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91화 (491/1,009)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북부의 지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빛의 기둥과 무지개의 출처에 대해 설명하자, 장모님은 그 사건을 집필 중인 책에 기록하겠다고 하셨다.

어쩌면 저 기록을 읽은 후손들은 나중에 독자적인 신앙을 꾸리게 될지도 모른다. 소멸한 뒤에야 다시 숭배받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사흘 쯤 지났을까.

다나의 몸에 깃든 축복은 아직 가시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았다.

‘아마 성장속도나 성장의 한계에 관여한 축복 같은데…… 딸랑 하루아침에 녹여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신이 내린 축복이다.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게 틀림없었다.

가끔씩 앉아서 명상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걸 보면, 다나도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그 소녀신의 마지막 선물을 체득(體得)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다나. 유적은 어떻게 하게?”

“우리 고향 사람들을 고용해서 경비를 맡겼어. 연구 팀도 몇 명 남아서 혹시 흘린 유물이 없는지 찾을 거고.”

명상을 끝낸 듯 하길래 묻자, 다시 단발로 돌아온 다나는 알면서 뭘 묻냐는 듯 키득거렸다.

사르가디스로 돌아온 연구원들은 가져온 유물을 학계의 사료(史料) 등과 대조하면서 논문 겸 보고서로 만들 예정이라나. 학계에 보낼 유물도 선별해야 할 텐데 고생 좀 하겠다.

“글쿤. 그런데 누나. 누나네 연구원 중에 솔로인 사람들이 픽트 마을 사람들이랑 눈 맞은 것 같던데, 알고 있었음?”

“뭐 시발? 아니, 그 인간들이 웬일로 적극적인가 했더니.”

“흐흐. 좋을 때지. 사랑에 눈 멀어서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것만 아니면 괜찮지 않겠어?”

일부러 현장에 남기를 택한 건 사랑 때문이겠지.

그래도 원래 랩실에서 좆 빠지게 학술지 뒤지고 자료를 정리하는 거랑, 현장에서 허리 아프게 유물을 캐내는 건 학자들마다 성격에 따라 선호도가 갈린다.

참고로 나는 그나마 랩실에 쳐박히는 편이 나았는데, 이젠 사소한 노동 따위로는 피로를 느끼지 못하게 된 만큼 유물을 캐내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어느 쪽도 안 할 거지만. 크헤헤.

아무튼 그렇게 그리운 집으로 귀향 완료다.

“사르가디스여! 나는 돌아왔다!”

“선배는 자주 들르지 않았어요?”

“2달만에 돌아온 건 우리거든 씹새야?”

시발 한 명씩 덤벼. 치사하게 좌우에서 때리기냐.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각자 오랜만에 자기 침대에서 편히 자거나, 마저 못 끝낸 일을 하거나, 각자 훈련에 들어갔다.

참고로 나는 의수에 적응할 겸 일과인 신체단련을 할 때를 빼면 대부분 일에 치이며 살았다. 와! 노르는 일 싫어 매우!

“클라라 씨, 오드리. 저번부터 몇 번 말씀드렸듯이, 우리 직원 두 분은 저희 가족이 나르메르-나일로 갈 때 같은 배에 타실 겁니다. 우선 로마니아부터 들릴 거라서요.”

클라라의 대장간을 찾아가 그녀들을 데려오는 길에, 나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가주님을 뵈러요? 그치만 노르드 씨가 너무 빙 돌아가는 것 아닌가요?”

“별로 그렇지도 않아, 선생님. 브리타니아에서 나르메르-나일로 직행하는 뱃편은 거의 없걸랑.”

어느샌가 클라라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오드리의 말이었다.

선생님이라니. 조금 웃기는 표현이긴 한데, 아무튼 그녀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지구에서도 비행기를 타면 기름을 보급하려고 딴 나라에 들렀잖아? 똑같은 거지 뭐.’

배라는 건 선원과 승객과 식량과 전투원을 실고 움직이는 탑승물이다.

“으음. 그런 건가요?”

“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가뜩이나 장거리 항해가 되면 보급이 어려운데, 배에다가 승객이랑 선원, 식량, 기타 여러가지를 다 실고 나르려면 배가 얼마나 커야겠습니까.”

게다가 이세계엔 몬스터랑 해적도 존나 많잖어.

그런 장거리 항해가 되는 선박은 민간에서 운용하는 일이 드물다.

예약도 막 반 년에서 1년까지 걸린다나 뭐라나.

“그래서 먼저 항로로 로마니아에 들리고, 거기서 더럽게 큰 배를 잡아서 올라탈 겁니다.”

예약은 캐서린이 해 줬다.

역시 우리 만능 파출부. 경의를 담아서 ‘잡무(雜務) 업계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칭호를 선사하마.

‘아마 그 흑인 흑마법사 슬레이어도 이 방식으로 브리타니아까지 온 거겠지.’

경유지인 로마니아에서 〈임모르탈리스〉의 음모를 분쇄한 키타이 인 모험가의 소문을 들은 게 분명하다.

“암튼, 가는 길에 여러분 몫의 뱃삯만 내 드리면 그만이니까 부담 갖지 마시구요.”

“그, 그렇군요. 로마니아 원로님이라. 새삼 긴장되네요.”

“장인에게 귀족을 응대하는 예절을 바라실 분은 아니니까 걱정 붙들어 매십쇼. 연구 보고서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분명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제가 보증할게요.”

문제는 어르신이 클라라를 로마니아에 데려올지, 브리타니아에서 지내게 둘지인데.

이건 나도 모르겠소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방치하긴 어렵겠는데, 또 데려가 버리자니 이세계의 문명 수준에서는 이민을 강요하는 수준이라서 선뜻 권하기는 또 힘든 일라서.

홀몸이라면 모를까 집까지 가진 유부녀니까.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방치하는 게 답이다. 두 사람을 데리고 집에 오자 마침 티르시도 와 있었다.

“티르시, 안녕하세요.”

“으으…… 노르드, 이번에도 결혼식에 못 가서 죄송했어요.”

내가 인사를 건네자 티르시는 사과부터 박았다.

이번에도 내 결혼식에 못 온 게 많이 미안했던 걸까. 무슨 죽을 죄를 지은 사람처럼 구는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 수 있나요. 사정이 사정인데.”

무단결근 연타를 저질러버린 우리 마법사님께서 ‘친구 결혼식이 있는데 휴가 좀요’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피치 못할 사정을 이해해 주는 것. 그게 우정이라는 것이다.

티르시는 내가 다 이해한다는 듯 웃자 어색한 듯 하얀색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딱히 그래서는 아니지만, 며칠 쯤 전에 마음을 정했어요. 저, 이번 달 안에 길드 연구원을 사직하려고 해요.”

“오? 정말요? 큰 결심 하셨네.”

어쩐지 얼굴에 생기가 돌더라니.

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이 영양제를 맞고 싱그러워진 식물처럼 생기를 뿜어내는 건 이세계도 마찬가지구만.

“네. 〈강림〉 사건 탓에 어떻게 해서든 귀족이 되겠다는 결심이 약간 꺾인 것도 있고…… 그 왜, 아시잖아요?”

알고 말고. 마법사 길드 연구원은 모험가 일이랑 병행하기 어려우니까.

우리 전속 파티원 자리를 예약한 티르시는 부끄러운 듯이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픽 웃었다.

“흐흐. 물론 알죠. 어디 저희 같은 먹물쟁이라고 책상 앞에서만 승진할 수 있댑니까? 당장 저도 현장직인걸요.”

물론 어디서든 일정 급수 이상의 직책을 따내려면 존나게 굴러야 한다는 거랑, 똑같이 구른다면 몸이 아픈 현장직보단 머리가 아픈 사무직 쪽이 낫다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티르시도 알 건데 뭐.

어디 하수구에서 뛰어댕기던 좆밥 시절 때처럼 사이 좋게 굴러봅시다. 어서 와라… 「현장 실무」의 세계에….

“으흠, 크흥! 아무튼!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뭘요. 부탁은 저랑 프랑이 해야죠.”

티르시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프랑의 마법 재능을 꽃 피우게 도와주길 바라서였다.

실력 있는 마법사라면 베로니카도 있지만, 우리 여신님의 마법 체계는 ‘아아, 이것은 룬이라는 것이다’로 요약되는 찐 아스가르드식 매직 아닌가. 현대 이세계의 마법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존나 이세계의 이세계인 것이다.

‘룬 마법의 포텐셜을 살리지 못하는 프랑한텐 안 맞는다는 얘기지.’

어느 정도는 조언해 줄 수 있지만, 체계적인 수준이 되면 전문분야 밖이다.

그렇다고 프랑이 뭐 룬을 배워서 새로 마법을 만들 건가?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여차하면 내가 오딘의 눈을 써서 만들어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특별 초청 강사를 불러왓읍니다.”

“아, 티르시 씨! 어서 오세요!”

찰흙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던 프랑은 장갑을 벗으며 얼른 일어났다. 집중이 깨졌을 텐데 착하기도 하지.

내가 실실 웃자 티르시도 대견하다는 듯 끄덕였다.

“알려드린 대로 흙과 자주 접하고 계신가 보네요.”

“네. 집에 온 뒤로는 티르시 씨가 준 흙을 만지고 있어요. 유적에 있을 땐 다나의 일을 돕기만 해도 됐었지만요.”

“네, 잘 하고 계시는 거에요. 적성이라는 건 남이 알아보고 이끌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마법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면서 진득하게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검지를 세우며 교사처럼 말하는 티르시는 지식인답게 자기 지식을 뽐낼 기회에 어깨가 으쓱으쓱 하고 있었다. 신세를 진 보답이라지면 따지고 보면 열정페이인데 대단도 하다.

“네. 그래도 기껏 오셨으니까 이 수행은 나중에 할게요!”

“그래요. 휴일이니 간단하게 이론만 짚고 넘어갈까요?”

1달 쯤 전인가. 사정을 들은 티르시는 프랑에게 간단한 듯 몹시 어려운 과제를 내주었다.

─흙과 접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마법’이 어떤 것인지 고찰해 보세요.

도덕 시간에나 볼 법한 자아탐색의 시간이다. 마법이란 게 이성과 갬성의 혼종인 장르라서 그렇다.

미술도 투시법 원근법 하는 걸 따지긴 하지만, 결국 모든 과정을 이론으로 수립하지는 않잖은가. 그거랑 같다.

학생의 적성을 찾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학습법은 21세기 사이어인의 마음에도 쏙 들었고 말이다.

물론 학생 입장에서는 지루할 법도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프랑은 참 좋은 학생이었다.

물론 그냥 찰흙 놀이를 좋아하는 걸수도 있기는 한데, 그 점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치자. 일이랑 취미가 맞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

그리고 이건 사족인데, 프랑에게 더러운 흙을 만지게 하기 싫었던 나는 며칠 전 그녀가 주물럭댈 흙을 피자 도우처럼 펼쳐놓고 매지컬 소독빔을 존나게 갈겨댔었다.

“노르드는 흙에 손 대지 마시구요.”

“넵.”

그리고 티르시한테 무슨 짓이냐고 된통 혼났다. 아흑흑.

“……크흠. 클라라 씨, 저희는 이쪽으로 가십시다.”

“넵.”

프랑에게 선생님을 붙여준 나는 묵묵히 따라오던 대장장이 콤비를 데리고 이동했다.

이동한 곳은 우리 집의 정원 뒷마당이었다.

부품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친 텐트에 라리루라가 앉아 있었다. 간촐한 파자마를 입고 끙끙거리던 라리루라는 우리 등장에 얼굴을 확 밝혔다.

“늦다구요, 정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따질 거면 너네 안사람한테 따지든가. 아니지. 내 몫까지 꼭 따져 주라. 이러다 제 명에 못 살게 생겼어.”

오드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투덜거렸지만, 같은 고생을 하고 있는 클라라는 오히려 이게 휴식이라는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텐트 안에 분해된 금속 부품을 향해 있었다.

“그러면 오늘도 기운차게 가 보죠!”

그리고 우리 후배님은 클라라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 넘치게 주먹을 위로 뻗었다.

“여러분들은 저희 링링이 5호의 어머니가 되어 주실지도 모르는 여성이니까요☆!”

내가 라리루라에게 약속했던 선물 중 한 가지.

그건 바로, 마나 금속으로 만든 새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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