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80화 (480/1,009)

밤이 되자 아내들은 유적 조사에서 돌아왔다.

“이 새끼 인제야 일어났네. 붕대는 워쩐겨.”

“누나 꼴리라고 벗음.”

“내가 너처럼 웃통만 까도 하악거리는 또라이인 줄 아냐?”

“이해함. 앞으로는 누나한테만 유교 탈레반 강 양반이다.”

“사실 또라이 맞음.”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완전 제 컨디션을 되찾은 다나였다.

참고로 같이 온 장모님 부부는 다른 손님방으로 가셨댄다.

딸년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이 스윗함…. 도저히 야만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배려심이시다. 픽트 인을 야만스럽다고 하는 놈은 뚝배기를 깨부숴도 무죄다. 땅땅.

그렇게 아내들 기준으로는 오랜만에─한 10일 쯤 됐나?─, 우리 노르드 가족의 단란한 저녁 식사다.

“헤으응…♡”

단, 기절한 라리루라는 제외한다.

깨웠더니 자긴 배 안 고프니까 우리끼리 먹으라는 소리만 들었다. 유감.

물론 손님방에서 펜스하우스 온 듯 쳐먹어댈 수는 없기에, 라리루라가 쉴 수 있도록 그냥 외식을 나왔다.

티르시는 방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몰라서 혼자만의 시간을 줬다. 다음에 만났을 때 평범하게 대화할 준비나 하고 있자.

“잘 먹겠습니다.”

조금 유명해진 것도 있고 해서 방을 따로 잡는 형식의 식당으로 갔다. 내가 개꿀잠을 퍼질러자는 동안 시내의 문제들도 대략 수습됐는지 가게는 정상영업 중이더라.

“피해범위는 시내까지 안 갔으니까.”

“입구 근처의 가게들이 조금 휘말린 정도래.”

프랑과 다나의 현장감 있는 사족이었다. 설명 감사.

“글쿠만요. 팔 빠지게 보람이 있군.”

“웃지 못할 농담이로군.”

“새로 자랄 건데 뭐 어떰.”

오히려 샹크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다.

사황과 같은 외팔이 상태라니. 고수의 기술을 카피할 찬스로군.

참고로 사족이 나온 김에 말하는 건데, 영주는 우릴 저녁 식사에 초대했지만 내가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다. 실제로 외팔이 모드라서 밥 쳐먹기 힘들기도 하고.

그야 여기가 다나의 친가와 가깝다는 걸 생각하면 인맥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은 일은 맞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휘청거리는 사람을 도울 땐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한다.

무슨 각오냐고?

독이 든 성배를 원샷때리는 흑기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단 얘기다.

‘재기하는 걸 도우면 은인. 혹은 토사구팽.’

영주의 유약한 성격은 보았지만 인품까지는 알 수 없다. 입 싹 닦고 끝날지도 모른다.

‘반면에 돕지 않으면? 그냥 적당한 비지니스 관계로 남지.’

지금은 잠깐 거리를 두는 게 최적이다.

경비대에 타격이 커진 영주가 픽트-윙글링 인들의 전력을 무시할 수도 없겠지.

이건 뭐 그냥 냅둬도 손해볼 게 없는 장사군. 크흐흐헤헤헤.

‘정치가 끼어드는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지.’

그야말로 중도의 길을 걷는 것이다.

어설프게 할 바에야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게 제일. 주식과 같군. 위험부담이 모가지 뎅겅까지 간다는 점이 다르지만.

사실은 정치는 코인판인 게 아닐까? 알윈코인 풀매수하다 알윈강 수온 체크하는 사람도 나올 것.

─철퍽.

“어 쓰벌.”

멍청한 생각을 하다가 그만 스푼에서 요리를 떨어트렸다.

지금의 자신이 빨간 머리 강크스인 걸 잊고 듬뿍 푸려다가 그만 실수했던 것이다. 그 놈은 어떻게 한 손으로 먹고 살지? 사황이라면 옆에 시중을 들어줄 미녀 한둘 정도는 있는 건가.

“칠칠맞기는. 줘 보거라.”

그리고 내 옆에도 그런 미녀가 있었다.

베로니카는 자기 수저도 내려놓고 내 음식을 대신 떠줬다. 방을 따로 잡아서 다행이군. 마초가 아내에게 응애처럼 밥을 받아먹는 꼴을 보일 수야 없지.

‘저희 집에도 황금 전설 미녀 4명 정도 있을 걸요.’

─냠. 손으로 받치며 수저를 떠먹여주는 베로니카. 마초에 좋은 고기다. 한 입에 받아먹고 꿀떡 삼켰다.

“그러다 체하겠군. 병상에서 일어났는데 천천히 좀 먹도록.”

“포션 약빨 오지게 받아서 괜찮은데.”

“하나도 좋은 일이 아니잖느냐. 멍청한 것.”

하긴 면역력이 뒤져버릴지도 모르지. 판타지 주제에 포션 하나는 묘하게 현실적이다.

그렇게 식사를 받아먹으며 5일 간의 정보를 교류했다.

“너는 자느라 몰랐겠지만, 그 유적은 탐사가 꽤 진행됐어. 아, 여기서 말하는 탐사는 함정을 치우고 돈 될 만한 것들을 챙겨왔다는 얘기고. 이해 되지?”

“저희는 그걸 도굴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물론 식인종들의 황금을 노략하는 건 정의로운 도굴이다.

천사소녀 다나인가. 분명 하느님도 허락해 주시겠지.

하느님이란 단어의 어원은 하늘+님이므로, 사실 이건 천공신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천공신 쥬니어인 내가 그녀들의 도굴을 전면적으로 허락했다. 인맥의 중요성이 여기서 또 나오는군.

“그건 그렇고, 내 신경 쓰지 말고 거기 텐트 치지 그랬어. 왔다갔다 하기도 좀 멀 텐데.”

“안 그래도 귀찮아서 말 빌렸다. 영주한테 눈치 주니까 턱 하니 내 주더라. 벤자민이었나? 그 새끼가 튀겠다고 마부를 4명이나 죽여놔서 관리가 어려웠대.”

“그래? 빡대갈통의 개지랄이 돌고 돌아서 도움이 됐군.”

베로니카를 흉내내는 다나가 채소를 한 웅큼 먹여대는 걸 받아먹으면서 대답하는 나.

채소 샐러드인데 시발 드레싱도 없네. 영국음식 구아악 구와아악.

‘사실 벤자민 그 새끼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돕는 조력자가 아니었을까?’

그 병신 빡대가리는 사실 무다구치 렌야 급의 독립투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호르샤아 알윈 영주 입장에서는 원균이겠지.

이제 와서는 알 도리도 없는 진실 혹은 거짓이다.

아까운 의인을 잃었군. 서프라이즈에 제보했으면 1화 분량 뚝딱인데.

“……크흠. 그리고 있잖아.”

나는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때 쯤 되서, 눈치를 살피다가 티르시와의 일건을 보고했다.

100% 날것 그대로 보고하려다가, 엄마한테 교회 갔다고 뻥 치고 스타크래프트 하다 온 애새끼 강북호 때처럼 그만 센시티브한 부분을 조금 편집하고 말았다.

그래도 진찰 받다가 쥬지를 깠다거나 하는 설명은 했는데, 울 아내들─라리루라 제외─께서는 잠깐 눈빛을 교환하다가 오히려 생각보다 빨랐다는 듯 픽 웃었다.

“생판 남도 아닌데 새삼?”

“하나하나 보고할 것 없다. 진도가 지진부진한 게 마치 내 얘기 같아서 공감이야 간다만…….”

이제 와서 ‘넷이나 다섯이나’ 하는 느낌이었다.

단지 조금 불만스러운 기척도 캐치할 수 있었는데, 그건 내 쥬지의 무분별함을 탓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못 받고 있다는 점에 불만이 생긴 것에 가까웠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아내들이 자기 차례는 대체 언제인가 하고 목을 갸우뚱하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아내들 사이에서 절대존엄에 가까웠던 우리 프랑에 뒤이어 다나까지 반지와 프로포즈를 받은 상황!

거기다 다나 자신도 ‘결혼식은 언제야?’ 하고 묻는 느낌이 들어서 모골이 송연하다.

‘……어렵군.’

느긋하게 굴면 뾰로통해질 것이며, 조급하게 해치우면 내 차례에서는 대충대충이네─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한 노력 역시 하렘충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게 꼴마초의 의무!

‘그럴 능력이 없었으면 애초에 좆침반을 따르면 안 됐지.’

오고곡 거리면서 ‘쟈지에는 이길 슈 없어여’ 하는 건 딱히 아내들만이 아니다. 나도 내 자지에 휘둘리는 몸이니까.

우리 아내님들은 내 머리 꼭대기에 있지만, 그런 아내들의 머리 위에는 내 쥬지가 턱 하니 얹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내 쥬지 > 아내들 > 나]의 순서다.

쥬지드라 한 마리가 우리 가정의 최정상에 군림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 정체가 Z-용사라는 걸 알았을 때보다 경악스럽군.

“아, 그리고 니가 오러 배웠다는 건 내가 다 말했어.”

“아니 시발.”

그걸 왜 누나가 말하는데. 오랜만에 자랑하면서 으스댈 게 좀 생겼나 했더니.

“애들 울길래 니가 떠들던 말 그대로 전해줬는데 왜.”

“……레후.”

씁, 그랬구나. 그건 잘 했네.

그리고 나는 나 때문에 아내들이 울었다는 말에, 아까 전부터 쭉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문제를 직면할 필요를 느꼈다.

“……프랑. 무슨 일 있어?”

평소엔 식사 자리에서 한두 마디 씩은 하던 프랑이, 오늘 따라 이상하리만치 아무 말도 없었다.

표정이 안 좋은 것도 아닌 게 더 심장이 쫄렸다.

프랑은 화를 낼 때는 대놓고 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은 혹시 남편 새끼에 대한 실망감이나 슬픔 때문에 되려 화를 내기도 지쳐버린 상황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다.

인터넷으로 야매 결혼심리학을 배운 내 엘리트 대갈통에 따르면, 부부 간의 실망은 이혼의 시발점이 된다지 않은가! 내 긴장감이 호르샤의 메가 진화를 앞뒀을 때보다 치솟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응? 아니, 아무 것도 아냐.”

프랑은 내가 말을 걸자 정신이 든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주륵.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 것도 아니라니?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면 평소랑 별 다를 게 없어야 하지 않은가!

어딜 어떻게 뜯어봐도 평소랑 분위기가 다른데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일축한다?

그건 무슨 일이 있었지만 그 일에 대해 나한테 설명하기가 싫다는 뜻 아닌가!!

‘쓰벌…!! 내가 또 뭔가 잘못했나…?!’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대갈통을 쥐어짰다.

팔이 잘린 것 때문에? 아니, 그거라면 혼나고 끝날 정도의 일이다.

그럼 뭐지? 몸 좀 험하게 굴리지 말라고 입이 부르트도록 말했는데 내가 들은 척도 않은 것처럼 굴어서? 아니면 그런 잘못을 저질러두고 프랑한테 사과를 안 해서?

“헤헤. 정말 별 거 아니라니까.”

내 번뇌를 눈치챈 듯 프랑이 배시시 웃었다.

“나도 이번에 어쩌다가 룬 마법을 깨달아서 그래. 어떻게 하면 될지 베로니카랑도 상담해 보고 잠깐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이었어. 놀래켰으면 미안해, 노르.”

“룬을?! 프랑이?!”

나는 입을 벌리면서 베로니카를 돌아봤다.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터렛 뺨치는 고속 회전이다.

“흠? 그래, 내가 확인했다. 틀림없이 ᚨ(Ansuz)의 룬이더군.”

숟가락에 고기를 올리던 베로니카는 내가 말을 안 했나? 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모로 꼬았다.

“아직은 구신의 마나도 거의 쌓이지 않을 만큼 미약한 깨달음이고, 인류 전체에 내린 룬 문자의 저주 탓에 진정한 힘을 끌어낼 수는 없는 처지이긴 하다만……”

“그게 어디야! 아니, 아니지! 그거면 충분해!!”

나는 TPO도 잊고 일어나서 환하게 웃었다.

“프랑,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얻었어?!”

“어, 으, 응? 그냥, 노르랑 다나가 잠든 걸 보고 있다가…….”

프랑의 손을 잡으면서 묻자 그녀는 더듬거리며 룬을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사랑스러운 아내의 성장담을 경청했다.

ᚨ(Ansuz)의 룬은 응용의 폭이 넓은 마법이다. 프랑이 쓰는 골렘 마법과 상성이 좋기도 하고 말이다.

‘애시르 신들의 저주가 내린 뒤에도 전문학과가 생길 만큼 현대의 마법에 영향을 주는 기술이기도 하고.’

이세계에 왜 룬 어나 엘룬 어 전공이 있겠는가.

내가 처음 내 스펙을 설명할 때 말했다시피, 룬 어와 엘룬 어는 마법과 밀적한 관계가 있는 언어다. 매지컬 프로그래밍 언어인 것이다.

있는 마법만 배운다면 몰라도,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거나 습득할 때는 기본적으로 이걸 배운다.

오딘의 눈이라는 반칙 프로그램으로 대충 스파게티 코드를 짜는 나랑은 다르다. 정석적인 만큼 건실한 성장 테크다.

‘룬 어의 단련은 마법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인문학을 많이 읽으면 수능 국어에서도 지문 해석 능력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흥분한 게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프랑은 기운이 없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 오러를 얻은 노르랑 비교하면 초라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아무 기반도 없이 룬 마법을 깨우쳤는데!”

나는 자책하는 듯한 프랑의 어깨를 붙들며 열변을 토했다. 우리 프랑의 동그란 눈이 한층 둥글둥글해졌다.

“룬은 모든 마법의 근간이 되는 문자야. 아무리 옆에서 보거나 들은 게 있다지만, 아무 준비나 연습도 없이 룬 문자를 깨달았다는 건 네 재능이 눈을 뜨고 있다는 뜻이라니까?”

“그, 그런 거야?”

“그런 거야. 0.1 오딘인 남편놈이 인정합니다.”

얼떨떨해 하는 프랑에게 단언했다. 뛰어난 교사는 재능을 깨우쳐가는 학생에게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룬 문자의 자체적인 습득!

말하자면 교육을 받지 않고 곱셈과 나눗셈을 깨달은 것과 같은 일이다.

단편적으로 수준만 보고 얘기하면, 프랑의 말마따나 얼핏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우리 프랑의 마법 재능이 개화했다는 뜻이다.

‘어떤 금메달리스트에게도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시기는 있지.’

늦나 빠르나의 차이일 뿐이다.

어린아이가 시험 삼아 해 본 간단한 동작에서 메달리스트의 자질을 깨우치듯, 프랑은 지금 자신의 적성과 성장 방향을 정해가는 시기인 것이었다.

오러의 습득도 분명 좆빠지게 굴러서 명문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마법의 기초가 되는 룬 어를 습득했다는 건, 프랑이 자기 진로를 고민하는 시기에 있다는 의미!

옳게 된 꼴마초는 장래희망을 고민 중인 가족을 방치하지 않는다.

자기 분야에서 대성한 것과 자기 분야를 고르는 것.

둘 다 쉽게 경중을 가를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일이니까.

“이럴 때가 아니었네. 우리 프랑한테 중요한 시기잖아.”

─쓰읍.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눈을 찌푸렸다.

태아에게 태교가 중요한 것처럼, 자질을 깨우쳐가는 중인 프랑에게도 지금은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려면 프랑의 속성 계열부터 알아봐야 하는데.’

속성 계열의 자질을 점검하는 방법은 이세계에도 있다.

단지, 수요와 공급의 이론 때문인지 이세계에서 실생활과 별로 접점이 없는 마법 용품은 더럽게 비쌌다. 속성 계열을 확인하는 물품은 일회용인데다 구하기도 어려웠다.

‘어디 그것 뿐이야? 속성 별로 확인하는 방법도 다 다르지.’

불 계열의 마법의 자질을 확인하려면 불의 마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시약으로 만든 아이템에 마나 변환 기능까지 붙여 놔야 한댄다.

그리고 그 지랄은 하면 가격이 어떻게 된다? 미쳐날뛴다, 이 말씀.

게다가 그 많은 속성 중에서 자기 재능을 찾으려면 당연히 돈도 무지막지하게 깨진다.

내가 지금까지 엄두도 못 내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알 게 뭐야. 씨발거 다 사오지 뭐.’

돈 쓸 곳도 없는데 잘 됐네.

나는 2초만에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베로니카. 내가 싸우다가 석판을 부숴먹어서 그런데, 거기 넣어뒀던 물건 하나만 꺼내줄 수 있어?”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군. 사르가디스에 갈 생각이냐?”

“응. 가서 다나네 연구원들도 부르고, 이것저것 챙겨올까 해.”

“푸흐흐. 짜식. 말 안 해도 척척이네.”

─살랑, 살랑.

다나는 왼손이 허전하다는 듯 흔들며 말했다. 알어, 안다고. 네 반지 가져와서 끼워줄 테니까 기댕겨.

“……쿡쿡.”

그렇게 내가 일사분란하게 일정을 짜고 있자, 프랑은 그런 내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래?”

“……아니, 노르도 참 변함이 없구나 싶어서.”

왜 그러냐는 눈으로 쳐다봤더니, 우리 아내님은 웃다가 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칭찬 못 받는 걸로 그렇게 시무룩해져 있더니, 이제는 또 내 생각이 먼저인걸. 이걸 어떻게 안 웃어?”

“흐흐. 멋진 남편이라 행복하지?”

“응. 행복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쳐진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어버리자, 프랑은 그게 또 웃기다는 듯 미소지었다.

“이러니까, 내가 반할 수밖에 없지.”

낯뜨거워진 나는 얼굴을 감싸면서 자리에 앉았다.

─푹. 능글맞게 웃는 베로니카가 입에 고기를 한 가득 밀어넣어주었다. 나는 부루퉁한 낯짝을 하고 턱을 우물거렸다.

이 집 요리 왤케 달어, 시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