하다가, 흑마법사가 아니냔 의혹이 생겼대!

그래서 동료가 그렇게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소식을 들은 성기사단의 동료들은 태평하게 말을 나눴더랬다.

─호. 그건 큰 문제로군. 몬스터 침공을 저지하러 왔다가 흑마법사와 싸우게 생긴 건가?

─북부에서 흑마법사 소동이 일어난 건 10년만이군. 그때 숨어살던 흑마법사는 실력도 심각하게 모자랐었지.

물론 그들이 흑마법사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기후를 유지하거나 별을 관측하는 일 등을 생업으로 삼는 건 천공신 교단의 역할이고, 이 일 역시 다른 교단에서는 행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세상이 평화롭기를 바라는 기사들!

그런 그들이 흑마법사의 준동을 방치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말 정의감에 넘치는 게 아니더라도, 입장 상 진짜 흑마법사인지 무고한 모험가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노르드라고 하면, 그 흑마법사 사냥꾼 아냐?

단지 그때, 감무스는 마을에서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마법사인데 별명이 흑마법사 사냥꾼이야? 쿡쿡, 모순적이네.

─모험가들 중에서도 제 몸값을 올려보겠다고 그렇게 자칭하는 놈들이 어디 한둘인감? 감무스 자네도 10년 전에 흑마법사를 쓰러트렸으니 흑마법사 사냥꾼이겠군. 하하하하!

처음에는 그렇게 웃음을 터트린 동료들이었지만, 연이어서 설명하는 감무스의 얘기를 듣고는 점점 얼굴이 굳어갔다.

─……이건 내가 마법사 길드에서 들은 얘기인데.

가로되, 두각을 드러냈을 때부터 서부의 영지 하나를 멸망시킬 만큼 강력한 흑마법사를 쓰러트렸다더라.

가로되,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흑마법사의 생각과 수작을 훤히 꿰뚫어보고 토벌 연합을 은연 중에 지휘했다더라.

가로되, 그 공적의 사실 여부는 명망 있는 이들의 증언과 영주의 세금 면제 등으로 증명됐다더라.

가로되, 얼마 전 로마니아의 대도시가 크게 휘청인 사건에서도 해당 사건을 일으킨 흑마법사를 토벌하는 데 참가했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가로되, 가로되, 가로되……

─……그 얘기가 다 진짜라고?

─너 임마, 허풍 치다 걸리면 죽는다 진짜?!

─나도 들은 얘기라니까!

세상 천지의 소문이란 건 먼 곳에서부터 전해질 수록 왜곡되거나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확실한 사실만 꼽아도 흑마법사와 연이 깊은 인물이라는 건 명백했다.

그리고 만약 로마니아의 흑마법사가 어쩌고 하는 얘기까지 사실이라면, 그의 굵직한 행적과 캐리어는 ‘흑마법사 사냥’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되지 않겠는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커다란 흑마법사 사건에는 모두 얼굴을 비추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지 않으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일도 없다.

소문이 과장된 게 사실이라고 쳐도, 그렇게 부풀려질 만한 배경이 있던 게 아닐까.

─그치만 이상하지 않아? 흑마법사라면 왜 동료끼리 서로 싸우는데?

─흑마법사들이 동료 의식이 있겠는감? 연구 성과를 뺏기 위해서라면 골육상쟁도 불사할 걸세…….

─야,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동료들끼리 갑론을박을 나누던 중, 얘기를 듣던 성기사 한 명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니들 얘기의 절반만 사실이어도, 우리가 이제부터 잡으러 갈지도 모르는 놈이 괴물이라는 건 확실하잖아! 만약 진짜 흑마법사면 싸워야 할 텐데, 너희 그 놈을 잡을 자신은 있어?!

─……………….

없었다.

카일로스 성기사단은 북부에 파견된 천공신 교단 지부의, 별 대단한 업적도 없는 보통 성기사단이었다.

알윈의 상황을 듣고 서둘러 가세하러 올 만큼의 정의심과 힘은 있다.

단지, 그게 ‘방치했더라면 도시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흑마법사나── 그 흑마법사를 사냥한 남자와 싸울 능력이나 각오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조, 조작된 걸 수도 있잖아!! 흑마법사들끼리 짜고 쳐서 사회에 자기 동료가 뿌리 뻗게 도와줬더거나!!

─……짜고 친 게 아니면?

감무스의 한 마디에 조용해진 그들은, 이후 바짝 긴장한 상사의 출동 명령까지 더해지자 불안에 떨게 되었다.

하늘의 기후와 땅의 농사는 표리일체다.

풍요신을 섬기는 포모나 교단과 천공신을 섬기는 우라누스 교단이 깊은 관계를 맺은 것도, 포모나 교단의 요청에 그들이 출병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이는 평화를 바라는 포모나 교단과 우라누스 교단, 두 교단의 총의이다! 그 총의의 대리자인 내 이야기가 들린다면 대, 대답하라! 5분의 준비 시간을 주겠다! 아니, 10분 주마!”

사명감으로 나섰으면서 공포에 떠는 상사의 말에 감무스는 회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왔다.

당황하는 영주의 가신들에게 억지를 부리며 정원을 점거한 게 바로 5~6분 전의 일이다. 대표가 2번의 복창을 했지만 저 방에서 휴식하고 있다는 남자는 아직 반응이 없었다.

‘그럴 만 하지.’

감무스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한숨을 쉴 뻔 했다.

노르드가 막 병상에서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20분만에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자신이었어도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혐의가 사실이건 아니건 말이다.

“10분이라셨죠?”

하지만 창문을 열고 얼굴을 비춘 여성은 빠르게 이해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태양빛에 흐려질 만큼 하얀 머리와 눈썹은 유약한 듯 체모가 가느다랗지만, 보호욕을 일으키는 외모와 달리 언동은 몹시 차분해서 어딘가 품위가 있는 듯도 했다.

감무스를 포함한 성기사들은 그녀를 환자를 보러 온 약사 정도로 여겼지만, 태도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의견을 묻듯 뒤를 돌아본 그녀가 말했다.

“노르드도 금방 준비할 수 있다고 하네요. 금방 다시 뵙죠. 지금처럼 창문 너머로 대화하는 건 예의가 아닌걸요.”

드르륵─ 탁!!

은근히 그들의 무례함을 쏘아붙인 여인은 자기소개도 없이 창문을 닫아버렸다.

날이 선 목소리나 눈빛을 보면 화가 난 상태다. 혹시 노르드의 여인일까.

무고한 이들의 밀회를 방해했다면 조금 미안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시계로 재기라도 한 듯 정확히 10분 뒤에, 노르드는 그들 앞에 나섰다.

가슴과 팔에 붕대를 감고 웃옷을 건성으로 걸친 모습이다. 갑옷 밑에 옷을 잔뜩 껴입고도 추위를 타는 감무스와는 그야말로 다른 계절에 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별달리 위압감이 있는 남자는 아니다. 부축하려는 듯 앵기는 연하의 소녀에게 가볍게 딱밤을 놓는 모습은 친근하기까지 했다.

오른팔이 없는 것도 있어서 은퇴한 모험가나 학자라고 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물론, 옆에 선 여인들의 눈빛만 봐도 여성 편력이 깨끗한 편이라고는 할 수 없을 듯 했지만 말이다. 우라누스 교단의 성기사는 혼인이 허가되지 않기에 감무스는 눈에서 질투심을 지우느라 고생했다.

“그렇다. 자네를 치료하려고 몇 번 들렀던 이들이 자네의 몸에서 흑마법의 마나가 검출됐다는 증언을 받았지.”

아무튼 그의 정갈한 모습에 안심한 걸까. 감무스의 상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만약 노르드가 정말로 흑마법사라면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 것이니 더 경계해야 하겠지만, 성기사들은 월권해가며 자기 의견을 말하진 않았다. 그들의 상사도 뒤늦게 그걸 눈치챈 듯 했기 때문이다.

“몸의 상처란 건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톡톡. 노르드가 손가락으로 가슴을 쳤다.

얼마 전에 팔을 잃었다는 벌였다는 것 치고는 경쾌한 움직임이었다.

“그렇다고 보고를 받았다. 연유가 있다면 들려주겠나.”

“트롤 킹…… 의 부하였던 주술사의 마법에 당했습니다. 옛 주술에는 흑마법과 비슷한 성질의 마법이 많지 않습니까? 그 공격에 당해서 몸에 더러운 마나가 스며들었는가 보군요.”

“으음.”

이치에 맞고 매끄러운 대답이었다.

주술을 다루는 트롤이란 건 믿기 힘들었지만, 알윈에 오고 온갖 증거와 증인을 봐 온 그들이다. 의심은 접어두었다.

“무슨 방법인가를 준비해 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떠한 방법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무, 물론이다.”

약간의 의심을 담아서 묻는 말에 감무스의 상사가 손짓을 했다.

노르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성기사단을 조용히 쳐다봤다.

저 평온한 얼굴 밑에 흑마법사를 쫓아가서 살해할 동기가 있는 걸까.

나르메르-나일이나 로마니아라면 모를까, 브리타니아 사람이라면 평생 살면서 한두 번 마주치기도 힘든 게 흑마법사다.

고향이 아닌 곳에서 흑마법사들과 거친 싸움을 이어나가는 그의 행적이 완전한 우연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마 그 점도 ‘흑마법사 사냥꾼’이라는 소문이 도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 협력자가 이곳까지 온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자네, 로마니아 어는 할 수 있나? 아니면 통역을 불러도 좋고.〉

얼굴을 비춘 검은 피부의 남자는 말했다.

몸에는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굵은 건틀렛을 낀 나르메르-나일 인이었다. 노르드는 눈을 반개하며 그가 가슴에 내걸듯 보여주는 수렵신의 성표를 보고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어떤 분이신지요?〉

〈내 이름은 오프툼. 수렵신을 섬기는 몸일세.〉

‘흑마법사 사냥꾼’으로 유명한 중년의 나르메르-나일 인은 아주 작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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