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라. 나이 먹을 만큼 먹어놓고 그건 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자는 다 커도 애라고 하고, 놀다 보면 재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거야 동년배끼리 놀 때에나 해당하는 얘기다. 결혼도 한 30대 가까운 아재가 꼬꼬마들 노는데 끼면 쓰나.
그리고 그건 이 3만살 정도 먹은 신(죽은지 오래됨)도 마찬가지겠지.
“애들이 나중에 전말을 알고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저기 꼽사리 껴 있지?”
“정령이랑 노는 건 예로부터 아이의 특권인걸. 저 애들이 태어난 마을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쭉 그랬었어.”
그럼 애새끼가 아닌 내 앞에는 웨 자꾸 나타나는 건데.
어린애로 위장해갖고 어른들 몰래 꼬마들이랑 노는 건가. 소싯적에는 이러다가 막 납치까지 해서 체인질링 같은 짓을 벌이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사악한 년으로는 안 보인다만…….
그때 소녀의 얼굴을 한, 에린의 신의 유해가 말했다.
“또 암컷을 늘리는 거니? 예언의 짐승아.”
“아니, 제 결혼생활에 뭔 억하심정이 있으시길래 뜬금없이 명치를 때리시죠.”
“그냥, 궁금해서? 신기하잖아. 별의 바다를 건너온 네가 이 세상에서 가정을 꾸리다니.”
“별의 바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첫 만남 때부터 나를 ‘성해의 짐승’이라고 불렀던가.
별의 바다.
다시 말해서 성해(星海).
‘……알 만한 건 다 안다는 건가?’
나는 오딘이 물덩이 거인이랑 함께 올려다봤던, 우주 같은 하늘을 떠올렸다.
지구는 이 【중간가지】…… 인간의 집, ‘마나하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세계의 백업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낱 세이브 파일의 범주에서 벗어나서는, 독자적인 세계로 진화한 또 하나의 세계라는 얘기였다.
그러면 행성과 행성의 사이에 있는 우주공간처럼, 두 세계 사이에도 그 별의 바다라는 게 존재하는 거겠지.
──그리고 아마, 그 어둠을 터전으로 삼는 신들도.
“기, 기다려 봐. 노르. 그러면 그…… 이 애가, ‘그거’야?”
다나는 술래잡기나 하던 꼬맹이의 정체를 눈치채고 표정이 이상해졌다. 뜬금포 등장에 놀라거나 경계하기에도 너무 평범하게 생긴 동네 여자애라서 그렇겠지. 나도 잘 안다.
‘아니, 뜬금포 등장은 아닌가.’
1년의 시작, 신의 축복을 바라는 날에 식을 올린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초대장을 돌렸던 격이니만큼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재앙을 경고하러 와 준 저번 때만큼 자연스러운 결과다.
“맞아. 나는 나 자신도, 나를 섬겨주었던 너희의 선조들도 이름을 잊어버린 과거의 신이지.”
이름 없는 신의 유해는 내 술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신들의 황혼이 도래한 날에 육신을 잃고, 이제는 이름마저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져버린 유령 같은 거야.”
“유령……?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생동감이 있는데요.”
나는 다나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하지만 소녀 같은 모습을 한 과거의 신은 정말 유령인 것처럼 내 술잔을 통과해버렸다. 허미 씹, 소름돋는 거.
술을 마시지 못해서 아쉽다는 눈빛을 하던 그녀가 즐겁게 웃었다.
“생동감이 있을 수밖에. 대부분의 신은 세계수가 만들어지기도 전, 성해의 거인과 암소가 죽으면서 세상에 색이 칠해질 때 태어난 존재들이야. 그러니까 죽어도 쉽게 없어지진 않지.”
“대체 언젯적 얘기냐. 어마어마한 레후.”
듣는 원숭이 까마득해지는 시간 개념일세.
인류의 장수종족들이랑도 급이 다르군.
“아주,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
소녀는 앙증맞은 팔을 열심히 벌렸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태양이 저무는 거랑 똑같아. 우리는 탄생했을 때부터 세계의 근간에 기인했어. 그러니까 산이 무너져도 흙이 남듯, 나도 아직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걸지도.”
“대단하네. 스케일이 다르군.”
“그럴까? 뿌리를 세계의 근간에 두었다는 건,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더 큰 흐름에는 저항할 수 없다는 뜻이야.”
소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해. 죽은 뒤에도 시체만 남아 추잡하게 세상을 관음하지.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신이 몇이나 될까? 아마 신좌도 남기지 못한 녀석들도 수두룩하겠지.”
“……그럼 우리가 네게 새로운 이름과 신앙을 주면, 너도 원래 힘을 되찾게 되나?”
“아니야. 이름까지 바뀌면 내가 나라는 증거는 하나도 안 남잖아? 그런 건 구원이 아니야. 차라리 확인사살이지.”
소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잊혀지는 것 이상의 죽음은 존재를 왜곡당하는 거야. 저 망치를 든 뇌신이 죽은 뒤, 그의 신좌의 별빛이 완전히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꺼져버린 것처럼.”
“……그건 아마 내가 한 걸 걸?”
“정말? 잘 했어. 하늘을 볼 때마다 슬펐었는데.”
칭찬받았다. 와- 기분 째지네-.
농담은 제쳐두고, 저건 아마 내가 투스타스 상회에서 해치웠던 엔리르 새끼 얘기겠지.
완전히 사망한 토르의 신좌를 낼름 꿰차서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가, 몇 달 전에 내 손에 뒤져서 다시 신좌를 비워야만 했던 〈편찬대대〉의 아마추어 〈인신〉 놈 말이다.
‘감이 잡히는 것도 같군.’
죽은 자는 무슨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결국 죽은 자일 뿐.
그건 신도 마찬가지다. 너무 강대한 존재였기에 사후에도 자아를 남길 수 있지만, 그게 고작이다.
육신도 영혼도 없어졌는데 자아만 남아있다는 것부터 존나 초월적인 느낌은 든다만. 나는 술로 입을 적시고 말했다.
“그러니까 뭐야? 죽은 신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하고, 자기 신좌마저 내주면 이제는 이름만을 남기는 게 고작이다?”
“제대로 이해했어. 그리고 나는 그 이름마저 잊혀졌고.”
죽어서 영혼만이 남은 신이, 존재마저 잊혀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건 별로 고민할 것 없이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목숨도, 존재했던 흔적도 사라지는 거겠지.’
다시 말해서 신들의 죽음이란 둘 중 하나로 요약된다.
1. 생전에 육신과 영혼이 완전히 소멸할 것.
2.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던 신좌를 빼앗길 것.
이렇게 된다.
“흠. 만약에 몸도 혼도 멀쩡한 상태에서 신좌만 뺏긴다면 어떻게 된대?”
“글쎄? 모르겠네. 인간이나 그에 준하는 생물으로 변할까? 내 관점에서는 그것도 엄청 부러운데.”
“글쿠만.”
나는 이해를 했다.
저 법칙에 예외가 있다면, 라그나로크에서 파멸을 예언받지 않고 현대까지 살아남은 극히 일부의 신들이나…… 당시부터 벌써 목만 남아서 반쯤 뒤져 있던 어떤 미친 신놈 뿐일까.
“사실은, 이름마저 잊혀진 내가 이렇게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 신기한 일이지.”
한때 신이었던 존재는 뒷짐을 지며 싱긋 웃었다.
“내년 봄 쯤이면 더 이상 만나지는 못하게 되겠지만, 숲에 찾아와도 내가 보이지 않게 되면 단출하게 명복이라도 빌어 줄래? 그러면 무지 고마울 것 같은데.”
명복이라니? 우리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듣고 황망해졌다.
“의미 없는 회화라도 나눌 수 있어서 기뻤어. 아이들이랑 노는 것도 즐겁지만, 나는 이런 대화도 좋아하거든.”
뒷짐을 지고 소녀는 자연에 녹아들듯 눈을 감았다.
그러고 있자, 소녀는 지금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 초 쯤 지나면 모래로 그린 그림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자라난 나무들로 얼기설기 잘려나간 밤하늘에는 청명하기 짝이 없는 마을인데도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뿌연 하늘은 그믐달의 달빛마저 어디론가 숨은 것처럼 먹먹했다.
뒤켠에서 넘실대는 마을 사람들의 생기도 이곳까지는 미처 닿지 못하는 듯,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나뉜 듯한 공간은 이곳에서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을 누군가의 심정을 삽시간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아마 나와 같이 있던 다나도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잠시, 잠시만요.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힘겹게 입을 연 다나는 그렇게 말하고 치맛자락까지 들추며 마을로 달려갔다.
왜 저러나 하던 나는 금방 품에 뭔가를 안고 돌아온 우리 아내님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건 작은 부적이었다. 색으로 물들인 실로 짠 직물 부적 말이다.
“이거, 저희 아버지가 만든 거에요!”
“……이걸? 이 시대의 아이가?”
눈을 뜬 소녀는 얼떨떨해 하는 눈치로, 장인어른께서 내게 주셨던 부적을 손에 받았다.
그렇다. 술잔 때처럼 통과하지 않고, 건네받은 것이다.
색을 물들인 실을 엮어서 만든 문양.
나는 그걸 오우거와 트롤이 얼스터 인의 후예라는 증거로 써먹고서 그대로 처갓집에 방치한 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나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만에 보는 물건인지 모르겠네.”
소녀는 향수병에 걸린 나그네처럼 눈에 힘이 풀렸다.
“이 장식은 나를 섬기던 아이들이 만들어주던 선물이야. 난 예전부터 이런 알록달록하고 배배 꼬인 걸 좋아했거든.”
“저희 아버지는 트롤을── 정령을 만났을 때를 위한 부적이라고 했어요.”
손 안의 부적을 쓰다듬는 그녀에게 다나가 말했다.
“저기. 분명 저희는 갖고 있던 전통도 잃고, 전쟁을 일으키다가 섬기던 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렸을지는 몰라도……”
다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래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있어요.”
저 부적이야말로 그 증거였다.
신의 이름도 그녀를 섬기는 방식도 잊혀져버렸지만, 아직 과거의 신앙에 담겼던 마음은 전해지고 있다는 증거 말이다.
“……기억하고 있는 것.”
소녀는 다나의 말을 되풀이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그래서 나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거야.”
“……이름을 모르는 신이라도 공양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쪼르륵.
나는 새 잔에 사과주를 따르고 다시 내밀었다.
“방식이나 지식은 어찌됐건, 마음만 제대로 전해지면 된 거 아니겠어? 이 마을이 수백 년 간 그래왔던 것처럼.”
“……………….”
소녀는 가만히 잔을 받았다.
선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이어서일까. 이번에는 그 손이 통과하지 않고, 전통 양식의 술잔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꿀꺽.
잔의 내용물이 사라졌다.
소녀는 놀란 것처럼 숨이 멎었다가, 그대로 사과주 한 잔을 내리 비웠다.
잔에 가려졌던 작은 얼굴이 일식이 끝나듯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신기한 듯이 입술을 벌렸다.
“……하나도 안 달아. 예전에 마셨던 거랑은 다르네.”
“많은 게 바뀌었으니까.”
신의 시대는 끝났다.
모든 게 순리 그대로였던 시대의 예언조차 인간의 시대에는 명분과 실리를 따르는 보물지도로 뒤바뀐 시대다.
일단 오딘 신의 후계자부터가 아직 지가 새 시대를 이끌어갈 거라는 실감이 없으시거든. 울프헤딘이 뭔데 씹새야. 어드밴스드 원숭이 새끼한테 바라는 것도 많으셔.
“달달한 술이 좋은 거면 꿀이라도 타 줄까?”
“됐어. 이것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어린애에게 술을 마시게 하려는 못된 원숭이의 유혹을 딱 잘라 거절하고서 소녀는 당당하게 팔짱을 꼈다.
“좋아. 나도 명색이 신이야. 수백 년 만에 공양을 받았는데 입을 싹 닦고 떠나갈 순 없지.”
싱긋 웃은 소녀는 다나의 손을 붙잡았다.
거부하지 않았던 다나는 1초도 못 가서 크게 움찔했다. 내 눈은 오딘의 눈을 쓰지 않아도, 영혼처럼 빛나는 마나의 덩어리가 맥박치며 커져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걸 느낄 수 있을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다나는 차마 신의 손을 뿌리지지도 못하고 당황했다.
“뭐, 뭘 하시는 거에요?”
“네 영성…… 재능을 키워주는 거야. 지금의 나라도 이것 정도는 가능하거든.”
그게 가능하냐는 듯한 우리의 눈빛을 눈치챈 걸까. 소녀는 혀를 삐쭉 빼물었다.
“사제라는 건 자기가 섬기는 신과 영적으로 일심동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야. 그릇을 키우고 시답잖은 잡신들의 개입을 막아주는 정도는 되겠지.”
아니, 단언할 수 있다. 그건 절대로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 증거로 다나의 손을 붙잡은 그녀의 몸은 발치에서부터 점점 흐려지고 있지 않은가.
이 이름 없는 여신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다나의 그릇을 깨우고 키우는데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휴우우우웅…….
하지만 자신의 영멸을 대가로 한 그 의식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흐뭇하게 웃는 그녀는 소녀다운 어린 외모가 무색하게도, 자신의 아이에게 유산을 남기는 어머니처럼 자애롭고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비참한 명줄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때때로 죽음은 무엇보다 값진 구원이 돼.”
몇 분쯤 지나자 소녀는 다나에게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게, 네가 짐승으로 영락한 이들의 영혼을 정화하거나 그들에게서 마나를 나눠받을 수 있는 이유지.”
자신의 마지막 일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그녀는 나에게도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렇기에 예언의 짐승은 이윽고 모든 짐승의 왕인 거야. 왕이라면 길을 잘못 든 신민을 구원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 짐승이란 것들에 바이콘도 포함돼?”
“짐승으로 변해버린 이들이 상대라면 누구든 똑같아. 네가 내릴 구원의 형태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잘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홉 고블린, 트롤, 오우거.
그리고 원래의 모습들을 잃고 영혼을 더럽혀진 흑마법사의 골렘이나, 스스로 타락한 타뷸라 같은 놈들.
마지막으로 구신의 저주를 받은 바이콘이나 유니콘까지.
내가 그들의 저주를 풀 수 있는 것과, 그들의 영혼을 정화했을 때 찾아오는 마나 계승 현상도 오딘의 후계자로서 가진 힘에 근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이제, 진짜 작별이네.”
소녀는 이걸로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사하며 헤어지는 친구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말이다.
쿠오오오오─!!
픽트의 숲을 굽어보던 원대한 기척이 빛의 기둥을 세우며 하늘로 치솟았다. 사람이 키운 장작의 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광채가 별빛을 응축한 듯 터져나왔다.
[운명을 그려나갈 혼돈의 총아여, 안녕히! 열심히 힘내렴! 너와 네 아내의 미래를 자신의 힘으로 그려나갈 수 있다니, 그 얼마나 멋진 일이야!]
그 투명한 흰색의 오로라는 멀리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도 보였던 것일까. 경외심을 일으키는 빛의 기둥에 그들은 하던 일도 멈추고 눈길을 빼앗겼다.
신앙심 깊은 사제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소녀는 그게 기쁜 것처럼 헤벌쭉 웃었다.
[또 하나 신대의 별이 하늘에 지더라도, 대지에 선 생명에게 죄는 없으니! 새 시대의 아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쿠웅─!!
축복을 남기며 소녀의 몸이 사라졌다. 기백이 넘쳐흐르던 빛의 기둥도 어느샌가 조금씩 가느다랗게 좁아지며, 별다를 것 없는 칠색의 무지개로 변해갔다.
하지만 결단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소멸이 아무 특색 없는 시시한 광경에 되었대도,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찰나의 최후를 기억할 것이다.
선조의 축제를 재현한 날 밤에 일어났던 신비로운 현상.
그것을 누군가에게 자랑스레 전하고, 후대에 글로 남기며, 어쩌면 저 캠프 파이어를 등지고 춤추며 부를 노래로 만들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저 최후는, 역시 신의 이름에 걸맞은 기적이라고 불러줄 만 했다.
나는 그녀가 비운 술잔을 들고 목이 부러져라 머리를 뒤로 젖혔다.
지축을 흔들며 치솟은 무지개는, 끝을 모르는 별들의 바다 너머로 한없이── 그리고 원없이 뻗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