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84화 (484/1,009)

조이드의 행방을 찾아냈다고?

나는 놀란 나머지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잘도 해냈네. 나는 최소 1달은 걸릴 줄 알았어.”

별로 긴 시간을 준 것도 아닌데 벌써 의뢰를 끝낼 줄이야. 그녀의 수완에 감탄하는 나였다.

베로니카랑 티르시가 기다리고 있긴 하겠지만, 요리가 나오려면 멀었으니까 잠깐 얘기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이왕 얘기하는 김에 요리가 다 된 걸 받아가도 되겠고.

“누구 덕분이겠어요? 이렇게 편리한 정보통이 널렸는데.”

캐서린은 키득거리며 고양이의 턱을 긁었다. 그새 그녀의 손을 탔는지 고롱거리는 길냥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 애들이 도움이 됐다고? 어디에서? 시내라면 몰라도 네 마법만으로는 바깥의 동물들이랑은 얘기하기 힘들──”

의문스럽게 말을 하려다가 눈치를 깠다.

〈동물 회화〉 마법은 내 파파고 드루이드 스킬이랑은 좀 달랐다. 까놓고 말해서 하위호환이다.

보통은 〈동물 회화〉 마법을 동원해도 동물과 친해지기가 어렵다. 인종차별에 통달한 백인을 상대로 동양인이 프리 허그를 시도하는 듯한 고난이도다. 적대심/경계심을 뚫고 친해져야 하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가 사전에 작업을 쳐둔 동물들과는 훨씬 편하게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이 동네 동물들을 통역사로 데려간 거군.”

“맞아요. 노르드 님이 말을 걸어둔 동물이 어디 1~2마리던가요? 어지간한 동물이랑은 다 대화가 되던걸요.”

캐서린은 재미 있는 경험이었던 것처럼 손을 까딱였다.

나랑 접촉이 없는 사르가디스 밖의 야생동물들도, 그 놈과 대화가 가능한 내 직속 생체 드론 동물들을 데려가면 대화가 가능하다. 캐서린→내가 작업을 친 동물→야생동물 순이다.

“하지만 동물들이 정보에 도움이 돼?”

“저도 몰랐는데, 동물이라고 해서 얕보면 안 되겠던데요? 까마귀처럼 머리가 좋은 애들도 있고…… 마침 이맘 때에는 나르메르-나일에서 철새들도 오니까요.”

“글쿠만.”

전문가는 다르긴 하군. 이래서 요리는 사 드세요~ 하면서 프로에게 맡기라는 말이 나오는 건가.

하긴 빅 브라더, 아니 빅 시스터가 된 시점에서 캐서린의 정보수집력은 더 올랐을 것이다. 정의로운 괴도 일을 하면서 목숨 걸고 갈고 닦은 능력을 문외한인 내가 평가하는 것도 좀 건방진 짓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맙네. 보수는 조만간 지불할게. 떼 먹을 생각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떼 먹으셔도 된답니다? 이 동물 친구들이랑 연을 대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연 이용료로 칠까요?”

“검소하네. 나였으면 뜯어낼 건 계속 뜯어냈음.”

“욕심을 부려야 할 곳을 착각하면 정보상 같은 건 오래 못 해먹어요. 안 그래도 로마니아에 비하면 시장도 좁은데. 저희 언니는 새 삶에 맛 들이고 있는데 저만 백수일 수는 없죠.”

캐서린은 고양이를 떠나보내고서 말했다.

“그는 나르메르-나일에 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요즈음 그 나라의 북새통의 원인인 피라미드 근처에 있는 듯 해요.”

“피라미드?”

티르시도 말했던 그거로군.

문제를 해결하면 나르메르-나일에서 로마니아의 명예 귀족위를 준다던가.

“〈피라미드 탐사대〉라는 곳이더군요. 입대 자유. 탈퇴도 자유. 대신 특정 보물 몇 개를 제외하면 획득한 유물은 소유권을 인정하고, 분배는 어디까지나 성과제도.”

글로 받은 편지를 읽듯 담담하게 말하는 캐서린.

“단, 탐사 중 단독행동과 명령불복종은 불허. 경우에 따라 팀을 나누기는 해도 어디까지나 피고용자일 것. 이 조건을 수락하는 사람에 한해서 새로 발견된 피라미드를 함께 탐사한다는 어느 신흥 팀이에요.”

나는 직감적으로 한 가지 사실에 눈치를 까고 말했다.

“……너 남의 전서구 삥 뜯었냐?”

“티 안나게 잘 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법이 걸렸는지도 확인했고, 언니가 귀신처럼 봉합해 줬거든요.”

못 보던 단안경을 가리키는 캐서린.

뭔지 알겠다. 우리 마법사님 같은 연금술사들이 곧잘 쓰는 <마나 관측(Mana Observation)>이군.

“이 새끼 이거 제 버릇 남 못 줬네.”

“전서구를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으면 누구든 할 걸요? 뭐, 잘 훈련받은 애들은 못 속이겠지만, 아무튼 그 덕에 이렇게 조사도 빨랐잖아요.”

말하자면 이세계판 메일 해킹 같은 건가. 나는 혀를 찼다.

“앞으로는 하지 마. 위험한 건 둘째치고 범죄야, 새꺄.”

“나쁜 놈들 거면요?”

“……보고하고 해.”

사르가디스에 그만한 악인이 있을까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별로 여기가 훌륭한 도시라서 그런 건 아니고, 악독한 새끼들이 우글거리기엔 사르가디스는 너무 별 거 없는 도시니까.

“알겠습니다. 조사 결과는 서면으로 남겼어요. 누가 읽어도 문제 없는 내용이라서.”

“잘 했어.”

편지 봉투를 받아들고 챙겼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대낮의 식당에는 기척을 죽인 달인과 괴도의 교류를 간파할 만한 걸물이 없었다.

“조이드가 이 팀에 가입한 이유로 짐작가는 건?”

“신변을 지키려고 도주 생활 중이라잖아요? 그러면 이유야 뻔하죠. 팀에서 자기 가짜 신분이 뽀록나지 않게 유물을 처분해 줄 테니까 돈을 벌기도 좋고, 피라미드의 탐사를 끝내면 귀족 신분도 준다면서요.”

“니다벨리르 인인데?”

“국적이야 상관 없지 않을까요? 단, 듣기론 상회와 관련된 조사에는 불응하고 도망쳤다네요. 혹시 뒤가 켕기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로마니아에서 알아서 조사하겠죠 뭐.”

“……그런가.”

귀족위를 받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점은 조이드도 알라나. 난 그리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니다벨리르의 항만도시 흐레마르.

나는 그곳의 통치를 여왕에게 일임받은 영주에게 투스타스 상회의 장부를 넘겨줬다. 증거가 명백하기에 곧바로 수습에 들어갔겠지. 자기 목숨이 걸린 일 아닌가.

하지만 지금까지는 일의 추이를 조사할 엄두를 못 냈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전체의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라면 이 문제는 1급 기밀이다. 민간에 유출도 안 됐을 거고, 정보를 알아볼 방법도 없었지 않은가.

억지로 알아내면? ‘너 이 새끼 게르만 쁘락치지’ 하고 FBI 친구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왔을 걸.

‘하지만 이번에 조지 왕자가 그 얘기를 꺼냈었어.’

고급 정보 취급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얘기가 퍼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고개를 기웃거려도 된다는 뜻이겠지.

나는 엘리트 대갈통으로 결론을 산출하고 말했다.

“이 다음 의뢰, 바로 넘겨줘도 되냐?”

“상관이야 없지만…… 또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의뢰에요?”

“감이 좋군. 니다벨리르의 유독 염료 사건이랑, 그 대처가 어떻게 됐는지 조사해 줘. 투스타스 상회의 뒤에서 일어났던 사건 같은 걸 중심으로.”

“아아. 그거라면 쉽겠네요. 염료 전량 회수 사건부터 꽤나 굵직한 소식이고요.”

“거기까지는 대외로도 알려졌지만, 그 사건에는 뒤가 있어. 니다벨리르 왕가가 로마니아에 대한 외교 방식을 바꿨거나, 뭐 그런 게 있는지도 알아봐 주면 땡큐고.”

“잡스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의뢰군요. 보람은 있겠지만, 제가 니다벨리르에는 뿌리를 못 뻗어서요. 출장까지 염두해 주세요. 그 때는 동물 친구들 몇 마리 데려갈게요.”

“일보다는 네 몸부터 챙겨. 너 죽으면 느그 언니 볼 낯이 없다.”

“어머나. 친절도 하셔라. 하지만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요? 괴도는 잡히지 않으니까 괴도인 거에요.”

웃음을 터트린 캐서린은 그렇게 그늘로 빠져나갔다. 연출 하나는 철저하군.

“14번요!!”

그때 요리가 끝났는지 길드 요리사가 우리 음식의 번호를 불렀다.

마법사 길드인데 마법-전광판이나 호출 벨도 없냐.

‘예산 문제인가? 하긴 매직 아이템의 제작이랑 보수보다는 요리사의 목청이 더 저렴하긴 하겠네.’

나는 픽 웃으면서 음식을 받아갔다.

마법사 길드의 식당은 꽤 솜씨가 좋았다.

***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쉽게도 티르시와 헤어졌다.

“저는 숙소로 돌아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 하시구요.”

“죄송하네요. 혼자 계시면 여차 할 때 위험할 텐데…….”

나랑 베로니카는 다나네 연구원들을 데리고 다시 알윈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티르시는 일도 있는데 나 때문에 저 먼 곳까지 갔다 온 것이기에, 다음 번까지 따라오지는 못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그녀와는 잠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뭘요. 과정은 안 좋았지만, 저도 예전보다 강해졌잖아요! 도시 안에만 콕 박혀 있으면 위험할 일은 적겠죠!”

엣헴!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펴는 티르시였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경험 끝에 얻은 힘인데, 저렇게 밝게 말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나저나 어딘지 모르게 박복하거나 불행할 때 은근 예뻐 보이는 사람이다. 병약한 미녀라니. 전통적으로 수컷 특유의 비호욕이 치솟게 만드는 미녀의 국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불행을 떨치고 당차게 웃는 표정에 어제의 정액 범벅이 된 얼굴이 오버랩됐다.

─붕붕붕!! 나는 빠르게 머리를 털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 것도. 티르시도 크롬웰 씨가 말씀하셨던 점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제 탓에 자꾸 캐리어를 망치고 계시니까, 마음만 정하시면 언제든 책임 지고 파티에 초대하겠습니다.”

나는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리고 또, 얼마 뒤에 나르메르-나일에서 새로 발견됐다는 피라미드에 갈 생각입니다.”

다른 용무가 아니더라도 꼭 찾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내 꼬츄에 리저렉션 걸러 가야 됨.’

세상에는 육체관계에서 나오는 사랑도 있다.

천박하게 말하면 떡정이다.

내 고향 대한민국에서는 ‘재벌 대기업 회장도 삐끗하면 빵에 들어가지만, 판사에게 떡 좀 돌려둔 연예계 인사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는 농담도 있지 않던가.

이건 진짜 무시 못하는 것이다. 아내님들과의 결혼생활이 파토나지 않도록 쥬지의 부활은 필수였다.

“이번에는 일정을 잡고 나서 부탁드릴 테니, 함께 가 주실 수 있는지 고려해 봐 주세요.”

“……피, 피라미드… 요? 그, 명예귀족 선발이 걸렸다는?”

티르시의 얼굴이 귀까지 확 달아올랐다. 피부랑 머리칼이 하얘서 더 눈에 확 띄는 변화였다.

“예.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거기가 맞습니다만, 갑자기 왜── 아하?”

─딱!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능글맞게 웃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딱히 제가 명예귀족에 도전해 보려는 건 아니었는데…… 흠, 흠. 확실히 그러는 편이 좋기는 하죠?”

“누, 누구한테요?! 저는 별로 아무래도 상관 없거든요?!”

“그으렇군요~. 별로 지금 그대로여도 괜찮으시다? 네이~ 잘 알았습니다~.”

“으 ,으크윽…! 몰라요! 마음대로 하시던가요!”

티르시는 할 말이 없는지 삐져서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킬킬거리며 그녀에게 홱 하고 10쿠퍼 동전을 3개 건넸다.

“기껏 식사에 초대해 놓고 길드 식당이어서 죄송했슴다. 이걸로 연금술 학파의 동료 분들이랑 어디 맛 좋은 식당에 가서 거하게 드시다 오세요. 도와주러 오셔서 감사했구요.”

“네? 아니에요. 이만한 돈을 그냥 받을 수는……”

티르시는 도로 돈을 밀어내며 당황했다.

30만원 돈을 쾌척한 거니까 놀랄 만 하다. 보통은 뭔가를 이만한 금액은 아니지.

그치만 이 동네에는 쌈박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치킨 같은 것도 없는 걸? 이세계에서는 이 정도는 써야 맞다.

“제 사죄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동료 분들한테도 잘 전해 주시고요!”

“자, 잠시만요! 노르드!”

나는 내 장난에 삐진 것도 잊고 외치는 티르시한테서 얼른 도망쳤다.

돈 몇 푼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지 아닐지는 티르시의 평소 행실에 달렸지만, 우리 마법사님의 모나지 않은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괜찮을 것이다.

‘나 땜에 욕 먹게 둘 순 없잖아.’

계속 남든 퇴직을 하든, 욕만 먹고 가는 거랑 거하게 사과하고 가는 거랑은 느낌이 천지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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