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85화 (485/1,009)

“자, 그럼 이제 대장장이 길드에 들릴까?”

“그러든가 하거라.”

대답이 시원찮군. 아니, 시원찮다기보단 얘도 삐졌네.

─와락! 나는 뭘 또 그러냐는 듯 뚱해진 베로니카를 끌어안았다.

“흐흐. 우리 베로니카, 남편이 다른 사람이랑 노닥거려서 화났구나?”

“……시끄럽다. 안아준다고 화가 풀릴 성 싶으냐?”

“입술은 이미 반쯤 풀렸는데.”

“시끄럽다고 했지. 나쁜 주인님 같으니.”

─투닥, 투닥! 발을 밟으면서 가슴을 때리는 베로니카였다. 나는 솜주먹이 때리는대로 맞으며 말했다.

“네 신분 문제도 있잖아. 명예 귀족을 넘어서 어디 영토를 받기까지 하면 너한테 정식 신분을 내 줄 수도 있을 걸.”

…멈칫.

잠깐 멈췄던 주먹은 다시 내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까 전에 비하면 더 약해져서, 이제는 뭐 깃털이 부딪히는 것 같을 정도다.

“흥. 평민 출신의 그대가 어떻게 영토까지 얻겠다고? 내가 인간 사회에 어두워도 그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에고, 들켰네. 그래도 혹시 모르지? 너랑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이렇게 됐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되었다. 혀에 구워삶아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러다 다 태워먹겠군. 우리 관계에 권태기는 너무 이르겠지.”

말과는 달리 화가 풀린 것 같은 베로니카는 쑥 하고 남편 품을 빠져나갔다. 일부러 삐진 척 내민 입술이 귀엽다. 화난 척만 안 했으면 키스라도 했을 텐데, 괜히 더 빡치게만 만들 것 같아서 참았다.

“이만 가자꾸나. 점심 시간이 끝나겠다.”

“어.”

대장장이 길드로 가는 길은 짧다.

크기는 천지차이지만, 길드가 위치한 구역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편의점처럼 입지도 중요한 모험가 길드와는 다르게 이 2개의 길드는 부지가 싼 곳이 제일이니까.

그곳에 가서 클라라를 찾자, 그녀는 오드리와 함께 식후의 휴식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모르는 남성도 1명 있다. 고글 같은 걸 끼고 팔뚝이 중화집 요리사처럼 굵은 아저씨다. 아마 대장장이겠지. 클라라의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걸 보면 남편은 아닐 것이었다.

“……노르드 씨? 세상에! 그 팔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모르는 아저씨랑 얘기를 나누던 듯 한 클라라는 내가 팔을 잃어버린 것을 보고 세상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니, 호들갑을 떨 일이 맞긴 한데 이러다가 진짜 만나는 사람마다 다 물어보겠네. 목에 팻말이라도 걸고 다닐까? ‘싸우다가 팔 짤림. 이겼음. 다시 붙을 예정’.

“──해서, 뭐 그렇게 됐습니다.”

대충 설명을 끝낸 나는 기절과 수면 사이의 경계를 헤매는 오드리를 가리켰다.

“그나저나 쟤는 왜 저런데요?”

“앗. 오드리랑은 아는 사이셨죠? 얘기는 들었어요. 일이 좀 힘들다고 벌써 녹초가 돼 있네요.”

“……좀? 좀이라고?”

오드리는 핏발이 선 눈으로 일어섰다. 옷이 땀범벅이다.

“헛소리 마! 저 후끈후끈한 용광로에서 산처럼 쌓인 철을 하루 종일 두들기는 게 뭐가 ‘좀 힘든 일’이야!!”

─철퍽! 오드리는 목에 감은 수건을 내팽개치며 울먹였다.

“노르드! 이 사람은 미쳤어!! 나보다 체력도 없는 주제에 저 불가마에서 칼이며 창이며 계속 두들기는데 팔도 안 아프대! 미친 게 분명해! 나는 벌써 팔이 빠질 것 같다고!”

“네가 고른 직업이다. 받아들여라.”

“끼에에에에에에엑──!!!”

아주 미쳐가고 있군. 오드리는 비명을 지르다가 엎어져서 다시 잠에 빠져버렸다. 클라라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 아무튼 반지 때문에 오셨죠? 잘린 게 왼팔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씀해 드려야 할까요?”

“다시 붙을 게 아니었으면 치명적인 농담이었습니다.”

“앗, 죄송해요. 아무튼 반지는 저희 대장간 금고에 있는데, 바로 갖다드려요?”

“퇴근하고 나서요. 많이 바빠 보이시는데 쉬는 걸 방해할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아서.”

“네. 일 끝나고 댁으로 찾아뵐 테니까 주소를……”

“잠깐만!! 날 무시하고 얘기를 진행시키지 마!! 젊은 놈이 뭐 하는 짓이야!”

계속 무시당하고 있던 아저씨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아저씨 특) 소리치면 목소리 개큼.

“……요세핀 씨. 뭐라고 하셔도 저는 금속이 좋아요. 다른 일을 할 바에야 차라리 망치를 손에서 놓을 거고요.”

클라라도 귀가 아픈지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그러자 팔뚝 굵은 아재는 하─! 하고 웃는 건지 어이가 없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웃음을 터트렸다.

“금속은 돈이 안 되잖아. 남들은 돈 받고 일하는데 너 혼자 비슷한 고생을 하면서 푼돈만 벌지? 평생 농기구랑 일반 병사들한테 줄 무기나 주물럭대다가 늙어죽게?”

“농기구도 병사들의 무기도 중요하고, 돈 문제도 아니에요. 전 금속이 좋아서 대장장이가 된 거에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너는 왜 그렇게 철이 안 드냐 이거지.”

그는 갑갑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왜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못 알아 먹냐는 투로 말했다.

“딸 같아서 하는 말인데, 네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근데 너 선배가 귀한 시간 들여서 삶의 조언을 해 주는 건데 왜 그렇게 고깝게 들어? 너 나 싫어하냐?”

“……아뇨. 그럴 리가요.”

……흐음. 딱 봐도 알겠군.

나는 좆 같은데 성질대로 패버리긴 영 힘들어 보이는 클라라의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중인데 찾아와서 지랄을 해대니 좆 같을 만 했다.

내 잘못이었다. 같이 간다고 했을 때 그러자고 했으면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미처 거기까지는 눈치를 못 챘다.

“결혼하더니 우리 클라라가 변했네, 변했어.”

표정 관리마저 어려워진 듯 클라라는 한숨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요세핀이라는 대장장이는 그걸 잘도 캐치하고 팍 눈을 찌푸리며 삿대질을 했다.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하게 하지 마. 내가 널 새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뭐 얻을 게 있다고 이러고 있겠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잖아. 금속 제련 같은 건 연금쟁이들 맡기면 될 거 아냐!”

시발 말 하는 것 좀 봐. 거를 타선이 없다. 꼰대 그랑프리가 있으면 이 새끼가 우승 후보일 듯.

‘대장장이 길드에는 꼰대가 많구나.’

금속밖에 손 안 댄다고 천명하는 사람이긴 해도, 클라라를 만난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맞는 말이라도 고깝게 말하면 빡치는 법이다.

듣고 있던 나까지 대학원생 시절의 PTSD가 치솟으면서 배 안에서 짜증이 들끓었다.

어쩌지 시발. 이걸 못 참으면 처음 클라라네 대장간에 갔을 때처럼 눈깔이 돌아가서 줘패버릴 것 같은데.

─펄럭!!

그렇게 내가 뭐라고 말을 해서 우리 불쌍한 반지 메이커를 구해줄까 하고 있자, 갑자기 하늘에서 가죽 깃발이 휘날리는 듯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아니, 그 소리를 캐치한 건 나 뿐이었다. 상대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서 하늘을 본 다른 이들도 깜짝 놀랐다. 막 뭐라고 쏘아붙이려던 요세핀은 자지러지며 쓰러졌다.

“흐어어억─?!”

“노르드 씨! 사르가디스의 노르드 씨는 계십니까─!!”

─펄럭!! 펄럭!!

가죽 깃발 같은 소리를 내며 와이번이 하늘에서 홰를 쳤다. 그 위에 올라탄 기수가 뜬금없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내려오자 베로니카는 또 주인님 짓이냐는 듯 눈을 반개했다.

아니 그 눈빛 치워 봐 좀. 맹세컨대 나도 모르는 일이라고.

“다, 당신 뭐야?! 뭐하는 놈인데 그런 위험한 걸 타고 남의 길드 부지에 내려와?!”

“이야─! 죄송합니다! 저는 운송 길드 택배원인데, 물론 협업체들에게 비행 허가는 받았습니다. 여기 이게 증명서고요.”

요세핀이 고함을 치자 그는 운송 길드의 문양을 보여주며 싹싹하게 말했다. 시발 택배원이래.

성벽의 존재만 봐도 알겠지만 와이번처럼 공중을 날아댕길 수 있는 수단은 존나 비싸고 희귀하다. 야생 와이번은 사실 몬스터의 일종이라 길들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슨 장인의 기술, 업계 비밀 같은 방법으로 일부 농장이 몇 년에 1마리씩 길들여서 파는 정도라던가.

‘근데 시발 무슨 택배원이 와이번을 타고 다니냐.’

어, 아니지. 이건 좀 차별적인 생각이다. 배달원이라고 뭐 몇천 만원 하는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는 법 있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짐작가는 게 좀 있었다.

며칠 전에 티르시의 손을 빌려서 로마니아에 편지를 몇 통 썼었으니까.

“……제 앞으로 온 거라도 있습니까?”

“예. 자택과 마법사 길드부터 들렀는데, 여기 계시다고 들어서 곧장 왔습니다. 혹시 실례였나요?”

“설마요. 잘 오셨습니다.”

이런 돈지랄을 할 만한 지인은 한 사람 뿐이다.

‘전서구나 날려대는 흙수저들이랑은 급이 다르네.’

와이번은 육포로 회유될 것 같지도 않으니 캐서린이 한 것 같은 해킹도 안 먹히겠다. 보안 철저하구만.

암호를 풀려면 해킹보다는 비번을 아는 놈을 줘패는 것이 빠르듯, 존나 쎄면 비번이 1234여도 문제가 없긴 하겠다.

아무튼 아주 완벽하다. 타이밍 최고다.

‘운이 좋군.’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아재를 훌쩍 뛰어넘어 와이번을 탄 기수에게 편지를 받았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인장이 떡하니 박힌 편지였다.

〈코르넬리우스일세.〉

‘나다 새끼야’로 시작하는 마초이즘 넘치는 도입부였다.

음. 남자한테 편지를 받고 가슴이 뛰는 건 처음이군.

〈편지는 잘 받았다네. 한쪽 팔을 잃었다니 나 역시 상심이 크군. 자네가 엘릭서를 구할 방법이 있다고 하니 동봉하지는 않겠네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하게나.〉

중략하자, 중략. 나는 서론이나 안부 인사를 훌훌 넘기고서 본론에만 눈길을 주었다.

네 가족이나 파티원은─아마 티르시 얘기다─ 잘 지내냐, 나랑 며느리는 잘 지낸다, 기사단장이 또 만나고 싶어 한다, 뭐 그런 얘기다. 나는 만나기 싫어요 그 미친 아저씨.

〈그리고 ‘제안’ 쪽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싶네.〉

비싸 보이는 편지지를 여유롭게 쓴 편지는 2장 째가 되고 나서야 본론에 들어왔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가문 차원에서 후원하는 드워프 장인들도 있으니, 입이 무겁고 실력이 좋은 드워프를 설득해 보지. 자네가 말한 대장장이가 결과를 내는대로 편지 주게. 좋은 성과를 기대하겠네.〉

OK, 허가 나왔고.

나는 편지를 접었다. 돈줄, 아니 물주님의 확언은 받았다. 너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리기만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이 찬스를 놓치는 건 너무 아깝지 않겠는가.

“클라라 씨.”

나는 꼰대 아재를 피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금속에 마법을 부여하는 로스트 테크놀로지, 재현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자고로 현금이란 다다익선이다.

고대 문명의 도끼에 걸린 마법을 근간으로 존나 큰 사업을 하나 진행하고, 스폰서 어르신의 자금이나 사업의 결과물을 조금 융통하면 엘릭서 사업에도 보탬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건 오직 이 세상에서,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You, 대장장이 길드. 오딘의 눈 있어요?’

나는 이번에 파밍한 도끼 하나로 논문도 쓸 수 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오딘님 충성충성.

“마법을…… 요? 금속에요? 그게, 그게 가능해요?!”

“아마 가능할 걸요. 술식은 연구가 끝났는데, 시행착오를 반복하기엔 제가 너무 바쁜 몸이라서.”

고대 문명의 부여 마법을 해석하는 건 성공했다.

이제는 이 프로페셔널한 금속 성애자에게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만 연구시키면 그만인 것이었다.

“뭐, 뭐라는 거야? 금속에 마법을 걸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어딜 아마추어가 헛소리야!”

꼰대 아재는 씩씩대며 일어났다가, 와이번이 푸륵─ 하고 콧김을 뿜자 돌처럼 굳어버렸다.

“해 봐야 알죠. 그리고 어차피 제 돈 아님. 크헤헤헤.”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꼰대를 상대할 때는 설득력이 있는 백 번의 말보다 돈과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최고다. 뒤에서는 욕할지 몰라도 앞에서는 알아서 기거든.

“히, 히익…!! 이, 이봐 당신! 이 놈 좀 어떻게 해 봐…!!”

─낼름낼름. 요세핀은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와이번이 자기 얼굴을 혀로 핥는 걸 새파랗게 질려서 지켜봤다.

아마 저 큼직한 턱에 걸리면 아저씨 머리통 정도는 와그작 터지고도 남을 것이었다.

“아! 저희 다프네가 빵풀 냄새가 좋은가 보네요! 다프네가 저렇게 보여도 빵을 좋아하거든요!”

택배원은 걱정 말라는 듯이 쾌활하게 웃었다. 나도 옆에서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클라라는 미스릴 반지 의뢰를 받았을 때보다도 더 얼굴이 환해졌다.

“할게요! 가능성이 적어도 상관 없어요! 꼭! 꼭 도전하게 해 주세요!”

“크크크. 좋습니다.”

이거 나까지 다 흐뭇해지는군.

거 시발, 우리 같은 흙수저라도 사업으로 자수성가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