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라는 건 어필할 수록 없어 보이는 법이다.
삼국지의 간손미가 백날 자기 직책과 능력을 나열해도 그 다음에 백우선을 든 수염쟁이가 나와서 “난 제갈량이오”하면 그들의 미사여구가 싹 다 묻혀버리는 것과 같다.
간손미도 객관적으로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고는 하는데, 이미 위엄이라곤 없어진 상태에서 입만 나불대봤자 효과는 미비하다. 진짜 잘난 사람은 자뻑할 필요가 없거든.
그런 의미에서 이 조지 씨가 자기 이름만 대뜸 말한다는 건, ‘니 나 몰라? 알지?’ 하는 싸나이식 가오잡기에 가깝다.
문제는 ‘니가 누군데 씹덕아’ 하기에는 이 인간 네임밸류가 시발 조금 많이 높다는 것이고 말이다.
“아, 이거 제가 초면인데 친근하게 굴어서 곤란하셨겠군요.”
브리타니아 왕가의 장남은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나는 겸손 떨듯 웃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일개 서민이 언제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겸손 마시죠. 당신만한 전사께서 자신을 일개 서민이라고 칭하면 국방을 맡는 기사들이 몸둘 바를 모를 겁니다.”
“출중한 야인보다는 충성스러운 기사가 더 고결한 법 아니겠습니까. 국왕 폐하의 은덕이 국토 곳곳에 뻗으니, 국민들이 편히 밤잠을 이룰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일 것입니다.”
미소 짓는 얼음 조각상이 돼 버린 티르시를 대신해서 침착하게 오두방정을 떨어대는 나.
우리 마법사님 바짝 굳은 것 봐. 예전에 디아볼로에게 잡혀 있을 때가 이랬을까 싶군.
‘왕의 장남. 장남이라. 긴장하지 말자, 노르드야.’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단정한 품행을 의식했다. 일단 허리만 꼿꼿이 펴면 중간은 가겠지.
‘잠깐. 왕자 씩이나 되는 사람이 혼자 왔나?’
그럴 리가 없지. 문 바깥의 어딘가에 은근한 기척이 있다.
오러를 깨닫기 전이었다면 착각한 거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만큼 뛰어난 은신술이었다.
‘과연. 작은 나라라도 왕자에게 미스릴 클래스 1명 정도는 붙여줄 수 있다는 건가.’
노르드 환율법에 따르면 마스터 클래스는 대략 항공모함 쯤 되는 전력이다.
그러니 마스터 클래스의 달인이 관직에 없는 나라는 많다. 21세기 지구에서도 항공모함이 없는 나라는 많았잖아.
‘거기에 비하면 미스릴 클래스는 대충 최신예 전투기 정도?’
국방에 신경을 쓴다면 충분히 구할 법 하다.
미스릴 클래스는 전투기랑 달리 돈이랑 권력만 있으면 구할 수 있으니까.
‘왕족에게 나랑 비슷할 정도의 호위가 붙을 만은 해.’
근데 그걸 반대로 말하자면 일개 개인으로 전투기를 가진 미스릴 클래스 이상의 달인은 대체 이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인 것이지. 개인 명의의 전투기라니 제 3국가에서도 못 볼 법한 미친 존재감이군.
독재국가의 군벌이나 1인군단 정도는 되나?
나도 꽤 출세 했군. 허세 부리길 잘했네.
‘쓰벌. 쫄리는 건 사실이지만 슬슬 나도 권력자들을 상대로 가오 챙길 때 됐잖아.’
나 강북호는 마법의 여신에게 반말을 까고, 저주받은 여신님을 아내 겸 애완동물로 삼아서 보지팡팡을 해 주는 남자.
개도국의 탈을 벗어가는 중인 봉건제 섬나라 국의 왕자가 상대랍시고 쫄 이유가 하등 없다, 이 말이야.
이세계에서는 장남이라고 해봤자 무조건 왕위계승자인 건 아니다. 게르마니아부터가 내륙의 통치는 모계사회에 가깝지 않던가. 브리타니아도 계승권 면에서는 남녀가 거의 평등하다.
내가 알기론 이 왕자님 윗손에 제 1왕녀가 있는 걸로 안다.
긴장을 잃지는 않는 선에서 예의 바르게 굴면 그만이지.
“이거 참, 소문으로 듣는 것보다 겸손한 분이신데요? 저희 누님도 본받아야겠습니다.”
옆집 신문배달부처럼 너스레를 떨던 조지 왕자가 말했다.
“그런데…… 여쭙기 죄송합니다만, 팔은 어쩌다 그렇게?”
“아, 별 일 아닙니다. 잠깐 실수를 저질러서 다친 겁니다만, 피 흘리며 먹고 사는 모험가란 다 그런 법이죠. 저는 실력이 모자라서 남들보다 조금 많이 흘렸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위화감으로 뒷북을 쳤다.
‘……그러고 보니까, 다른 둘은 왜 내 팔에 대해 안 묻지?’
크롬웰도 호툴루실도 마치 내가 처음부터 외팔이 닌자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야 나랑 티르시가 절친한 건 주지의 사실이니까, 그녀의 보고를 통해서 내가 외팔이가 된 걸 들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호툴루실도 내가 팔을 깜빡하고 온 사실에 놀라던 느낌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호툴루실은 1~2일만에 그 보고를 받았다는 뜻 아닐까?
‘흠. 처음부터 내 행방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러니까 티르시의 서면 보고가 오자마자 내가 팔 장애가 됐다는 걸 알게 된 거겠지.
나는 겉으로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주판을 두들겼다.
티르시를 통해서 내 소식을 찾아다녔다니?
그게 나한테 용무가 있다는 뜻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갑자기 나를 찾은 이유라고 하면──
‘뻔하지. 왕자 때문일 거다.’
왕자의 방문과, 외부인인 내가 길드에 들리지자마자 따로 호출받은 것.
이 2개가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억측이다.
그럼 관건은 왕자가 나를 찾은 이유인데…… 시발 그런 건 엘리트 꼴마초가 아니라 마초 할아버지를 데려와도 모를 듯.
야부리를 털어서 단서를 캐낼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만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그런!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하하. 무용담이랄 수준은 아닙니다만, 왕자님께서 궁금해 하신다면 뺄 수도 없겠군요.”
그렇게 야부리를 털면서 이것저것 얘기하기를 30분.
호툴루실이 직접 차를 타 온다는 어메이징한 해프닝을 목격하면서 북부의 트롤 킹 수성전 썰을 풀자, 조지 왕자는 대충 소식은 들었다는 듯 말했다.
“저도 왕도에서부터 북부로 올라가지 말라는 급보를 듣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됐을 줄은…….”
“사태는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북부인들의 생명력과 끈기란, 정말이지 존경스러운 점이 있더군요. 단지 왕자님의 신변을 고려하면 방문은 위험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때다. 나는 입을 나불대며 핵심을 찔러들어갔다.
“혹시 북부에 방문하실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오. 제가 이런 식으로 공무를 나오면 외유를 즐기다 돌아가는 일이 잦아서, 아바마마께서 눈치 있게 굴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이번에는 사르가디스를 찾은 게 맞고요.”
조지 왕자는 천하장사 출신 아버지에게 어릴 때 술 마신 걸 들켜서 쳐맞은 썰을 풀듯 사람 냄새 나게 웃었다.
그런 다음에는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요 사이에 전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소동이 참 많습니다. 큰 것만 꼽아도 게르마니아의 망령도시 대폭발 사건, 니다벨리르의 독약 염료 사건, 로마니아의 명예 귀족 역모 사건…… 하나하나 10년에 1번 있을까 말까한 충격적인 대사건이죠.”
나는 나열되는 사건을 하나하나 들으면서 턱주가리와 눈꺼풀에다 힘을 빡 줬다. 표정 관리를 했단 뜻이다.
와! 존나 신기하게도 사건들이 별로 낯설지가 않네!
왠지 모르게 왕자님 본인보다 왕자님이 풀어주는 썰 쪽이 더 친숙한 느낌이군.
아, 시발 몰라. 노르드는 고고학자야. 다른 나라에서 터진 사건 따위 알 바 아니야. 에비 불길한 거. 쉭 쉭.
집에 들러서 문밖에 소금을 뿌리던가 해야지. 진짜 나한테 뭐가 씌인 게 분명하다. 악령이라든지 사신 같은 거.
‘아니지 시발. 생각해 보니까 오딘도 사신의 일종 아닌가?’
데스노트도 못 받았는데 사신한테 씌이다니. 어디 억울해서 이세계 대학원생 깽판물 찍겠나.
“이런 혼란의 시대, 〈임모르탈리스〉의 습격에서 피해를 크게 억지한 사르가디스의 영주를 치하하러 온 겁니다. 하하하. 일정을 열심히 조율해봐도 이제야 시간이 좀 나더라고요.”
아무튼 다행히 나를 위한 고춧가루 토핑 코렁탕이 준비된 건 아니었는지, 조지 왕자는 우릴 의심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휴.’
나는 안심하면서 그걸 티 내지 않는다는 고도의 포커 페이스를 전개했다. 존나 뒤지는 줄 알았다.
아니 그래도 간신히 귀족 상대로 고개 좀 덜 숙일 수준이 되었나 했더니만 갑자기 왕족이 튀어나와서 내 치부를 살살 들추고 자빠졌네. 이게 나라냐? 악의를 갖고 해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푸키먼에서 챔피언 잡고 유저 대전 나갔다가 뚝배기 터졌을 때가 딱 이런 기분이었는데. 사람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말이 피부로 실감이 된다.
하지만 불평을 하기엔 뿌린 씨가 좀 많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지. 설치고 다닌 내 죄로다, 내 죄야.
“어…… 그러면 왕자님께서는 이미 공무를 마치시고 돌아가시는 일만 남았는지요?”
그게 아니면 여기서 이렇게 노가리나 까고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묻자 조지 왕자는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아뇨. 사실은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방문 날짜는 아직 좀 남았습니다. 오늘은 저랑 호위만 몰래 빠져나와서 여기 들린 거죠! 하하하!”
나는 호툴루실을 쳐다봤다. 내가 이해한 게 맞냐는 뜻의 아이 컨택트였다. 호툴루실은 눈으로 정답이라고 대답했다.
진짜야 시발? 이게 진짜라고? 꺄아아아악!! 미친 놈이다!! 여기 미친 왕자가 있다!!
나는 정신 나갈 것 같은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시발 미친 개또라이 새끼. 왜 대장장이 길드가 풀가동 중인가 했네!’
상황이 이해가 갔다. 퍼즐이 딱딱 맞았다.
왕자의 방문이라니. 간첩을 잡은 촌구석 중대에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을 떨군다고 서신을 보낸 수준이다.
당연히 사르가디스도 연대 단위로 뒤집어져서 하수로 뚫고 낙엽 쓸고 무기 정비하고 별 지랄을 다 하겠지.
‘왕자를 환영하는 시열식을 위해서라도 경비대의 갑옷부터 무기까지 싹 정비해야 할 거고! 그야 바쁠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대장장이 길드가 봄 초부터 민간업자까지 싹 불러서 일하는 중이었구만!
금속의 달인 철충 클라라 선생이 가게를 비운 것도 납득이 갔다. 솔까말 이 촌동네 경비대에 낡은 창이 1~2개겠어?
근데 정작 그 왕자는 혼자 몰래 도시 안에 들어와 있으니, 비유하자면 육참총장이 몰래 검문소를 뚫고 들어와서 지통실에서 당직병이 타준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수준이다.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
‘존나 내가 헨네시스 영주였으면 썩은 우유 들이키고 오렌지병이 도졌다고 구라 깠다.’
이거 진짜 순 미친 놈 아냐.
파리바게트 순우유 케이크도 우유 함량은 20%대인데 여기 이 조지인지 좆인지 하는 새끼는 순도 100% 광기로 가득한 아티스틱 또라이였다. 브리타니아의 미래가 어둡다.
“그, 그그, 그, 그러시군요. 그, 그, 급한, 용무가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나는 쿨하게 말을 떨었다. 이 미친 놈이 행사 순서도 씹고 나를 보러 온 이유가 뭔지 상상이 안 가서였다.
“예. 사실은 노르드, 당신을 만나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리고 조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쾌할하게 헤헤 웃어댔다.
날 보고 싶었다고요? 시발 난 안 그런데? 짝사랑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니까 곱게 마음 접고 왕성으로 돌아가서 조지육림이나 즐기시는 게 어떨까요?
“………저를, 왜?”
“그야 브리타니아의 흑마법사 사냥꾼으로 유명하신 달인급 전사가 아니십니까! 제가 그런 무용담을 좋아해서 말입니다. 궁전에 음유시인을 부르다가 혼난 적도 많죠! 하하하하!”
자기 무릎까지 쳐 가며 깔깔 웃는 조지 왕자.
호툴루실 씹새야. 가만히 차나 쳐 마시지 말고 이 미친 놈 좀 수습해 봐. 니들 아는 사이잖아 씨발.
만약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귀찮아지기 싫어서 나를 팔아넘겼다는 뜻이군? 이 씨팔럼 농경지에 카이저 피닉스 몇 마리 풀어버릴까? 지금이라면 우리 고향의 노스탤지어를 쥐불놀이 예술로 승화시킬 여지 있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국방의 의무에 다대한 공을 세우신 분이 아무 보상도 못 받는 건 이치에 맞지 않군요! 이 조지 그라나다 어니스트 브리타니아! 제안이 있습니다!”
또 뭔데 시발. 나는 조지 왕자의 웅변에서 느껴지는 소름 돋는 느낌에 침을 삼켰다.
고액 알바를 나간 곳에서 사장이 이상하게 친절하면 일단 의심부터 들지 않는가.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아니나 다를까 조지 왕자는 카우보이처럼 내 목에 밧줄을 던졌다.
“왕가가 보유한 엘릭서가 있습니다! 왕도에 방문해 주시죠! 제 이름으로 노르드의 팔을 치료하는 일을 돕겠습니다!”
“……왕도에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 말에 행복회로와 절망회로를 풀가동했다. 행복과 절망의 무한한 상전이다. 이러다 마녀 되겠다 마녀.
‘따라가면 국위선양용 토템. 그게 아니면 고기 방패.’
그게 결론이었다.
전자라면 ‘우리 나라만 흑마법사 테러를 막았다! 우리는 흑마법사의 피해를 지배할 수 있다!’ 하는 선전용 아이템이다.
자칫하면 이상한 직책 같은 걸 서열식에서 냅다 던져지고 지금보다 더 유명세를 탈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 쪼렙 흑마법사들은 이름값에 쫄아서 안 오고, 상대하기 버거운 거물 놈들만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해??’ 하면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것이지.
분명 정의롭고 보람찬 일이겠지만 나는 교수 슬레이어다. 결코 흑마법사 슬레이어가 아니다.
‘애시당초 나는 시발 왜 내가 흑마법사 사냥꾼이라 불리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소문 퍼트린 거 어떤 새끼냐 진짜. 잡히면 죽인다.
그리고 그나마 저건 희망회로다.
절망회로를 돌리면 이 살벌한 시기에 나를 인간 방패 옐로 템퍼런스로 쓰다가 내다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자랑스러운 호국 육군의 패시브인 일회용 느그 아들의 이세계 버전이다.
“너무나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사실 제가 이번에 로마니아에서 사귄 인연이 있어서 말입니다.”
나는 찰나의 띵킹을 멈추고 곤란한 듯 말했다.
“팔을 잃고 나서 연락을 했더니 최근 매물도 없는 엘릭서를 어떻게든 구해서 보내준다는데, 왕자님의 호의까지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니 부디 제안을 거둬 주시옵소서.”
당연히 구라다. 편지는 보냈는데 답장은 아직 못 받았다.
‘근데 지가 구라인 걸 눈치까 봤자 어쩔 거야.’
셀레나도 코르넬리우스 어르신도 나랑 연 끊기는 아쉬우니 말 정도는 맞춰줄 걸?
나는 조지 왕자를 대충 이해했다.
‘지혜에 스탯을 몰빵한 버서커.’
광기를 핑계로 날뛰는 참된 또라이다. 그러면서 행동에는 은근슬쩍 지성의 편린이 엿보인다.
그 본질이 선함인지 악함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놈의 제안을 받을 수는 없었다.
“흐음…… 그렇습니까? 아쉽지만 억지로 권할 수는 없죠. 제가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하, 하하. 물론입니다.”
지랄 마. 바가지를 씌울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미쳤다고 댁 손을 빌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내가 웃으면서 정색하니까 바로 몸 빼는 것 봐라. 정치 스탯도 90쯤 되나.
위빙 존나 오지는 새끼로세. 견문색 패기의 소유자인가?
“말씀은 다 끝나셨습니까?”
그러자 그때까지 남일 모드로 수분만 보급하던 호툴루실이 주둥이를 열며 말했다. 조지 왕자는 빵끗 웃었다.
“네! 저는 노르드의 무용담도 들었으니 여한은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크롬웰. 나는 왕자님과 얘기를 좀 더 나누다가 갈 테니, 노르드 일행을 배웅해 다오.”
“예.”
일사천리로 일이 끝난다. 뭔가 냄새가 나는군.
하지만 위화감도 있다. 정말로 이걸로 끝이란 말인가?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단지 나쁜 기색은 아니었다. 함정이라면 더 영악하게 파둘 수도 있었을 거고 말이다.
방금 일 정도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서 말했듯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정도의 접촉인 것이다. 진짜 나를 보러 여기까지 행차한 건 아닐 것 같다.
‘……씹창. 상관 없겠지 뭐. 내가 나대다가 좆 될 뻔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좀 사리면서도 살아 보자.’
조금 의문은 남았지만, 사람이 호기심을 전부 해소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한다.
캣-대디인 내가 고양이 슬레이어가 될 수는 없지. 오늘은 깝싸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끝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크롬웰의 집무실로 불려가서 착석했다.
씨팔거 내 집도 아닌데 안심감이 오지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